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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Praying prey 17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02 22:08:29
조회 625 추천 58 댓글 13

1화[유혈]


2화[고어]


3~4화[고어]


5~7화(1)


5~7화(2)


8~9화



12~13화[유혈/고어]


14~15화[유혈/고어]


16화







60.


"연구소는 개작살에, 아파트로 보낸 직원들도 개작살...."

한스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아톤의 본사 회장실에서 모스크바의 전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이스볼이 담긴 잔에서 위스키가 찰랑거렸다. 그는 한 번 더 잔을 홀짝였다. 그 다음 예고도 없이 뒤에 서 있는 비서에게 내던졌다. 유리잔이 비서의 머리에 깨져 파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비서의 머리는 수컷 사자의 머리처럼 헝클어져 있었고, 유리잔을 맞은 이마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예사 하룻일이 아닌 것처럼, 그녀는 태블릿을 들고 무표정으로 한스를 일관하고 있었다.

"제인, 당신 생각은 어때요?"

비서인 제인은 태블릿을 조작해 한스의 떡갈나무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직접 갖다주지 않아 무례하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나, 한스는 그런 자잘한 행동에 신경쓰는 사내는 아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입안한 프로젝트가 반쯤 뭉개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연구소를 습격한 사람은 소란스러웠지만, 한스의 직속 명령을 받는 연구소 내 야수부대를 괴멸시켰으며, 연구소 내의 혼란을 유도했고, 핵심 연구자인 그레이는 자살 '당했다'. 그리고 연구소의 최고 우성 개체인 2호 개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남은 야수부대는 그 습격자의 추적하는데 실패했으며, 수송헬기의 테일로터가 부서지는걸 지켜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회장님이 벌이신 일로 경찰에서 저흴 주시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경찰이야 그쪽에 연줄이 있으니 적당히 먹여 주면 조용해질 겁니다. 언론도 접촉해서 일이 퍼지지 않게 조치해 두세요."

제인이 알겠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키패드를 몇번 두드렸다. 아직 남아있는 야수부대 부장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메세지를 보낸 제인은 치마 뒷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회장님이 직접 가져다주신 샘플들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벌써 결과가 나왔어요?"

"회장님께서 황금 초승달에 시찰을 나가실 동안 바이오연구부서에서 일치감치 유전자 대조를 마쳐 보냈습니다."


한스가 테이블 위의 태블릿을 집어 화면을 움직였다. 그가 샘플을 구하려 했던 건 '개인의 유전자를 통해 그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체력, 지능까지 모두 복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기존에 있던 능력을 발현하는 케이스가 아닌, 단순히 문서를 복사하는 것처럼, 사람을 통째로 복사할 수 있나 싶은 호기심이었다. 몇년 전 중국에선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복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윤리적인 선을 넘었다고 세상은 그 과학자를 질타했다. 결국 그 과학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남은 유전학자들은 그 블랙스완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레이는 찬성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며, 그 대토론이 끝나고 며칠 뒤,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한스가 그레이와 그의 연구팀에게 접촉해 제의를 했고, 그들은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레이의 인적드문 야산에 연구소에서 실험을 하게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스스로 DNA를 수집하기도 했지만, 이따금 한스가 그들에게 DNA 샘플을 가져다주곤 했다. 그런데 그 몇백, 몇 천억에 해당하는 프로젝트가, 어느 한 알파킬러 때문에 상당한 손실을 입고야 말았고, 한스는 다시 한번 신중하게 그 알파킬러와 2호 개체를 잡을지 생각해냈다. 1호 개체는 따로 격리해 두어 무사했다. 


다른 개체들과 달리 1호와 2호는, 한스가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의 DNA를 가져와 만든 산물이었다. 그 사람은 한스의 사랑을 거부했다. 한스는 그 사람을 아무도 모르는 지구 어딘가에 감금시켰고, 이따금 그 사람을 찾아가곤 했다. 그 사람은 이제 필요가 거의 없어졌다. 1호 개체는 그 사람을 닮지 않았고, 능력이 위험했다. 2호 개체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를 테니, 자신의 말을 잘 듣게 할 수 있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머지 않아 평생 동안 가족을 부르짖고, 가족의 그림을 그렸던 그 사람은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여유가 된다면, 그 가족들도 처리할 생각이었다.


태블릿의 화면에는 DNA 샘플들과, 2호 개체의 DNA와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와 있었다. 우성 개체인 2호 개체의 유전자 베이스에 각 샘플들의 DNA를 덧입혀 2호 개체의 능력과, 샘플 주인들의 체력과, 지능을 결합해 새로운 개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운 좋게도, 적합할 DNA 샘플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레이가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이미 그의 연구를 백업할 연구소들은 알래스카, 인도, 아이슬란드에서 겨우 탈출에 성공한 연구원들의 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레이의 빈 자리는 채워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DNA 샘플들은 전반적으로 2호 개체의 DNA와 어느 정도 호환이 가능한 구조였다. 가위질을 적게 해도 우성 개체로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까지 보았다면, 한스는 그저 특출난 신체 능력이 우성 개체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 태블릿을 제인에게 돌려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가장 맨 아래에 있는, 유전적 정보 일치 확률이 적혀진 표에 주목했다. 일종의 친자확인 검사와 비슷한 부류의 검사였다. 한스는 그 작은 표를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제인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실실 웃어대는 회장의 모습에 빗질을 멈췄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광대 분장을 한 것처럼, 그가 느끼는 표정과 감정은 어딘가 정신이 나가 있었다. 초승달에서 MI5요원의 혓바닥을 잘라 물리고 있는 것을 본 뒤로 제인은 사직서를 제출할 준비를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지 않으면, 다음엔 유리잔이 아니라 총알일 지도 모른다. 제인은 빗을 다시 정장 안쪽 주머니에 넣고, 회장이 웃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제인, 우리 보안부서가 그... 협곡에서 죽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디 소속인지 알아봤어요?"

"네, 처음엔 FSB 소속인줄 알았지만, 무장과 패치로 보건데 CIA 산하의 SAD인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저희가 연구소에서 색출했던 끄나풀의 유품에서 나온 패치와 동일했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언론하고 접촉해봐요. 내용은 이렇게 하자고요. 'CIA 산하 부대가 러시아의 한 기업의 사유지 내에서 소동을 벌이다... 경비들에게 사살 당했고, 남은 생존자들이 크라노야르스크 근교의 아파트에서 주민들을 대학살했다.' 이렇게요."


"저희 일이 드러날  수도 있지 않나요?"

"제인, 그건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 이것들 모두 다, 제 계획에 들어 있어요."


방첩 기관만큼은 아니어도, 한스 또한 그에 준하는 정보수집 부서를 아톤 내에 갖추고 있었다. CIA 끄나풀이 일전에 색출된 이상, 그들에게 브레이크포인트도 없이 궁지에 몰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한스는 작은 비극을 상상했다. 희극보단 비극이 더 격정적이고, 비참할 테니까. 그의 머릿속에서 작은 비극의 스토리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61.

제인, 부탁 하나만 더 하죠.

...전 지금 다친 사람이에요.

큰 부탁은 아닙니다. 1호 개체를 데려오세요. 한스 삼촌이 부른다고 하면 큰 위험은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납치 한 건만 처리해 주시죠.



62.

으츠츠츠... 샤워실에서 나온 엘사가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나는 침실에서 담요를 가져와 엘사의 몸에 둘둘 말았다. 엘사는 그 촉감이 기분이 좋았는지, 총총거리며 거실을 노닐었다.

"연락 온 건 없어요?"

안나는 리넨 셔츠에 파자마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오로라는 고개를 저으며 안나에게 핫라인 스마트폰을 돌려 줬다. 상단의 상태 바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안나는 아까 꺼내 놓은 케이크를 식탁에 놓았고, 만두와 즉석 스파게티들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곧 맛있는 냄새가 부엌을 타고 집안에 은은히 퍼졌다.

"카케? 카이크?"

엘사는 킁킁거리며 안나가 뜯어놓은 포장지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여전히 엘사에겐 세상의 단어는 너무 어려운 장벽이었다. 쇼콜, 스칼렛 언니와 오로라 언니의 이름처럼, 작고 붉은 토막이 내기엔 너무 부드러운 이름들이었다. 엘사, 엘사, 정작 새로 얻은 이름은 잘 발음이 되는 것이 엘사에겐 궁금할 따름이었다.

"케이크, 케~잌~흐."

안나가 친절히 발음을 늘여뜨리자, 엘사는 먹이를 받아먹은 아기 새처럼 조잘거리며 케이크를 발음한다. 안나가 엘사를 식탁 앞 의자에 앉히고, 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 접시에 덜었다. 엘사의 눈이 똥그래지며 케이크에서 흐르는 초코 크림에 주목한다. 일반 아이라면 섣불리 먹어보려 하겠지만, 엘사는 꾹 참고 안나의 지시를 기다렸다.

"아직 안 돼, 밥 먼저, 간식은 밥 이후에."

"네...."

조금 풀이 죽었지만 엘사는 안나의 말을 따랐다. 오로라가 전자레인지에서 음식들을 꺼내 식탁에 내려놓았고, 세 사람은 단촐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엘사의 포크질을 도와주며 안나도 며칠간 먹지 못해 쪼그라든 위장에 음식을 보급했다. 고장났던 무전기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한 건 엘사에게 케이크를 조금씩 떼어 먹여줄 때였다. 안나는 오로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침실로 들어와 문을 잠궜다.

"블랙퀸, 들려요? 블랙퀸."

"지금 어디야!"

메가라는 콜사인도 부르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

"패키지 2, 3 회수 후 ASIC의 지원으로 케메로보 세이프하우스에서 대기 중입니다."

"7시간 째 연락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던 거야? A팀은 왜 다 죽어서 뉴스에 떴냔 말이야!"

뉴스?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그들이 왜 뉴스에 뜬단 말인가? 안나는 거실로 나와 80인치 벽걸이 TV를 켰다. 러시아어로 된 뉴스가 화면에 송출되었다. 화면 아래 자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CIA 산하 특수부대원들이 기업의 사유지에서 경비에게 사살당하다.]

[남은 생존자들이 근교 아파트에서 전쟁범죄 일으켜...]

러시아에서 길게 체류한 오로라도 아나운서의 보도를 듣고 거실로 나왔다. 부엌에는 두 사람이 사라져 멀뚱멀뚱 케이크를 오물거리는 엘사만 남아 있었다.

"일이 터지고 말았네."

안나가 중얼거리며 화면을 주시했다. 안나가 새벽에 협곡에서 본 것과 동일한 시체들이 모자이크도 없이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오로라, 잠깐 엘사 데리고 침실에 가 있어줘요. 엘사가 이런 거 보면 안 돼니까 잠시만 부탁해요."

오로라는 말 없이 엘사에게 돌아가 영문도 모르는 엘사를 안아들고 침실에 들어갔다. 침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안나는 무전기에 입을 가져갔다.

"아톤 측에서 A팀을 죽인 것 같아요."

"네가 죽인 게 아니라?"

"제가 무슨 슈퍼맨인줄 알아요? 그 정도 병력이 한꺼번에 덤비면 저도 죽어요."

"상부에선 스칼렛 네가 변절했다고 확정하는 분위기야."

안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를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변절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퇴사한 사람에게 변절이란 단어는 쓸 수 없을 텐데, 이 조직은 아직도 안나를 휴직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제가 그럼 뭐하러 박격포까지 들고 가요? 지금 부서졌긴 했지만..."

"TV 주시해. 지금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있으니까."

안나는 고개를 들어 뉴스를 계속 확인했다. 어느새 화면이 바뀌어 러시아 국방부장관이 공식 석상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난 새벽에 국내에서 비밀 공작을 벌인 미 CIA의 행동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감추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국제 조약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아톤의 경비들은 그에 응당하는 조치를 취했음을 알립니다. 또한, CIA의 명확한 입장이 밝혀지지 않는 이 상황에서, 저흰 미국과의 모든 채널을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보고 있어?"

무전기에서 메가라가 식식대며 물었다.

"일단 메가라, 난 예전 방식을 따랐을 뿐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지휘하는 A팀, 내가 안 죽였어요."

"알아, 안다고. 나도 잘 알아. 네가 안 그럴 거라는 거. 근데, 지금 그 시체에서 뭐가 나온 줄 알아?"

"뭐가 나왔는데요?"

무전기 너머에서 메가라가 떨린 숨을 쉬고 있는지, 잡음이 섞인 숨소리가 들렸다.

"338 라푸아 매그넘. 네가 컷아웃에게 주문했던 샤이텍 사양도 라푸아 구경이었잖아."

안나는 할 말을 잃었다. 협곡 위에서 보았을 때, 안나는 모두가 죽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샤이텍의 탄환도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안나가 아군을 식별하지 않을 일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왜? 안나의 입안이 바싹 타들었다. 민간군사기업 직원이었던 안나는 순식간에 CIA의 리스트에 올라가 추적을 당해 '폐기'될 상황에 처했다. 바디캠이 있다지만 러시아와 미국의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통신 채널을 차단한다는 것은 즉 전쟁 직전까지 다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제발, 메가라. 나 아니에요. 나 못 믿겠어요? 나 이거 다 찍어놨어요. 말은 안했는데, 혹시 몰라서 바디캠으로 다 찍어놨다고!"

안나의 목소리가 한껏 격양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요. 이미 확정된 분위기라고 하면 100% 날 쫓아오겠죠. 당당하게 만나 봅시다. 접선 장소나 알려줘요. 그쪽으로 가서 패키지 2와 3, 그리고 컷아웃과 바디캠을 넘길 테니까.."

"..재머도 넘겨야 하는거 알지?"

메가라의 말이 부드러워졌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데요?"

"카자흐스탄, 에키바스투즈의 쉬솀베코프 가의 피노키오 카페."

16시간 줄게, 그 이상으론 나도 감당할 수 없어.



63.

계획이 뭐에요?

당신들을 CIA 친구들한테 넘겨야 할 일이 생겼어요.

저흰 여권도 못 챙겨 왔는데요?

아는 친구가 룹촙스크에 있으니까 가보자고요. 부탁을 들어줄지 의문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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