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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Say You Love Me 01

험버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3 0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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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s://bgmstore.net/view/5bb0d0b2352039d227075b77/Hope%20-%20Love%20Love%20Love%20(Feat.%20Jason%20Mraz)



15살이었던 안나 머피는 다니엘 웨스터가드를 인생의 첫 남자친구로 삼았다. 안나보다 두 학년 위였던 그는 밤송이 같이 짧게 깎은 머리가 퍽 잘 어울리던 남자였다. 누군가 매너가 사람으로 태어난 모습을 상상해보라 한다면, 안나는 오늘날까지도 다니엘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다니엘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갈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달려가 문을 열고 안나를 기다려주는 류의 남자였고, 외모 또한 행동 못지않게 매너 넘쳤다. 그 잘생긴 얼굴로 굽실거리며 안나 앞에 열린 문을 대령해 줄 때마다 주변에 있던 여학생들의 표정이 질투로 어찌나 일그러지던지, 안나는 저를 잔뜩 째리는 그 눈빛들이 섬뜩하면서도 짜릿했다. 아, 내가 이 학교에서 제일가는 미남 다니엘 웨스터가드와 사귀고 있구나!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우쭐하게 솟은 안나의 어깨는 도통 내려앉을 줄을 몰랐다. 하지만 안나는 그에게 각별한 애정이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까, 안나가 당시 즐겨 보던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나오던, ‘당신을 당장 끌어안지 않으면 목이 타 죽어버릴 것 같아요!’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함께 있을 때야 즐거웠지만 떨어져있을 땐 딱히 생각나지도 않았다. 안나는 그저 대접 받는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사랑이 없는데, 계속 사귀어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안나는 두 달의 만남을 끝으로 첫 연애를 마쳤다.


안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는 것 뿐 일거라고 생각했다.


16살 땐 같은 학년의 에릭 로저스가 있었다. 수영과 서핑을 즐기던 그 검은 머리 남학생은,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치명적인 보조개로 안나의 눈길을 끌었다. 에릭이 수영 수업 중 물에 빠진 안나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시작된 연애는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사귀기 시작한 후에야 들은 소문에 의하면 에릭은 오래전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정체 모를 붉은 머리의 소녀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붉은 머리의 여자만 골라서 사귀곤 했다는 것이다. 어쩐지 머리색이 더 붉었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헛소리를 중얼거리더라. 안나는 대체제가 됐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그 정체 모를 소녀를 향한 에릭의 일편단심 사랑이 뭉클하기도 했다. 그래,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지. 나도 언젠가는 나만을 가슴에 품어줄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안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같은 해, 크리스토프 비요르먼이 있었다. 그는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입을 열 때마다 주변 사람 모두를 배꼽 잡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하키로 다져진 크리스토프의 팔뚝은 과장을 조금 보태 거의 안나의 허리통만 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그 굵은 팔로 자신을 번쩍 안아 올려 빙빙 돌려주는 게 참 좋았다. 그런 상황은 그야말로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에게도 사랑을 느끼진 못했다. 크리스토프는 개썰매를 즐겨 타곤 했고, 여러 마리의 썰매 개를 기르고 있었다. 그가 개를 좋아하는 거야 말 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스벤이라는 이름의 개에 대한 애정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날 정도였다. 크리스토프는 어디든 스벤과 함께 다녔고, 데이트 중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벤을 등에 업고 있는 크리스토프와 함께 할 때면, 안나는 저가 둘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여긴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안나는 스벤이 먹다 남긴 통조림 햄을 아무 거리낌 없이 퍼먹던 크리스토프를 보고 헛구역질을 하며 이별을 결심했다. 스벤의 침으로 범벅된 뭉개진 햄의 잔해들.. 덕분에 안나는 아직까지도 통조림 햄을 먹지 못한다. 그래.. 저것도 사랑이지...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헤어졌지만 그의 이상성애에 가까운 애정 자체는 그다지 역겹게 느껴지진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딱 한 번, 18살의 안나에게 미약하게나마 그런 ‘느낌’을 준 사람이 있긴 했다.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를 가졌던 존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평소엔 밝은 금빛의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 다녔는데, 한 번씩 머리를 풀고 손가락으로 빗어 내릴 때면 새콤한 샴푸향이 풍겼다. 안나는 존에게 두 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존이 머리를 정돈할 때마다 여동생과 같은 샴푸를 공유하고 있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가 머리를 풀 때 한껏 숨을 들이키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조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안나는 존의 샴푸향이 좋았다. 새콤달달한 시트러스 향은 존을 어쩐지 섬세하고 자상해보이게 만들었다. 사실은 꽤나 거칠고 지저분한 남자였음에도 말이다. 그 냄새에 흠뻑 중독된 나머지 몇 번 더 만나면 사랑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네 번째 데이트를 하던 도중, 존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고 말았다. 안나는 면도가 덜 되어 지저분하게 솟은 수염 사이에서 발갛게 익은 뾰루지를 발견했고, 순간 그 ‘느낌’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존은 친구로 지내자는 안나의 말에 울음을 터트렸다. 안나는 그의 눈물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랑이 어쩌고 말하며 붙잡는 존의 모습을 보니 소름까지 돋을 정도였다. 아니, 얘는 대체 왜 날 사랑한다니? 안나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 해올 때마다 당황해했다. 자신은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데 상대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 보면 보통 두 사람이 동시에 반하던데..? 얘 혼자 말하는 게 사랑 맞아? 거짓말 아닌가? 이미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불가항력이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종종 어리석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학습했음에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감정의 격렬함이 자신을 향할 때면 어쩐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현실과 허구 사이의 감정을 딱 잘라 정리하는 건, 그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안나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설프게 배워 뒤죽박죽 섞여버린 판타지와 현실의 감정들이 안나의 도약을 도리어 방해하곤 했던 것이다.


이상이 안나가 그나마 남자친구라고 부르며 데리고 다녔던 이들의 축약된 목록이다. 데이트만 두어 번 하고만 잔챙이들은 이름도 제대로 기억 할 수 없을 정도로 수가 많았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사랑을 찾아 헤맸는데도 죄다 꽝, 꽝, 꽝! 지칠 대로 지쳐 이제 그만 포기할까 싶다가도 외로운 제 몸을 위로해주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자니 왠지 모를 처량함이 느껴져 눈물이 핑 돌곤 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너를 혹사 시켜서 미안해! 금방 해방시켜 줄게! 안나는 틈날 때 마다 오른 손을 토닥이며 달래줘야 했다. 안나는 사랑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보면 어린 여자다운 발랄한 소망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테지만, 안나가 사랑을 원하는 이유는 대체로 다리 사이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랑을 해야 섹스를 할 것 아니냐고! 11살 때부터 시작된 성에 대한 집착 탓에 온갖 종류의 포르노와 자위 방법을 수집해온 안나였지만, 섹스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걸 원한다고 해도, 아무하고나 일을 치를 수는 없었다. 덕분에 아직까지 순결을 지키게 되었단 이야기다. 안나는 애가 탔다. 이 나이 먹도록 섹스 한 번 못해봤다는 게 수치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사랑에 빠져 왕성한 성 생활을 즐기는 걸 보고 들을 때마다 안나는 어처구니없을 만치 서글퍼했다. 저렇게들 잘도 사랑에 빠지는데, 왜 나는 그런 감정이 안 생기는 거냐고?! 영화 같은 거 보면 한 눈에 잘도 반하더만! 안나는 허한 제 가슴 속을 꽉꽉 채워줄 사랑이 간절했다. 내 사랑과 정신없이 껴안고, 키스하고, 온몸이 땀으로 젖을 때까지 알몸으로 뒹굴고 싶어.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차고 경험이 늘면 자연스럽게 사랑을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안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알기엔 너무 어리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안나가 만나온 남자들은 멋지고 유쾌했다.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같이 평균 이상은 됐다.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시간가는 줄을 몰랐지만, 그뿐이었다. 그런 기분은 키스나 섹스와는 영 관련이 없었고, 사랑을 떠나 한 점의 섹시함조차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데이트중이라는 걸 굳이 의식하지만 않으면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안나는 헤어진 남자들과 대부분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친구만큼은 차고 넘치게 됐지만, 이게 대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누구를 만나든 미동 없는 제 감정 탓에 안나는 때때로 사랑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해리포터의 마법이나 반지의 제왕의 멋진 엘프처럼, 사랑 이야기도 다 허구인 게 아닐까?


그리고 21살의 안나는, 엘사 도즈라는 여자를 만났다.




*


안나는 요즘 아무 생각 없이 신청했던 교양 과목에 푹 빠져있었다. 생활과 원예? 뭐 이딴 걸 듣고 싶어 하는 거야? 라푼젤의 권유에 그렇게 말하며 성을 냈던 안나였지만, 지금 와서는 덕분에 좋은 선택을 했다며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나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식물엔 영 관심이 없었다. 나무나 풀은 그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의 일부였고, 단 한 번도 예쁘거나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풍경으로 인식된 건 양반이었다. 안나는 꽃은 거의 혐오하다시피 했다. 그동안 수 없이 받아온, 처치 곤란한 꽃다발들을 떠올릴 때 마다 안나는 열이 올랐다. 그야 보기만 할 땐 예쁘지. 근데 만나자마자 불쑥 내밀면, 나는 온종일 그 부스럭거리는 꽃다발을 들고 다녀야 한 단 말이야! 집에 가져와서는 또 어떤데? 벌레 꼬이지, 꽃잎 흘려서 난리를 쳐놓지, 또 꽃병은 툭하면 손에 걸려 넘어져서 물바다를 만들잖아! 양심상 차마 버리진 못하겠고, 안나는 받아 온 꽃을 꽃병에 꽂아놓은 채 빨리 죽어서 사라지라며 기도를 올리곤 했다. 그랬던 안나가 이젠 꽃의 예찬자가 되고 말았다. 과제를 준비하던 중 훑어보던 꽃말의 목록은 안나의 가슴을 낭만적인 기분으로 부풀게 했다.


아, 세상에. 꽃 하나하나에 이렇게 멋진 말들이 붙여져 있었단 말이야? 백합, 장미, 수선화.. 하나하나 읽어나갈 때 마다 안나는 지난 날 죽여 온 꽃다발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로 장미 다발을 받아오긴 했지만 그 밖의 꽃들의 꽃말을 하나하나 기억해보자니 끔찍했던 데이트마저 어쩐지 로맨틱한 추억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꽃다발을 건네준 이들이 그 꽃의 꽃말을 알고나 고른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앞으로 있을 데이트에선 안나는 그러한 선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될 거고, 곧 안나의 사랑 경험에 도움이 되리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집 근처엔 안나의 오빠인 한스가 즐겨가는 꽃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안나는 평소 그 꽃집의 간판을 소리 내어 읽으며 코웃음을 치곤했다. ‘꽃’ 이라니? 정말 그게 최선이었나요? 안나가 알기로는 그 거리에만 적어도 네 곳의 꽃 가게가 영업 중이었고, 그 화려한 간판들 사이에서 전혀 돋보이려는 의지가 없는 무성의한 이름으로 영업 중인 한스의 단골집은 어쩐지 주인의 생계를 걱정하게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자 하니, 가게 앞을 지나 갈 때마다 손님이 끊이지 않고 들락거리는 게 아닌가. 한스가 이따금씩 집에 들고 오던 꽃다발에서도 특별난 점을 찾지 못한 안나는 그에게 무슨 이유로 그 집에만 가는 건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거기 주인이 무지하게 예뻐!’


아.. 안나는 그 가게에서 산 꽃을 받을 여자들을 위해 잠시 고개를 숙여줬다. 한스의 말을 들어보자니, 가게의 주인은 젊고 늘씬한 끝내주는 미인에다가, 자기가 예쁜 걸 어찌나 잘 아는지 귀찮게 들러붙는 남자들을 오히려 장사에 이용해 먹는 다는 것이었다. (한스는 그 부분을 말하면서 자랑스럽게 엄지를 치켜 올려 자신을 가리켰다.) 한스는 이미 열 댓 번은 들이댔지만 단 한 번의 만남도 약속 받지 못했다며 투덜거렸다. 언제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유지해 여지를 남겨둔다며, 아주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얘기를 덧붙이곤 히죽거리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안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안나가 그 ‘꽃‘에 쳐들어 간 건 정말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특별히 계획된 것도 아니요, 달리 필요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꽃이 좋아졌고, 길을 걷는 중에 꽃 가게들이 보였고, 순간 오빠가 한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에. 그렇게 많고 많은 꽃 가게 중에 안나는 ‘꽃’을 골라 들어갔다. 딱히 생각나는 꽃은 없었지만 혹시 ‘처녀의 꿈’ 같은 꽃이 있다면 한 다발 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알아? 정성껏 보살펴서 이번 계절 지날 때까지 살려둔다면 정말로 꿈이 이루어질지?


헉.


예뻐 봤자 얼마나 예쁘겠어. 한스가 꽃 집 주인의 미모를 칭송할 때 마다 안나는 그리 생각해 왔다. 근데 이건, 헉. 안나는 꽃다발을 포장 중인 여자의 얼굴에 코가 없었어도 그리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여자는 빌어먹으리만치 예뻤다. 하얗게 보인다 싶기까지 한 옅은 금발에 그에 어울리는 백옥 같은 피부, 손님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포장에 집중하느라 살짝 찡그려진 미간과 앙다문 입술. 안나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완벽한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놀라움 때문인지 뭔지 안나는 가슴 속이 작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꽃 있으세요?”


아, 뭐지..? 환하게 웃으며 저를 맞이하는 여자의 얼굴을 보자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이 피어났다. 뛰는 소리가 귀에서도 울릴 정도로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뭐지? 대체 뭐지..?


“아, 저.. 아, 그냥 좀 보려고요 꽃이 많네요.”

“건너편 빵집에도 빵이 많더라고요. 정말 신기하게.”


여자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안나는 얼굴을 붉히며 따라 웃었다.


“저ㅡ 혹시 사랑의 성공 같은 꽃말의 꽃 있나요?


여자는 왜인지 카운터 안쪽으로 눈을 굴리며 다소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음.. 안개꽃 같은 건- 남자친구한테 주려고요?”


“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안나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급히 말했다. 여자는 그런 안나를 보곤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곧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안나는 어깨를 늘어뜨리곤 중얼거렸다.


“아니, 아니에요. 바보 같기는.. ”

“뭐가요?”

“줄 사람도 없는데 꽃 사는 거요. 바보 같지 않아요?”

“그걸 바보 같다고 하면 저는 꽃 장사랑 안 맞는 사람이겠죠?”


여자가 포장해 둔 꽃을 정리하며 키득거렸다. 그리곤 카운터 밖으로 나와 안나와 마주섰다. 초록 색 앞치마, 자신 보다 약간 큰 키. 안나는 여자를 살피며 침을 꼴깍였다. 예뻐. 너무 예뻐. 안나의 달아오르는 자신의 얼굴과 심장을 느끼며 로맨스 영화 주인공들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보통 이렇게 시작하지 않나? 이거 설마..


“사실, 손님은 꽃을 주는 것 보다는-”

여자는 안나의 옆으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땐, 손에는 빨간 튤립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받는 게 어울려 보여요.”


안나는 제 앞에 바쳐진 새빨간 튤립을 내려다보다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반쯤 감으며 황홀한 한숨을 내쉬었다. 빨간 튤립. 사랑의 고백. 고작 과제로 몇 가지 꽃말을 정리해 본 게 다인 안나도 아는 걸 꽃집 주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건 의도된 고백이었다. 사랑의 시작이었다. 이건 틀림없는 사랑이다! 첫눈에 반하는 영화다! 안나는 뻣뻣하게 굳어가는 목을 흔들며 여자가 건네주는 꽃을 힘겹게 받아 들었다. 그리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혹시.. 밖에서 만날 수 있어요?”


안나는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만난 지 10분도 안됐는데 이래도 되나? 그치만 나한테 꽃을 줬잖아? 그것도 빨간 튤립을? 그런데 아무 의미 없는 거면 어떡하지? 아니야. 이건 사랑이야. 난 사랑에 빠졌어. 지금까지 이런 거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다고. 저 여자도 그럴 거야. 이건 사랑일 수밖에 없어. 봐, 영화랑 똑같잖아? 사랑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었던 거야. 내가 그동안 몰랐었을 뿐이야!

제 손가락을 잡아끄는 무언가 때문에 안나는 눈을 떴다. 여자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었다.


“그래요.”


안나는 흥분해 거의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언제 끝나요?”

“흠...”


출입문 위의 시계를 봤다.



“지금.”


여자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곤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사랑이야!







---

*섹스는 엿 같은게 아니야 리메이크. 근데 몇몇 설정들 빼고 내용은 다를 듯

*나는 꽃이나 꽃가게 잘 모름 대충 넘어가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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