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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살인(8)

운영자 2011.09.29 17:51:24
조회 312 추천 0 댓글 0

  3월25일 오후 1시. 황사가 섞인 바람 속에 아직도 날카로운 겨울이 숨어 있었다. 나는 안양교도소의 높다란 담 귀퉁이에 있는 녹슨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교도관들이 점심 후 삼삼오오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얘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군대 막사를 닮은 납작한 이층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일층 구석에 변호사접견실이 있었다. 접수담당이 머리통 뒤로 손깍지를 끼고 의자 등받이를 뒤로 한껏 제친 채 나른한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그의 책상위에 접견신청서를 놓고 옆에 있는 빈 유리박스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회칠한 벽 아래의 비닐의자에 서너명의 재소자들이 앉아 있었다. 사건기록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옆 사람과 의논을 하는 사람, 코털을 뽑는 사람, 무심히 콘크리트 바닥에 시선을 던지는 사람, 모습이 제각각이었다. 여드름자국이 남아있는 밤송이머리의 이십대 남자가 작은 의자에 따로 앉아 있었다. 우람한 근육질의 가슴에 노란 딱지가 붙었다. 강력범이었다. 조폭쯤 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경교대원이 강철윤을 데려왔다. 부석부석한 검은 얼굴이었다. 그가 내 앞에 앉았다.

 
  “이것 한번 읽어 보세요.”
 

  내가 제출한 변론요지서들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과 만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밀하게 묘사한 것들이었다. 그가 읽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그와 사건전날 같이 있었던 군대후배의 배신과 조롱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정직하게 알려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글자 하나하나를 빼서 닦듯이 세밀하게 읽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수리 부분이 털 빠진 닭같이 훤하게 보였다. 목격자가 말한 스포츠머리일 수 없었다. 그는 계속 나의 글을 읽고 있었다. 나는 가방 속에서 읽던 책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접견실 벽 위에 매미같이 붙어 있는 낡은 시계가 어느새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흐윽-----”
 

  갑자기 그의 메마른 흐느낌이 들렸다. 눈물이 흘러 나왔다. 내 글 속에 묘사된 자신의 신세를 보고 처량해서 우는 것 같았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가 눈물을 손바닥으로 씩 훔치고는 내게 말했다.
 

  “오늘 딸이 온다고 그랬는데요”
 

  갑자기 딸 얘기가 튀어나왔다. 그의 표정은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딸이 뭐해요?”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스물 네 살인데 회사에 경리로 취직해서 다니고 있어요.”

  그만 하면 그도 의지할 곳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 딸 어떻게 키웠어요?”

  내가 물었다.
 

  “공수부대 하사관을 하다보면 수시로 여러 날 집을 비우는 훈련을 가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훈련에서 돌아와 보니 아내가 바람이 나서 아이를 두고 도망갔어요. 딸이 어렸을 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오후에 부대에서 돌아와 보면 아이만 있었어요. 아침에 일찍 내가 아이 점심 저녁 먹을 밥까지 해 놓고 부대로 갔어요. 그리고 밤에 집에 와서는 빨래하고 아이 데리고 잤어요. 딸아이는 엄마 사랑 받지 못하고 밤늦게 퇴근한 아빠 품에서 내 젖 빨고 자란 아입니다.”
 

  얼어붙을 것 같이 잔인한 살인범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제는 냉냉한 수사의 시각이 아닌 그의 관점에서 이사건의 수사과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체포될 때 상황이 어땠어요?”

  내가 수첩을 꺼내 메모할 준비를 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인천의 공사현장에서 배관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얘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사흘이 되는 날이었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오후 일을 하는데 형사 3명이 들이닥쳤다. 그는 작업복 위에 노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형사 한명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모자를 들추면서 물었다.

 
  “너 강철윤 맞지?”

  찍어누르는 듯한 반말이었다.
 

  “그런데요?”

  그가 형사의 기세에 주눅이 들면서 대답했다.
 

  “송양숙 알아?”

  “아는데요”

  그가 멀뚱한 눈으로 형사를 바라보았다.
 

  “새끼 이거 웃기는 놈이네. 올께 왔다고 생각 안하고 이 새끼 태연한 거 봐”

  형사는 기가 막힌 다는 얼굴이었다. 옆에 있던 형사 두 명이 다가와 양팔을 잡아 꼼짝 못하게 했다.
 

  “내가 뭘 어쨌길래 이러는 겁니까?”

  그가 저항했다.
 

  “잔소리 말고 가 새꺄”

  형사들이 그를 근처에 세워둔 차로 끌고 가 쑤셔 박았다. 차안에 들어가자 말자 그의 얼굴과 배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날 저녁 그는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인 채 강력반 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입이 마르고 목이 탔다. 부글부글 끓고 소란했던 경찰서가 조용해지면서 땅거미가 내렸다. 밤이 됐다. 어느새 벽에 걸린 시계가 새벽 두시를 알리고 있었다. 적막했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에서 쏟아지는 파란 불빛의 입자들이 빈 철책상위를 떠돌고 있었다. 턱이 뾰족한 강력반 형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야 이 새끼 너 머리가 나같이 스포츠가리였다면서? 근데 언제 이렇게 빡빡 깍았어?”

  그때 다른 형사가 다가왔다. 완강해 보이는 네모난 턱을 가지고 있었다.
 

  “가만 있어봐 이런 새끼는 먼저 손 좀 봐야 돼”
 

  네모 턱 형사가 철의자에 앉은 그의 가슴을 거세게 걷어 찼다. 그는 의자와 함께 콘크리트 바닥에 벌렁 나가 떨어졌다. 머리통이 콘크리트 바닥에 ‘쿵’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형사 두 명이 그를 바닥에 엎어놓고 구둣발로 머리통과 다리를 밟아 꼼짝 못하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형사가 와서 몽둥이로 그를 패기 시작했다. 옆구리와 등짝을 달군 쇠꼬챙이로 막 쑤시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야 새꺄 송양숙이가 죽지 않고 다 불었어. 안 죽은걸 미처 몰랐지?”

  형사가 소리쳤다.
 

  “나도 그 사람 보고 싶어요. 가자구요”

  그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가긴 어딜 가? 새꺄”

  얻어맞다가 잠시 쉬고 또 얻어맞았다.
 

  그는 다음날 아침 형사들에게 끌려서 그가 머리를 깍았던 이발관으로 갔다. 이발사는 사건당일 그가 삭발한 사실을 형사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우연의 일치였다. 형사들은 범행 후 그가 일부러 모습을 바꾼 것으로 간주했다. 형사 한명이 그에게 내뱉었다.
 

  “야 임마 내가 니 특전사 후배다 알겠냐? 좌우지간 너를 봤다는 사람이 있으니까 내일이면 넌 운명이 끝나게 돼있어”
 

  다음날 11시경 그는 사건현장인 아파트로 끌려갔다. 현장검증이었다. 가는 차 안에서 형사반장은 따귀를 올려붙였다.
 

  “이러지 마쇼 나도 나이 오십이 되는 사람이요”

  그가 반항했다.
 

  “오십 좋아 하네 새끼”

  형사반장이 코웃음치며 다시 손바닥으로 머리통을 갈겼다. 그는 형사들과 아파트 정문 앞에서 내렸다. 수갑과 포승에 묶인 채였다.
 

  “야 임마 현장에서 저쪽 놀이터 쪽으로 고개 숙이고 가봐”

  형사반장이 명령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터벅터벅 앞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다른 형사가 소리 질렀다.
 

  “이 새끼 그냥 가면 어떻게 해? 현장부터 걸어가란 말야”

  “--------”
 

  그가 멀뚱하게 형사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형사가 그를 보면서 소리쳤다.
 

  “야 임마 여기서 네가 죽였잖아? 그러니까 요 지점부터 천천히 걸어가 보란 말야 새끼야.”
 

  형사가 주차장 바닥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순간 목격자라는 주부가 아파트 4층 자기집 창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밤 형사들은 유치장에서 그를 끌고 나왔다. 책상위에는 이미 작성해 둔 피의자 신문조서가 있었다.
 

  “여기 서명하고 손도장 찍어”

  그건 살인했다는 자백이었다.
 

  “난 이런 거 몰라 안 해”

  그가 버텼다.
 

  “어쭈? 이새끼 봐?”
 

  형사들은 그의 손가락을 비틀어 잡고 빨간 인주를 묻혔다. 그의 손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조서의 여기저기 시뻘건 그의 손도장이 찍혔다. 여기까지가 그가 말한 경찰서에서의 상황이었다. 검찰은 사건당일 그가 변장을 하고 급히 자금을 마련해 도주를 했다고 결론지었다. 부천에 살던 그가 기껏 도주했다는 곳이 인천일까? 이발소에서 예전대로 빡빡머리로 한게 변장일까? 맞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서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은 흔적은 없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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