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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결혼 계약서(38)

ㅇㅇ(222.110) 2020.12.04 01:55:10
조회 531 추천 43 댓글 7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예전 그대로였다. 거실, 주방 그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엘사의 방 역시 집을 나간 날 그대로였다. 

엘사는 조용히 자신의 방을 둘러보다 몸을 돌렸다. 그때 안나가 엘사의 옆으로 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엘사.”


“…….”


“아무 생각 말아요. 이젠 안 들어줄거니까.”


“..안나.”


“참, 한 가지 바뀐 게 있어요.”


안나는 말을 자르며 엘사를 2층으로 이끌었다. 엘사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안나는 가보면 알 거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안나는 자신의 방으로 엘사를 데려갔다. 하지만 방에 도착한 뒤에도 엘사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안나의 방도 예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앞으로 여기서 자요.”


“..안나?..”


“이 집에서 뭘 하든 다 상관없는데 딱 하나. 잠은 나랑 같이 자요.”


안나의 방에 있던 침대는 두 사람이 누울 정도로 큰 침대로 바뀌어 있었다. 

엘사는 말도 안된다면서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이번엔 안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단단히 작정한 듯 놔주지 않을 모양인 것 같았다.


“미안한데 당신한테 선택권 없어요. 여긴 이제 내 집이니까.”


“...그럼 내가 나가서..”


“그 말도 금지! 안돼요. 정 그러면 월세 대신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


엘사가 무슨 말을 하든 안나는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얼떨결에 안나를 따라 다시 집으로 오긴 했지만 엘사는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나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게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 같았다. 엘사가 곤란한듯 목을 쓸자 안나는 팔을 뻗어 엘사의 허리를 감싸며 작게 속삭였다.


“당신이 나간 날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만약 엘사가 다시 돌아오면..이번엔 꼭 같은 방을 써야지, 이번엔 더 오래 같이 있어야지..”


“…….”


“일 분이라도 허비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후회하긴 싫어.”


“..안나, 하지만..”


엘사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안나의 입술이 엘사의 입에 닿았다. 엘사는 오랜만에 느낀 달콤한 온기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입술 사이로 간간히 새어나오는 신음소리와 숨소리가 방안에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다시 하나가 되길 원하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끈적이는 입맞춤에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머물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엘사와 안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안기 시작했다.








쿵쿵대며 뛰는 심장의 고동이 혈관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뜨거워지는 몸과 땀으로 살짝 젖은 피부는 떨고있는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푹신한 침대 위로 두 사람의 살이 섞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방안에 퍼졌다.

말소리보단 신음소리에 가까웠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보단 몸으로,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붉은 머리가 어지럽게 침대에 흐트러지고 번뜩이는 푸른 눈동자가 몸 구석구석을 탐미하며 마침내 제 것을 되찾은 듯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안나가 애처롭게 엘사의 이름을 외쳤지만 엘사는 듣지 않겠다는 듯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뜨거운 혀가 입안을 쓸고 조금 거친 손가락은 거리낌없이 다리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랜만의 정사였지만 다정함을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정사였고 고통과 쾌락이 번갈아 가며 안나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것 같았다.


일순간 안나의 온 몸에 힘이 들어가자 엘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키스와 함께 가장 깊은 곳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안나는 마치 불덩이가 자신의 입안과 몸 안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엘사의 다른 모습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나는 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와.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은 다시 입안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엘사의 입술이 대신 채웠다. 

이젠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안나의 볼을 타고 흘렀다. 그제서야 엘사는 만족한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늘어진 안나를 놔주었다.


“..엘사.”


갈라진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엘사는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 절망감, 미안함 어쩌면 자기혐오까지. 

엘사는 자신의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맑은 호수처럼 투명한 녹색 눈동자가 이미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엘사에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때 따뜻한 손이 엘사의 볼에 닿았다. 두려운 눈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그곳엔 가장 듣고 싶었던, 가장 원했던 것이 있었다.


“사랑해, 엘사.”


그 순간 방안에 햇살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위즐튼은 하루 종일 인상을 쓰며 자신의 사무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그나르의 예상치 못한 돌발과 갑작스런 안나와 엘사의 이혼.

이 상황은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할 때,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는 이 현실이 그의 목을 점점 죄어오고 있었다.


비서를 시켜 아렌델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은 정리하고 있었지만 곧 루나드가 자신을 찾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도 분명했다.


“빌어먹을..”


위즐튼은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앉았다. 루나드는 두려웠고 아그나르는 혐오스러웠다. 두 사람 다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는 도망쳐야 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자신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이 필요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마침내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들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엘사 블랙우드에게 연락해서 내가 만나자고 해. 이전의 제안 수락하겠다고 전해.”


위즐튼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를 끊고 자신의 개인 금고를 열었다. 

만약을 대비한 약간의 현금과 중요한 자료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다.


“..좋아,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루나드와 위즐튼의 친필 서명이 있는 계약서. 아렌델 프로젝트의 뒷거래를 증명해 줄 유일한 계약서였다. 

그는 이 계약서가 자신을 구해줄 동아줄이 되길 기대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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