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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판사와 고위직 판사의 다른 보람

운영자 2014.04.28 18:04:43
조회 2274 추천 7 댓글 1

몇 달 전 젊은 판사와 점심을 먹었다. 그는 거의 매일 밤 열한시가 넘어 퇴근한다고 했다. 그는 일 때문에 아직 결혼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성실한 판사들의 일상이었다. 나는 그에게 판사를 하는 보람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확인해 주는 어떤 기준이 사회의 룰로 작용하는 걸 볼 때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었듯 판사는 신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존중받으려면 행동도 올곧아야 한다. 

오랫동안 판사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혹시라도 조직에 누가 될까봐 항상 조심하는 걸 본다. 재판하는 날은 화장실에 가고 싶을 까봐 아침에 국도 먹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사회의 성스러운 제사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귀는 물질과 권세로 그들을 유혹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초겨울 구치소의 접견실에서였다. 홑겹의 죄수복을 입고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어디서 본 듯 낯이 익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자 그는 “이거 부끄럽구만”하고 몸을 비틀면서 외면했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 지역 법원의 부장판사였다. 그 얼마 전 수뇌죄로 구속됐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그는 판사라는 과시가 유난히 강했었다. 교도관은 나보고 더 높은 판사님이 감방 안에서 명상하고 있다고 귀 띰을 했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재판장 때 겪었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상대방은 ‘김앤장’이라는 로펌이었다. 재판장인 그는 조정을 강요했다. 귀찮은 판결문을 안 쓰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1억원정도로 상호간 의견의 폭이 좁혀졌다. 재판장인 그는 “김앤장은 돈 많이 버는 로펌이니까 5천만원을 내고 엄변호사는 개인변호사니까 3천만원을 개인적으로 내서 조정이 타결되는 걸로 하지”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멍해졌다. 농담을 할 장소가 아니었다. 

재판장이라지만 연하인 그와 격의 없는 사이도 아니었다. 개인변호사가 몇천만원을 내라는 발언이 진짜인지 농담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불쾌감이 피어올랐다. 재판장인 그는 팔짱을 끼고 다리까지 꼰 채 눈에 힘을 가득 주고 나를 보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오만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옆에 있던 나의 의뢰인이 “나 차라리 돈으로 때울 께요. 저 판사의 교만은 도저히 못 참겠어요”라고 속삭였다. 나는 변호사란 무엇인가 잠시 생각했다. 부당한 권력의 오만에 대항하는 것도 임무다. 

나는 재판장에게 “좋습니다. 제가 3천만원을 내죠. 그리고 모자라는 2천만원은 재판장이 월급으로 내시죠. 그러면 원만히 조정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그의 눈에서 ‘감히 어디다 대고’라는 분노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괘씸죄에 걸려 3억원정도 선고될 판결이 10억으로 껑충 뛰었다. 

나는 주간지에 그 사실을 기고했다. 다음에 그와 법정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는 주간지를 흔들면서 그 속의 판사가 자기냐고 따졌다. 나는 누구든지 글을 쓸 언론의 자유가 있는데 왜 당신은 법정이라는 공적인 자리를 이용해서 다른 사유를 가지고 문제 삼느냐고 따졌다. 

그건 법복을 입고 높은 법대를 이용한 권한남용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아직 괜찮았다. 판사들은 독립된 인격체다. 동료판사의 괘씸죄에 걸렸더라도 다른 판사들이 집단적 몰매를 주지는 않았다. 3심제라는 안전판도 있었다. 고등법원에 가서 판결은 제대로 됐다. 

그 얼마 후 교만하던 그 재판장이 뇌물죄로 구속 된 것이다. 그가 구치소의 좁은 감방에서 추운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변호사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법정에서 판사 앞에 허리를 굽히는 것은 대한민국 사법부를 존중해서다. 담당판사 개인을 보고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 경외의 배경에는 사랑이 담긴 공정한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지역과 유착된 속칭 ‘향판’의 황제노역이 문제화 됐다. 

하루에 5억원씩 쳐서 50일만 있으면 250억원의 벌금이 탕감되게 한 것이다. 강력한 재량권에 오래 젖어 있다 보면 자칫 세상의 눈에 둔감할 수 있다. 

법원장인 그는 젊은 초임판사도 아는 사회의 기준을 제공하는 판사로서의 사명을 잊고 있었다.

 법관이란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기준을 세상에 제시하는 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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