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를 만든다고 하면 왠지 치즈 공방을 차린 유럽의 장인 정도는 되어야 손댈 수 있는 엄청난 일로 생각되기가 쉽습니다.
물론 오랜 기간동안 숙성을 시켜야 하는 명품 치즈의 경우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도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숙성이 필요없는 연성 치즈 중에는 약간의 재료와 노력만 있으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습니다.
요거트의 수분을 제거해서 만드는 요치즈, 우유에 식초와 소금을 넣어서 만드는 리코타 치즈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연성 치즈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모짜렐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구연산, 염화칼슘, 리파아제, 렌넷 등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괴상한 물건들이 필요하지만 치즈 제작 용품 파는 곳에서 한 번에 다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우유도 필요하지요.
아무런 가공도 되지 않은 생우유가 가장 좋지만, 식품위생법상 구할 길이 없으므로 저온 살균 우유를 사용하도록 합니다.
구연산과 리파아제를 각각 약간의 물에 희석시켜서 우유에 넣고 저어줍니다.
구연산은 식초나 레몬즙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우유의 산도를 조절해서 뭉치기 쉽게 만들어 줍니다.
리파아제는 학교 교과서에서 이름만 들어봤던 효소인데, 우유에서 단백질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돕고 치즈 특유의 풍미를 더해줍니다.
대다수의 레시피에서는 리파아제를 생략하기도 하는데, 원래 모짜렐라 치즈는 물소젖으로 만드는 게 원칙인 만큼
우유의 부족한 풍미를 더하기 위해 리파아제를 넣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리파아제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모짜렐라 치즈는 부드러운(mild) 종류를 사용합니다.
반면에 체다 치즈는 주로 샤프 리파아제를 사용하지요.
우유를 32도까지 가열합니다.
참으로 다방면으로 활용하면서 본전 뽑는 키친에이드 히팅 보울이네요.
초콜렛 만들기나 빵 반죽같은 기본적인 용도는 물론이고 수비드 조리나 치즈 만들기까지.
스테인리스 냄비에 넣고 약불로 끓여도 되고, 실제로도 이런 방법이 일반적입니다만
그래도 첨단 기기 하나 있으면 몸이 편해집니다.
온도가 32도에 도달하면 염화칼슘과 렌넷을 물에 희석시켜서 넣고 20초 정도 저어줍니다.
염화칼슘은 우유의 응고를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온음료에도 많이 들어있지요.
눈 오면 도로 위에 뿌리는 그 염화칼슘과 본질적으로 같은 물건이긴 한데, 제설용 염화칼슘은 불순물이 많아서 식용으로 쓸 수 없으니 반드시 식용 염화칼슘을 사용해야 합니다.
렌넷은 송아지 위에서 추출되는 효소의 일종으로, 우유를 응고시키는 주역입니다.
구연산이나 염화칼슘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치즈가 쫄깃쫄깃한 식감을 가질 정도로 응고시키는 데는 렌넷이 필수적이지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용감한 사람이 "치즈의 유래는 물통에 넣어뒀던 우유가 덩어리진 것을 먹은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읽고는 실온에 오랫동안 방치해서 생긴 우유 덩어리를 먹고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일화를 본 적 있습니다.
여기서 물통은 동물의 내장으로 만든 물통이고, 따라서 위에 남아있던 효소가 응고를 촉진시켰기 때문에 치즈가 만들어졌습니다.
상온에 두면 유해균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생화학 무기가 되어버리지요.
염화칼슘과 렌넷을 짧은 시간동안 잘 섞고 나서 10분 정도 기다리면 우유가 순두부처럼 굳어집니다.
긴 칼로 바둑판 모양내듯 자르고 우유의 온도를 38도까지 올려서 치즈와 유청(우유에서 나오는 수분)이 분리되기 쉽도록 도와줍니다.
38도에 도달하면 우유 덩어리를 잘 섞어서 부순 다음, 면보자기에 담아서 수분을 제거합니다.
원래는 파스타 말리는 건조대인데, 이번에는 유청을 제거하는 보자기를 매달아 두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치즈 제작자가 아니다보니 도구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만들게 됩니다.
치즈를 만들다보면 수분이 그야말로 끊임없이 빠져나갑니다.
저 조그만 덩어리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수분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
요즘에는 저 유청을 가공해서 단백질 보충제로도 활용한다던데, 단백질 보충은 이미 충분히 하고 있으므로 패스.
듣기로는 화장수로도 쓸 수 있다고는 하는데 보관하기가 쉽지 않은 관계로 그냥 뜨겁게 가열해서 치즈 스트레칭용 온수로 활용합니다.
유청에 소금을 넣고 85도까지 뜨겁게 가열합니다.
물기가 쫙 빠져서 단단한 덩어리가 된 치즈를 온수에 넣고 국자나 주걱으로 꾹꾹 눌러서 반죽합니다.
어느 정도 치즈가 부드러워지면 꺼내서 손으로 쭉쭉 늘리는 스트레칭 작업을 해 줍니다.
이렇게 스트레칭 작업을 해야 모짜렐라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살아납니다.
렌넷이 없으면 부스러지거나 뚝뚝 끊어지기 때문에 불가능한 작업이지요.
스트레칭이 끝난 치즈는 손으로 쥐어짜듯 짜내서 동그란 모양을 잡습니다.
모양이 예쁘게 나오면 곧바로 얼음물에 넣어서 냉각시킵니다.
사진에 보이는 아기 주먹만한 치즈 덩어리 두 개가 우유 한 통 다 넣어서 만든 결과물입니다.
치즈 응고를 돕기 위해 별 짓을 다 해도 얼마 안되는 양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허탈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식품 첨가물 안 들어간 갓 만든 치즈를 맛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삼 년 전에 여기 버려졌고, 그 이후로 염소고기와 산딸기와 굴로 연명하고 있어.
인간이란 본래 어느 곳에 떨어져도 살아가게 되어 있지.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이 먹는 음식이 먹고 싶단다.
치즈 말이야. 혹시 치즈 한 조각 가진 것 없니? 나는 밤이면 밤마다 치즈 꿈을 꾸곤 했지."
- 로버트 스티븐슨, "보물섬" 중에서
불쌍한 벤 건이 염소젖을 이용해서 치즈 만드는 법을 알았더라면 무인도 생활이 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특히 오랜 시간을 들여 숙성시켜야 하는 치즈들과는 달리, 모짜렐라는 신선할수록 맛이 더 좋으니까요.
순수한 우유의 맛이 응집되어 고소하면서도 지나치게 짜지 않고, 잡스러운 맛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심심할 때 조금씩 떼어 먹어도 좋고, 피자를 만들 때 얹어도 좋고, 토마토와 바질을 곁들여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도 좋습니다.
가게에 가면 널려있는 게 모짜렐라 치즈이지만, 직접 만든 모짜렐라 두 덩어리가 삶은 달걀과도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알을 낳은 암탉이 이런 뿌듯한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모짜렐라 만들기를 몇 번 성공하다보니 다른 치즈에도 슬슬 욕심이 생깁니다.
사실 대다수의 숙성 치즈들 역시 만드는 과정 자체는 모짜렐라 치즈와 비슷하고, 다만 오랫동안 숙성시킨다는 점 하나만 다를 뿐이거든요.
하지만 사람이 나이 먹으며 성숙하는게 거저 얻어지는 일이 아니듯, 치즈도 나이를 먹으려면(Aged) 환경이 중요합니다.
전용 숙성실이 없으면 치즈가 곰팡이 덩어리로 변하기 십상인지라 섣불리 도전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체다 치즈, 고다 치즈, 에멘탈, 그뤼에르 등등은 나중에 숙성실이 생기면 시도해 보는 걸로 미뤄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만들어 본 메이킹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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