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팩트는 강원 경상도와 일본이 함께 공유를 하고 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 말이지.
일반적으로 기록에서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 표기해놓은 것은 국제 사학계에서 신뢰받지 못한다. 왜? 개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곰의 후손이라는 것을 유전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하면 단군신화는 말 그대로 소설이 된다. 그리고 고구려가 부여의 후손이라는 것을 유전학적, 고고학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역시 고구려의 개소리가 된다. 이는 백제 역시도 마찬가지다. 둘다 기록은 있어도 부여와의 연결고리를 입증시킬 수 있을만한 어떤 단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구려는 부여사가 되지 않으며 중국사가 되어지는 것이다. 만약 부여와의 연결고리가 명확했다면 당연히 고구려는 현재 한국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요동사로 분류가 되어질지 모르겠지만 고구려는 중국문화가 총체적으로 출현을 한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전세계의 그 어떤 학자도 고구려가 중국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삼족오와 사신도만 봐도 입증이 되어진다.
미국같은 나라가 고구려를 중국사로 인정을 해줄 정도라면 중국에서 제시한 자료와 논리등이 그만큼 완벽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당시 미국무부와 미 역사학계에서는 한국측에 반론의 기회를 주었다 하는데, 본좌가 반론이 불가능하다면 한국학계에서도 역시 반론이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반론가능한 수준에 있는 본좌가 반론이 안되는데 본좌 수준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되는 학계가 반론이 될 수 있을까? 가소로운 개소리인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동양미술사학자인 존 코벨 박사는 일본의 선조는 부여인이라고 단정지어 이야기 했다. 근거는 고고학 유물이다. 일본에서 발굴되는 기마유목민계 유물이 부여의 것임을 확인, 이를 주장을 했으며 굉장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가설이기도 하다. 고고학 유물이 가지는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여 라마동 고분은 머리가 높게 솟아 있다고 했다. 본좌는 인위적으로 변형이 된 편두 고인골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고대 변한인들이 풍습이라고 삼국지 위서에 남겨져 있으며, 김해 예안리 고분에서 수십기의 편두 고인골이 실제적으로 춭토가 되었던 바가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부여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의 김해에서 부여와 관련한 세미나와 학회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이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여인들이 키가 크다는 삼국지 위서의 주장과 변진의 왕들(마한인)이 키가 컸다는 공통분모까지 나온다는 점까지 확인이 되어지는 바, 본좌는 사실상 아시아계 유전자중 키가 큰 유일한 유전자가 C/ C3계라는 점을 토대로 하여 부여인들의 주류 민족 집단, 지배집단이 바로 이들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고인골에서도 역시 C3와 R이 압도적으로 높게 출토가 되어지고 있다는 것 역시도 이를 뒷받침을 해주는 하나의 근거이기도 하다.
부여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피터가 만주가 먹고 싶다고 했던가? 그러면 부여를 지키면 된다. 그리고 그 부여를 지키자면 신라와 가야를 지키면 된다. 왜? 가야의 유물이 경북 지역으로 확장을 하는 형태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순장의 고분이 경남에서 발흥을 하여 경북으로 올라가는 이주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유물에서 사용된 상징문양 역시도 그 일치성이 확인이 되어지고 있기 떄문이다.
가야와 신라를 지키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강원, 경상도 사람들과 조선족들을 교육만 시키면 된다. 중화 짱개의 더러운 역사, 늘 속박당하고 쳐발리고 살아온 그들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역사의 승자로 남은 전투민족 가야 신라사에 대해 이들이 이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갖추어지게 되면 부여사까지도 한국사로 정식 편입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체계적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로 삼을떄에도 국력이나 무력을 근거로 해서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학술적 논거와 자료를 토대로 하여 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학술적 근거와 자료는 경상도 역시도 누구못지 않게 압도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있다는 것이지.
본좌가 현재를 살면서 갖추어놓고 구축해놓은 많은 논리들은 본좌가 살면서도 유용하게 쓰이게 되겠지만 본좌의 사후에도 역시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 역사는 정치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굉장히 유용한 활용도구이자, 수단이기 떄문이다. 본좌는 그 가치를 누구보다 일찍 알아봤기 때문에 민족사의 중흥과 부흥에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여 "전세계의 누구에게도 반론받을 수 없는 한민족史"의 출현을 목적으로 하여 역사를 밝히는 것이지.
본좌가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업적만으로도 본좌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허나, 본좌는 역사를 완벽하게 분석한 유일한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이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역사를 만든 인물로 이름이 남기를 원하지.
반도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본좌가 손꼽는 인물들이 김 삼맥종 진흥 매금 태왕, 김춘추 태종 무열 매금 태왕, 김법민 문무 매금 태왕, 김인문 대각간, 김유신 흥무 대왕 및 태대각간등인데, 본좌가 이들의 유전자와 혈통을 계승을 한 후손일진데, 이들의 업적을 뛰어넘지 못하고서 이들의 후손이라 말한다면 부끄럽고 쪽팔린 일이겠지. 잘 지켜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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