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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Say You Love Me 05

험버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19 09: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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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You Love Me 01

Say You Love Me 02

Say You Love Me 03

Say You Love Me 04


한스가 안나를 도와주겠다며 집을 나선 지 약 두 시간 만에 엘사와의 저녁 약속이 잡혔다. 약속을 몇 시간 남겨두고, 한스는 안나를 소파에 앉혀놓고 해선 안 되는 일이나 각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 방법들을 세세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나는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안나는 한스가 구체적인 얘기를 해주지 않는 탓에 그가 대체 무슨 말로 엘사를 꼬셔놓은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덕분에 그토록 능글맞은 남자를 오빠로 둔 것에 대한 항의를 받으며 식당 한가운데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게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한스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일을 처리해왔고 사정을 모르는 안나는 겁에 질려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민망한 상황이 이어지는 상상 속을 헤매는 와중, 문득 상상 속의 자신이 입고 있을 옷을 코디해보기 시작한 안나의 머릿속은 곧 특별한 날에만 입던 원피스와 끝내주게 잘 어울리지만 너무 일상적이지 않나 싶은 청바지 중 뭐가 더 나은가 하는 고민으로 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몸에 딱 달라붙어 라인이 드러나는 자주색 원피스를 입고 공들여서 머리도 틀어 올리면 꽤나 성숙하고 우아하게 보일 테지만 지나치게 신경 썼단 인상을 줄 것 같기도 했다. 사랑이나 잠자리를 갈구하는 것 같아 보일 지도. 전날의 일로 봤을 때 엘사가 다시 한 번 기겁을 하며 자리를 떠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세탁기에 넣을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던 최애 청바지는? 다리도 늘씬하고 길어 보이는 데다가 탄탄하게 잡아 올려주는 덕분에 엉덩이 라인이 기가 막히게 빠져 입고 있기만 해도 자신감이 샘솟는 옷이었다. 하지만 첫 데이트에 청바지? 이건 또 너무 무신경하고 예의 없는 옷차림은 아닌지?

안나는 그동안 수많은 데이트를 해왔으면서도 이런 일로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매달리는 쪽은 항상 상대방이었고 약속시간으로부터 30분이나 늦은 뒤에야 나타난 안나가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이더라도 누구 하나 불평한 이가 없었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입고 다니든지 데이트 신청은 항상 받아왔기 때문에 안나는 본인의 기분에만 맞춰 옷을 골라 입어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잘 보이고 싶었고 잘 보여야만 했다.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었고 다시 키스하고 싶었고, 다시 한 번 침대에 누웠을 땐 끝을 보기를 원했다. 또 다시 도망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신중해야만 했고, 때문에 안나는 옷차림에 대한 고민으로 미간에 주름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적이 있었던가? 무슨 옷을 입을지는 고사하고 다음 데이트를 기다렸던 적조차 없는데. 엘사나 한스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엿듣기라도 한 건지 공허한 연설을 하던 한스가 안나의 턱을 잡고 말했다.


“내 말 듣고 있어?”

“어? 뭐라고?”


한스가 성을 내며 안나의 턱을 크게 흔들었다. 안나가 앓는 소리를 낸 뒤에야 손을 뗀 한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혼자 앞서 나가지 말고 대화를 하란 말이야, 대화를. 상대도 너한테 마음이 생길 때까지 들이대지 말고 기다려.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다들 감성이 말라비틀어졌는지 그 말이 무슨 쥐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데- 표현을 해야 알아줄 거 아니야.”


안나는 제 턱을 만지며 심통 맞게 말했다.


“너 내 말 하나도 안 들었지?”


한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안나를 노려보며 말하자 안나는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가 무섭다고 했다니까?”

“날 두고 그런 말을?”

“그건 아니지ㅁ-”

“그럼 오빠가 무서웠단 얘기겠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아니라니까! 잘 모르는 사람이 사랑한다고 하면 다들 무서워해! 너도 전에 몇 번이나 당했었잖아?”


안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입술을 깨물었다. 저를 사랑한다며 질질 짜던 커다란 덩치들이 몇몇 떠올랐다. 걔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안나는 갑자기 자신의 지난 데이트 상대였던 이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거... 랑은 달라.”

“다르긴 뭐가 달라..” 한스는 제 미간을 꼬집으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나, 제발..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잘 좀 해보란 말이야.”

“희망이라니?”

“그 여자, 너한테 진짜 이름을 알려줬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열댓 번은 물어봤는데 한 번도 제대로 알려준 적 없어. 들이대는 다른 놈들한테도 그랬을 거고 아마 너처럼- 하룻밤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애들한테도 그랬겠지.”

“잘도 아네. 오빠도 그래 본 적이 꽤 있나 보지?”


한스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안나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그 이름이 맞는지 슬쩍 떠보니까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당황하더라고?” 한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안나와 눈을 맞췄다. “이건 좋은 신호야. 적어도 너한테 진짜 이름을 말해주고 싶은 뭔가를 느꼈단 뜻이니까. 네 말대로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니 믿어도 된다고.”


한스가 말을 마치자 안나는 크게 미소 지으며 손바닥을 얄밉게 비벼댔다.


“하하-! 자칭 연애박사 한스도 못 얻어낸 걸 내가 얻었네? 이 안나 머피가 이겼다고! 감히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들어?”


안나는 속 터져 죽겠단 표정을 짓는 한스를 무시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연애 박사님이시여, 저는 이만 꽃단장을 하러 가 봐도..?”


안나가 과장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놀리듯 말했다.


“알아서 해...” 한스는 힘없이 고개를 휘저었다. “..너랑 내 관계는 모르니까 입조심해라. 걸리면 그냥 무서워하는 정도로는 안 끝날 걸.”



안나는 대충 대답하곤 급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 끝에 안나는 너무 딱 달라붙진 않으면서도 라인은 적당히 살려주는 베이지 색 원피스를 찾아냈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편하지도 않고. 응, 완벽해. 안나는 그리 생각하며 약속장소로 향하는 길에 있는 쇼윈도 마다 멈춰 서서 만족스럽게 꾸민 제 모습을 비추고 감상하길 반복했다. 그리고 아차 싶었을 땐 이미 약속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어버린 뒤였다. 부재중 전화 2통? 세상에, 미쳤나봐. 허둥지둥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안나는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는 엘사를 볼 수 있었다.


“너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20분이나 늙어버렸어. 전화는 왜 안 받아?”


안나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려했다. 그런데 그 심기 불편한 표정을 보고서도 어쩐 일인지 자꾸만 방실방실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좋다는 게 이런 건가봐. 안나의 미소를 발견한 엘사의 얼굴이 이미 어이없다는 듯 구겨지고 있었지만, 안나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 꼬리를 손으로 가리는 노력 정도는 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웃기다뇨? 좋아서 그렇죠.”


안나는 한스의 조언을 무시하기로 했다. 얼굴만 봐도 이렇게 좋은데 어떻게 참아?


“좋긴 뭐가 좋-... 아,” 엘사는 생각났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됐다. 말 하지 말아줘.. 앉기나 해. 나 배고파.”


엘사가 메뉴판을 들고는 맞은 편 자리에 손짓하며 말했다.


“미안해요. 생각 좀 하느라 늦었어요.”

“무슨 생-..” 엘사가 다시 말을 멈췄다. “정말,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네.”

“뭐가 무서워요?”

“네가.”

“제가 뭘요?”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 날 겁 먹게 한다. 부탁인데 연락한 걸 후회하게 만들지 말아줄래?”


안나가 항의하려 입을 열기 전에 엘사가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그리고는 안나에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주문을 마쳤다.


“아니, 왜 묻지도 않고 정해요!”

“기다리게 해놓고 말이 많다?”

“나 정 떨어지게 하려고 툴툴대는 거면 소용없어요. 오히려 더 매력적이-”

“아! 진짜!” 엘사가 벌레 씹은 표정으로 안나의 말을 막았다. “넌 그런 게 무슨 인사말이라도 되는 줄 아니?”


안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생각해도 좀 과하긴 한 것 같았다. 그치만, 그치만.. 그치만이란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입 밖으로 낸 말은 그나마 참고 걸러낸 끝에 나온 것들이었다. 어쩜 화내는 모습까지도 저리 예쁠까. 화낼 때마다 들썩이는 저 어깨선은 또 어떻고. 안나는 당장이라도 저 품에 안겨 알고 있는 사랑노래를 다 불러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털고서 입을 맞추고 다시 침대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안나는 목이 탔다. 보기 좋게 물 잔을 비워내자 마침 음식을 가져온 웨이터가 잔을 채워줬다. 안나는 웨이터가 자리를 뜨기 전에 다시 한 번 빈 잔을 만들어 냈고, 웨이터는 민망해하며 잔이 넘치기 직전까지 물을 따랐다. 그런 짓을 두 번이나 더 반복하는 동안 엘사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안나를 지켜봤다.


“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순 없을까? 혹시 데이트 같은 것도 해본 적 없는 거니?”


웨이터가 겨우 자리를 뜨자 엘사는 약간 겁에 질린 말투로 농담을 던졌다.


“이런 건 처음이긴 해요.”

“뭐?” 엘사는 음식을 찍던 포크를 내려 놓고 기가 막히다 는 듯 말했다. “데이트도 처음이라고? 넌 대체 처음이 아닌 게 뭐야?”


그 말에 조금 자존심이 상한 안나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예요? 여자랑 만나는 게 처음이란 말이죠.”

“남자랑은 만나봤고?”

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히죽 웃었다.

“남자들이 나 같은 앨 가만 놔두겠어요?”

“그런데 왜...”


엘사는 내려놓았던 포크를 다시 집고 우물거렸다.


“그런데 왜 못 해 봤냐고요?”


안나가 대신 말을 잇자 엘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럴만한 사람을 못 만났어요.”


사랑을 못 만났어요. 근데 그 쪽은 사랑해요. 나 정말 동성애자인가? 엘사랑 하고 싶어요-! 이런 말 하면 도망가겠지. 안나는 하고픈 말을 애써 삼키고는 엘사가 받아들일 법한 수위로 조절해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절해 말 했음에도 불구하고, 엘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넌 날 만나자마자 모텔로 따라 들어와서는 내가 네 팬티 속을 더듬게 놔뒀어.”

“으음..."

“그럴만한 사람을 못 만나서 못 해 봤단 사람이 어떻게 그래?”

“그 쪽은 다르니까요. 어제 말했잖아요.”

“뭘?”


말하면 싫어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나는 그 말을 꺼내지 않고 제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엔 사랑이 있거든요.”


아-역시나. 엘사는 더 이상 구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얼굴을 구겼다. 저러다 토하는 거 아니야? 안나는 웨이터에게 양동이를 가져다 달라 부탁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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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두편은 꼭 나올 것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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