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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Stolen Ice 18 (해커엘사, 사기꾼안나)

설공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18 16:25:38
조회 719 추천 52 댓글 18

링크모음집 (블로그쥬미야 업뎃 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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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8 *: Cut Her Some Slack

~숨통이 트이다~



이제 Natchitoches에서 지낸 지 3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제인에겐…많은 것을 깨우친 기간이었다. 처음에는 부상에 짓눌려 병상에 누워있느라 불편함뿐이었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내리본 지 3일째되던 날부터는(영화들 전부 마음이 이끌리는 것들임을 인정하지만) 몸이 근질거려 밖에 나가 호숫가라도 거닐고 싶었다. A는 필요할 때마다 쇼핑해오고, 집을 청소하고, 침대시트와 커튼과 수건을 갈아주거나 제인의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스노우콘 제빙기를 다루는 특권을 누렸다. 심지어 엄마가 된 것마냥 제인을 보살피는 일까지. A는 쉴 틈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고, 제인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흉내낼 수 없는 A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잠깐 바람 쐬는 정도라면.


그래서 그녀는 나흘 째 되는 날 집에서 나와, 주변을 걸으며 이 곳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녀가 완전히 제 움직임을 되찾고 나면, 하네스 없이도 발코니와 창틀 사이의 작은 틈에 발을 딛고 지붕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A를 데리고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 졸라본다면.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밝은 곳에서는 할 수 없는, 별 구경하기에 멋진 장소가 되어줄 것이다.


제인은 때때로 전원생활을 그리워했다. 1층 현관 베란다의 그네가 가장 맘에 들었다. 새벽이면 태블릿을 두드리고 민트티를 홀짝이며 아침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녀는 안개가 시원한 담요처럼 호수 위에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올랐고 A가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나와 끙끙대며 아침인사를 하며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커피 머그를 붙잡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인 옆에 앉아, 그네를 탄다.


어느 날, 제인은 호숫가를 따라 난 오솔길을 발견했고 하늘을 뒤덮는 상록수와 내자작나무의 숲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높이가 주는 완전무결함을 그리워한 그녀는 잃어버린 윗 공기를 되찾기 위해 나무 위를 올랐다. A와 함께라면 많은 것을 느껴도 완전무결함만큼은 느끼기 어려웠다.


A가 골칫덩이가 될 거라는 제인의 주장은 옳았었다. 그들의 휴가기간동안 (망상에 가깝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는 그 여자애의 보살핌에 빠져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A는 그녀에게 마음으로 보답해주기까지 한다. 그녀가 비틀거릴 때면 A는 곁에 있어주었고, 자신의 기호들을 메모해두고, 원하는 건 전부 들어주었다. 거의 선수를 치듯이 보살펴주고 있었다. 제인은 A가 어찌나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의깊게 파악하여 바로바로 대응하는지, 단절을 위한 단단한 벽을 이렇게 빠르게 허물어버리는지에 놀랐다. A는 제인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할 때도 바로바로 감지해주었는데, 이는 물과 기름과도 같은 그들의 성격에 있어 축복이었다. 그러나 한때는 한결 같았던 외로움이 제인에게 엄습해 올 때면 A가 나타나 광장이나 호숫가에 데려가거나, 구워진 CD를 건내주거나, 낚시를 가르쳐주겠다며 나서곤 했다.


(“너 낚시해?” 제인이 물었었다.

“난 해야할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언제 한번은 일 때문에 낚시를 해야했고, 노련한 야외활동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길 필요가 있었거든.”

“아니 그니까 낚시를 한다고!?”)


제인은 비는 시간동안에는 몰래 한스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 기발한 시발놈을 찾는 국제 레이더망에 잡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그녀의 시스템에 등록될 것이다. 물론, 그녀는 제한된 장비로 운용하고 있었다. 올라프라면 수많은 건수들을 하나하나 면밀하게 걸러내어 쓸모없는 정보는 거르고 유용해보이는 정보들만 모아서 제인에게 보고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올라프는 뉴욕에 저장된 폴더 안에 편안하게 둥지를 틀며 쉬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다할 수확은 없었고, 제인은 전부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A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눈치였고, 제인은 크리스토프나 스벤에게 지킬 의리 따윈 없었다. 하지만 한스가 그녀의 코딩을 안다는 것이 신경쓰였다. 여태까지 그녀의 방식을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는 그녀의 감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현대의 기술산업보다 15년 정도는 앞서고 있었고, 그녀의 기술을 배우고 모방하고 기술을 연마하려면 MIT의 해커 한 팀이 필요할 정도다. 하지만 그 한스가? 와인이나 파워 게임에 집착하는 기생오라비같은 사기꾼이 그걸 해냈다고? 그녀는 그가 자신이 몇 년에 걸쳐 완성한 코드를 무력화시키고 뒷통수를 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더 골치가 아프게 한 것은, 애초에 그녀의 힘이 폭주하게끔 만들었던 겹겹의 코드 아래에 숨겨져 있던 메시지였다.


아이스퀸같은 개소리하네. 이제부턴 널 ‘스파키 Sparky’라고 불러줄게.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그 밖에 또 아는 게 있나? 그는 어떻게 제인의 사진을 구해서 A가 제인의 위조신분증을 만들 수 있도록 한거지? 제인이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과거가 무엇인지, 그녀의 가족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그녀가 그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날 밤 우르술라의 사무실에서 그녀가 운 것은 잃어버린 돈 때문이 아닌, 잃어버린 신원 때문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절제된 애도는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되었다.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다면 되찾았을지도 모르는, 잃어버린 자신과의 단절.


그녀의 머릿속이 더 깊은 생각 속으로 잠겼을 때쯤, 제인은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신체의 재활에 최대한 밀어붙였다. 허리를 곧게 세워 아래로 굽혀 코가 양 무릎 사이에 닿도록 내리는 Port de bras를 반복한다. 갈비와 등뼈가 아직 안된다며 비명을 지르지만 무시한다. 그 편이 잡념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A는 때때로 그녀가 차를 끌고 나가 모험을 떠날 수 있게 해주었다. 제인은 도시 근교 바로 밖에 버려진 들판을 빠르게 찾아내었고, 몸 안에 전기를 분출해내곤 했다. 그녀는 한 밤 중의 수소폭탄과도 같이 의식처럼 춤을 추며 피부에서 번개가 갈지자를 그리며 터져나왔다. 스트레스는 완화되면서도 아프진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만든 장갑은 일상생활 동안 불꽃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막아주었지만, 뉴욕에 돌아가 제대로 된 것 낀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제인은 오늘도 차를 빌렸지만, 이번에는 A가 따라나오지 않았다. 구릿빛 머리의 소녀는 캐리비안에서 반쯤 밖에 하지 못한 선탠을 호숫가서 마저 할거라고 했다.


(“이제 곧 4월인데, 눈깜짝할 사이에 여름이 찾아올거라구. 넌 네 아이스크림케익 같은 하얀 피부로 충분히 아름답지만, 난 올해 해변가에서 희멀건 구름마냥 있는 건 사양이야.”)


제인은 그 말에 얼굴을 붉혔다. 칭찬 때문에 그랬는지 수용복 차림의 A를 상상한 것 때문에 그랬는지는 굳이 생각하려 하지않았다. 제인은 차에 A가 준 CD를 넣고 몇 시간 동안 주변을 달렸다. 그녀 또래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으레 하듯, 선글라스를 끼고 창문을 내린 채 텅 빈 도로를 질주하는 느낌은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기분이었다. A가 선물해준 태블릿으로 가까운 스포츠용품점을 찾아내고는, 왈츠를 추듯 미끄러져 들어가 카메라와 금속탐지기들을 눈여겨본다. 밝은 빨간색 조끼를 입은 여드름 얼굴의 젊은 남자 두 명이 그녀가 지나갈 때 음흉한 시선을 던졌지만 그녀는 화낼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찾던 물건을 찾아 선반에서 꺼냈다. 그녀는 돈을 내지 않았고, 눈치채는 이 하나 없었다.


제인이 장갑 낀 손을 한번 흔드는 것만으로 보안경보기는 이미 무력화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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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맙소사, 너 은둔하고 있던 서커스 단원이었구나.” A는 느긋하게 상록수 숲을 거닐며 말했다. 그녀는 옅은 핑크빛으로 얼굴을 붉혔고, 하늘과도 같은 피부에 그녀의 주근깨가 별처럼 빛났다.


제인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저건 뭐야?” A가 물었다.

“외줄.” (*역자주: 외줄타기할 때 그 외줄)

“외줄이 뭔데?”

“그럼 이게 뭘로 보이니, 머저리야?”

“네가 정상을 노리고 훈련하는 걸로 보여, 개자식아.”

“내가 왜 훈련해야되는데? 난 열두살 때 이미 바넘과 베일리랑 스턴트를 했다고.”

“쌉소리하네.”


(*역자주: Barnum and Bailey. 미국의 서커스단 Barnum & Bailey circus 창시자들. 영화 위대한 쇼맨의 주역. 암튼 1800년대 사람들.)


제인은 두 나무 사이에 늘어선 나일론의 얇은 띠를 따라 맨발로 한걸음 나가면서 눈썹을 들어올렸다. 땅으로부터 2 피트(약 60 cm) 위에서 그녀는 무릎을 풀고 발목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균형에 집중하던 의식이 A가 수영복 위로 짧은 청멜빵바지를 입은 채 나타나자 순식간에 흩어진다.


그 뒤로 균형과 집중을 되찾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가 동작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제인이 무릎을 구부리니 무게중심을 따라 줄도 아래로 내려앉는다. 제인이 바닥으로 가볍게 뛰어내리자, 줄은 튕겨진 기타줄처럼 울리며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는다.


“나 정도면 환상적인 서커스 단원이 될 테지. 네가 보기에도 내가 인상적이지 않아?” 제인이 웃음기 없이 말했다.

“너무 지나치게 말이지.” A는 말하며 바짝 묶인 줄에 다가섰다.

“한 번 해볼래?”

“팔을 부러뜨리고 싶냐고? 아니.”

“함 해봐. 재밌을지도 모르잖아.”

“오, 아니 그러지 좀 마. 땅 위에서도 자주 넘어지는 내가 저 위에서 곡예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킬힐도 감당하는 너라면 외줄타기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네가 공갈재료로 사용하려고 준비한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무 주변에 카메라 숨겨놓고 내가 흙퍼먹는 거 찍으려고 그러는거지? 그러곤 ‘진저머리 백인여자애 엉덩이 깨지는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올리는 거야. 내가 말하는 이 순간에도 조회수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걸.”

“한 번 해 볼 때까진 모르는 거잖아,” 제인이 격려했다. “쇼핑처럼, 그리고 네가 전에도 말했듯이 균형잡기에도 도와줄거야.”

“제인, 너도 알겠지만 난—“

“네가 떨어지지 않게 해줄게.”


A는 걱정스러운 손가락으로 손을 뻗으며 다시 한 번 줄을 바라보았다. 줄을 손으로 훑으며 나무기둥 근처의 금속매듭까지 발을 옮기더니 호숫가의 편백나무 바늘을 향한 채로 줄에 상체를 받친다..


“나 떨어지게 되면, 네 위에 올라탈거니까,”

“좋은 마음가짐이야!” 제인이 대답했다. “그럼 줄 위에 올라갈 수 있게 나무기둥을 타고 올라가. 줄을 마주한 채로 익숙한 발을 앞으로 딛고 받쳐 일어서는 거야.”


A는 나무 주변을 돌더니 나무기둥에 매달려 애벌레처럼 위로 기어올라갔다.


“A, 거기는 이렇게—“

“잠깐만, 기다려봐.” A가 말했다.

“그치만 이렇게 하는 편이—“

“잠깐 기다리래두. 나 집중 좀 하자…”

A는 버둥거리더니 어떻게 발바닥의 아치를 나일론에 가져다 댈 수 있었다.

“이렇게?”

“비슷하지도 않지만, 뭐 그것도 괜찮겠지.” 제인이 돌려준다.


오,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 걸.


“좀 참신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네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나무를 놓아야 될 것 같아.” 제인이 말했다.

“싫어! 나 이 나무도 같이 데려가면 안돼?”

“까칠해질 필요없어. 네가 더 세게 쥐고 있다간 나무가 둘로 부러질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오, 이젠 내가 까칠한 애인거야? 이거 타려면, 잘 모르겠지만, 기나 선이나 속임수 같은 게 있어야되지 않아?” A가 줄의 끝에서 불안정한 채로 물었다. 그녀의 손은 등 뒤의 나무를 꼭 움켜쥔 채 그대로였다.

“맞아. 그걸 균형이라고 부르고 있지.”

“제인—“

“집중해. 머리를 비우고 신체에 집중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움직이는지 알잖아. 네가 정신없이 움직여도 힐 위에서는 매끄럽게 휘젓고, 스커트 안에서는 고혹적으로 다니잖아. 오늘은 네 코어에 집중하고 흔들거리는 팔다리를 어떻게 조절할지 배울거야. 많은 사람들은 균형을 잡으려면 팔을 뻗어야된다고 생각하지. 그럴 순 있어, 괜찮기도 하고,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거야. 단단히 힘을 주고, 단단히 조여봐, 그리고 그게 잘 안되면…그냥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려두고 중심을 잡아.”

“엄…”

“A, 걱정하지마. 네 곁에 내가 있어. 움직여.”


A는 한 쪽 발을 앞으로 미끄러뜨리고 무게 중심을 옮겼다. 제인은 A의 주근깨 하나 없는 태닝된 발을 관찰했다. 밝은 빨강으로 페디큐어된 발을.


소녀는 겨우 나무를 놓아주었지만 자리에 못 박히듯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때때로, 가만히 있는 게 뒤로 가는 것보다 안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A, 뒷발을 앞으로 내딛어. 나 여기 있으니까.”


A는 서둘러 오른발을 앞으로 가져왔고 밧줄은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 A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왼쪽으로 손을 휘두르며 제인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난 네게 나를 받침대로 써도 좋다고 얘기했지, 나를 땅에 심으라고 하진 않았거든?” 제인이 불평했다.

“내 곁에 있어준다고 했잖아.”

“그러고 있잖아! 넌 아직 떨어지지 않았고.”

“’아직’은 현재 진행 중이란 말이야,” A는 웅얼거리며 다시금 제자리를 단단하게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의 무릎이 줄과 함께 흔들거리자, 제인의 손이 A의 손목을 붙잡아 진정시키려 했다.


“제발 놓지 말아줘,” A가 애원했다.

“네가 준비될 때까진 놓지 않을게. 하지만 떨어지게 되면 다리를 벌리진 말아줘.”

“응?”

“안 그러면 저게 네 고간을 때릴거거든.”


A는 다시 한 발을 내딛었고 제인과 맞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계속 전진할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게 더 위험하단 걸 이젠 알았으니까.


“수영은 했어?” 제인이 물었다.

“아니 태닝만 조금 했어. 루이지아나의 모든 호수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악어가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걸.”

“걔네가 네 귀를 물어가면 어떡하지?”

“그럼 멋들어진 헤어컷을 받으러 가야겠지.”


제인은 그녀의 손을 놓았다.


“잠깐 잠깐 잠깐—“

“괜찮아!”

“안 괜찮아!”

“계속 앞으로 가!”

“넌 수다떠는 걸로 나를 방심시키는 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네 생각대로 그렇게 호락호락—어, 나무기둥이네?” 안나는 반대편 나무기둥을 붙잡고는 제인을 향해 활짝 웃었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제인이 말했다.

“너도 그래.”


제인이 A를 올려다보자 심장이 크게 한 번 뛰었다. A의 종아리를 만지며 주근깨 하나하나 세아리며 탐구하고 싶은 열렬한 욕망이 자신을 삼키는 듯했다. 그녀를 알고 싶다. 이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후에는 어떻게 변해갈지. 쇼크를 받고도 제인이 남들과 확연히 다른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거리낌없이 접해오는 이 자유분방한 사기꾼을 만지고 싶다는 순수한 갈망. 제인이 먼저 다가가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A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면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녀는 땅 위가 제 자리라는 듯이 못 박혀 서서 A가 제 앞에 놓인 자리가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뚜라미의 오케스트라가 다리를 비비며 소리를 낸다. 물고기 한마리가 호수의 수면 위로 뛰어올라 제 몸을 흔들고는 물을 튀기며 들어간다.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다람쥐들이 수다를 떤다. 딱따구리는 쉼없이 A가 붙잡고 있는 나무에 망치질을 해댔다. A의 시선이 흔들리더니, 얼마 가지 않아 중심도 흔들렸다. 제인은 두 팔을 뻗었고, A는 흔쾌히 내지른 포옹 속으로 뛰어들었다. A의 얼굴은 너무나도 가까웠고 제인은 초조해지고 몸이 떨리며 제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A의 앞머리가 코 끝을 간지럽히는 것, A의 손이 자신의 허리깨를 감싸고 있는 것, A가 자신의 발을 밟고 있는 것까지 애써 무시하며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그녀의 청멜빵과 피부에 손을 얹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몸은 엉성하게 한데 섞여있었고, 무언가가 일어나야만 했다.


“나—나 그간 생각해왔는데 말야,” 제인이 말했다.

“뭔데?” A가 속삭였다.

“ㄴ—내 생각에…생각에는 우리 한스를 뒤쫓아야 될 것 같아.”


제인은 자신이 엄청나게 중요한 걸 비껴가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A가 포옹에서 떨어지자 자신의 결정을 벌써 후회하기 시작했다.


“뭐?”

“아니, 그가 네 돈을 가져가버렸잖아,” 제인이 입을 뗐다.

“그깟 돈 아무래도 좋아.”

“그래도 네 명성이 영향 받을 건 생각해두는 게 좋아. 널 얕잡아 볼거라고.”


A는 한걸음 더 물러서더니 팔짱을 낀다.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


“네가 못한다는 얘기가 아냐!”


내가 바라던 데로 흘러가진 않는구나.


“그럼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돈 말고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A가 시험해온다.


제인은 심증만이 아니라 좀더 증거를 모은 후에 얘기할 생각이었다. 뼛속까지 엄습해오는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낸 다음에 할 생각이었다.


“추측이지만 그는 그가 얘기한 것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제인이 말했다.

“잠깐, 그가 얘기한 게 있어?”

“온전하게 얘기한 건 아니지만, 조각조각들이 전부 들어맞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내게 수차례 연락할 수 있었어. 그는 네게 위조신분증을 만들라며 내 사진을 줬지만 난 그에게 내 사진을 준 적이 없어. 그는 Seven Seas의 돈을 다 쓸어가기 위해 내 코드도 변형시켰고, 그걸 난 막아내지 못했어. 거기에 내게 메시지까지 보내왔어…”

“그러네! 네가 전에 얘기했었지 그…그 우르술라의 사무실에서,” A는 말을 흐렸다.


그들은 그 당시에 대치했던 상황을 애써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제인의 힘 덕에 제대로 덮어버리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고조된 감정과 잘못된 방향으로 향했던 분노는 결코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다. 제인은 그 편을 선호했다; 간단한 인정만으로 충분한 것을 굳이 수면 위로 올려 당시의 불쾌한 경험을 연장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내버려두고 싶어했고, 그녀를 뒤로, 아니, 과거를 뒤로 하고 싶어했다. 지난 며칠 간 제인은 자신이 뉘우치고 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 보이길 원했다.


“어떤 메시지였는데? 그가…보냈던 것 말야.” A가 물었다.

“우르술라의 사무실에서 송금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서 내가…내가 울고 있을 때,” 제인이 말했다. “그 사진엔 우리에게 ‘엿먹어라’라는 메시지 말고도 또 있었어. 내게 보낸 메시지가. ‘아이스퀸같은 개소리하네. 이제부턴 널 스파키라고 불러줄게.’라고 말야.”

“뭐어, 내가 널 협박할 생각이었으면 좀더 시적으로 적었을텐데.”

“A! 좀 진지하게 들어줘.”

“그러고 있어. 그치만 ‘스파키’라고? 찌릿언니가 낫지 않나.”

“아니.”

“일렉트라?”

“개싫어.”

“어떤 게 좋을지 계속 생각해봐도 돼?” A가 물었다.

“우리 본론으로 돌아오는 게 어떨까? 난 한스를 뒤쫓을 거야”

“워, 워, 워, 진정해, Joulsie. 이거봐, 그건 양쪽 다 할 수 있는 거라구. 불꽃을 위해서든, 다이아를 위해서든! 내가 거기서 뭘 했는지 봤지?”

(*역자주: Joulsie. 에너지 단위인 Joule(J)을 애칭처럼 부른 것으로 추측됨.)

“응. 그리고 아니.”

“그럼 네 수비범위는 양방까진 아닌거야? 아니면 어느 쪽이든 다 괜찮아?” A는 물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뭐? 무슨 얘기야? 그리고 얘기를 되돌려서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지 물어봐도 될까?”

A는 한숨을 위로 불어 자기 앞머리를 날려보내고는, 화가난 듯이 손을 엉덩이 위에 얹는다.


“처음에는 ‘우리 한스를 뒤쫓자!’더니 이젠 ‘난 한스를 뒤쫓을거야’?”

“내가 그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을 때, 네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길래,”라며 제인이 항변했다.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게 먼저 날 좀 달래야 될 거 아냐. 나한테 제안하자마자 내가 바로 넘어가길 바라지말라구. 난 내가 올인하기 전에 구애를 좀 받아보는 걸 좋아해.”

“정말?” 제인이 분명하게 회의적인 태도로 물었다. “우리 처음으로 한 공동작업에 준비 하나 없이 나타난 여자가 하는 말이야?”

“네 말대로 난 여자고, 난 언제든지 변덕 부릴 수 있어,” A가 놀리듯 말했다.

“첫 주요 절도건이 낭만주의 시대의 미술작품인 여자에게 바랄 걸 바래야지.”

“엄밀하게 따지면 네 탓이야,” A가 미소짓는다. “이제 슬슬 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 언제 떠나?”

“먼저 준비해 둘 게 몇가지가 있어. 우리 잠깐 뉴욕에 들려야 해. 내가 찾아낸 그의 흔적은 유럽 내에서 무작위로 나타나고 있거든.”

“그는 찾기 쉽지 않지,” A가 말했다.

“난 내 전자 추적에 자신있어.”

“그가 네 코드를 해킹했을 때 그리 자신만만해 보이진 않던 걸. 그가 이번에도 네 코드 가지고 장난치고 있지 않다는 걸 어떻게 알아?”


제인이 그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한스는 놀라운 지능을 가졌거나 그녀의 코드를 해킹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행운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와 연락하던 연락처로 연락했을 때 우회된 IP로나 찔끔씩 그녀의 전산망에 걸리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가 한스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전에 A가 말한 것처럼, 상대에게 거짓된 안심감을 주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네가 좀 시무룩해진 것 같네.” A가 이었다. “어느 쪽이던 넌 내가 필요할 거야.”

“무슨 뜻이야? 난 너 없이도 추적할 수 있어. 난 지금까지 그럭저럭 해왔어, 안그래?”

“그러니까 넌 가게나 지저분한 지하 펍에 들어가서 기웃거리며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코를 들이밀면서 정보를 묻고 여유롭고 당당하게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는 거야?”


제인은 외줄을 풀어 둘둘 감더니 가방 안에 챙겨 놓고 있었다.


“무례하게 굴 필요 없어. 내가 금지시켜도 넌 따라 올 것 같으니까.”

“어, 이젠 금지까지 시키는 거야?”

“내 말은 네가 네 갈 길 가는 걸 내가 막을 방도가 없다는 거야.”

“존나 솔직하네. 그리고 내게 스위스의 초콜릿 가게 데려가 주기로 한 거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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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노트:


1. Jane let go of her hand.

"Wait wait wait—"

"You got it!"

"I don't got it!"

"Keep moving!"


외줄타기 연습해주는 장면인데, 프1 엔딩에서 스케이트 태워줄 때 대사 따온 것 같아서 픽업. 원문 본 쥬미들은 알겠지만, 이스터에그 마냥 원작 오마쥬한 것들이 많다.



2. She longed to let it go, to put her behind in the— no, to put her past behind her.

-> 그녀는 그냥 내버려두고 싶어했고, 그녀를 뒤로, 아니, 과거를 뒤로 하고 싶어했다.


레릿고와 레릿고의 가사를 오마쥬한 문장.



3. "So you don't like going both ways? Or you do?" A asked, face unreadable.

중의적인 표현으로 A가 엘사보고 바이냐고(여자 좋아하냐고) 물어본 건데, 엘사가 알리가 없쥬.



4. 기타 넋두리.

이번에 스톨른 아이스를 6년만에 다시 읽으면서 감탄하게 되는게 작가가 치밀하게 프1을 오마쥬한 것도 있지만 드문드문 프2도 떠오른다는 게 신기했다. 스톨른이 한참전에 쓰여졌는데도.

예를 들어, 이번에 엘사가 ‘우리 같이 뒤쫓자.’에서 ‘우리’가 ‘나’로 바뀌었을 때 안나가 화를 낸 점. 안나는 한스고자시고 아무래도 좋지만, 엘사가 가는 곳이면 자기도 쫓아가려는 점.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스톨른의 엘사가 자신의 정체에 집착하는 점. 등등


그리고 괜한 걱정일수도 있지만, 번역글에는 스포일러성 댓글은 자제 부탁해. (예: 나중에 한스가 블라블라)


읽어준 쥬미들아 정말 고마워. 그리고 수정할 점은 달게 받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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