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떠야 하는데 꾸물거리긴. 다른 마법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앉아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성녀는 안나랑 같이 붙어있는 엘사에게 투덜거리려다 저를 스윽 쳐다보는 눈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홱 돌려.

쬐그만게 불쌍한 얼굴을 하고있어서 양심이 찔렸나봐. 원래 창조주 옆에 있어야 할 눈사람은 성녀 옆에 있었어. 창조주가 보기싫대서 성녀 옆으로 피신 온거였지. 갈곳잃은 눈사람은 성녀 다리 옆에 폭 앉았어.

안나는 슬퍼보이는 엘사를 꾸중도 못하고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 엘사는 죽일 의도도 없었는데 죽여버려서 심란해. 원래 누가죽든 상관없긴 했었는데 안나가 제 세상에 등장한 뒤로는 전직마왕은 바뀌었어.

중심이 안나가 된 이상 누굴 죽이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안나에게 버림받는다. 였어. 안나와 약속하고 착하게 있으면 되겠지. 했는데 왜 방해하는 요소가 자꾸만 생겨나는건지. 엘사는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가기 시작해.

"...이것 때문이야."

엘사는 양손을 펴보며 말했어. 처음부터 마법같은것 없었더라면 산속에서 혼자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안나를 만나더라도 안나 옆에서 얌전하게 있다가 남쪽 바다로 가면 됐을텐데. 엘사는 주먹을 내리쳐 자신의 다리를 때렸어.

안나는 엘사의 손을 잡아줬어. 안놔는 차가움이 무서워 주머니 속에서 나오지 않아서 달래줄건 안나 뿐이야. 그렇지 않아도 안나는 엘사의 손을 잡아주려 손을 뻗었어. 엘사가 빼지만 않았어도 잡았을거야.

"엘사."
"만지지...마. 안나...위험해."
"안 다쳐. 괜찮아."

엘사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뭘까? 진심으로 죽여놓고 후에 돌아올 비난을 걱정하는건지 자꾸 눈도 못 마주치고 우물쭈물. 겨우 손은 잡긴 했는데 안나의 손을 전체적으로 감싸진 못했어. 무엇이 엘사를 이렇게 주눅들게 만든건지. 안나는 생각했어.

"안나. 나 일부러 그런게 아니야. 근데 갑자기..."
"난 엘사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나 봐봐."

엘사는 안나의 재촉에 흘끗 거리다가 안나의 눈을 봤어. 언제나 안나는 진심이야. 그건 엘사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어. 안나가 제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거란 것도. 사실 믿고 싶을지도 몰라. 안나 만큼은 제게 거짓말 하지 않는다며. 엘사는 안나에게 물었어.

"안나. 내가 안 싫어? 안나는 내 마법이 무섭지 않아?"
"무서워. 엘사의 마법. 엄청나잖아."
"근데 왜 손 잡고있어?"
"엘사의 손이니까."

엘사 손이니까 잡고있지. 안나는 순진하게 히히 웃었어. 엘사는 그 웃음에 기분이 나아지기라도 한건지 손가락을 구부려 손을 잡았어. 기분은 좋아졌어도 눈사람이 좋아진건 아닌지 눈사람을 부르진 않아. 성녀 옆 눈사람은 축 처졌어. 성녀는 혀를 차.

"너도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눈덩어리"

창조주는 눈사람을 더는 원하지 않았어. 예쁜 마법조차도. 엘사에겐 안나가 더 중요하니까. 눈사람은 창조주의 행복을 바랐지만 창조주가 저에게 신경쓰지 않으면 슬퍼. 더군다나 마력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면 세월이 오래돼 먼지가 쌓이거나 녹슬듯이 감각도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할거야.

마력을 조절할 수 있는 감각이 굳어가면 마력을 발산하지 못하거나 뜻대로 조종할 수 없게돼. 엘사가 손을 잡고있는 이 순간에도 거대한 차가운 마력은 공기중에서 부유하고 있었어. 관심이 사라졌으니 자유가 된 차가운 마력들을 제어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주변에 없는 이상은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거야.

자유가 됐다고 마력이 자아를 가지는건 아니야. 공중에 부유한 마력은 후에 화약이 불꽃에 받아 터지듯 마력을 모아 발산할때 공명하며 강력한 힘을 낼거야. 눈사람은 성녀에게도 안보이는 엘사의 주변 푸른색 차가움이 보일거야. 그것이 조금씩 엘사의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안나에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