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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사랑학개론 (친구학개론 그 이후)

픽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02 21: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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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욕설 주의}


2013년 겨울, 방학식


여느 수능 끝난 고3들이 그렇듯이 설국고등학교에도 무단 결석생들이 거의 절반이나 되었다. 이제 학생으로서 본분은 다했으니 놀아도 되죠? 라는 암시인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학생들도 거의 다 머리 색깔이 제각각이다. 선생들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특히 안나와 엘사의 반 선생은 "민지랑 민수는 당연히 안 왔을 거고.." 라는 말로 출석을 대신한다. 자기들 말로는 미용학과에 갈 것이라는데, 아마도 이름 모를 대학교이거나 변명일 것이다.


안나는 다행히 인서울 하위권에 진입하게 되었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엘사랑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남자애들은 다섯 명 빼고 모두 결석이거나 조퇴하고, 엘사와 안나를 비롯한 여자아이들은 패딩과 머리색을 무지개색으로 입은 채 등교를 한다. 안나는 머리 색을 연갈색으로 바꿨는데 엘사는 아직 검은색으로 그대로다. 


"넌 염색 안 해?"


안나가 빤히 엘사를 바라보다 물었다. 쿠키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엘사가 바라본다. 


"생각 없는디? 내가 뭐 쟤들처럼 양아치도 아니고."


말하는 것만 보면 영락없는 양아치인 엘사는 뒤편에서 자기들끼리 무리 지은 노란 머리 초록 머리 남자애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기들끼리 게임을 하며, 수다를 떨며 욕설과 유머를 내뱉는다. 야 뭐하냐 병신아. 아 씨발 조졌네. 아는 형이 술 사준다는데 가실 분? 안 가 병신아. 아직 2014년 아니거든. 응 니 와꾸. 롤도 못하는 새끼가.


그러다가 둘을 바라보며 왜? 하며 묻는다.


"그냥 너희 머리색이 신기해서." 안나가 말한다.


"그래? 그럼 됐고. 스마트폰 산 거 축하한다."


빠가야 쟤 수능 끝나고 한 달 전에 샀는데 모르냐? 정신을 게임에 판 새끼. 꺼져 씨발아. 또 중얼거린다.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신경도 안 쓰는데 안나에게 말한다. 그래도 저 아이들은 나쁘진 않다. 그냥 3년간 양아치였을 뿐이지 애들 괴롭히고 문신 새기고 노스페이스 찢는 일진은 아니다.


"내 얘기 듣고 있어?"


"어?"


"울 애기 또 멍 때리는구나? 아구 귀여웡."


"야."


안나가 장난스레 바라본다. 엘사가 커밍아웃(?)을 한 뒤 아이들의 반응이 걱정스러웠지만, 고3인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문제삼지 않고 둘이 설레는 것을 보면 "뚜루뚜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끝냈다. 다행이다.


"성혜야 책상 좀 빌려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빨간 머리 성혜에게 엘사가 말한다. 성혜는 순순히 책상을 빌리곤 다른 애 옆에 가서 앉는다. 엘사는 엑소 로고와 엑소 사진이 붙여진 성혜의 책상과 또 다른 빈 책상을 가져와 붙인다.


"화장 시켜 줄까?"


"화장?"


"20살이니까 과감히 해야지"


그러고는 과일 핸드크림과 티엔 수분크림, 립스틱, 립글로즈, 비비크림과 로션을 꺼내 메이크업을 한다. 주변 아이들이 신경쓰지 않는 상태에서 메이크업이 시작된다. 안나는 눈을 감고 엘사가 자신의 얼굴에 비비를 발라주고 립스틱을 발라주는 느낌을 즐긴다. 마치 천사가 내 얼굴에 키스하는 느낌이다. 이상하게 과일 향기가 풍겨온다. 어쨌든 좋다. 머리를 정리해 주는 느낌이 들 땐 심장이 쿵쾅대기도 한다.


"다 됐습니다."


엘사가 손거울로 안나의 모습을 비춘다. 제법 예쁘다. 역시 엘사는 못하는 게 없다.


"고마워."


안나가 엘사의 볼에 심장이 백 번 쿵쾅이는 것을 느끼며 뽀뽀를 한다. 엘사가 뒤이어 안나를 아궁 우리 강아지. 라며 심하게 안는다. 사진도 찍고 보정을 떡칠한다. 아마 이게 엘사의 새로운 카톡 프사가 될 것이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


2014년 1월, 겨울방학


안나는 겨울방학 동안 집 근처 롯데리아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다. 이제 스무 살이니 돈은 내가 벌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엘사는 혹시나 사장이 쓰레기거나 누가 괴롭히면 자기한테 이르라고 똑똑히 말했다.


'걔도 참 주책이야.'


롯데리아에서 주문을 받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손님이 햄버거를 시키면 선배들이 미리 햄버거를 만들어놓고 주문에 맞춰 내는 식이다. 선배들은 스무살이 일을 꽤 잘한다며 칭찬했다.


어느 날, 엘사가 점심 식사와 동시에 감시를 하러 왔다.


"여기엔 왜 왔어."


"누가 너 괴롭히나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아이고."


그러고는 새우 버거 세트 하나와 치즈스틱과 양념감자를 주문한다. 엘사가 양파맛을 좋아했던 걸 안나가 떠올린다


"선배님."


"무슨 일이야?"


"죄송한데, 새우 버거 패티는 바삭한 걸로. 치즈스틱은 따뜻한 걸로, 양념감자는 양파맛으로 해주실 수 있나요?"


"알았어요. 후배님"


다정한 선배는 요청을 받아들인다. 마침내 엘사를 위한 새우 버거 세트가 나왔다.


진동벨이  울리자 엘사는 안나와 가까운 거리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이상하게 새우버거가 원래 것보다 맛있는 것 같다. 치즈스틱도 왜 이리 쭉쭉 늘어나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안나가? 안나가 미소를 지은다.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 당장이라도 끌어내고 싶다.


"유니폼 잘 어울린다."


안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다. 참 바보 같다고 엘사는 생각한다. 


---


그 즈음 대한민국에는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어떤 듣보잡 왕국의 여왕이 미쳐서 자기 나라를 얼려버린 뒤, 생쇼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여동생 때문에 통수남에게서 목숨을 구한다는 영화이다. 그 여왕이 대한민국에 특히 열풍을 일으켜 노래가 아주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여동생은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컸다.


안나는 엘사와 함께 그 영화를 보았는데. 안나는 여왕보단 공주가 더 좋았고 여왕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니가 한 걸 동생이 다 수습하네. 안나의 생각은 그랬다. 그러나 엘사는 달랐다. 그 여왕에 제대로 미친 엘사는 그 여왕을 따라 금발을 하고, 그 여왕의 노래를 매일 따라 불렀다. 그 여왕을 따라 머리도 땋았다.


"넌 그 여왕이 그렇게 좋냐?"


"응 난 오히려 그 빨간 머리 걔가 잘 이해가 안 되던데? 그래도 너 닮아서 좋긴 해."


나 닮았다고? 거울을 보니 실제로 닮은 것도 같다.


생각해 보니 우리 술을 한 번도 못 먹어 봤네.


---


2014년 2월, 졸업식


실로 오랜만에 모든 학생이 학교에 왔다. 당연하다. 졸업식이니까. 지긋지긋한 학생 신분을 벗어 던지는데 와 줘야지.


"졸업 앨범 가져가."


반장이 졸업 앨범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가져가란다. 졸업 앨범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진다. 아이들은 자신의 사진을 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씨발 씨발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아 씹 와꾸 망가졌잖아!"


"이 새끼 봐 좆나 못생겼어."


안나와 엘사도 자신의 사진을 확인해 본다. 엘사가 안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너 왜 이렇게 지나치게 바르게 찍었냐."


안나가 엘사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한다.


"앞머리 뽕 봐. 하늘 날아다니겠다."


안나의 사진은 그냥 경건하게 서 있는 사진이고. 엘사의 사진은 귀요미 코스프레 한답시고 머리 위에 일을 그린 사진이다.


"너 진짜 귀엽다. 대학 가면 나 없이 어떻게 살래?"


엘사의 말에 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니 얘가 또 왜 이래. 엘사가 놀라며 말한다. 그래도 우리 카톡하면서 볼 수 있잖아. 페북도 있고. 너도 이제 스마트폰 있잖아. 울지 마.


"난 니가 하루라도 없으면 미칠 것 같은데."


안나의 마음은 그랬다. 그녀의 중고등학교 생활은 돌아보면 거의 엘사였으니 대학 가면 생각나 미칠 것 같다.


"히잉..."


-----


빛나는 졸업장을 따신 언니께. 노래가 흘러나오며 졸업식이 시작된다. 교장이 나타나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며... 성년이 될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등의 흔한 레파토리를 말한다. 뒤이어 015B의 이제 안녕이 흘러나온다. 엘사는 그 노래에 눈물이 흐른다. 썅 내가 왜 이래. 생각하면서 안나를 생각하니 자신도 눈물이 나온다.


-----


밖에는 2월의 늦은 눈이 내리고 있다. 사진이라도 찍어야 한다.


"성혜야 폰 좀 빌려 줘."


성혜는 엘사에게 제일 많이 물건을 빌려주고 있다. 저 둘은 자기들끼리 쓰면 되지 왜 내게만 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일도 아니다. 성혜는 아직도 엘사가 안나의 몫까지 졸업 여행 경비를 내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졸업 여행 때 둘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모태솔로는 외롭기만 하다.


'너희가 좆나게 부럽다.'


성혜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은다. 자신이 엑소를 좋아하는 것처럼, 저들도 그저 좋아할 뿐인 것이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눈 감지 말고. 하나 둘 셋"


엘사가 안나에게 안긴 사진이 성혜의 폰에 찰칵 하고 찍힌다. 이제 이 학교도 졸업이다. 그들의 추억도, 여기에 남겨둔 채.


-----


그날, 그들은 처음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안나는 술에 세지만, 엘사는 주량이 약해 두 잔만 마시고도 쉽게 취했다. 소주였음에도. 안나는 엘사를 집에 데려다주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엘사와 나.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서.












2010년 봄, 중학교 3학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딱 맞다. 중3 들어 아이들이 자꾸만 안나를 피하고, 조를 짤 때도 탐탁치 않아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쟤네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를 피해 다니지? 잔인한 봄이다.


그때, 아이들이 화장실에 들어가며 안나를 흉보는 말을 다 듣고 말았다. 야 걔 데리고 다니는 것도 지쳤어. 걔 주근깨 꼴보기 싫지 않냐? 암튼 존나 싫어. 왕따인 걸 알기나 하겠냐? 집도 졸라 가난하대. 그지년.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안나는 구석에서 눈물만, 눈물만 훔치고 있다. 나도 나일 뿐인데, 왜?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미 그 아이들은 가고 없다.


갑자기 귀찮게만 여겼던 엘사가 보고 싶어진다. 2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가 달라졌는데, 그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모르고 있었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엘사가 정말 그립다...


그때였다.


"어? 안나? 왜 여기서 울고 있어? 점심 시간 다 끝났어."


"저리 가.."


"오늘 수요일이라 급식 엄청 맛있는데. 안 그럼 내가 다 먹어야겠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 몰라.


"잠깐만!"


안나가 말한다. "같이 가서 먹어주면 안 돼?"


엘사가 그러지 뭐. 하며 허락한다. 근데 넌 우는 것도 왜 이리 귀엽냐. 엘사가 말한다.


이만큼의 편함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


-----


엘사랑 안나는 지금쯤 잘 살고 있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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