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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유혈/고어]Praying prey 10~11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19 23: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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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유혈]


2화[고어]


3~4화[고어]


5~7화(1)


5~7화(2)


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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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인디아 1-1에서 알림. 패키지를 회수하러 진입하겠다.

패키지1을 최우선으로 회수하도록. 현 시간부로 현장 권한을 인계하겠다. 질문 있나?

교전 수칙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 이상.

알겠다.....인디아 1-1, 무선 종료.




41.

붉은 점이 탐조등에 고정되었다. 잠시 뒤 파란 사선들이 붉게 점등하자, 안나는 샤이택의 방아쇠를 당겼다. 샤이택 주변의 눈더미들이 폭발했다. 엎드려 있는 안나의 몸이 크게 떨렸다. 재빨리 노리쇠를 당겨 초탄을 배출한 안나는 다시 노리쇠를 밀어넣어 옥상 위의 병사를 조준했다. 이제 막 초탄이 탐조등의 눈알을 터뜨린 직후였다. 조준점이 자동으로 병사의 머리를 조준했다. 붉은 사선이 뜨자마자 다시 사격했다. 머리가 뭉개진 푸딩처럼 사방으로 튄 것을 어렴풋이 확인했다.

총구를 초소 옥상으로 돌린 안나는 이번엔 거치된 기관총을 조준하고 샤이택을 발사했다. 아무도 없는 숲에 불을 뿜던 기관총은 스파크와 함께 검은 피를 흘뿌렸다. 곧이어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직면한 연구소에서 사이렌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맞춰 왼손의 주먹을 꽉 쥐었다. 동시에 박격포에서 포탄이 발사되어 별동별처럼 연구소의 상공에 날아가 폭발했다. 폭발 후 연기가 산개되기까지 약 3초를 넘지 않는 시간에, 안나는 탄을 장전해 옥상에 남은 병사들의 목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연회색의 눈안개가 순식간에 연구소와 초소를 뒤덮었다. 길을 잃은 초록색의 불똥들이 연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안나는 몸을 일으켜 섀이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74 소총을 챙긴 다음 야간투시경을 작동했다. 익숙한 청록색이 눈에 물들어졌음을 확인한 안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개를 향해 힘껏 지그재그 형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연구소까지 약 1km 남았을 무렵, 안나는 다시 왼주먹을 꽉 쥐었다. 뒤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포탄이 다시 사출되었고, 희미해진 연기에 새로운 연기가 덧입혀졌다. 희미하게 러시아어 욕설이 귓가를 찔렀다.

산발적인 총성이 울렸다. 연구소 내에서 울린 움푹한 것과 밖에서 퍼지는 청명한 소리가 한데 섞여 있었다. 마치 '미스트'를 보고 있는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안나의 방향으로 총알이 날라오는 일은 없었다. 안개 속에서 대여섯 명의 병사들이 빠져나오자, 안나는 곧바로 74 소총을 들어 그들을 향해 사격했다. 세 명의 병사가 푸른 피를 흘리며 눈밭에 쓰러졌고, 남은 세 명의 병사는 눈길 가장자리의 눈더미에 슬라이드하여 모습을 감췄다. 그들은 안나를 볼 수 없었지만, 안나는 그들이 보였다. 안나는 왼쪽으로 몸을 틀어 달렸다. 다시금 시작된 눈보라가 안나의 기척을 죽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약 150m를 달린 안나는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눈밭 속에 누워있는 적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하이브리드식 배율 조준경 속의 병사들은 안나의 위치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아까 안나가 사격했던 곳을 향해 헛사격만 가하고 있었다. 안나는 배율을 조정하고 단발로 조정간을 맞춘 다음, 의탁 파지법 자세를 취했다. 다만 지금은 서서 조준한다는 점이 다른 저격수들과 다른 차이점이었다. 숨을 짧게 들이마신 안나는 단 한발의 사격을 가했다. 엎드려 있었던 세 명의 병사 중 하나가 짧은 경련을 일으키며 자신의 ak소총에 얼굴을 파묻었다.

안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조준 사격을 퍼부어 남은 두명의 복부와 목 뒤를 맞췄다. 안나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신음을 흘리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안나는 그들의 고통에 작은 납을 처방했다. 마지막 환자에게 '안락사'를 선사했을 때, 총의 격발음이 이전보다 가벼워졌다. 장전을 하라는 총이 보내는 신호였다. 탄창 파우치에서 새 탄창을 꺼내 전술 재장전을 마친 안나는 첫 번째 탄창을 파우치에 집어넣었다. 시체들의 기어에서 섬광탄과 무전기를 챙긴 안나는 마지막으로 주먹을 쥐었다. 풍선 터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윽고 새로운 안개가 연구소와 초소에 끼얹혔다. 그 때, 안나는 그곳에 없었다. 안개의 산개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녀는 철망을 커터로 잘라 안으로 진입했고, 가장 위협 리스트에 올려 놓은 안개 속 초소로 조용히 이동했다.

[알파 2, 적 위치 확인 바람! 알파2, 알파2!]

러시아어로 병사들이 거칠게 그들의 동료를 불렀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미 안나가 그들에게 모잠비크 드릴을 선사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안나는 74소총을 뒤로 매고 홀스터에서 로니 키트를 장착한 글록을 들었다. 이번엔 74소총과는 사격 방법이 달랐다. 4층 규모의 초소에 적들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는데다, 무엇보다 근접전이 필수불가결한 장소였기에, 45도로 총을 꺾어 드는 중심축 유지자세(Center Axis Relock)을 취하는게 더 이득이였다. 샤이택을 챙겨왔다면 벽과 구조물에 치여 오히려 안나가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초소 안은 어두웠다. 1층에 들리는 소리라곤 안나가 문을 열어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사이렌 소리 뿐이었다. 안나는 시체에서 챙겨온 섬광탄을 꺼내 청록색 어둠 속으로 던졌다. 안나는 몸을 틀어 섬광을 피했고, 빵빠레와 같은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진입해 눈이 멀은 두 병사들을 사살했다. 아니, 사살할 뻔 했다. 글록에 맞았지만 그들의 방탄복과 방탄모가 눈밭의 시체들과 약간 달랐다. 권총탄 규격을 방호해주는 장비를 입은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들이 AK를 빼들어 안나에게 난사했다. 몸을 던져 나무 상자 더미로 피한 안나는 그들이 쏜 총알이 뚫은 상자들의 구멍들 중 하나에 74 소총의 총구를 끼웠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짧은 단말마가 들렸고, 남은 병사가 안나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듯 군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안나는 나이프를 빼들어 상자에 기대어 서 있다가, 병사의 총구가 보이자마자 한 손으로 총구를 쳐냈고, 남은 한 손에 들린 나이프로 병사의 가슴을 찔렀다. 글록을 들어 그의 턱에 갖다대었다. 경악하는 눈빛이 안나의 눈에 들어왔다. 안나는 망설이지 않고 글록의 방아쇠를 당겼다. 퍽 하고 뇌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날아가 주저앉은 병사에게서 칼을 뽑은 안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중간 정도 올라가자 2층의 계단 입구가 보였다. 안나는 수류탄을 들어 튕겨나갈 각도를 유추한 다음, 2층 벽을 향해 비스듬히 핀을 뽑은 수류탄을 던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수류탄은 2층에서 터졌고, 잠시 동안 기분이 나쁠 정도로 젖은 소리들이 층을 가득 메꾸었다. 3층으로 올라가기 전, 2층은 사람같은 인형들이 널브러진 붉은 현대미술이 펼쳐져 있었다. 안나는 그것에 대해 별 감상을 떠올리지 않고 고개를 돌려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작업을 할 때마다 보아온 풍경들이었다. 숙련되었어도 사지에 파편이 박혀 잘려나간 고깃덩이들은 언제나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보지 않고 넘어가는게 심리적인 발작을 덜 일으키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3층은 적들의 인기척이 2층보다 전무했다. 4층의 기관총 진지를 맡는 병사들의 취식 용도였는지 서랍장과 상자형 TV, 그리고 높이가 있는 침대 두개가 전부였다. 안나는 몸을 돌려 초소를 내려가기로 했다.

그 순간 안나의 뒤 옆구리에 슬래지해머로 맞은 듯한 충격이 찾아왔다. 안나가 계단에 굴러떨어지자 죽어있던 적들의 기척이 되살아났다. 그들이 침대 밑에 숨어서 안나를 저격한 것이었다. 안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방탄판에 막혀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안나는 몸을 일으켜 도망가지 않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글록 권총으로 3층 계단 입구를 조준했다.

"끄응...으윽..."

그렇게 아픈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적들을 속이기 위해 일종의 연막을 쳐둘 필요가 있었다. 지금 도망쳐 보아도 연구소 1층엔 병참이 있었다. 전력을 차단하고 재머를 작동시킬 테지만 3층의 병사들은 그녀를 쫓아와 뒤통수에 칼을 꽂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안나는 의도적으로 신음소리를 내 적의 경계를 풀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계단 입구에 두 적이 방심을 푼 채로 AK를 들고 나오자, 안나는 둘의 얼굴을 향해 글록의 방아쇠를 갈겨댔다. 방탄모를 쓰고 있지 않은 두 시체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뒤로 튕겨져 나갔다. 안나의 방독 마스크 위로 뇌수와 피의 혼합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방독 마스크를 뚫을 정도의 고약한 냄새였다. 한동안 맡지 않았던 공기를 들이마쉬자 역한 기운이 올라왔다. 초소 밖으로 나온 안나는 2시간 전 기분 전환을 위해 먹어둔 초콜릿들을 눈밭에 토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이렌 소리가 혼란을 비집고 안나의 관자놀이를 후벼팠다. 안나는 깨끗한 눈을 집어 방독 마스크에 문질러 닦았다. 그 다음 카멜백의 관을 뽑아 마신 물로 가글을 해 검은 토사물 위로 퉤 하고 뱉었다. IFAK팩에서 두통약 캡슐을 꺼내 억지로 씹어삼켰다. 약효가 오르기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패키지들의 회수가 중요했다.

안나는 방독 마스크를 고쳐 쓴 다음 연구소의 전력 설비가 있는 뒷편 지하계단으로 향했다. 도중에 튀어나온 병사들이 있었지만 안나의 조용한 발걸음을 눈치챌 수 있는 자들은 없었다. 조용히 뒤로 접근해 다리를 걸고, 중심을 잃은 적의 윗목 경동맥을 칼로 쑤셨다. 조용히 뒤로 접근해 다리를 걸고, 중심을 잃은 적의 윗목 경동맥을 칼로 쑤셨다. 울컥 쏟아진 뜨거운 피가 차디찬 눈 속에 녹아들었다. 마지막 병사는 안나의 존재를 눈치 채고 몸을 돌렸지만, 안나의 나이프에서 사출된 칼날이 병사의 눈을 파고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구르는 병사에게 안나는 그의 머리에 74소총을 한 발 발사했다. 퍽 소리와 함께 피 묻은 뼛조각이 위장복에 튕겨 나갔다.




42.

지하실로 내려온 안나는 쉽게 발전기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 차단은 불가능한 구조였다. 안나가 배워오고, 겪어오며 보았던 것들보다 생소한 구조였다. 물론 수류탄을 까 발전기를 부술 수도 있었지만, 패키지들의 식별 확인은 단순히 야간투시경으로 확인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안나는 배전을 조작해 일시적으로 시설 내 전원을 꺼버리는 방법 택했다. 10 분 정도 시설 내 전력이 마비될 거라고 안나는 추측했다.

배선 조작을 모두 마치자, 윙윙거리며 돌아가던 전기 모터가 천천히 운동을 멈췄다.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가자, 빛이라곤 전혀 없는 폐허같은 연구소가 보였다. 연구소 안에서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어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총성도 같이 들려왔다. 오사인 건가, 의도치 않은 사격인 건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안나는 위장복의 안주머니에서 재머를 작동시킨 다음 다시 연구소를 빙 둘러 1층 정문에 다다랐다. 정문은 투명한 유리문이 아닌 철문이었다. 5층을 제외하곤 나머지 층들은 창문의 '창'자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저런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하늘은 어디 있는가? 안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죽어서야 볼 수 있는 하늘은 흙색 하늘이거나, 소각장의 검댕이 그득한 검붉은 하늘일 것이다. 패키지2를 몇 명이나 데려와야 하는진 명시되지 않았다. 타고 온 스노우 모빌로는 안나를 포함해 네 명, 즉 패키지 2는 2명을 겨우 태울 수 있었다. 절망적인 숫자에 안나 또한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후속 팀이 빠르게 안나의 뒷수습을 해주길 바랬다.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안나는 등에서 지렛대를 뽑아 문 틈에 비집어 넣고 비틀었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너머의 1층 실내는 빛이 새어들던 초소보다 더욱 어두웠다. 야간투시경으로 비추는 세상도 더욱 어두워졌다. 안나가 조심스럽게 한 손에 74소총을 들고 진입하려 했다. 발을 내딛는 순간, 핑 하고 수류탄 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을 느낀 안나가 즉시 몸을 눈밭으로 던지자, 굉음과 함께 철문이 폭발했다. 문가에 수류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이 있었고, 안나가 수류탄 핀이 묶인 끈을 밟아 터진 것이었다. 다행이 철문이 수류탄 파편을 막아줘 부상은 면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몸을 일으킨 안나는 부리나케 옆으로 굴러 문가에서 벗어났고, 순식간에 총알들이 안나가 있었던 자리에 빗발쳤다.

내부의 적이 어떤 장비를 하고 있을지는 추측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옥상과 초소의 적들은 야간투시경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이미 작업 시작 전 샤이택의 스코프 모듈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처리가 가능한 일이었다. 안나는 몸을 일으켜 입구 옆에 붙었다. 그리고 글록에서 로니 키트를 분리해 총구 부분만 빼꼼 내밀었다. 야간 투시경을 착용했다면 바로 키트를 쏴 날려버릴것이고, 쓰지 않았다면 키트는 멀쩡히 안나의 손에 있을 것이다. 

야간투시경을 장착하지 않은 상대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나는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수류탄을 꺼내 든 안나는 핀을 뽑은뒤 2초를 세고 안쪽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튀어나온 안나의 팔을 향해 총알들이 날아왔지만 아슬아슬하게 빗겨갔다. 야간투시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고, 안나는 그들의 얕은 속내에 저도 모르게 걸려들었다. 하지만 적들의 속내가 무색하듯 건물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직후에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안나는 이번엔 섬광탄을 뽑아 던졌다. 판넬을 치는 듯한 소리에 맞춰 안나는 소총을 조준하며 입구로 진입했다. 1층 전체가 무기고 겸 경비실에 해당하는 모양인지 양 쪽 벽에 소총을 거치할 수 있는 지지대들이 놓여 있었고, 수갑, 곤봉, 도끼같은 냉병기들도 매달려 있었다. 5명의 적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두 팔은 멀쩡한 듯 곧바로 소총을 집어 안나를 향해 난사했다. 하지만 움직임은 안나가 더 빨랐다. 안나의 소총에서 나온 총알은 적의 목을 관통했고, 그것은 목뼈가 부러져 즉사했다. 한 명이 죽었다고 나머지 4명이 죽은 건 아니었다. 제각각 팔 한쪽, 다리 한쪽이 날아간 그들은 홀스터에서 마카로프 pmm을 뽑아 안나에게 파지했다. 그들의 권총이 불을 뿜었고, 그 중 한 발이 엄폐하기 위해 강철 데스크 밑에 숨으려던 안나의 옆구리를 맞췄다. 아윽! 하고 안나가 때 아닌 신음을 흘렸다. 안나가 쿠당탕 소리를 내며 데스크 안쪽으로 넘어졌다.

"맞췄어. 이 씨발년!"

"이반, 진정해. 소리로 봐선 안 죽었어. 방탄복을 입고 있나 봐."

"그렇게 말하면 저놈이 우리 계획을 눈치챌 거 아냐?"

"저놈이 원하는 건 그레이 박사 뿐이야. 프로토콜을 잊었어? 이곳에 발견되면 최우선 개체들을 제외한 모든 개체를 폐기하라 했잖아. 넌 어서 가서 프로토콜 스위치나 작동시켜."

그들이 말하는 건 안나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리브리도 작업을 하기 위해 러시아어와 키릴 문자를 단기간에 독학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은 잊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아예 대화를 할 수 없거나 해석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4명 중 2명의 대화에 따르면, 패키지에 대한 위험은 없지만, 안나에게 있어서 1순위 패키지이고, 저들에겐 최우선 인력인 그레이는 옥상에 있는 헬기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안나는 초소에서 들었던 연구소의 총성은 그 폐기과정의 일부분이라고 결론지었다.

최우선 개체'들'이 몇명을 정의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안나가 한시라도 빨리 2층에 도달해야 잊혀질 피해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안나는 소총을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나 한 손엔 아이스픽 그립으로 나이프를 쥐었다. 나머지 한 손에는 키트를 분리한 글록을 들어 나이프를 쥔 손목에 거치했다. 중거리의 적은 글록으로 제압하되, 근거리의 적은 나이프를 뻗어 찍는 방법이었다. 남아있는 3명의 적은 안나에게 연달아 권총을 갈겼다. 대부분은 데스크 위로 날아갔으며, 일부는 데스크에 명중해 얕은 탄흔을 남겼다. 권총의 슬라이드가 젖혀지는 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안나가 데스크 측면으로 글록을 조준해 2명을 사살했다. 이제 1층에는 스위치를 누르러간 한 명을 제외한 단 한 명만이 절뚝거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74소총으로 교체한 안나는 그의 다리에 두 발의 탄환을 명중시켰다.

[알렉시스 그레이, 어디있어.]

비참하게 넘어진 전직 특수부대원의 멱살을 잡고 안나가 외쳤다. 경악에 가득찬 그의 입은, 마치 모든 잡죄가 드러난 소매치기범처럼 벌어져 있었다.

[알...면 어쩌게?]

그가 안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몸을 뒤로 뺀 안나의 콧등에 주먹이 스쳤다. 시큰함을 참은 안나는 나이프를 뽑아 그의 오른쪽 어깨에 내리찍었다. 칼날이 젤리처럼 쑥 하고 그의 몸에 박혔다.

[이....씨발...미친...걸레...]

[다음은 왼쪽이야.]

시간이 없었다. 이 넓은 건물에서 패키지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시설의 전력이 복구될 것이 분명했다.

[살고 싶지 않아?]

안나가 누더기가 된 그의 몸에서 칼을 뽑았다. 그가 비명을 지르려 하자 안나는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쉬쉬쉬... 울지마, 울지마. 말만 해.]

그의 야간투시경 밑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지혈 안하면 너 죽는다. 빨리 말해.]

그의 입가에 거품이 맺혔다.

[2층...가장 첫번째...]

그 말을 들은 안나는 그의 배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숨이 트인 듯 그가 왼손으로 피가 새어나오는 어깨를 감쌌다. 어차피 그의 다리에서도 출혈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안가 죽을 것이었다. 약간의 희망을 던져도 그 끝엔 비극이 반긴다. 안나는 그에게 작은 하나의 비극을 선사했다.




43.

'과연 지옥이란 곳이 있을까?'

안나는 모든 이들이 궁금할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할 자신이 있었다. '존재'했다. 모두가 그토록 보기 원했던 지옥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하면서도 기괴했다.

안나가 마지막 병사를 죽이고 2층으로 올라왔을 때, 전력이 다시금 복구되었다. 야간투시경을 끄고 헬멧 위로 올렸을 때, 안나가 처음 본 복도는 아비규환의 정점에 다다라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많은 아이들이 기괴한 자세로 탄피의 바다 속에 몸과 머리가 터져 죽어 있었다. 피웅덩이에 엎어져 죽은 아이의 뒷목에 작은 숫자가 써 있었다. '17'. 개체들의 번호였다. 이제 안나는 복도의 입구에 서 있었다. 복도의 끝까지 시체들이 즐비했다. 개중에는 연구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시체도 보였다.

74소총의 배율 조준경으로 확대하자, 불에 타고 있는 연구원, 몸이 나무에 뚫린 연구원, 그리고 바위에 피나타처럼 머리가 으깨져 뇌가 흘러나온 연구원의 시체들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무와 바위는 연구소의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상식을 벗어난 물건이었다. 안나는 문득 블루라운드에서 흘려 들었던 '아이들의 능력화'를 떠올렸다. 그땐 단순히 그레이의 망상에 근거한 명분이라고 생각했고, 메가라도 별 다른 말 없이 인체 실험이 자행되어 그 실험을 유하게 진행하겠다고만 했다.

하지만 눈 앞의 광경을 보고선 그런 1차원적인 생각들은 가루처럼 흩어졌다. 정말로 아이들을 이용해 저 설명하기 힘든 현상을 만들어 냈다면, 그건 사람으로써 선을 완전히 넘어버린 게 되는 것이었다. 위층에선 계속 총 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사이렌 소리와 비상 경고등의 붉은 빛은 조화를 이루며 복도를 붉게 물들였다. 일단 지시 사항 첫 번째인 패키지 1의 회수를 먼저 해야 했다.

2층의 첫번째 방을 열자 그곳에는 방 한가운데에 쓰러진 '그레이'였던 사람이 있었다. 하반신이 잘려나간 그 사이로 초록색과 연회색의 내장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반신으로 보이는 잿더미는 단면에서 흘러나온 피로 물들어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그레이의 숙소 내 책상을 뒤져본 결과 몇 가지 관능소설과 필기구가 전부였다. 급히 물건을 챙길 때 끌리는 흔적이 책상과 바닥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피에 젖은 작은 발자국들이 이 방으로 들어왔다가 밖으로 나간 듯한 흔적이 있었다. 능력을 가진 아이가 죽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몇 분 전까지 그런 일은 전혀 믿지 않았던 안나였지만, 농장에서 얻은 특유의 트레이드크래프트(스파이 활동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는 안나가 지금 이 상황에  무섭도록 적응하게 도와주었다. 관능 소설들 속에 증거가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나는 배낭을 열어 책들을 억지로 쑤셔넣었다. 배낭이 에어백처럼 빵빵해졌고, 더욱 무거워졌다. 부피가 늘어난 만큼 피탄 면적이 줄어들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 안나는 눈을 부릅 뜨고 죽은 그레이의 눈을 감겨주었다. 패키지 1의 회수는 실패했다. 방 밖으로 나온 안나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다.

이젠 '살아있는' 패키지 2를 확보해야 했다. 복도에는 대략 10여 구의 아이들이 죽어있었다. 그리고 10 개 남짓한 방들이 있었다. 연구원들의 전용 숙소라 판단이 되었다. 우성 개체들이 숨어있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일단 안나는 시체들의 번호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잠시 동안 시체들을 총구로 들춰내며 목 뒤를 확인한 결과, 대체로 10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개체들이었다. 작은 숫자가 쓰여진 아이들이 죽어있다면 MI5와 CIA가 만족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패키지3만 챙겨 나와야 할 수도 있었다. 그건 안나에겐 용납할 수 없는 가설이었다. 적어도 한 아이만이라도 살아있기를 바랬다. 

결국 안나는 복도에 있는 모든 참극을 무시하고 가로질러 달렸다. 복도 끝은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그 오른쪽엔 비상 계단이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기는 것보다 계단을 이용하는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엘리베이터 위 스크린에 아무것도 뜨지 않고 있었다. 안나가 몸을 틀어 계단을 향해 총구를 돌리자, 그곳에는 대여섯 명의 연구원들이 잠긴 문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찢어지고 피가 묻은 가운을 입은 그들은 식칼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식칼은 피가 뚝뚝 흘러 바닥에 점점이 이름 모를 별자리를 그렸고, 권총에는 희미한 연기가 총구 끝에서 흘러오르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멀찍이 서 있는 안나를 보며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씨발, 다 죽은거야?]

모두가 안나를 쳐다보았다. 겁에 질려 있었다. 떨리는 손을로 칼을 겨누는 여성 연구원이 있는가 하면, 슬라이드 스톱에 걸린 권총을 겨누는 남성 연구원도 있었다.

[하나만 물읍시다.]

안나가 말했다.

[그 숫자 작은 개체들은 어디에 있죠?]

[그걸 네가 알아서 어쩔건데!]

슬라이드 스톱 권총을 겨누는 사내가 용기 내어 말했다.

[어차피 다 죽일 거잖아! 그런 거 아니야?]

안나는 그들을 죽일 마음은 없었다. 병사들은 필요충분조건으로 안나의 작업과 목숨에 방해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무장은 아프리카 민병대들보다도 열악했다. 심지어 평생을 연구실에서 비커와 주사기만 가지고 살던 그들의 하얀 인생에 총과 칼로 안나를 위협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총과 칼을 내리고 패키지2들의 정보를 준다면 보내줄 의향도 충분했다. 메가라는 거기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CIA 내 협력 부서에 이들과 대등한 연구 인력들이 있는 모양이었기에 이들의 처분에 대해선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나는 최소한의 피해만 감수하고 싶었다.

[너무 말이 심한ㄷ....]

[어차피 걔네들은 모두 죽을 운명이야! 너 때문에 모두 폐기될 거라고!]

칼을 든 여자가 악에 받친 듯 안나에게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린데?]

'나 때문에 모두 죽는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레이가 죽었고 그에 미치지 못한 실력이지만 이들 또한 연구의 핵심 인력들이었다. 그런데 아톤이라는 기업은 이들까지 '폐기'시키려 하고 있다.

[너 때문에 동기들이 가스를 마셔서 죽었어! 개체들은 우릴 죽이려 들었고! 알아? 아냔 말이야!]

눈물로 얼룩진 그녀가 칼을 들고 안나를 향해 달렸다. 안나는 총을 들어 그녀의 갈빗대에 발사했다. 중심을 잃으며 넘어지는 그녀의 손에서 칼이 빠져나왔고, 안나는 그걸 연구자 집단을 향해 발로 밀었다.

[내 잘못은 없는 거 같은데.]

[지랄하지마, 이 미친년아! 저 복도를 넘어오면서 다 봤을 거 아니야!]

점점 안나의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하얀 악마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연구 윤리에 벗어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안나의 의뢰기관들도 흑심을 품고 있다지마는, 정작 당사자들을 만나고 보니 이들은 인두겁을 쓴 전범들이었다.

[그냥 죽일려면 죽여! 아니면 우리가 니년을 죽일 테니까!]

그 말에 안나는 푸흐 하고 웃어버렸다. 총을 들고 있어 위험한 상황은 맞지만, 그들의 뻔뻔한 개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고, 그 개소리마저 안나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규칙을 흐뜨러뜨리는 무논리였다. 가장 논리적이여야 할 자들이 가장 무논리적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권총을 든 남자들이 일제히 탄창을 장전했다. 안나도 동시에 그들을 향해 총구를 들었다. 부수 피해를 추산해보기로 하고 안나는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꽉 당겼다. 작지만 처절한 불꽃들이 일방적으로 연구원들의 몸에 터졌다. 74소총에 꽂힌 탄창이 총알을 다 썼다는듯 틱틱거렸고, 글록을 꺼낸 안나는 그들의 머리에 총알을 한 발 씩 먹여주었다.

상황이 정리되었고, 안나는 74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문고리를 연신 내리쳤다. 여섯 번을 넘기지 못하고 문고리는 부서졌다. 안나가 발로 문을 걷어차자 문짝은 힘없이 열렸다. 비상 계단이 보였고, 안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옆에서 사이렌 범벅으로 얼룩진 신음이 섞여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동료들의 시체까지 기어와 권총을 집은 여자 연구원이 있었다. 그녀가 안나를 향해 총을 겨눴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슬라이드 락을 누르지 않아서 완전한 재장전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씨바아아아알.....!]

그걸 모르는그녀가 목에 핏대를 내세우며 마지막으로 안나에게 발악을 했다. 안나는 그녀가 더 이상 살 의지가 없음을 깨닫고, 그녀의 미간에 글록을 발사했다. 목이 뒤로 꺾인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안 보는게 더 나을 거라 판단한 안나는 두 총기를 재장전했다. 장전을 마친 안나는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44.

3층의 입구에 도달하자 가장 먼저 안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벽에 기대어 죽은 아이의 시체였다. 목 뒤를 확인하자, '03'이란 숫자가 보였다. 패키지2 집단에 속할 아이였었다. 이 주변에 숫자가 작은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안나는 벽 코너에 바짝 기대어 로니키트를 글록에 다시 장착했다. 코너 너머에서 연구원들의 대화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도청해 패키지2의 정보를 얻기로 했다.

“이거 놔아....!”

“진짜 끈질기네, 이번만이라도 말 좀 들어라!”

“시이러어어...!”

안나가 모퉁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자, 권총을 든 남자 연구원이 방에서 아이를 끌고 나오고 있었다. 아이는 저항했지만, 상대는 힘이 없을지라도 어른이었다. 하지만 안나가 주목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남자 연구원이 권총으로 여자아이의 머리를 내리쳤고, 쓰러진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은 안나가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엘사의 머리색과 똑같았다.

'엘사? 아니, 너무 작잖아.'

어쩌면 하이랜더 증후군에 걸려있을 거라는 황당한 생각도 떠올랐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안나의 심장이 벅차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발작 증세가 아닌, 알 수 없는 회한이 안나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루면 안 돼잖아! 자크, 미쳤어? 어린애를 그렇게 다루면 어떡해!”

“그럼 뭐, 쟤가 내 손 병신 만들 때까지 잡고 있어야 돼냐? 쟤 능력 못 봤어?”

“일단 둘 다 진정하고 어서 데리고 나가자. 이미 다 나가고 우리밖에 없을 거야. 제시카, 저 애를 업어줘.”

안나는 다시 몸을 숨겼다. 그들은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갈 작정이었다. 그들의 말을 듣자니 헬기가 옥상에 도착해 있고, 그걸 타고 빠져나갈 심산이었다. 그 말은 즉슨, 저 백금발의 아이가 숫자가 작은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같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엘사와 이 아이는 다를 사람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 감정이 안나의 냉정을 깨뜨려 버렸다. 그 감정의 이름은 '그리움'이었다. 설령 엘사가 아닐지라도, 그 아이가 나중에 힘든 일을 겪을 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었지만, 안나는 이 순간만큼 이기적인 브라이트가 되고 싶었다.

그로 인한 그리움은 곧 분노로 승화되었다. 안나는 글록의 슬라이드를 당겨 약실에 총알이 장전된 것을 확인하고, 코너에서 총을 꺼내 복도를 향해 견착했다. 그녀를 뒤로 하고 도망치려는 일행이 보였다. 안나는 덜린이라는 남자 연구원의 머리에 글록을 발사했다. 덜린이 쓰러지자, 여자 연구원은 엘사 같은 아이를 거칠게 내팽개치고 복도 끝으로 도망갔다. 권총을 든 남자 연구원이 욕을 하면서 안나가 숨은 벽 코너에 권총으로 사격을 가했다. 벽에 파편이 튀어 콘크리트와 대리석 가루가 흩날렸다. 안나는 그가 탄을 모두 소비할 때까지 기다렸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의 권총에서 탄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안나는 다시 몸을 빼 그에게 사격을 가했다. 총알은 그의 왼쪽 눈알에 빨려들어갔고, 그는 덜린보다 고통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두 연구원들의 죽음을 확인한 안나는 곧바로 시체들의 바다를 뛰어넘어 아이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괜찮아? 엘...아니 아가야?"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저 추욱 늘어져 있었다. 안나가 손가락으로 목 위를 짚었다. 아직 맥박은 뛰고 있었다. 목 뒤를 확인하자, '02'란 작고 검은 숫자가 또렷하게 쓰여 있었다.

"엘사....."

결국 그 사람이 아닌 아이에게 이름을 불렀다. 

"제발 눈 좀 떠봐..."

안나가 아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안나가 기억하던 엘사와 똑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보다도 정직하게, 안나에게 진실을 가르쳤다. 안나는 아이를 벽에 기대어 앉혔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아있을 터였다.

"그 씨발련, 잡히면 뒤졌어. 씨발 좆같은 년."

어느덧 안나는 초면일 여자 연구원을 욕하고 있었다. 총을 챙긴 안나는 제시카가 사라진 복도의 끝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안나는 아이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랬다.




45.

3층은 2층과 다른 노선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한번 틀고 다시 왼쪽으로 틀어야 엘리베이터 입구가 나오는 구조였다. 당연하게도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은 엘리베이터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안나는 오로지 그 여자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엘사를 찾기 위한 열쇠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내팽개친 제시카는 안나의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킬 리스트에 적혀져 있었다.

코너를 두 번 돌자,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주먹이 부서질 만큼 두들기며 울부짖는 그녀가 보였다. 숨이 찬 안나는 속도를 줄여 천천히, 그리고 일부러 소리를 내며 걸었다. 두려움이 커지도록,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빠지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안나의 군화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제시카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안나는 글록을 그녀의 이마에 갖다대었다. 그녀가 울먹이자, 안나는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며 총구를 약간 내렸다.

"제발 살려주..."

"야."

안나가 터져나오려는 울화통을 애써 참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새끼야?"

그녀가 당황한 듯 "어?" 라고 말했다.
안나는 그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글록을 가슴에 향한채로, 17발을 모두 쏟아부었다. 그 충격으로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에 처박혔다. 탄창을 교체한 안나는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새...끼"

안나가 뒤를 돌아보자, 두 눈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녀가 있었다.

"뭐."

"악...마..새끼"

겨우 짜낸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안나를 저주했다.

"...그 말이 나와?"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안나를 향해 눈을 부릅 뜬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46.

다시 아이가 있는 곳으로 코너를 돌려던 안나였지만, 이미 그곳은 2층에서 본 것 그 이상의 마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체 조각들이 피를 흩뿌리며 벽에 부닥치고 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찾은 아이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주변으로 붉은 눈보라가 일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이런 비상식이 안나에겐 상식적인 일이 되었다. 하지만 저 아이가 자신에게 적대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적대하는 것으로 이미 2층에서부터 그 참극을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불은 태웠고, 나무는 찔렀으며, 바위는 으깼다. 어찌되었든 저 아이는 현재까지 유일한 패키지2였고, 엘사와의 접점이 있을지도 모를 아이였다.

안나는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아이들의 능력이 무서웠지만, 결국 아이에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방탄복도 입고있으며, 겨우 능력을 써도 눈보라에 휘말려 날아가는 것 이외에는 물리적인 능력은 아닌 것 같았다. 날아가도 낙법으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 안나였지만, 미지의 무기를 가진 아이에게 향한 두려움은 숙련된 전직 요원도 감출 수 없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카멜백에서 물을 조금 빨아마신 안나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향해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아이 주변의 눈보라가 약해졌다.

"아."

아이가 안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이미 앞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봐버렸으리라. 또한 안나 자신도 그들과 다름 없는 총, 더 크고, 더 많은 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저, 흐끅, 제가."

안나가 아이 앞에 멈춰 섰다.

"제가 안했는데...저 사람들이."

몸을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같이 했다. 머릿속에 각인된 엘사의 기억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땋은 머리가 아니었지만, 만약 엘사가 머리를 풀고 있었다면 이 아이와 판박이였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겁에 질린 아이는 계속 딸꾹질을 했고, 안나는 잠자코 옆으로 움직여 아이에게서 시체들이 보이지 않게 했다. 방에 다시 눕혀 놓을 걸 하고 후회가 차올랐다. 메가라의 인맥을 빌려 정신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다. 아마 안나의 말이라면 그녀는 들어줄 게 분명했다.

"괜찮니?"

아이의 눈물 맺힌 두 눈이 똥그래졌다.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건지 안나로선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 어떤 것보다도 다채로울 것이니까. 하지만 이런 건물에서 다채로움이 살아있는지 의문이었다. 아이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제가 안했어요...정말이에요."

세상 서글픈 목소리로 울고 있는 아이였다. 안나의 몸이 완전히 시체들을 가리지 못했는지, 아이가 안나의 눈을 피해 옆을 힐끔 쳐다 보았다.

"정신 차려 보니까 다들..."

아이의 눈이 떨고 있었다. 자존감이 결여된 듯 연신 '제가 안했어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나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안나는 오로라에게 했던 당근 주기 법칙을 기억했다. 다만 이번의 경우엔 당근이 아니라 마음의 이불을 덮어 줘야 했다.

"알아, 네 잘못 아니야."

자꾸 고개가 앞으로 숙여져 목이 뻐근하자, 안나는 헬멧에서 투시경을 분리해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가 했어."

아이가 충격을 먹은 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에겐 당연할지도 모를 사실이었다. 아이들에겐 죽음이란 생소한 의미의 긴 밤과 같았다. 혼란스러운게 당연했다. 안나가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안나도 이 아이처럼 혼란에 빠져 있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어..저.."

아이의 딸꾹질이 잦아들었지만,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떻게 안나를 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안나는 자신의 비밀 상자를 조금 열기로 했다. 그런 다음 사과하기로 했다. 어찌 되었건 죽은 연구원의 말처럼 안나가 이 일의 원인이었다. 안나는 몸을 일으켜 마스크와 복면을 벗었다. 갑갑했던 머리가 찬 공기를 반기자 옅은 두통이 사그라들었다. 안나는 고개를 돌려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안나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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