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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살인(22)

운영자 2012.02.21 15:30:50
조회 241 추천 0 댓글 0

  오후 2시의 고등법원 302호 법정. 방청석 의자에 육십대 말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헐렁한 자루같은 검은 옷을 입은 뚱보였다. 검찰측 증인이었다. 멍게같이 검붉은 얼굴은 가난 속에서 적당히 살아온 듯 혼탁한 느낌이 들었다. 충혈 된 눈동자가 부지런히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옆에 는 딸인 듯한 사십대의 납작한 얼굴의 여자가 보였다. 곧 증언이 있을 예정이었다. 검사가 새로 온 재판장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증인이 심장이 약해서 피고인을 보지 않았으면 한답니다.”

 

  새로 다시 온 재판장도 여성법관이었다. 재판장이 잠시 생각하다가 그 뚱보여자에게 명령했다.

 

  “그러면요 방청석 뒷 쪽에 그냥 가만히 앉아 계세요. 피고인을 잠깐 나오게 할 테니까 조용히 보세요. 사건 나기 전에 우연히 봤던 그 남자인지 아닌지 보고 잘 대답해야 합니다.”

 

  재판장의 설명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인을 잠깐 나오게 하시죠”

 

  재판장이 피고인 대기실 문 앞에 서있는 교도관에게 명령했다. 잠시 후 강철윤이 손에 수갑을 찬 채 두 명의 교도관의 감시를 받으며 나왔다. 그가 재판장 쪽을 향해 섰다.

 

  “고개를 돌리지 말고 그대로 잠깐 서 있어요”

 

  재판장이 명령했다. 방청석 구석에서 증인으로 나온 뚱보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그를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강철윤이 다시 들어가고 증인으로 나온 뚱보여자가 증언석위로 올라와 앉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계시던데 제대로 봤어요?”

 

  재판장이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했다.

 

  “어때요? 사건 전에 본 그 남자 맞아요?”

 

  “딱 맞아유 뒷통수도 납작하고-----”

 

  그녀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강철윤의 뒷통수는 납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둥근 편이었다. 검사가 신문을 시작했다.

 

  “경찰이 범인 얼굴을 사진으로 보여줘서 확인했죠?”

 

  “확인 했어유. 아까 그 사람이데유.”

 

  “그 남자가 살인 무렵 계속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렸죠?”

 

  “맞아유 그 남자가 아파트 입구 나무 밑에서 핸드폰을 들고 계속 전화를 하는 것도 봤슈.”

 

  “아침 8시경 박스를 찾으러 다니다가 아파트 앞에서 그 남자와 죽은 여자가 싸우는 걸 봤죠?”

 

  “둘이서 짜그락짜그락 거리데유. 여자는 안에 있구 남자는 밖에 있었슈”

 

  “죽은 여자가 저기 서 있는 남자가 싸운 거 맞죠?”

 

  “맞아유”

 

  다음은 변호사인 내 차례였다.

 

  “증인은 연세도 있으시던데 기억력이 어떠세요?”

 

  “뭐 정신이 오락가락 하쥬”

 

  “다투는 걸 봤다고 하셨는데 어떤 말을 하면서 싸웠는지 기억나면 한마디라도 말해 보세요”

 

  “아무것도 못 들었어유 왜 와라 가라 하면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겄네. 아이구 나 혈압 높아서 쓰러질 것 같아유”

 

  뚱보는 얼렁뚱땅하게 현장을 모면하려고 했다.

 

  “남자 머리모양은 어땠어요?”

 

  내가 다시 물어보았다.

 

  “난 못 봤어유”

 

  “증인! 그 남자를 여러 번 봤다고 경찰에서 얘기했죠?”

 

  내가 다구쳤다.

 

  “안 그랬슈”

 

  “머리모양이 어땠어요?”

 

  “몰라유 나 쓰러질 것 같애유.”

 

  정말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댔다. 그때 방청석에서 증인여자의 딸인 듯한 여자가 소리쳤다.

 

  “노인네가 쓰러질 것 같은데 이게 뭡니까? 왜 자꾸 괴롭혀요?”

 

  “조용하세요”

 

  재판장이 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경고했다.

 

  “피고인을 이 자리로 다시 데리고 들어오게 해주세요.”

 

  내가 부탁했다. 잠시 후 강철윤이 나와 뒷통수를 보였다. 머리털이 더부룩했다. 내가 증인으로 나온 여자에게 물었다.

 

  “자 보세요. 머리털이 그때 본 남자보다 어때요?”

 

  “딱 맞구만유 맞아유”

 

  엉터리였다. 강철윤의 머리는 빡빡 머리였다. 그런데 증인여자는 더부룩한 최윤철의 뒷머리를 보면서도 맞구만유 맞아유 하는 것이다. 내가 화가 나서 어조를 높였다.

 

  “여보세요! 뒷머리 털을 보란 말이예요. 그때 핸드폰을 하던 남자보다 길어요 짧아요?.”

 

  “머리털유? 그때 본 남자가 더 길구만유.”

 

  그렇다면 강철윤은 분명 증인으로 나온 그 여자가 본 사람이 아니었다. 조서를 보면 그 남자의 인상이 특이하다는 말까지 한 걸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사람 인상이 특이하다고 형사한테 말했어요?”

 

  “그런 사실 없어유 난 모르니까 못 봤다고 했슈”

 

  그녀의 말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배석판사가 묻기 시작했다.

 

  “아까 그 남자하고 죽은 여자하고 어떻게 했다고 그랬죠?”

 

  “뭘 어떻게 해유 짜그락거렸쥬”

 

  “짜그락거렸다?”

 

  “말했는데 왜 자꾸만 물어유? 나 아파서 그냥 갈래유.”

 

  “몇 시 쯤 봤어요?”

 

  배석판사가 개의치 않고 침착하게 물었다.

 

  “몰라유 형사가 쓴 거 안 봤어유? 자꾸만 같은 말 시키네.”

 

  판사는 못들은 척 하고 계속 물었다.

 

  “짜그락 거릴 때 남자가 밖에 있었다고 그랬죠?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유?”

 

  “여기 판사석부터 시작해서 방청석 어디쯤까지 거리인가 한번 대충 짐작해 보세요.”

 

  “글쎄 저쯤 될까?”

 

  그녀가 방청석의 두 번째 줄 정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두 번 봤다고 했죠? 자세히 말해보세요.”

 

  “첫 번째는 여자는 안에 있고 남자는 밖에 있었어유. 그리고 두 번째는 남자가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어유. 뒷통수를 봤어유. 흘쩍 얼굴을 돌렸는데 아까 그 남자하고 영낙 없이 맞구만유.”

 

  “그때 남자가 무슨 옷을 입었던가요?”

 

  “몰라유.”

 

  “처음 짜그락거리던 남자와 두 번째 남자가 같은 사람이죠?”

 

  “틀림없구만유. 나 자꾸 말시키지 말아유. 쓰러지시겄네--”

 

  그때 판사가 서기에게 최윤철의 사진을 가져다 증인 앞에 놓게 했다. 교도소에서 삭발을 하고 한 달쯤 자란 후에 찍은 뒷통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세요”

 

  배석판사가 말했다.

 

  “가라구유?”

 

  그녀가 뚱뚱한 몸을 일으키더니 가려고 발을 뗐다. 그때 재판장이 나서서 명령했다.

 

  “가라는 게 아니구요. 거기 사진을 보고 말씀하세요.”

 

  “뭘 자꾸만 보래유?”

 

  그녀는 귀찮은 듯 불만을 터뜨렸다. 배석판사가 물었다.

 

  “사진을 보시고 느낌을 말하세요.”

 

  “옷을 보라구유?”

 

  “느낌을 말해 보시라니까요”

 

  “느낌은 말이쥬”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을 이었다.

 

  “없어유”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때 본 남자가 그 사진 속의 사람이랑 비슷한지 어떤지 그 느낌을 말해보라니까요.”

 

  판사가 짜증을 담은 어조로 다시 말했다.

 

  “비슷하쥬. 아니 딱 맞네유”

 

  그녀가 다른 곳을 보면서 대답했다. 재판장이 소리쳤다.

 

  “아주머니 지금 사진을 보지도 않고 말씀하시는 거 잖아요?”

 

  서기가 기록 속에 있는 사진을 들추어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재판장이 사정조로 다시 물었다.

 

  “이보세요. 증인. 느낌이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그 사진속의 남자와 그날 핸드폰을 하던 남자가 어떤지 말해보세요.”

 

  “그래유. 느낌이 가유. 죽은 그 여자 엄마도 술을 가득 먹고 와서 나보고 범인이 그놈이라고 말해 달라더니 원-----”

 

  엉뚱한 고백이 터져 나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죽은 여자의 엄마가 잘 해 달라고 부탁한 것 같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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