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아프리카 밀림의 한의사 원숭이

ㅇㅇ(222.234) 2021.06.19 20: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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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질병 치료를 위해 주변에서 서식하는 풀이나 나무 뿌리, 열매 등을 이용했다. 생채기에 찧어 붙이던 쑥은 물론이거니와 한약재로 사용하는 수많은 식물이 여기에 속한다. 그게 의학으로 발전한 것이 한의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러한 치료 행위가 시작되었을까. 또 최초에 호기심 많은 누군가에 의해 그 식물이 약효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을 텐데 과연 그는 누구일까.

지금도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은 현대의학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들은 경험에 의한 약초의 사용으로 건강을 지키고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이들 원시 부족들이 사용하는 약초들은 아프리카의 대형 유인원인 침팬지와 고릴라가 사용하는 약초들과 거의 일치한다. 심지어 어떤 약초는 ‘고릴라의 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원시 유인원들이 약초의 효과를 원시 부족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아마도 고릴라와 같은 대형 영장류들이 사용하는 약초를 아프리카 원시 부족민들이 배워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유인원 중에서도 고릴라는 59개과 118종이나 되는 다양한 식물을 먹이용 아닌 의료용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단연 유인원 세계의 ‘허준’이라 불릴 만하다. 여기서 혹자는 궁금해 할지 모른다. 정말로 약용으로 먹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인지 말이다. 일본 교토영장류연구소에서 유인원들의 약초 이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호프만 박사가 그 해답을 내놨다. 그는 고릴라나 침팬지를 따라다니며 섭취하는 식물을 조사하고, 성분과 맛을 분석해 의료용인지 먹이용인지 쉽게 구분했다. 만약 단백질의 함량은 매우 낮고 맛이 쓰면 먹이용이 아니다. ‘약은 쓰다’는 공식이 고릴라나 침팬지의 세계에서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유인원들이 약초를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맛이 쓴 나뭇잎을 씹은 후 삼키거나 뱉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잎을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키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으로 섭취하는 식물들을 조사한 결과, 다양한 약효를 가진 여러 가지 약초를 구분하여 섭취했다. 서부 고릴라가 콜라의 원료가 되는 식물의 과일이나 씨를 즐겨 먹는 게 그 예다. 현지 원주민들도 이것을 잠을 깨게 하는 각성제로 활용하고 있다. 가봉에 서식하는 서부 고릴라는 ‘이보가인’이라는 천연 환각물질이 함유된 협죽도과의 식물을 주로 섭취한다. 의료계는 알코올 중독자의 치료에 이 식물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비룽가의 산악 고릴라는 해발 4100m나 되는 산을 힘들게 올라가 ‘로벨리아’라는 식물을 먹는다. 로벨리아는 원주민 사이에 코감기와 폐질환의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는 약초다. 고릴라가 산에 올라가 로벨리아를 찾아 먹는 것이 그런 질병에 걸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예방 차원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약초를 일부러 찾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지혜가 새삼 돋보인다.

까칠한 잎을 통째로 삼키는 두 번째 방법으로 약초를 섭취하면 장에 있는 기생충이 제거된다는 사실을 유인원들은 알게 됐다. 잎을 삼키고 나면 배설물에서 거의 소화되지 않은 채로 잎이 발견되는데, 여기에는 선충이나 편충과 같은 기생충이 포함돼 있다. 까칠한 잎이 위와 장을 훑고 지나가면서 그 옆에 붙어있는 기생충까지 쓸어 내려가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파스처럼 약초를 피부에 직접 붙이거나 비벼서 근육의 통증을 해결하는 유인원도 있다.

고릴라 등 유인원의 약초 이용 행동은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체험교육의 결과다. 어미나 동료의 섭취 행위를 그대로 체득하며 후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약초의 이용은 아프리카 고릴라와 침팬지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의 오랑우탄이나 남미의 원숭이에게서도 발견됐다.

현대의학에서는 유인원들이 사용하는 약초를 분류해 신약 개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어쩌면 유인원들이 신약에 대한 인간의 스승인지도 모른다.

장규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장

[출처: 중앙일보] [과학칼럼] 아프리카 밀림의 한의사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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