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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수필

운영자 2017.05.08 10:20:32
조회 221 추천 0 댓글 1
영혼의 밥인 수필

  

며칠 전 아침에 아파트 문 앞에 던져진 신문을 가져와서 읽다가 두 개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하나는 엘리베이터 사장을 하던 분이 ‘월간에세이’라는 책을 몇 천호 발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편집인이 되어 꾸준히 제작해 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사는 송광사 전 주지스님의 인터뷰였다. 그 인터뷰를 하는 기자는 법정스님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를 하는 스님은 즉석에서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대답을 했다. 절에 있으면서도 총무나 재무 어떤 직책도 맡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스님은 법정이 그 많은 책을 낸 게 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고 말했다. 지금부터 30년 전 나는 나이가 삼십대 중반쯤이었다. 어느 날 손에 들어올 정도의 작고 얇은 ‘무소유’라는 법정의 수필집이 인연을 따라 내 손에 들어왔다. 수필집 곳곳에서 한 소박한 승려의 간촐한 삶이 나타나고 있었다. 기온이 뚝 떨어진 늦은 가을날 김이 피어오르는 우물 옆에서 법정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냉기서린 김이 나의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무소유를 추구하는 승려는 가을날 햇빛이 비치는 창호문 아래서 혼자 내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더러 마을에 가서 기름이나 초를 살 때 가게 주인은 그를 거지로 착각하기도 했다. 나는 얼음장 밑을 흐르는 맑은 물 같은 그의 글들에 빠져들었었다. 그의 삶은 내게 맑고 향기롭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감옥에 오랜 징역생활을 한 사람을 만나러 갔을 때였다. 그는 교도관이 던져준 표지가 뜯어진 수필집의 글들을 읽다가 짙은 감동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 세상에서는 천대받으면서 던져지는 보통사람이 쓴 수필 한편이 제 임자를 찾아가 그의 영혼의 밭에 씨가 되어 내리는 걸 발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수필집들을 읽고 수필을 써 보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마음속 샘물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그냥 쓰면 되는 것 같았다. 가슴시리게 눈에 보이는 광경을 느낀 대로 자연스럽게 묘사하면 그 감정이 읽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지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생활의 일부분이라도 이웃을 위해 줄 수 있는 뭔가 하고 싶었다. 선한 일을 하는 단체나 교회에 돈을 내 보기도 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 돈이 밥이 되고 옷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었다. 열 건의 사건을 하다가 한 사건 쯤은 무료변호를 해 보기도 했다. 재능과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역 앞 노숙자 급식소에 갔다가 쇠막대로 짐승우리같이 만든 안에 있는 목사를 봤다. 왜 그 속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 어떤 노숙자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바람에 코뼈가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갈 곳 없는 전과자 출신 급식시설에도 갔었다. 쌀을 가져다주고 떡을 나누어주고 피자를 배달해 줘도 그들의 마음은 원망과 세상에 대한 증오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를 더러 생각하곤 한다. 밥보다 더 필요한 게 영혼의 양식이 아닐까.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던 법정스님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수필 속에 담아 사람들의 영혼에 씨를 뿌렸다. 고독한 교회 종치기였던 권정생 씨는 아름다운 동화를 만들어 아이들의 영혼에 너울을 일으키고 그 인세마저 세상에 내놓고 천국으로 갔다. 연꽃잎을 흐르는 작은 이슬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은 수필들은 영혼의 밥이다. 그런 수필들을 책 그릇에 담아 세상에 내놓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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