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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18

La vie(175.195) 2020.02.14 13: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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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 보다 정신없었던 여름이 가고 변화의 계절 가을이 왔다. 안나는 지금 강의실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아마도 테러 사건 이후 프랑스에서 제일 공신력 있는 언론사 'Le Monde' 에 안나가 올라프를 끌어안아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탓일 것이다.



“안나! 이거 너 맞지? 진짜 대단하다, 멋져!”



“팔은 그 때 다친 거야? 보상은 제대로 받았어?”



안나는 쏟아지는 관심과 질문에 그저 허허 웃으며 대응할 뿐이었다. 그 사건 후에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는지 여러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 했지만, 안나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딱히 할 말도 없었기에 모두 거절했다. 당연히 부모님도 이를 알게 되어 자랑스러워 하셨다. 약간의 꾸지람도 들었지만...



그 후로 엘사와의 관계는 그 어느 때 보다 청신호를 띄고 있었다. 물론 뭔가 진전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엘사가 예전보다 더 솔직하게 감정 표현을 해주긴 했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안나는 만족했다. 애초에 뭘 바라고 엘사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엘사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나는 행복했다. 엘사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엘사가 그걸 허락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안나는 만족했다.



이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안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남자들과 했던 연애는 처음엔 정신적인 사랑이 기반이 되어 시작되긴 했지만 항상 그 끝은 육체적인 사랑을 향하곤 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안나는 그런 욕구가 기반이 되지 않은 이러한 감정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플라토닉 러브인가?



물론 일전에 그렇고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지만... 안나는 그건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엘사랑 그런걸... 하면 물론 자신은 좋긴 하겠지만 엘사가 원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뭐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니 혼자 김칫국 마시는 거나 다름없지만.



안나는 그렇게 한참을 시달리다 강의가 시작되어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바캉스 기간이 끝나고 첫 번째 강의인지라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안나는 얼른 강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모처럼 엘사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안나는 라푼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바로 엘사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디저트라도 좀 사가야지, 안나는 빵집에 들러 엘사가 좋아하는 퐁당 오 쇼콜라를 샀다. 생긴 거랑 다르게 입맛은 완전 애란 말이야. 물론 안나도 단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터라 둘은 파리에서 유명한 카페들의 디저트란 디저트를 도장깨기하듯 섭렵하고 있었다. 맛집 탐방을 가장한 데이트. 안나의 귀여운 계략이었다.



“언니 나 왔어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딱 타이밍에 맞게 잘 왔네. 엘사가 따뜻하게 안나를 맞이했다.



“메가라 언니는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 늦게 들어 온다나봐.”



“흐응, 디저트 많이 사왔는데 어쩔 수 없네. 우리끼리 다 먹어버려요!”



두 사람은 단란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티타임을 가지며 모처럼 여유로운 한 때를 보냈다.



“언니 이제 곧 졸업이죠? 졸업식 언제예요? 아님 졸업 전시?”



“응 근데 프랑스에서는 딱히 졸업식이 큰 행사는 아니라서. 그냥 학위수여식 같은 느낌? 졸전도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아. 과제전 같은 느낌이지.”



“그래도 갈래요! 언니 졸업 작품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도 누군가는 가서 축하해줘야죠. 메가라 언니랑 라푼젤이랑 같이 갈게요.”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엘사는 그렇게 말해주는 안나가 고마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졸업식이든 입학식이든 축하해주러 오는 이 없이 항상 혼자였기에 더욱.



티타임까지 마친 후, 엘사는 뒷정리를 시작했다. 안나도 돕고 싶었지만 아직 손이 다 낫지 않아서 그럴 수 없었다. 안나는 식탁에 앉아 설거지를 하는 엘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붕대를 갈기 위해 주섬주섬 가방에서 새 붕대를 꺼냈다.



“언니 혹시 가위 어디 있어요?”



“가위? 내 방 책상에 있을 텐데. 붕대 갈려고? 내가 해줄게 기다려.”



“아니 아니 혼자 할 수 있어요! 방 들어가도 되죠?”



안나는 엘사의 대답도 듣기 전에 엘사의 방으로 향했다.



엘사의 방은 여전히 깔끔했다. 비록 책상 위에는 업무 관련 여러 서류와 공부의 흔적들이 즐비했지만.



책상 위에 있다고 했는데... 물건 찾는데 젬병인 안나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엘사의 방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책상 위 벽에는 안나가 찍어 준 사진이 잘 보이게 붙어 있었다. 안나의 입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윽고 시선이 책장을 향했고, 안나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찬찬히 살폈다. 온갖 건축 관련 책부터 프랑스어 관련 교재까지... 대부분이 학업에 관련된 책이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책 한 권. 안나는 저도 모르게 그 책을 집어 들었다.



[La Belle et la bête]



미녀와 야수..? 이거 애들 동화책 아닌가? 소설로도 있나 보네. 안나는 무심코 책을 팔랑거리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가 빠르게 촤라락 넘어가다 어느 페이지에서 뚝, 하고 멈췄다. 책 사이에 웬 쪽지가 하나 껴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안나는 무의식중에 쪽지를 집어 들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J’aiune infinie tendresse pour toi, j’aurai toujours, toute ma vie. -Ta chérie, Belle.]



쪽지의 내용은 누가 봐도 애인이 쓴 것 같았다. 근데 벨...? 이거 여자 이름 아닌가? 안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안나~ 가위 못 찾았어?”



안나는 엘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얼른 책을 제자리에 꽂자마자 엘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하하..! 제가 뭐 찾는데는 젬병이라서요.”



“책상이 좀 어수선하지? 여기 있네. 가자, 붕대 갈아줄게.”



다행히 엘사는 안나의 어색한 태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





안나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꽃다발과 고급 쇼콜라트리(chocolaterie)에서 산 초콜렛을 들고 메가라, 라푼젤과 함께 엘사의 학교로 향했다.



분명 프랑스에서는 졸업식이 큰 행사가 아니라고 했는데, 학교는 졸업생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족, 친지들로 북적였다. 뭐야 진짜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라고 안나는 생각했다.



원래는 엘사의 말이 맞다. 프랑스에서 졸업식은 크게 의미 있는 행사는 아니다. 기껏해야 학위수여식에 불과하지만, 엘사가 다니는 학교는 프랑스 내에서도 엘리트만 다닌다는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커 축하해주러 오는 이들이 많은 것이었다.



“축하해요!”



안나가 엘사의 품에 꽃다발과 초콜렛을 안겨주며 말했다. 엘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 쑥쓰러워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와우 언니 그랑제꼴 졸업이라니. 이제 탄탄대로 걷는 일만 남았네요. 축하해요.”



“친구야, 이 언니는 이제 걱정이 없다. 그동안 네가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축하해.”



라푼젤과 메가라도 각각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지 뭐... 엘사가 겸손을 떨며 말했다. 일행은 엘사의 졸업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장에 다다라 엘사의 자리로 향하던 일행은 앞장서던 엘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엘사의 작품 앞에 누군가 서있었다. 안나는 엘사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었지만, 뒷모습만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벨...?”



이윽고 엘사의 입에서 어디서 들어 본 것만 같은 이름이 새어나왔다. 벨? 저 이름을 어디에서 들어봤더라... 안나는 기억을 되짚다 곧 이름의 출처를 떠올려냈다.








______


책 속 쪽지에 적혀있는 문장 뜻은


[너에겐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영원히 그럴거야. 평생동안. -너의 사랑하는 벨이.]


라는 뜻이고 픽 제목을 따온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의 명대사중 하나야ㅎㅎ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 쥬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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