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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명령으로 깠어요! - 2. 합의할 능력 있으면 국선변호 하겠어요?

운영자 2010.03.10 17:18:29
조회 384 추천 0 댓글 1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우람한 덩치의 H가 교도관 두 명에 의해 이끌려 법대 맞은편 피고인석에 가서 조용히 앉았다. “변호인, 신문하시죠.” 하고 재판장이 익숙한 일을 기계적으로 행하듯 말했다. 나는 일어서서 오늘 재판을 위해 준비한 세 통의 신문사항이 적힌 서류와 변론요지서를 서기에게 주었다. 서기는 그것을 받아 신무사항 한 통은 자기 책상 위에 놓고 다른 두 통은 재판장과 주심판사의 앞에 놓았다. 변론 전 바로 이 순간이 나는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다. 법대 위에 있는 판사들과 방청객들의 수많은 긴장되고 엄숙한 눈총 속에 항상 위축되는 느낌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취재했던 자료를 내가 구성한 순서에 따라 신문사항과 변론으로 풀기 시작했다.


  “피고인! 이 법정에서의 한마디 한마디는 피고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은 변호인이 묻는 말에 비록 그게 불리하더라도 진실하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단 한 마디라도 정직할 수 있는냐는 말입니다.”

  “....”


  내 말에 그는 당혹하는 눈치였다. 그가 속에 품고 있는 사장의 지시로 폭행을 하게 됐다는 부분에 대해 저 변호사가 폭로시키려고 그러나 하는 의구심이 눈에서 흘러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재판부에 대해 ‘나는 이 피고인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니 색안경을 끼고 듣거나 무심히 흘려 넘어가지 마십시오’하는 간접적인 의미를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신문을 시작했다.


  “고송장이나 원심판시 사실을 보면 먼저 그 모두에 ‘피고인은 강도예비 등 범죄경력이 3회 있는 자로서, 회사원인바’ 하고 기재되어 아주 나쁜 사람인 것 같이 전제되어 비난을 시작하는데, 그 강도 예비라는 범조내용이 뭐였습니까?”

  “저 사실은, 중학교 때 학교 앞에서 불량소년들과 어울려 있다가 잡혀서..”


  그는 어눌한 투로 두서없이 말을 시작했다. 이런 때 요점을 추려 간명히 말해 주는 게 변호사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재판부를 위해 변호사가 이미 아는 사실을 질문형식을 통해 유도하는 게 현실이다.


  “피고인이 중학교 때 레슬링 운동부에 있었고 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돈을 좀 얻으려다 파출소에 끌려간 일을 말하지요? 어렸을 때 철없이 놀다가 끌려가 재판을 받지 않고 용서받았는데도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을 강도라고 매도하는 거 아닙니까? 형이 확정되지 않으면 전과가 아닌데도 말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을 보면 맥주병을 휘둘러 27살 먹은 여자인 신정은의 머리가 찢어지게 한 것도 나오는데 사실 신정은이란 여자는 피고인에 매일 차로 출퇴근 시켜 주는 회사의 경리담당 여직원이 아닙니까?”

  “예, 사장님의 부탁으로 제가 자주 차를 태워주기도 하는 친한 여직원입니다.”


  “범죄 사실을 보면 그런 여직원을 단순히 사소한 시비 때문에 맥주병으로 맞게 했다고 표현을 했는데 정확히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다시 한번 찬찬히 정리해 보도록 할까요?”

  나는 신문을 통해 일단 그에 대한 공소장의 기재 사실들이 상당부분 과장되고 또 중요한 동기는 감추어져 있음을 암시했다. 그리고는 공소사실과 다른 각도에서 본 실체적 진실을 신문형식으로 말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 내용이다.


  H는 대구의 모 대학 무역학과를 다니다가 졸업 직전에 서울에 있는 중소기업체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 기업체는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회사로서 직원 삼사 십 명을 거느린 조그마한 업체였다. 부도로 도산된 회사를 H의 고향선배라는 사람이 인수를 하고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H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아버지와 파출부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났다. 중학교 때부터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르기도 하면서 학비를 조달했다. 다행히 타고난 체력과 건강으로 그는 학교 대표 레슬링 선수로도 활약하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선배를 통해 서울에 있는 회사에 졸업 전에 취직이 된 것이다. 선배라는 사장의 배료로 그는 공장의 숙직실에서 잠자고 먹고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사장이 그를 회사 앞 레스토랑으로 불렀다. 40대 중반인 사장은 상당히 취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사장 앞으로 가서 공손하게 의자에 앉았다.


  “야, 이노마야, 그래도 믿을 놈은 너밖에 없다 아이가. 남의 공장을 인수했더니마는 이건 전부 역적놈들 뿐인기라. 새로 사장이 왔으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회사를 살려야 할낀데 직원놈 멫이서 주동이 되어 새 사장인 나를 쫓을라카는기라. 그 몇 놈을 손봐야 할낀데 야단이데이.. 니 좀 안 도와 줄라나?”

  “저를 이끌어 주시는 사장님이 하래는 건 뭐래도 할 각오가 되어 있심더. 너무 걱정 마이소.”


  “그래 고맙다. 그래도 내 생각해 주는 건 마 너뿐이다..”

  그는 술 취해 엎드려 있는 사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불쌍했다. 근무한지 몇 달 안 됐지만 회사에는 실질적인 주인이 없었다. 영업부는 부장부터 직원까지 각자 거래처에 가서 새로 계약을 하고 돈을 받으면 그게 회사로 입금되지 않고 개인주머니로 들어갔다. 직원들의 인화단결도 엉망이었다. 기존의 직원들은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주인이 부실한 공장의 기계 하나라도 뜯어나가나 하는 궁리들이었다. 특히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인 H를 새 사장의 스파이라고 하며 은근히 멸시하고 멀리하는 것이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H는 그저 직장을 구해준 선배인 사장이 고마웠고 그를 배신하는 직원들이 미웠다. 그는 몸을 내던지는 마음으로 사장을 보좌했다. 스스로 사장의 차를 운전하는 역할도 겸해서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와 유일하게 친하던 경리를 맡아보는 신정은이 저녁에 회사 근처의 호프집으로 나오라고 연락을 했다. 평소에 차로 출퇴근을 자주 시켜주니까 한잔 살 모양이었다. H는 신바람이 나서 근무를 마치고 약속한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경리인 미스 신만이 있는 게 아니라 영업부장인 유제하와 그 밑의 직원들도 함께 있었다. 그는 약간 머쓱한 기분이 되어서 당황했다.


  “저, 우리 회사 단합식을 한번 가지려고 했는데 오늘 자리가 만들어지길래 오시라고 한 거예요. 자,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미스 신은 그에게 탁자 한구석에 있는 의자를 내어 주었다. 그는 그 말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별로 함께 하고 싶은 자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새로온 사장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영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수시로 회삿돈을 횡령한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이~ 사장님만 모시는 높으신 양반! 이런 자리에도 나올 줄 아시나? 일단 왔으니 자리에 앉아! 사장만 높은 게 아니라 조직에 들어왔으면 입사 선배서부터 시작해서 과장, 부장, 줄줄이 높은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하지 않겠어? 자넨 직계심복이라 그런지 영 그런 걸 무시하더란 말이야. 사회생활이 그래도 되겠느냐 말이야.”

  영업부장은 말 속에 가시를 섞어 그에게 내던졌다.


  “죄송합니다. 부장님이나 과장님한테 건방 떨었으면 용서해 주십시오. 마음이 그런 건 아닙니다.”

  그는 일단 술좌석의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일단 회사에게 자기보다 직급이 높고 먼저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의 계약금을 착복하는 걸 안 이상 속으로는 경멸의 감정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알았다. 임마, 자 그러면 신참 술 한잔 받아라..”

  영업부의 엄일성이 약간 빈정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모욕적으로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속에서 주먹덩이 같은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못합니다. 대신 한 잔 받으시지요.”

  그는 어려운 듯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술을 사양했다.


  “야, 이 새끼야! 말단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야지 그렇게 건방만 떨거야, 자식아.”

  그 옆에 있던 영업부장이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큰소리를 쳤다. 그것은 술을 권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으로 미운 사람을 징벌하는 처형장이었다. 동시에 사장이 그들을 손봐주라는 은근한 지시도 머리에 떠올랐다. 미스신 앞에서의 모욕감, 대학을 졸업하고 정식으로 입사한 사원에 대해 이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상처 입은 자존심 등이 어울려 순간적으로 폭발하고야 말았다.


  “야, 이 씨발놈아! 도둑놈 새끼가 누구를 훈계할 자격이나 있냐? 너부터 똑똑히 해!”

  그는 탁자위에 있던 맥주병을 집어 공중에 흔들면서 소리 질렀다.


  “어, 저 새끼 봐!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누구 겁주는 거야?”

  마주 앉아 있던 영업부장이 아니꼬운 듯 목소리를 가라앉히면서 대응했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의 편이던 미스신은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당황했다. 그녀는 그를 잡아 말리려고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 순간 그가 공중에 휘두르던 맥주병의 밑동 부분이 그녀의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악‘하고 순간적으로 비명이 일어나며 그녀의 몸이 앞으로 굽어졌다. 이마를 잡고 엎드리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뻘건 피가 스며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이 새끼 봐! 네가 지금 누구 앞에서 한가닥 성질 자랑하자는 거니?”

  영업부의 엄일성이 한판 붙자는 자세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미 싸움은 피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와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맥주병으로 일어서는 엄일성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퍽’하고 맥주병이 그의 머리 위에서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져 내렸다. 그가 ‘억;하고 머리를 감싸쥐고 땅에 주져앉았다. 영업부장이 얼어서서 구둣발로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기서 엉겨붙어 뒹굴면서 난투극을 벌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1심에서 인정된 범죄사실에서 피고인이 잡고 있던 맥주병이 신정은의 머리를 스친 사실과 엄일성에 대해 맥주병으로 머리를 때린 것만 사실이고 그 이외의 것은 진실과 상당한 부분 거리가 있는거네요?"


  나는 검찰에서 공소한 사실을 이제 상당한 정도로 희석시켰다는 확신을 가지고 정리를 해 나갔다. 현실적으로 수사단계에서는 형사나 검사의 일방적 진행에 의해서 거의 모든 범죄사실에 대한 윤곽이 잡힌다. 당사자의 말은 수사기관에서 필요한 만큼만 각종 수사 서류에 올려진다. 그것도 수사기관에서 필요한 만큼 본인에게 불리한 것을. 어쩌다 본인에게 유리한 진술이 조서에 올려지는 것도 현실은 그만큼 수사기관에서 봐준다는 입장에서 기재되는 것이지 권리로써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잡힌 사람들은 극도로 흥분하고 당황한 상태에서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감정을 섞어 말하기도 하고 또 자기에게 유리하게 서로 왜곡되게 말하기도 한다. 한족은 무수히 짓밟히고 얻어 터졌다고 하는데 비해 한쪽은 살짝 건드렸다는 표현을 하는 수가 많다. 한가지 사실에 대해 표현이 그렇게 극에서 극으로 달리 나타나는 것이다. 변호사는 공판정에서 비로소 그 사실들을 제대로 잡도록 주장해야 한다. 잘못된 조서가 있으면 그 신빙성을 부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면에 숨어 있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이번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말이다. 대부분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억울한 감정이 가슴속에 가득 싸여있다. 분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 들어차서 터져 나오기 직전이다. 그런 그들에게 법정은 너무 이질적이다. 멀리 떨어진 높은 법대 위에서 검은 법복을 입고 있는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판사들. 방청석에서 지켜보는 수많은 눈들. 엄하게 요구되는 짧은 시간 안에 해야 하는 발언. 날카롭게 상황을 감시하는 교도관. 그 속에서 주눅들은 사람들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꼴이 된다. 해도 아무런 의미 없는 소음이 되기가 일쑤인 것이다. 그게 현실의 재판이다. 피고인의 말을 압축하고 정리해서 법정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충분히 드러내는 것이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것이다. 또 못 다한 사연들을 변론요지서 등을 통해 글로 제출해야 하는 임무를 띄고 있다.


  “피고인이 구치소에 있을 때 여기 공소장에서 피해자로 된 영업부장 유제하가 면회 온 사실이 있다고 했지요?”

  “네, 찾아온 일이 있습니다.”


  “피고인을 동정해서 찾아온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용무로 온 것이었습니까?”

  “영업부장이던 유제하가 저를 찾아와서 ‘너를 살인미수로 조작해서 만들 수도 있었어. 그렇지만 네 인생이 불쌍해서 폭력정도로 만들어 준 거야, 알겠니’ 했습니다.”


  “단순히 그 말만하려구 영업부장인 유제하가 찾아온 겁니까?”

  “아닙니다. 그는 나보고 ‘사장이 여러 사람 있는데 왜 하필이면 나를 타겟으로 찍었느냐’고 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없던가요?”

  “그러면서 나를 보고 ‘합의는 해주지 않을 작정이니까 미안하지만 좀 푹 들어가 썩으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분명히 정리합시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이 영업부장의 머리통은 부 번 찍었다고 나오는데 피고인의 얘기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겁니까?”

  “네. 엄일성의 머리통을 맥주병으로 때릴 때 병이 부서지면서 손에서 병이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정작 피고인이 상처를 입힌 영업부의 엄일성이나 신정은은 합의서를 작성해 주었는데 영업부장 유제하만 합의해 주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네..”


  그는 머리를 푹 아래로 수그렸다. 합의가 없으니 중형을 면하기는 힘들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을 한 눈치였다.


  “결국 동기도 공소장에 적힌 것처럼 사소한 업무이야기로 시비가 붙은 것이 아니고 회사를 새로 인수한 사장과 각종 비리를 저지른 기존의 썩은 직원들 사이의 전쟁에서 피고인이 멋모르고 희생된 형태 아닌가요?”

  “....”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피고인 신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재판장이 “검찰, 의견진술 해주시죠” 하는 소리에 검사가 몸을 약간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항소를 기각해 주십시오.” 하고 기계적으로 말한다. 그 말이 끝나자 “변론하시죠.” 하고 재판장이 말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리 준비한 변론문을 한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변론을 시작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맥주병으로 사람을 때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의 피고인 신문에서 나왔다시피 그 행위에서 유추되어 피고인은 온통 잔인한 폭력범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14살 소년시절 잠시 실수로 교문 앞에서 다른 아이의 돈을 얻어 쓰려고 하다가 용서받은 사실이 다시 살아나 피고인을 흉악범으로 인상짓기 시작합니다. 부정한 회사 고참직원과 사장의 암투가 동기인 사건을 단지 피고인의 악성과 과격한 성격 때문에 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단정 짓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대학교 무역학과를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며 졸업했습니다. 앓아누워 있는 어머니 약값정도도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아버지가 대기 어려운 게 그 가정의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단지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 선수를 했다는 근거만으로 전형적인 폭력배로 매도되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떤 사람을 단죄할 때 정말 이렇게 철저히 평생에서 실수했던 사실들만 한실에 꿰어 나타낼 때 과연 착하게 기록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정말 수사기관에 반문하고 싶은 말입니다.”


  여기서 나는 잠시 말을 그쳤다. 올라온 흥분을 잠잠히 가라앉혀야 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은 방청객들의 눈에서 강한 납득의 빛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재판부를 올려다보았다. 보통은 변호사가 의례적인 말이 많아지게 되면 판사들의 눈에서 짜증의 빛이 흘러나온다.


  ‘그런 소리는 수천 번 들어 귀가 닳아질 지경이야. 제발 그만해 두시고’하는 암시의 짜증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빛이 없이 담담히 듣고 있다. 이쯤되면 재판부에 대해서도 약간의 납득이 되어 가기 시작하는 징조인 것이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피고의 입을 통해 나왔습니다만 피고인이 있던 술자리는 화합의 장이 아니라 평소 노리고 있던 피고인을 속칭 작살내려고 하는 자리였습니다. 술잔을 주는 사람 자체가 이미 도발을 시작한 것입니다. 악의를 품고 술잔을 내밀면서 ‘야, 이 새끼야. 선배가 술을 주는데 말단이 안 받아?’ 라는 말은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는 피고인의 인격을 처참하게 모멸하는 모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와 공소에 있어 맥주병으로 얻어맞은 사람들의 피해자적 측면만 부각되었을 뿐 피고인의 억울한 심정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말을 쉬고 나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말이란 항상 그 반응을 보면서 그 수위 및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재판장이 고개를 조용히 혼자 끄덕거리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작 중요한 사실은 피고인에게 맥주병으로 얻어맞았다는 미스 신이라는 아가씨는 피고인을 용서하고 합의서를 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피고인에게 맥주병으로 가격을 당한 엄일성에게 간구해서 r로부터 합의서까지 받아내 주었습니다. 그만큼 피고인의 진정한 입장을 이해해 준 것입니다. 오직 영업부장만이 피고인에 대한 합의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맥주병으로 얻어맞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그와 싸울 때는 피고인의 손에서 맥주병이 부서져 빠져나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와는 합의할 가치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1심에서는 그와의 합의가 없는 사실 및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서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결국 1심의 판시 사실은 사실을 오인한 판결인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피고인은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에 다녔는데도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고 바로 이 재판부에서 선임해 준 본 변호인을 국선변호인으로 하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돈에 의해 합의가 이루어지고 그에 의해 형량이 조정되는 형식이 이 사건에서는 단호히 배제되고 사건의 이면에 있는 본질이 참작되어 피고인에게 재판부의 본질을 보는 날카로운 시각과 따뜻한 온정이 전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자리에 앉았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해보세요.”

  재판장이 최후 진술의 기회를 주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소곳한 표정으로 재판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무수한 할 말이 안개같이 어려 있는 듯 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보다 착실히 살겠습니다. 반성합니다.”

  모든 말을 생략한 채 그는 마치 장교의 명령에 순응하는 사병같이 딱딱 끊어서 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주일 후에 선고가 있다는 예고가 있고


   재판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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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 변호사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운영자 24.05.06 118 1
3339 도둑 일기 운영자 24.05.06 132 1
3338 숯불 나르는 청년의 외침 운영자 24.05.06 127 1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14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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