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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친구와 나의 친구

운영자 2015.08.27 14:04:41
조회 424 추천 6 댓글 0
나이 90인 어머니는 20층 아파트의 창가의자에 하루 종일 정물같이 앉아 저 아래의 세상을 내려다본다. 이제는 다리에 힘이 빠져 평생 부지런히 다니던 성당에도 가지 못한다. 보청기를 껴도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까 대화도 대부분 끊어졌다. 어머니는 어떤 면으로 이세상과 저세상 사이의 중간쯤인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됐다. 저녁 어둠 속에서 창가에 바위같이 앉아 있는 어머니의 실루엣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어느 날 오후였다. 열려있는 방문 틈으로 마리아상 앞에서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목껍질같이 주름지고 바짝 마른 어머니의 깊은 속에서 끓는 듯한 기도소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님 저의 외아들을 돌보아 주소서. 나는 이제 아무 힘이 없나이다. 저의 외아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어머니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메마르고 쇳소리 섞인 기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저의 외아들이 모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 모함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늙은 저는 아들을 도울 아무 힘이 없나이다. 마리아여 도와주소서.” 

늙은 어머니의 깊은 가슴속에는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이 그대로 고여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몇 개의 소송을 제기 당하고부터 끊임없이 기도를 해 왔다. 지난 30년간 작은 법률사무소를 해왔다. 나름대로 길을 정하고 그 길을 채색하며 살아왔다.

찾아오는 가난한 의뢰인들의 고뇌를 들어주며 작은 변론을 하고 살아왔다. 더러 법정풍경을 글로 묘사해 세상에 알렸다. 빛이 있어야 곰팡이가 살지 못하듯 나는 법정에서의 일이 철저히 여론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국회를 겨냥한 방송카메라가 국회의원을 긴장시키듯 법정풍경이 세상에 드러나야 법관의 교만이나 오판이 줄어들 것 같았다. 법정은 공개였다. 누구나 법정에 가서 재판을 볼 수 있었다. 중개방송을 하기도 하고 기자나 소설가들이 글로 써도 괜찮았다. 일본에는 법정풍경만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도 많았다. 그건 하나의 중요한 역사기록이기도 했다. 더러는 항의도 있었다. 전직대통령의 재판 방청기를 썼다. 법정에서 기자들이 모두 마감시간 때문에 빠져나가 버린 이후의 풍경을 담기도 했다. 전두환 대통령 측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항의를 전해 듣기도 했다. 국민에게 볼 권리 알권리가 있었다. 법정에서 그들의 진술은 비밀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계를 넘어선 경우도 있었다. 몇 년 전 우연히 한 살인사건을 맡았다. 살인범은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동기가 없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악마성이 엿보였다. 착하고 예쁜 여대생이 그의 가혹한 린치로 뼈가 조각이 나고 머리에 7발의 총알을 맞은 채 야산에 버려졌다. 청부살인이었다. 범인은 계약을 이행했을 뿐이라고 검은 웃음을 흘렸다. 죽은 여대생은 판사가 된 4촌 오빠를 잘 따랐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가르쳐 주던 선생이기도 했다. 그 오빠는 판사가 된 후 재벌 집에 팔려갔다. 장모인 회장 사모님은 사이코 패스 같았다. 둘 사이의 관계를 오해해서 살인청부까지 한 것이다. 어느 날 감옥안의 살인범이 이렇게 말했다.

“사모님이 제가 총대를 매면 50억을 주겠다고 했어요. 앞으로 사모님의 요구대로 하려고 하는데 도와줄 거요?”

돈으로 죄를 세탁하려는 추악한 음모였다. 그는 사모님측 변호사가 와서 전한 내용을 살짝 얘기했다. 

“사모님은 미행만 시켰는데 내가 실수해서 그 여대생이 죽었다라고 말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사모님은 무죄고 나는 과실치사로 가볍게 끝낼 수 있다는 거예요. 사모님이 전관예우를 받는 장관출신 변호사들과 다 계획을 짜 놨대요.”

졸부귀족의 독한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고민했다. 악마사모님이 돈의 힘으로 천사로 둔갑해 세상을 활보하면 살 맛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보아온 법정은 공정하지 않았다.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것 법전 속의 문장일 뿐이었다. 시궁창 같은 악취가 현실 법정에 가득 차 있을 때가 많았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때도 많았다.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해도 귀 기울이는 판사를 보지 못했다. 진실을 폭로해도 믿지 않았다. 정당방위도 인정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 법정풍경과 음모를 폭로하는 글을 쓰는 건 세상을 향해 하는 변론이었다. 나는 그들의 음모를 폭로했다. 바로 그 댓가가 왔다. 감옥에 있는 악마 사모님이 회사 고용사장에게 명령해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다. 나 때문에 기업의 주가가 떨어졌으니 배상하라고 했다. 판사사위도 소송을 걸어왔다. 나 때문에 판사의 재임용에서 탈락됐으니 위자료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살인범도 고소를 했다. 업무상 기밀을 누설했으니 나를 처벌하라고 했다. 정체불명 네티즌들의 집요한 공격이 있었다. 조사를 받았다. 형사들은 정계진출을 꿈꾸느냐고 물었다. 재벌을 공격하는 걸 보니까 좌파냐고 묻기도 했다. 법원에 불려가 피고자리에 섰다. 그런 것들은 그런대로 다 견딜 수가 있었다. 각오한 십자가를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아픈 건 충고를 가장한 동창들의 말이었다. 대도라고 알려진 조세형을 변호할 때였다. 빠삐용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사람이 어두운 감방에서 가죽수갑으로 몸이 묶인 채 엎어져 개처럼 밥을 핥아 먹고 있었다. 사람은 개와는 달라야 했다. 법정에서 인권얘기를 하니까 판사는 비웃었다. 그걸 세상에 알렸다. 방송의 사회자는 별 볼일 없는 변호사가 한번 뜨고 싶어서 스타범죄자를 맡았다고 빈정거렸다. 가까운 고교동창이 내게 다가와 알려주었다. 친구들이 너를 사상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수근 거린다고. 예수는 감옥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말씀을 따른 걸 좌우이념의 색안경으로 보고 정죄하는 그 동창이 야속했다. 매번 나를 제일 아프게 하는 것은 가깝다는 동창들이 무심히 내뱉는 말이다. 얼마 전에도 나를 보고 “묘한 캐릭터를 가졌다”고 에둘러 비평하는 말을 들었다. 행간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는 나보고 “그따위로 하려면 변호사를 하지 말라”고 혹독하게 질책했다. 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직업윤리를 어기고 의뢰인의 비밀을 함부로 공개하는 악덕 변호사로 보는 게 틀림없었다. 그에게 조용히 되물었다.

“살인을 한 악마 사모님이 거액의 돈으로 백지같이 순결한 천사로 둔갑되려고 하는 현장을 변호사가 혼자 보게 됐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침묵하면 돈도 벌 수 있고 업무상기밀을 지킨 모범변호사지. 그런데 왜 나는 그 반대쪽을 선택했을까 한번 생각해 보지 않겠나? 머리가 백발이 된 60대 중반에 가벼운 정의감이나 철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만은 아닐 텐데?”

폭로하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도 해야 했다. 소송에 걸려 가족과 사는 아파트를 날릴 마음도 먹어야 했다. 진짜 정의는 관념이 아니라 그런 희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하기 힘들다.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고 계획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그랬다. 각자 타고난 성질이다. 내가 덧붙였다. 

“이보게 친구. 변호사를 그만두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장관을 했다는 전관예우를 팔아먹으면서 악마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공작하는 그런 변호사라네. 내가 뒷골목 작은 변호사로 은발을 휘날리면서 일을 해야 자네한테 술이라도 한잔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돈이면 다되는 그런 세상이 싫어서 변호사와 작가라는 묘한 캐릭터의 이 직업을 택했네.”

말하는 순간 나는 가슴에 손을 대고 깊은 그 곳에 성령이 함께 계시느냐고 속으로 물었다. 남에게 반론을 제기할 때 나의 내면이 차가운 가 따뜻한 가 확인을 한다. 분노로 속이 얼음같이 냉각되면 그 속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논쟁은 공중에서 부서지는 연기에 불과하다. 성경 속 욥의 친구들처럼 자기 생각만으로 정죄하고 재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변호사작가로 찾아오는 의뢰인들의 미담이나 법정풍경을 써왔다. 지킬 건 지키려고 내면에서 치밀하게 살폈다. 색안경을 끼고 경솔하게 돌을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율법 같은 관념으로 남을 단죄하는 것보다 고난과 동행해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훨씬 좋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마리아상 앞에서 외아들을 돌보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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