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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 아폴론 안나와 아르테미스 엘사 0~1화

엘산나픽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03 15: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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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글 https://gall.dcinside.com/snowpiercer2013/812533




※ 초반에 타캐주의






0. 프롤로그







오오 위대한 하늘과 벼락의 제왕 제우스여, 옛 티탄 신족의 겸손한 레토와 결합하여 그와 영원토록 함께 찬란하게 빛날 태양과 달을 낳을지니. 이는 그의 권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지상과 지하 그 어느 곳이든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하리라!



허나 부디 조심하시길,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어 태양과 달이 합쳐지게 된다면 하늘과 땅이 뒤집혀 그대의 영광 역시 이제는 잊혀진 티탄의 길을 걷게 될지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제우스.


그대가 승리에 취해 방심하는 순간, 당신의 그 자랑스러운 하늘에서 그대의 적으로 가득한 타르타로스로 추락해버릴지도 모르니.






― 예언자 프로메테우스








천공에서 밝게 빛나는 자 [포이보스]



생명이 힘차게 움트는 대지를 비추어 아름답게 반짝이 강물의 빛무리로 천상의 소리를 연주하는 자. 찬란한 이성으로 스스로 빛나는 태양의 신 아폴론, 그리고 어머니 레토가 지어준 그 이름 안나.


황금빛의 마차를 이끄는 아폴론의 붉은 머리카락은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고. 인간을 담은 녹색의 눈은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하며 장난기 어린 태양신의 얼굴은 언제나 악동처럼 반짝인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빛 아래에서 생명의 불꽃을 피우는 인간들을 기꺼이 여겼던 아폴론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니.


붉은 머리카락의 사랑스러운 주근깨를 가진 여인이 리라를 들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면 그녀를 조심하는 게 좋으리라. 찬란한 그녀의 미소에 매료된 인간은, 간혹 목숨보다도 더한 것을 빼앗기기도 하니. 이 사랑스러운 태양신이 떠난 자리에 남는 건 하룻밤의 달콤한 끝에, 홀로 꺼지지 않을 불꽃을 끌어안고 잊힌 불상한 이들뿐. 그러니 어리석은 자들이여 눈이 멀고 싶지 않다면 조심할지어다.




어둠을 가르는 예리한 빛 [루나이]




태초의 암흑을 홀로 밝히며 고고히 잠든 대지와 생명체를 굽어보는 자. 원초적인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몽환의 빛으로 숨을 앗아가는 달의 신 아르테미스, 그리고 어머니 레토가 지어준 그 이름 엘사.


달빛을 담은 듯이 아름다운 백금발은 요요하게 빛나고. 은색의 활과 황금빛의 화살이 향하는 방향을 응시하는 새파란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을지니. 고독한 이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은 달빛에 홀려, 어두운 숲에는 들어간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요정들을 거닌 채로 사냥을 하는 자비 없는 달의 신을 만날지도 모르니.


만일 순결한 이를 희롱하거나 더럽힌 일이 있다면, 어두운 숲을 헤매던 불경한 이는 그녀의 잔혹한 사냥의 사냥감이 되어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심장에 황금빛 화살이 꽂힐지어다.










1.












새하얀 구름을 뚫고 황금의 태양 마차가 정해진 궤도를 따라 드넓은 하늘을 달린다. 붉은 머리카락이 시원한 바람에 휘날리고 마차의 주인 아폴론은 상쾌한 미소를 지은 채로 바람 말의 고삐를 쥔다. 굳이 아폴론이 몸소 태양 마차를 몰 필요는 없지만 활발한 태양의 신은 직접 마차를 끌고 하늘을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손으로 쥔 고삐를 통해 느껴지는 푸르릉 소리를 내며 달음박질하는 바람 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바람, 태양빛 아래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구경하는 것, 태양 마차를 직접 끌어야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안나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한 번씩 지상에 있는 그녀의 아이들의 안부를 잠시라도 확인하는 것도.



젊고 혈기왕성한 태양신에게는 자식이 많았다. "뛰어난 혈통을 널리 퍼트리고 보존하는 것이 우리 올림포스의 신들의 의무이다. 이 모든 것이 올림포스의 번영을 위한 길!"라고 부르짖는 아폴론의 아버지이자 올림포스의 제왕인 제우스의 신조를 아주 충실하게 이행한 결과였다. 누군가는 지조가 없는 점이 아버지를 똑 닮았다며 폭언을 퍼붓기도 했지만, 안나는 제우스보다는 자신이 낫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비록 술을 진탕 마시고 벌이는 일이라 상대에 대해서는 너무할 만큼 기억을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챙기고 있으니 쓸모없는 자식은 존재조차도 기억 못하는 제우스보다는 나은 것이 아닌가? 안나는 그 점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그렇기에 태양 마차를 몰며 자신의 아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 자식들에게 "코는 주먹만 해 가지고 쓸데없는 헛바람만 든 놈"이라던가 "멀끔하게 생겼기는 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구레나룻을 정돈하지 않는 고릴라 지망생"이라던가, 아버지에 대해 무심하다 못해 신랄한 말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날도 태양 마차에 올라탄 채로 지상의 인간들을 내려다보던 안나의 관심을 한가지 기이한 이야기가 낚아챈다. 안나의 쌍둥이 언니이자 달의 신인 아르테미스에대한 소문이었다.



감히 아르테미스의 신명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들을 녹색의 눈이 탐탁지 않게 바라본다. 불경한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안나로 하여금 헛웃음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천하의 그 아르테미스가 난봉꾼으로 유명한 거인 오리온과 사귄다는 소문이었다. 그 처녀신인 엘사가 말이다!



이 인간 저 인간을 만나고 다니면서 혈통을 퍼트리는 것에 열심히인 안나와는 다르게 엘사는 처녀성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제우스에게 찾아가 자신의 영원한 처녀성을 보장받는 담판을 지은 엘사다. 그 후로 아르테미스의 신전에는 오로지 순결을 맹세한 여신도들과 님프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남성들을 더 매혹시키고 불타오르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신도들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다음날 죽어도 좋다는 얼빠진 소리를 하는 어리석은 남자들로 올림포스의 산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정도였고, 실제로 그런 시도를 했다가 손끝 하나 대보기도 전에 목숨이 날아간 이들의 피로 스틱스강을 채울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저승의 뱃삯을 챙겨줄 수도 없도록 사냥개와 짐승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잔혹하게 아름다운 아르테미스와 그녀의 여신도들의 모습은 그림으로도 그려질 만큼 유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들을 탐하려 시도하는 자들이 등장하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거기다 안나를 만나서 뾰족한 말을 내뱉을 때마다, 엘사가 항상 언급하는 것이 아무나하고 잠자리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엘사가 그렇게 쏘아붙일 때마다 안나 역시 지지 않고 노처녀 히스테리니, 나이 먹고 사랑도 모르는 반푼이니 하는 말로 지지 않고 받아치고는 했다.



그렇게 처녀성에 집착하는 엘사인데, 안나와 비슷한 바람둥이 - 아니지, 안나는 적어도 한 번에 한 사람만 만난다. 다만 하루가 지나면 잊을 뿐. - …난봉꾼 - 억지로 한 적은 없다 - …안나보다도 더 최악인 남자와 사귄다니, 말이 안 되는 소문이었다. 안나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일순간, 전에 자신의 신전에 오리온이 찾아왔던 기억이 안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태양의 신인 동시에 의학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의 치료를 받고자 온 것이었다. 어느 나라의 공주를 강제로 취하려다가 그 보복으로 잠든 사이에 두 눈이 뽑혔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본인의 주장은 소문과는 조금 달랐다. 오리온은 자신과 공주는 정인이었으며, 왕이 공주와의 결혼을 빌미로 자신을 이용하다가 약을 먹여 기절시키고 눈을 뽑아갔다고 주장했다. 안나로서는 그를 치료해주고 싶지 않았으나, 포세이돈의 아들인 데다가 아들인 아스클레오피스의 부탁도 있었기에 결국 그의 눈을 치료해주었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날 우연히도 엘사가 안나의 신전에 방문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사가 "오리온? 사냥 실력이 뛰어나다던데."라며 드물게 남성인 오리온을 향한 호기심을 보였었다.



혹시, 엘사가 그날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고 오리온을 찾아갔다면? 그리고 '미남 거인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그 잘난 얼굴에 홀려버린 것이라면?



고삐를 움켜쥔 안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사냥 실력이 뛰어나다던데…" 살짝 옆으로 향한 고개, 흥미를 품은 푸른 눈동자, 손가락으로 톡 팔을 두드린 순간…자신의 안에서 들불처럼 번지던 불안감을 안나는 기억했다. 그리고 그때 그 들불을 진압하기 위해, 불안감을 삼키기 위해 안나는 엘사에게 못된 말을 퍼부었다. 짜증과 분노가 고인 푸른 눈이 자신을 담는 순간, 그 열기가 사그라들었다. 안나는 이죽이면서도 안도했다.



그런데 숨죽은 줄 알았던 그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그건 순식간에 안나의 이성을 연기로 뒤덮었다. 애써 태평하려 하지만, 이미 오른 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불길을 사그라뜨릴 새파란 시선은 안나의 곁에 없었다.



태양 마차를 끄는 천마가 안나의 분노 어린 손길에 깜짝 놀라 속도를 높였다. 그날따라 이른 시간에 저문 태양에 모두가 의아해하고,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가 상황 파악을 위해 아폴론의 신전으로 왔다가 무시무시한 안나를 마주했다. 사나운 얼굴의 안나에게 멱살을 잡히고 나서야, 헤르메스는 자신이 피곤한 일의 사이에 끼었음을 알았다.



"으어어어어, 나한테 왜 그래요? 안나!"

"너, 엘사랑 오리온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아, 그, 알죠. 알아요. 소문이 자자하잖아요."



도둑과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의 발길은 지상과 지하, 그곳을 떠도는 모든 소문은 그의 귀에 들어오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 호기심 넘치는 신은 자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그의 하루를 그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 사용하곤 했다. 당연하게도 아르테미스에대한 은밀한 소문에 대해서도 그는 조사를 끝낸 차였다. 그리고 안나에게 멱살이 잡힌 채로 탈탈 털린 헤르메스는 아르테미스가 안다면 그의 가벼운 입술을 바늘로 꿰매버릴 테지만, 안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말해버렸다.



그들의 첫 만남은 안나의 예상대로 아폴론 신전에서였다. 치료를 받고 눈을 뜬 오리온을 흥미롭게 내려다보던 엘사는 오리온에게 함께 사냥을 가자고 제안했다. 올림포스에서 넥타르를 마시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엘사는 야생에서 사냥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나 아쉬운 건 홀로 하는 사냥에는 스릴이 부족했고, 함께하기엔 그녀의 님프들은 엘사를 따라오기도 벅차했다. 그러던 중 신과도 견줄 수 있는 실력이라는 오리온의 활 실력은 엘사의 자존심보다 호기심을 먼저 자극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바람둥이로 유명한 오리온이 아름다운 여신 엘사를 눈앞에 두고,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기뻐하며 엘사의 말을 따랐고 그들은 함께 사냥을 다녔다.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았던 그들의 사냥 나들이는 거의 매일이 되었고 언제나 엘사의 뒤를 따르던 님프들마저 신전에 두고 단둘이 사냥을 다니기 시작했다. 님프들에게 신전에 남아있으라는 이야기를 엘사가 했을 때, 아르테미스를 신봉하는 그 광적인 님프들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처량하고 애절했던지 누가 죽기라도 했나 헤르메스가 확인하러 가기도 했다.



"그 난봉꾼 오리온이 이제는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르테미스랑 사냥만 다니더라고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안나가 헤르메스를 놓아주었다. 안나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헤르메스는 꽁지가 빠지게 도장 쳤다. 그래도 명색이 12 주신 중에 하나인데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안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안나는 피가 질려버려 새하얀 손을 내려보았다.



놓칠지도 몰라.



뭔가를 쫓고 있었나? 누군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테지만 안나는 불합리한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생각도 전에 안나의 발이 움직였다.











+








아르테미스는 오랜만에 오리온이 없는 사냥에 나섰다. 그녀의 뒤를 밝은 얼굴의 님프들이 따랐다. 사냥이 끝난 후에 사냥감을 해체하고 요리할 기구들과 엘사의 목욕 시중을 들 때 사용할 짐들을 가득 짊어진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엘사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구름이라도 걷는 듯한 기분인듯했다.


반면 엘사는 즐겁지 못했다. 옆에서 발맞추어 달리고 경쟁하듯이 활시위를 당기는 오리온의 부재 때문이었다. 활시위를 당기고 경쟁 없이 사냥감의 숨을 끊는 화살이 떠나갈수록 엘사는 오리온이 그리워지는듯했다. 그리고 오리온이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해괴한 이야기들도.



"후훗…"



오리온은 안나를 닮았다. 불꽃처럼 새빨간 머리카락도, 얼굴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주근깨도, 동화같은 녹색의 눈동자도, 그리고 무엇보다 태양과 같이 밝게 빛나는 웃음이.


하지만 동시에 안나와 같지 않았다. 다정한 말을 건네고 그 누구를 향해서도 아닌 엘사를 향해 올곧게 웃었다. 엘사만을 위해 웃고 있었다.


오리온의 화려한 연애사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기에 처음엔 엘사는 오리온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리온의 사냥 실력에 대한 호기심만 가시고 나면 행실에 대해 트집을 잡아 벌을 내릴 생각도 있었다. 그가 아주 사소한, 사소한 실수라도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안나랑 똑닮은 분위기에 외모로, 엘사만을 바라보는 강아지마냥 꼬리를 흔들어대는 모습에 트집을 잡으려던 날카로운 시선은 부드러워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안나를 닮아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엘사는 오리온에게 생각보다 많이, 마음의 곁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거겠지.



그래, 사랑. 찰랑거리는 물소리, 물에 젖어 목덜미에 붙은 붉은색 머리카락, 웃음소리, 품 안에 끌어안아 엘사를 들어 올리는 힘 있고 따스한 체온, 그리고 내려다보이는 엘사를 갈구하는 빛의 녹색 눈동자….



"하아…"



엘사는 짙은 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처음 듣는 관능적인 숨결을 내뱉는 엘사의 모습에 헉헉거리며 따라오던 님프들이 불경하게도 얼굴을 붉힌다. 아직 달이 지려면 멀었지만 엘사는 이 흥 안나는 사냥을 그만하기로 했다.



"이만 씻고 들어가자."



엘사의 말에 님프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샘에 도착한 그들은 조심스럽게 엘사의 옷을 벗겼다. 능숙한 손길에 순식간에 나신이 된 엘사는 투명한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님프들도 뒤따라 들어와 물에 몸을 적시고 생각에 잠긴 엘사의 몸에 조심스럽게 맑은 물을 흘렸다. 종종 아까와 같은 한숨을 엘사가 내쉴 때면 님프들은 긴장으로 바르르 떨었다.



그때였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타난 것은. 멍하게 풀려있던 엘사의 눈은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활과 가까이 있던 님프가 재빠르게 엘사에게 은색의 활과 금화살을 건네었다. 엘사의 화살이 정확하게 겨눠진 곳에는 붉은 머리카락이 살짝 헝클어진 채 마찬가지로 험악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안나가 있었다.


침입자의 정체를 안 엘사가 활을 내리고 님프들이 뒤늦게 몸을 가리며 옷을 입었다. 엘사에게도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을 가릴 옷을 건네었지만 엘사는 손을 들어 거절했다. 흉흉하게 빛나는 안나의 녹색 눈동자에 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님프들을 물렀다. 엘사의 명령에 님프들이 물러가고 등장했을 때부터 님프들이 전부 모습을 감출 때까지도 미동도 없이 엘사만을 응시하던 안나가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갔다.



크게 물의 표면에 파장이 생기며 안나의 옷이 물 위에서 흔들렸다. 성큼성큼 다가온 안나는 책망하는 눈으로 엘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치가 길어질수록 엘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푸른 눈이 날카로워졌다.



"뭐야?"

"진짜야?"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엘사의 몸을 훑는 안나의 시선에 엘사는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무언의 대답에 안나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오리온. 걔랑, 그 놈팽이랑 사귀냐고."

"… 갑자기 나타나서 시비 거는 거야?"

"대답해, 사귀냐고!"

"…너 한가해? 아니면 정신 나갔어? 태양 마차도 이상하게 몰고, 쓸데없는 데에 관심가지지 말고 태양이나 제때 움직이기나 해."



엘사가 싸늘하게 몰아붙였다.



"자매잖아. 그 정도는 물어볼 수 있어."

"억지 부리지 마. 언제부터 우리가 그 정도로 가까웠어?"



비웃음에 가까운 말에 안나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분명 엘사와 안나, 둘 다 서로만을 바라보았던 때를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다정한 말을 건넨 것이 언제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언젠가부터 엘사는 안나를 무시했다. 안나가 자신을 붙잡기라도 하면 더러운 것을 피하듯이 몸을 움츠리곤 했다. 그래서 안나는 엘사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사소한 틈이라도 보이면 안나는 엘사를 물어뜯었고 그제야 엘사는 안나에게 자신의 감정의 조각을 조금이라도 내보였다. 그 따가운 감정조차 안나에게는 달콤할 만큼, 안나는 엘사의 관심을 원했다.


그렇기에 엘사는 변명이라 할지 모르지만 우리 사이에 오간 날선 말들은 적어도 안나가 엘사에게 쏟아낸 적의 어린 말들은 모두… 투정이었다. 날 봐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답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언니."

"…"

"동생한테, 그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잖아."



엘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엘사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불편한 듯 물속에 몸을 담근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엘사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로 뺨을 톡톡 두드렸다.



"그래, 어쩌면. …그 정도 이야기는 나눌 수 있지."



엘사는 지쳐 보였다. 안나를 상대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처럼. 엘사의 몸이 휴식을 원하는 것처럼 등받이가 되어주는 돌에 나른하게 기대졌지만 엘사는 그 어느 때보다 틈이 없었다. 완벽하게 엘사는 안나를 차단하고 있었다.



"근데, 내가 하고 싶지 않아. 할 말이 끝났으면 가줘."



통보에 가까운 축객령에 안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분노해서 소리를 치거나 씩씩거리면서 휑하니 가버릴 터였다. 하지만 안나는 미동조차하지 않았다. 그저 가라앉은 숨을 내쉬며 우뚝 선 안나의 모습은 엘사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고요 속에서 엘사는 입술을 짖이겼다.


엘사의 인내심이 점차 닳고 있었다. 이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다. 안나의 앞에서 나신으로 있는 이 상황이 불편했고 자신을 추궁하고 책망하는 듯한 녹색의 눈동자는 엘사의 안에 계속해서 파장을 일으켰다.



왜, 그런 눈을 하고 있지?

어째서, 오리온에 대해서 그렇게 반응하는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마치


마치 나를 사랑하기라도 하는 양.



덧없는 희망-혹은 절망을 짓이기며 엘사는 이성의 활시위를 쥐었다.



"아니면 님프들 대신 내 목욕 시중이라도 들테니?"



비꼬는 말에 안나가 몸을 움찔했다. 드디어 가려나, 엘사가 한숨을 삼키며 눈을 내리깔았다. 안나의 높디높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으니 씩씩거리며 가버리리라 엘사는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그래."

"…?"

"오랜만에 다정하게 목욕도 하고 좋네."



드물게 얼이 빠져서 고개를 든 엘사를 맞이한 건 사나운 미소를 띠고 있는 안나였다. 뭐...? 입을 벙긋이며 귀를 의심하는 엘사에게 안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대답했다.



"내가 친히 언니 목욕 시중을 들어주겠다고."


















기존에 연재했던 0~1.5화랑 5화가 삭제된걸 확인했어ㅠㅠ

처음에는 그냥 지워진 부분만 업로드하려고 했는데, 이미 한번 재업로드했던 내용이기도하고... 연재할때 감정선을 중간에 놓친거 같아서 리메이크하고 있었거든. 리메이크본을 재업로드하게 될텐데... 그럼 너무 여러번 글을 올리는 것같아서 그냥 리메이크하고 있던 글을 업로드하기로 했어.



원래는 리메이크를 완결까지 쓰고서 업로드하기 시작하려 했는데... 삭제된김에 삭제된 5화 분량까지는 업로드할게...ㅠㅠㅠ



ps. 오늘 새벽에 업로드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또 삭제되어 있어서 재업로드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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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606 아 미친 6월 첫글을 잊다니 ㅇㅇ(110.47) 06.01 18 0
1123605 6월첫글 차지해 ㅇㅇ(223.38) 06.01 17 0
1123604 이러다 뽀뽀할거같음 [5] ㅇㅇ(110.47) 05.31 71 11
1123603 정신 차리니까 벌써 금요일 ㅇㅇ(223.38) 05.31 16 0
1123602 엘산나갤입니다 ㅇㅇ(223.38) 05.31 17 0
1123601 맛점해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1 26 0
1123600 내 5월 어디감 [1] ㅇㅇ(106.101) 05.31 20 0
1123599 하 혐퀘 [1] ㅇㅇ(211.234) 05.31 21 0
1123598 5월도 안녕 ㅇㅇ(223.38) 05.31 20 0
1123597 5월 마지막의 첫글이노라 ㅇㅇ(110.47) 05.31 18 0
1123596 능력 혐오하는데 능력 없는건 싫은 엘사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70 5
1123595 아 맞다 쥬미들아 인스타펌글 올릴 때 조심해 [1] ㅇㅇ(110.47) 05.30 69 3
1123594 누가 이거 1이 안나고 2가 엘사랬는데 [2] ㅇㅇ(110.47) 05.30 58 0
1123593 설갤만큼 엘산나에 진심인 커뮤가 있냐 [1] ㅇㅇ(223.38) 05.30 40 0
1123592 모든 삶이 엘산나야 ㅇㅇ(223.38) 05.30 30 0
1123591 우중충한 날엔 빠와가 있는 노래를 들어야 해 [3]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41 0
1123590 설갤 덕분에 글도 써보고 [1] ㅇㅇ(223.38) 05.30 32 0
1123589 크으 이틀만 견뎌 ㅇㅇ(223.38) 05.30 20 0
1123588 그래서 대체 왜 목요일에는 다들 없는거임??? [2] ㅇㅇ(112.157) 05.30 38 0
1123587 핵정전의 목요일 ㅇㅇ(112.157) 05.30 20 0
1123586 설하 [1] ㅇㅇ(106.101) 05.30 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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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580 코피 철철철 ㅇㅇ(110.47) 05.29 22 0
1123579 저 밑에 새의상 [1] ㅇㅇ(223.38) 05.29 34 0
1123578 후 빡센 오늘이었따 [1] ㅇㅇ(223.38) 05.29 28 0
1123577 엘사가 사라지는 꿈꾸는 안나 [2] ㅇㅇ(223.38) 05.29 46 0
1123576 설하 [1] ㅇㅇ(115.138) 05.29 18 0
1123575 오늘 유익한 악몽을 꿈 [2] ㅇㅇ(211.234) 05.29 3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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