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익명의 힘을 빌려서 말씀드리면 저는 사탄 숭배자(Satanist)입니다.
2년 가까이 숨겨왔던 일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이렇게 고백하려고 합니다.
제가 저작권을 포기(복제, 배포, 전시, 교육자료, 변형, 수정, 재사용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동의함)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생사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실화가 아니라고 오해하실까봐 자세히 쓴 만큼 제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과거에 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동성애를 악마로 여기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 불미스러운 일로 감옥이라는 곳을 경험했고, 저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 사람들이 죽길 바라는 마음에 악마를 숭배하는 종교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한국 기독교에서 악으로 규정한 일본 덴리교로 개종하고, 이태원에 가서 기독교에서 금지한 동성애를 경험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태원은 저와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저는 할로윈에 이태원에서 10대 때 예수님 코스튬을 하고 성경책을 나눠주는 교회 봉사활동을 했지만, 개종 후 귀신 코스튬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춤을 췄습니다.
영화 조커를 보고 조커 코스튬을 하고 이태원에 갔을 때 KBS 리포터의 시선을 사로잡아 길거리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태원 압사 사고가 나기 몇 년 전, 할로윈에 일본 요괴 가오나시 코스튬을 하고 이태원을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 늦었지만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태원 지하철역에서 나오시면 세계음식문화거리라는 언덕길이 있는데, 아시다시피 2년 전에 여기서 대형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예전부터 그 골목을 오를 때마다 저는 마치 일본 신사 입구에 있는 거대한 도리이 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떤 압도적인 경외감을 느껴왔습니다.
저는 그 영험한 기운을 빌어 술집을 찾는 척 여섯 번이나 골목을 돌아다니며 제가 저주하는 사람들의 직업과 그들의 아들 딸이 자살하기를 바라는 소원을 중얼거렸습니다.
제가 순진한 건지 절박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면 그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깊이 믿었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해 할로윈 이브에 대낮에 세계음식문화거리를 방문했을 때, 전날 토끼 코스튬을 한 여성을 몰카 촬영한 범인을 찾겠다며 언론이 떠들썩해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저주를 빌며 골목을 돌아다녔는데,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제 코스튬을 보고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서 길에서 같이 사진을 찍고 코스튬을 입고 온 다른 분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언덕을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독일 예거마이스터 술병과 비슷한 대형 사슴 그림(사실 염소였지만 제 눈에는 사슴처럼 보였습니다)과 인당수에 산 채로 공양된 심청이 그림이 간판에 큼지막하게 붙은 술집이 있었습니다.
술집은 언덕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핫플레이스로 손님들이 늘 줄을 서는데, 그 술집 앞을 지나다가 커다란 사슴 가면을 쓰고 디제잉을 하는 키 큰 청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사슴 가면을 쓴 청년은 저를 보고 수줍게 눈인사를 건넸고, 저는 그 청년의 멋진 몸매에 마음이 끌려서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술집 지하에 있는 칵테일 바에 가서 보드카 마티니를 주문했는데, 마침 그 청년이 그 곳에서 바텐딩을 맡게 되면서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그 청년의 사슴 가면과 코스튬이 멋있다고 칭찬하자, 그는 자신이 쓴 가면이 사슴이 아니라 바포메트라고 불리는 염소 가면이라고 핀잔을 주었고, 냅킨에 별을 그리고 그 안에 염소 머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 청년은 바텐딩을 하면서 자신이 마실 보드카 마티니 더티를 만들어 저와 함께 마셨고, 대화를 통해 저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저와 비슷한 이유로 악마를 숭배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의 소개로 그 청년처럼 악마를 숭배하는 다른 청년들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할로윈 때마다 서로 친구가 되어 술집에서 만나 시크하게 술을 마시고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이태원 할로윈에 대한 언론플레이는 더 심해졌고, 설상가상으로 세계적인 오징어 게임 열풍으로 할로윈 며칠 전부터 젊은이들이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이태원 압사 사고가 난 해 할로윈 이브에 녹색 운동복과 번호가 매겨진 코스튬을 입고 매년 그랬던 것처럼 저주의 소원을 빌러 이태원에 갔었는데, 인파에 밀려 자동적으로 여섯 번이나 세계음식문화거리를 돌게 됐습니다.
인파에 떠밀려가며 찾아간 그 술집은 그 해 대박 장사를 준비한 것 같았고, 간판은 지난해까지 사용하던 예거마이스터 사슴을 제거하고 더 큰 간판에 피 묻은 낫을 든 죽음의 사신인 그림 리퍼(Grim Reaper)의 그림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술집은 손님들로 가득 차서 제가 주문을 못하고 있는데 사슴 가면을 쓴 청년이 와서 술집 지하에 있는 칵테일 바로 데려갔습니다.
그 칵테일 바 인테리어는 바닥에 펜타그램(Pentagram)이 깔린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고 촛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각시탈 가면을 쓴 청년들을 포함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 무슨 거사를 앞두고 범죄를 공모하는 듯 기독동아리 모임 같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불편해 술값을 내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사슴 가면을 쓴 청년이 제 손목을 잡고 주방 뒷문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따라가자 청년은 주방 뒷문 지하 복도에 쌓여 있는 고급 올리브유 한 병을 할로윈 선물로 주고는 "내일 밤 이태원에 오지 마세요, 오면 죽을지도 몰라요"라며 껴안아줬습니다
사슴 가면을 쓴 청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헤어졌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었습니다.
할로윈 데이인 다음 날, 숙취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 자다가 문득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났는데, 갑자기 그날 이태원에 가기 싫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할로윈 때마다 이태원에서 저주의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 해 이태원에 가는 것을 거르고 싶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눈을 뜨면서 느낀 것은 강한 불길한 예감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나갈지 말지를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지금 이태원에 있냐, 빨리 답장해라"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집에 있는데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답하자 어머니는 "집에만 있어라, TV를 켜봐라"라고 답했습니다.
TV를 켜보니 긴급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이태원은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가 났습니다.
뉴스 앵커들이 119구급헬기를 띄워 갇힌 사람을 빼내야 한다고 아우성이었고, 화면에는 심정지 상태로 시신들이 인양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황금빛 코스튬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라 깜짝 놀랐는데, 사슴 가면을 쓴 청년이 과거 술자리에서 친형이라고 소개해 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인은 평소 이태원 골목에서 비보잉 댄스를 추거나 홍익대학교 앞에서 버스킹을 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이렇게 차분하게 글을 쓰지만 그의 시신을 보는 것은 저에게 너무나 큰 트라우마였습니다.
멍하니 TV를 보다가 문득 어제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이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때 사슴 가면을 쓴 청년의 친구들을 경찰에 신고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했더라면 이태원에 온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제 인생을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더 이상 그 때를 회상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희생자들 때문에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 이태원에 갔다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처럼 이기적으로 살아가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며 일어섰던 분들은 살인과 관련된 죄책감에 전혀 시달리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악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더욱더 열렬히 악마를 숭배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고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더욱더 악마를 숭배할 것입니다.
제가 저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이 반드시 고통 속에서 자살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래 살아남아 그들을 지켜보며 후손들을 저주하는 것만이 저처럼 미생들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날 이후로 사슴 가면을 쓴 청년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아직도 어딘가에 살면서 유튜브를 보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The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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