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지금 런던에서 재즈 싱어로 활동하면서 살고있고, ‘Live a life to remember’ 라는 프로젝트를 위해서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중임.
프로젝트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실력이 있지만 유명하지 않은 아티스트들을 세계를 돌며 직접 찾아서 같이 편곡, 녹음 작업하고, 인터뷰와 영상까지 남기는 그런 프로젝트임. 녹음과 사후 믹싱작업, 영상 촬영 편집, 영상 후 보정작업, 인터뷰 전부 혼자해서 힘이 드는 작업임..ㅠ
곡 선정은 게스트에게 모두 일임했음.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같이 하는게 맞는 것같아서.
(이 영상은 프로젝트 영상인데 글 읽기전에 꼭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음. 절대 실망 안할거임)
보통 세계일주 이야기를 보면, 돈 50만원 들고 시작해서 영어는 짧지만 열정으로 접시닦아 돈 벌고, 약간은 추레하게 뒹굴지만 결국 해내고 마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생각날거임
근데 재수없을 수도 있는데, 영어 문제가 전혀 없어서 과감하게 시작 할 수 있는 있었던게 팩트임. 솔직히 말하면 영국 워킹 비자때매 점수가 급하게 필요해서 토익에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봤는데 900은 그냥 넘었음. 엄청 어렸을때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외국인 친구랑 놀러다니고 이런 게 대부분이었음.
(세계 일주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영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더 많은 걸 하면서 여행할 수 있음. 좋아서 하는 공부만큼 빨리 느는것도 없으니 꼭 배우길 추천함)
뭐 간단하게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2009년 19살때 혼자 기타메고 세계 테마기행 하림편을 보고 미친놈처럼 10윌 뒤에 기타들고 아일랜드에서 한달동안 여행했음.. 그때 아일랜드는 진짜 동양인도 아예 없고 폴더폰 쓰던 시절이라 구글맵은 개뿔 수첩에 지도 그려가면서 여행함.. (그때 수첩은 아직도 보물 10호 안에 들어감ㅋㅋ)
근데 내가 펍이나 이런데서 노래하고 하면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가라고 그런 경우도 많고, 밥 사는 경우도 엄청 많았음. 아일랜드의 별명이 배낭 여행자들의 고향이라고 하는데, 이게 내 인생을 완전 흔들어놨음. 너무도 친절했고 너무도 따뜻했음...
그 뒤는 조금 생략하고 사실 나는 우리나라 밀리언셀러 기록은 다가지고 있는 프로듀서 밑에서 아티스트로 있었고, 2년동안 정말 추석 설날 할것없이 하루에 거의 8~9시간씩 정말 목이 아예 안나올때도 연습하고, 말만해도 목이 가라앉는 그런 지경을 버텨가며 말그대로 철사장을 했음…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집, 운동, 회사만 갔고 그 외에 시간엔 여자친구만 짬짬히 만남. 데뷔 곡을 녹음했는데 릴리즈 하기 직전 프로듀서와의 개인적인 문제로 회사를 나오게 됐음.
회사에서 문제가 생길때 정말 맘고생을 심하게 했는데, 그때 처음 떠올랐던게 아일랜드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임. 그래서 정말 머리를 싸메고 고민했음. 과연 내가 제일 잘할 수 있으면서 누구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크게 흥미를 가질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 지금 하는 프로젝트임.
당시 그 맘고생 때문에 멘탈이 나간 상태였는데, 그러다보니 그걸 깨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음. 그러다보니 생각한게 내가 하는 음악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진 음악인데, 진짜 그 본토 사람들 한테 직접 검증을 받고 싶은거임. 진짜 그 음악을 태어나게한 나라 사람들한테 검증 받으면 내 자신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음.
당시 학교 한학기가 남은 상태였는데, 내 프로젝트의 실현가능성을 보자 하고, 초기자금을 모아 1달 반동안 미국으로 떠났음. LA, 샌프란시스코, 뉴욕 거쳐서 여자친구가 살던 밴쿠버까지 해서 돌았음. 이때 기타랑 앰프랑 해서 다 챙겨서 버스킹 하면서 돈을 모아서 다녔는데… 진짜 아직도 눈물나는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내 음악을 너무 사랑해줬던거임…
나는 참 공연을 많이하고 이제는 안떨린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처음 LA에 베니스 비치에서 처음 버스킹 할때는, 이게 역대 살면서 가장 떨리는 순간이었음. 왜이렇게 떨리는지 입이 너무 마르고 목소리가 아예 안나와서 30분 하다 접었음… 그 뒤에 집에 가면서 생각을 고쳐먹은게 잘하자고 스스로한테 압박넣으면서 지랄하지 말고 어차피 조져도 다음에 안볼 사람이니까 부담감 다 내려놓고 해보자 마음먹고 했더니, 그 뒤로는 엄청 잘 풀렸다는 거임…
샌프란시스코에 있을때, 노래하는데 걸어가던 흑누나들이 가다가 다시돌아와서 한참을 보더니 진짜 너 목소리 미쳤다고 말해줄땐 온몸에 희열이 오더라.
"You’re killing everybody on the street!!"
이런 얘기하면서 5, 10달러씩 넣어주는 사람도 꽤 있었고. 근데 돈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내가 먹히는구나 그런 느낌이 그게 진짜 나를 다시 일으키는거임… 정말 출발할 당시 마음이 구렁텅이 속에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될거임.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름.
보통 이런거 사진잘 안찍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버스킹이라 좀 기억에 남아서 찍어놓음
그렇게 미국을 돌고 오니까, 머리에 대충 청사진이 그려졌음.. 마지막 한학기 동안 웹드라마 음악총괄감독 하고, 버벌진트 뮤직비디오에서 연기해서 돈벌고, 클럽공연, 아트센터 공연 이런거 하면서 돈을 모아서, 남은 한학기를 마치고 졸업식 일주일 뒤에 바로 엘에이로 날아감.
엘에이에 드디어 도착함! 아니 근데 이게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거임…
첫번째로 일단 내가 구했던 집은 할리우드 밑에 쪽에 있었는데, 엘에이가 알다시피 진짜 존나게 큼… 차가 없으니까 어디 한번 가는데 편도 한시간 반씩 걸림… 엘에이에 정말 괜찮은 버스킹 구역이 있는데, 거기가 산타모니카라고 서부 해안쪽임… 거기 은근히 괜찮은 사람들이 많아서 좀 보고 해야하는데 버스타면 왕복 세시간이니까 이거 대책이 없는거임.
두번째론, 분명히 잘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을걸 기대하고 일주일에 하나씩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진짜 엘에이에 있는 라이브 펍이나 바의 오픈마이크는 다 갔는데… 전부 너무 아마추어 스러운거임…. 진짜 구글링해서 나오는 좀 유명한데는 다 갔음.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잘하는 사람과의 시너지가 있어야 되는데, 프로젝트가 다 어그러지는 기분이었음…
그러다가 일단 할 수 있는걸 하자 이래서, 돈 벌려고 펍이나 바에서 공연하고 다니는데 그러다보니까 내 공연을 보고 어디에 가보라고 추천이 들어오기 시작했음. 그러다가 노스 할리우드에 진짜 죽이는 곳을 알아냈음… 거기는 아예 음악만 하는 곳인데, 하우스 재즈밴드랑 공연할 기회를 얻은거임. 거기서 노래를 했는데, 거기 음악 관계자분들이 명함을 잔짜 많이 줬음. 자기가 공연할 곳 소개시켜주겠다고.(결국 바닥에서 시작하는게 이런거임, 그렇게 하나하나 자기를 알려가는 시간인거임)
제일 좋은건 거기서 공연을 하다가 정말 괜찮은 흑인 여자 친구를 하나 만나게 됐는데, 성격도 너무 좋고, 실력도 있어서 가서 프로젝트 설명하고 무조건 하자고 설득했음. 그 친구가 동영상에 있는 Ashia임. 들어보면 알겠지만 참 잘함. 영상도 진짜 이쁘니까 꼭 봐주시길
이 친구와의 작업이 엘에이에서 머물렀던 마지막 주였는데, 녹음하고 장소 로케하러 돌아다니고 하다보니, 촬영을 뉴욕으로 떠나는 마지막날에 하게 됐음. 그러다보니 같이 있는시간도 많고 진짜 친한 친구가 됐음. 꼭 한식 먹게 하고 싶어서 BCD순두부 데려가서 제일 맛있는걸로 시켜서 먹였음. 첫번째 게스트다보니 더 생각이 많이 나고 그럼..
근데 진짜 인생이 다이나믹한게, 뉴욕에서 살 집을 구하려고 떠나기 일주일전에 이미 집주인이랑 얘기를 해놓은 상태였음. 근데 위에서 얘기한 대로 마지막날 촬영하다보니 촬영하고 바로 짐챙겨서 공항으로 갔는데, 밤을 샜더니 탑승게이트 앞에서 잠든거임… 일어나보니 정시였는데, 와... 내가 타야하는 비행기 문닫히고있는걸 봄. 그때 직원한테 가서 나 못탔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면서 비행기 티켓 바꿔주겠다고함… 그래서 다음날 오전에 도착하는걸로 바꾸고 그 집주인한테 조금 늦을것같다고 전화했는데, 이년이 집을 며칠전에 다른 사람한테 이미 줬다는거임. 나랑 구두계약 다했는데…. 그래서 졸지에 미아됨…
갈데가 아예 없어서 엘에이에서 석사 하고있는 학교 선배형한테 전화했는데 형 삼촌이 뉴욕에서 미용실하고 있는 삼촌에게 연락드렸음. 이때 거의 72시간동안 제대로 눈 못붙이고 깨어있었는데, 어디 앉으면 잠들고 그러다가 뉴저지 사시는 어머니 친구분 도움이랑 선배 형 삼촌분 도움 받아서 겨우 구사일생함… 바로 어머니 친구분이 집으로 불러들이셔서 재워주시고 먹여주시고... 그리고 형 삼촌 분께서 수소문해서 계약할 수 있는 집 알아봐주심.
그래서 결국 퀸즈에 있는 월 700$짜리 집으로 계약할 수 있게됨.
근데 몸이 너무 약해진 상태라 심한 감기가 들려서 누워있는데, 그냥 펑펑 울었음. 그게 힘들어서 운게 아니고, 난생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린놈한테 진심을 다해서 도와주고 걱정해주시고 작은거 하나하나 챙겨주시는데, 그냥 너무 고마워서 펑펑 울었음. 그 '진심'이라는 것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하게됐고, 내 예술에대한 가치관까지 다 바꿔버림. 그래서 뉴욕은 제2의 고향같은 그런 도시가됐음.(또 뒤에 나를 죽였다가 살린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함)
그렇게 감기로 한바탕 고생하고 제대로 된 뉴욕 생활이 시작됐음. 일단 새로운 도시에 처음 도착하면 힘든게, 진짜 아무도 나를 모르고 바닥부터 시작해야 되는거임.
한국에서 공연하면 혹은 뭐 하면 최소 시간당 15~20만원, 아트센터 공연할땐 한시간 40만원씩 받았음. 근데 새로운 도시에서 시작하는게 어려운 이유가 아무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말그대로 바닥부터 시작해야하는거임. 장소도 찾으러 하나하나 돌아다녀야 하고. 그러다가 노숙자 아저씨들이랑 잼 하면서 친해짐. 근데 노숙자 아저씨들이 엄청 신기한게 아니 음악을 꽤 잘함… 기타치면서 있으면 퍼커션하는 아저씨 오고, 기타 든 다른 아저씨 오고, 어떤 아저씨 갑자기 소매에서 하모니카 꺼내는데 겁나 잘붐… ㄷㄷ 유독 하모니카 부는 아저씨가 잘불었음
위에서 이미 썼지만, 내가 진짜 철사장하듯이 음악하고 했으니 음악 하는거 보는 눈이 되게 까다로운데, 진짜 잘해서 놀람. 그래서 스트레스 받거나 할땐 워싱턴 스퀘어 가서 아저씨들이랑 맨날 잼하면서 놀았음. 그때 노래하면 사람들 20명씩 모여서 보고 그래서 재밌었음 ㅎㅎ 참고로 뉴욕은 야외에서 앰프사용이 금지 되어 있어서 잼 할땐 항상 생목으로 부름
그러다가 워싱턴 스퀘어 옆에 NYU라고 뉴욕 초 명문 대학교가 있는데, 거기서 가끔 급식 배식하고 배식 못한 음식을 도시락 형태로 만들어서 주변에 노숙자들한테 나눠주고 그러거든, 그거 같이 받아서 먹는데, 따끈따끈하게 방금 꺼내온거라 엄청 맛있더라. 좀 거지 된 기분인데 기분 이상하게 너무 좋아서 아저씨들이랑 껄껄대면서 먹었음.
뉴욕에선 오랜 기간 생활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취미를 가지고 싶어서 사진을 많이 찍으러 다녔는데, 그때 찍은 사진들 좀 방출하겠음. 이때 맘에드는 사진마다 제목을 다 붙여서 더 기억이 많이 남음. 맨위 사진은 정말 많이 아끼는 사진임. 참고로 포토샵은 커녕 하나도 자연 그대로 상태임. 나도 하늘이 저렇게 반으로 나눠져 있는거보고 진짜 소리지름.
(나름 뉴요커 생활을 오래해서 혹시 뉴욕여행갈때 블로그같은데 없는 여행지 추천 이런건 확실하게 해줄 수 있음.)
사진 촬영은 전부 Sony A7으로 이루어 졌음!
뉴욕생활은 고맙게도 여기저기 공연 초대를 많이 받아서 돈을 벌면서 생활을 했는데, 조금 여유가 생기니 조금 특별한게 해보고 싶은거임.. 그래서 노숙자아저씨들 포함 코러스 모아서 한 10명이서 음악하는 영상을 녹음장비로 진짜 프로페셔널하게 제작하려고 하는데, 진짜 세상이 왜 이런건지…
맹장이 터진거임…
첨엔 내가 복근 운동하다가 무리해서 근육에 무리가와서 아픈건줄 알았음. 근데 하루이틀 지나니까 걷는데 뜨끔뜨금 아프더라… 그래가지고 병원에 갔는데 와 시발... 맹장이래….. 혹시모르니까 MRI 찍어보자고 하는데, 진짜 식은땀이 줄줄나더라.
결과를 보니 터진 상태였어. 근데 뉴욕은 아니 미국은 의료비가 존나 비싸…. 믿기 힘들겠지만 응급실에서 보험없이 맹장 수술하려면 3만 달러(3000만원넘게)정도 내야됨… 내가 당장 그돈이 어딨냐고. 그래서 맹장일것 같다 하는 소리 듣자마자 바로 한국행 비행기 티켓 왕복으로 끊었어. 왕복으로 끊은 이유는, 맹장 수술이 빨리끝나면 일주일만에 회복이 된다고해서 바로 다시 뉴욕으로 오려고 했거든… 근데 터진지 꽤 진행된 상태인거야… 내가 삼천만원 내고 수술하는거 오버인거 같아서 의사한테 한국간다고 하니까 그사람이.
“I have a responsibility to protect my patient.” 라면서 안보내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안죽을 것 같은거야 그래서 그냥 비행기 탔음. 근데 실제로 죽을 수도 있었음...
오자마자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로 직행했어. 난 맹장 터지면 앉지도 못한다고 들어서 심한게 아닌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조금만 늦었어도 장을 다 절제해야 됐대… 그래서 수술도 7시간이나 하고 염증 빼내느냐고 10일 넘게 단식하고, 입원도 계속하고, 퇴원하고도 한달을 거의 정상이 아닌 상태로 보냈어.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그때 찍은 셀카 하나 공개하겠음… 볼이 그냥 훅 들어갔음
그렇게 회복기간을 보내면서 영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랜기간을 머물러야 하니까 비자신청을 하는데, 영국 비자가 참 거지같은게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완전 랜덤으로 뽑는거라 비자가 안나옴…. 600점 짜리가 되고 내가 안되고 이런게 다반사임…
그때 모든 플랜을 거기에 맞춘 상태여서 준비하고 있다가 꼬꾸라지니까, 신청해놓고 안가는애들 저주하게 되고, 안그래도 뭔가 아픈것 때문에 막힌 느낌이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내가 노력으로 극복해 낼 수 있는 일이 아예 아니니까 우울증까지 오더라. 나에겐 기간이 중요하니까 필요없는 어학비자라도 받아서 맞춰 가야지 했는데, 연대 세브란스에서 비자 검사 했더니 결핵 흔적이 나온거야… 결핵 흔적나오면 영국은 그거 가래 검사해서 네가티브 나와야 갈 수 있거든…. 그래서 그것도 시기에 맞춰서 못가게됨. 그냥 멘탈이 파괴됨.(나중에 집으로 결과 날아왔는데 이상없었음, 어린시절 지나간 흔적이라고 함)
그러다가 한달정도 지나니까 이대론 안되겠다 해서 캐나다로 가기로 결정했음(2부에서 계속)
밑에는 프로젝트 로고임! ㅎㅎ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