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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Praying prey 52~53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9 22:25:36
조회 376 추천 52 댓글 9



1~49화 링크.

https://sulgal.tistory.com/m/2109



50~51화






136.



30분 뒤, 눈물 범벅이 된 안나와 잠들어 버린 엘사를 영안실 문을 열고 들어온 메가라와 오로라가 부축하고, 안아들었다. 뒤이어 들어온 한나는 케이스 속의 이두나의 손을 잠시 잡더니, 이내 케이스를 밀어넣고 멜리사의 침낭을 등에 업어 병실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은 이따금 이질적인 시선을 보냈다. 한나가 들키지 않게 바람을 만들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도구 내지 잡동사니들을 엉망진창으로 날려 보내 화풀이를 한 것을 제외하면 남은 두 사람은 그들을 깔끔히 무시하고 지나왔다.




메가라가 새로 교체한 침대 시트에 안나를 눕혔다. 오로라는 엘사를 안나의 오른쪽에 눕혔고 한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멜리사를 안나의 왼쪽에 눕혔다. 안나의 침대는 이전보다 훨씬 좁아져 알이 가득 차 어수선한 새둥지를 보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말렸던 거구나."

안나가 혼잣말을 중얼걸렸다.

"이제 후회가 되지? 어? 말 좀 들으라니까.."

안나에게 틱틱거렸지만, 어느새 두터운 이불을 가져와 안나와 엘사 위로 찬 공기가 들어오지 않게 덮어준 한나가 있었다.


"저....근데."


오로라가 수업에 질문이 있다는 듯 손을 들었다.


"저기...저 침낭 속 애는..."


"오로라,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만, 그게 완벽하게 맞는 건 아니예요."


메가라가 혹시모를 오로라의 오해를 미리 차단했다.


"그래도...위험하지 않을까요?"


오로라의 발언은 상식적인 측면에서 매우 합리적이었다. 오로라는 메가라에게서 안나와 엘사, 그리고 저 멜리사란 아이에 대한 정보를 몇 개 들은 바 있었다. 시체가 썩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섭리를 벗어난 것과도 같았다. 이미 아이들의 능력이 상식을 벗어난 것이어도, 죽은 몸을 가까이 데리고 있는 것은 정서적으로 좋지 않을 뿐더러, 혹시 몰라 일이 잘못 되면 병에 걸릴 수도 있었다.


"저 아이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잖아요."


"맞아, 나도 엘사만큼은 아니지만, 하루 세 번 영안실에서 엘사와 멜리사와 같이 있었어."


한나가 메가라의 의견에 동의했다. 엘사를 제때 영안실에서 데려오지 않은 것을 잠시 후회한 한나였지만, 엘사가 능력으로 버틸 것 같았고, 한나 또한 능력을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되려 쓰려 했다간 영안실이 날아가 버릴 것이고, 엘사의 작은 실험은 시작도 못하고 끝날수도 있었다.


"언제까지 저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순 없잖아요..."


"오로라."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엘사를 꼭 안고 있는 안나가 말했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 오로라가 걱정해 주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난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뭘로 추가 입원하려고?"

메가라는 안나의 전 관리자답게 안나의 의중을 읽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멜리사에 한정되지 않을 얘기일 것이다.


"그건 메가라 네가 해줘야지. 내가 지금 무슨 힘이 있겠어?"

"내가?"


"난 지금 총 좀 잘 쏘는 민간인일 뿐이야, 그렇지?"


안나가 오로라와 한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네....일단은요."


"틀린 말은 아니지."

두 사람 모두 안나의 의견에 동의의 뜻을 비쳤다.


"....알았어. 일단 네가 정신 착란 증세가 있었으니까 그 쪽으로 입원 기간을 늘려 볼게."


"아, 또 부탁할 게 있어."


"뭔데?"


"내 핫라인, 네가 가지고 있지?"


안나는 핫라인 속의 마지막 사진을 떠올렸다. 진짜 엘사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안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체격과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한스는 절대 찾지 못할 것이라 했지만, 지금 현 상황에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내가 가지고 있지는 않아. 대신 우리 정보부에서 해독하고 있어. 찾는 거라도 있어?"


"...너도 마지막 사진 보았지?"


"음, 봤어. 네 이름이 써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 엘사랑 비슷한 느낌이 들던데, 아는 사람이야?"


안나는 엘사의 몸을 채 덮지 못한 이불들을 고쳐 덮었다. 엘사는 안나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안정적인 숨소리가 가습기의 분사음 소리로 스며들었다.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 언니일 것 같아. 그 사진으로 위치를 찾아줄 수 있어? EXIF 데이터 같은 걸로 말이야."


"엑시...프? 그게 뭐예요?"


오로라는 안나의 입에서 나온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나는 그런 오로라를 미심쩍이 바라보았다.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사진 속에 다양한 정보들을 담을 수 이는 이미지 형식의 정보들이예요."


"하지만 위치까지는 못 찾지 않을까요?"


"핫라인이 위치 정보를 지원하는 기종인지 알아봐야겠죠."


메가라가 담담하게 오로라의 질문에 답했다. 한나는 깨달은 게 있어 입술을 동그랗게 만 오로라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유지했지만, 내심 그런 신비한 기술이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ASIC하고 같이 연계해서 찾아줬으면 좋겠어. 이번 일에 휘말린 것도 있으니까."


"ASIC에서도 단단히 벼르고 있어. ASIC이 기업이긴 해도, 거의 소집단 수준이어서 팀원 하나하나가 중요시되거든. 이번 일들에 대해서 ASIC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래."


자문 기업, 그리고 방첩 기관이 합세해서 수색한다면 진짜 엘사를 찾을 가능성이 올라갈 수도 있다. 한스도, 아톤도 결국 사람과 기업이기에, 숨어있는 허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안나는 확신했다.


"꼭 찾아줘."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볼게. 아, 당분간 이 휴대폰을 써."


메가라가 서류 가방에서 스마트폰과 충전기 세 개를 꺼냈다.


"도청하려고?"


"아니,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지금 네 장비들과 기존 휴대폰은 우리가 모두 입수해서 조사 중이라 그래."


메가라가 안나, 오로라, 그리고 한나 순으로 스마트폰을 한 대씩 쥐어 주었다.


"그리고 오로라 씨의 짐은 저희가 사람을 불러서 가져오고 있어요. 3일 뒤면 도착할 예정이니까 알아두고 있어요."


"하지만 전 이곳 런던에 집이 없는데요...."


오로라가 난처하게 웃었다. 오로라는 갑작스럽게 복귀가 결정되었고, 그걸 준비할 새도 없이 인질로 잡혀 있다가 안나에 의해 도망치다시피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짐은 있어도, 집이 없었다.


"환전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3주 동안은 모텔에서 자긴 했어도..."


"그럼, 오로라.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안나가 오로라에게 말했다.


"블루라운드의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잠깐 생활하거나, 아니면 이두나....이젠 우리집이지. 그곳에서 체류하고 있어도 돼요."


"정말요?"


오로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숙소는 일반 직원들이라면 카드키를 이용해 최대 4일까지 머무를 수 있었다. 안나의 경우엔 카드키 발급을 받지 못했고, 대신 이두나의 카드키를 이용해 체류할 수 있었다. 신입 사원이었던 안나도 겨우 체류할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좌천된 벽지 컷아웃인 오로라가 더더욱 이용할 방법은 지금으로썬 존재하지 않았다. 블루라운드의 숙소 방식을 알고 있던 오로라는, 의심도 없이 순순히 집에 체류를 허용하는 안나가 대인배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살아계셨다면 그랬을 거예요. 지금은...사실상 제가 집주인이 되버린 것 같기도 하고요."


"진짜 지내도 돼요?"


"블루라운드 숙소에 짐을 모두 두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요."


안나가 말했고, 메가라가 작은 쪽지를 오로라에게 건넸다.


"집 주소까지 캐낸 거야?"


"너와 다르게 이두나 씨는 공식적인 신상이 드러나 있잖아. 복사키가 어딨는지도 알아냈거든?"


안나는 힘없는 탄식을 내뱉으며, 품 안에서 꾸물거리는 엘사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정돈했다.


"한나 씨도 오로라씨 따라서 집으로 가보는 건 어때요?"

메가라가 한나에게 말했지만,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거기 있어도 할 수 있는게 없어. 아는 것도 없는데...차라리 여기 있는게 더 안심이 돼. 안나를 지켜줄 수도 있고..."


"한나, 네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나한텐 엘사가 있어. 그리고 내가 지금 몸이 안 좋긴 하지만, 사람 하나 못 담구겠어? 그리고 오로라도 아직 위험한 상태니까, 네가 가서 잘 보호해 줘."


"내 걱정은 안 해주는 거야?"


한나가 섭섭한 듯이 물었다. 시츄 같은 한나의 모습에 안나는 한나에게 손을 뻗었다. 한나는 주춤거리면서도 안나의 손을 잡았다. 안나의 거친 손에 비해, 한나의 손은 잡티 없이 깨끗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난 여기 없었어. 그러니까 오로라를 지켜달라는 거야. 그래줄 수 있지?"


언제까지 오로라가 이곳에 머물 순 없었다. 블루라운드로 복귀하려면 사장인 이두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지금 이두나는 오로라에게 무슨 일을 추천해 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일정한 거주지가 필요했고, 오로라를 보호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멜리사가 죽어갔을 때, 안나는 남은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총을 들고 달려간 사람이 한나란 사실을 알고 있엇다. 그런 안나의 의도를 알아챈 것인지, 한나는 잠시 눈썹을 치켜들고 천장을 향해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안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고마워, 오로라는 카페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맛있는 커피들을 만들어 줄거야. 그렇죠, 오로라?"


안나가 넌지시 묻자, 오로라는 한나의 팔을 잡았다.


"그야 물론이죠!"


한나는 갑작스러운 오로라의 스킨십에 몸을 움츠렸지만, 이내 풀어진 눈빛으로 오로라를 바라보았다.


"아, 메가라. 너도 여의치 않으면.."


안나는 오로라의 말을 토대로 지금 이곳이 런던 내의 병원이란 걸 알았다. 그렇다는 뜻은, 메가라는 지금 영국에 파견을 나온 상태라는 뜻이 되었다. 메가라가 단순히 블루라운드의 숙소로 들어가 생활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이두나의 집, 아렌의 집에서 잠시 머물러 주길 바랬다. 메가라가 현재 관리자의 직책에 있더라도, 한 때 안나와 같이 총을 만지고 먼지를 맞아본 적이 있엇다. 세 사람이 집에 체류하면서 병문안을 찾아올 수 있다면, 혹시 모를 침입과 암살에 대비할 수 있었다.

"나도 같이 가야 해?"


"굳이 지부까지 갈 필요가 있어? 거기 있으면 얼마나 답답한지 너도 잘 알잖아. 그냥...어지르지 않는 선에서 머물러 줘. 정보 탐색과 보고서는 메일로 해결할 수 있잖아."


메가라는 몸을 굽혀 서류 가방을 집은 다음 몸을 일으켰다. 딱딱하고 차가운 지부 내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 싫어서, 모텔에 방을 잡아 자료를 쌓아놓고 후속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메가라는 지난 3주간 일촉즉발의 여론전을 벌여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겨우 연락이 닿은 필립스에게 '특제 커피 레시피'를 받아낼 정도로, 메가라의 신경은 여느 때보다 곤두세워져 있었다. 메가라에게 필요한 것은 시끄러운 타자 소리와 무감정한 안보 기계들의 감옥보단, 조금은 여유롭고 고요하며, 종이 냄새가 거의 없는 곳을 원했다. 때마침 안나가 제안을 했었고, 메가라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가 퇴원할 때 까지만이야."


"입원 기간을 더 늘려도 되나?"


무거운 상황에서, 안나는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아직도 상황은 최악이었고, 안나는 이 울적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벗겨내고 싶었다. 메가라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씁쓸히 웃으며 가장 먼저 병실을 나섰다.


"오로라, 그리고 한나, 메가라를 따라가면 될 거야. 생소하겠지만... 메가라가 열쇠를 가지고 있을 거야. 가서 좀 쉬다가 내일 아침이건 모레 아침이건 내키는 대로 찾아와. 내가 어딜 가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안나는 왼쪽에 눕혀진 멜리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딜 갈 수도 없어버렸거든."


안나는 손을 뻗어 멜리사의 볼을 매만졌다. 차가웠지만, 여전히 생기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멜리사를 안나는 슬퍼하며 바라보았다.


"안나, 그럼 내일 아침에 올게요. 밥 잘 먹고, 약 꼭 챙겨 먹어야 해요. 알았죠?"


"엘사 울리지 마. 알았어?"


오로라는 안나의 건강을 생각했고, 한나는 안나의 돌발 행동을 걱정했다. 결국 안나를 생각하는 각자 다른 방식의 배려였다. 안나는 잠시 눈을 두 사람에게 돌렸고,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안나는, 그나마 기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137.


....안나, 잠시만. 나 부탁이 하나 있어.

나 지금 너무 졸려서 그런데 중요한 거야?

엄청, 진짜진짜 중요한 거야.

말해 봐.

....이걸로 엘사 사진 좀 찍어줘.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은 안 드는데.

그럼 안 중요해?

...중요하지.












138.


고요한 오후였다. 메가라가 제때 입원 처리를 마쳤는지 점심께가 지나서야 간호사가 식판 두 개를 가져왔고, 링거를 교체해 주고는 별 다른 진찰 없이 약이 든 두 개의 통을 서랍 위에 두고 다시 나갔다. 뚱뚱한 몸을 가진 남성 간호사는 안나의 침대 위 이불이 왜이리 부풀었나 의심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간호사가 나가자, 안나는 양쪽의 동생의 머리께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조금 걷어냈다. 하지만 왼쪽의 멜리사의 목에 걸린 파편 때문에, 이불은 조금 찢어져 솜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안나는 천천히 파편에 걸린 천을 뺀 다음, 파편에 걸린 솜 조각들을 천천히 떼어냈다. 완전히 떼어낸 안나는, 침대에 구비된 간이 책상을 설치해 그 위로 식판을 올렸다.


"엘사, 밥 먹어야지. 일어나렴."


안나는 엘사의 어깨를 잡고 약하게 흔들었다. 엘사의 숨소리가 쌕쌕거리며 귓가에 스며들었다. 때때로 깊어지는 숨소리는 마치 안나의 체향이 가까이에 있음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엘사는 은은하게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런 모습에 비수로 베인 것처럼 마음이 아려왔다. 안나가 정신을 좀 더 잘 통제했더라면, 엘사가 영안실로 스스로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엘사의 편안함은 곧 안나의 죄책감이었다. 안나는 무심코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얀 천장에 비극적이었던 그림의 색채가 배어졌다. 안나는 현재 멈춰 있었다. 어디론가 달려가야 했지만, 달릴 곳이 없는 진흙탕 속에서 잠기지 않으려고 겨우 몸부림칠 뿐이었다. 진짜 엘사를 찾기엔 분명 시간이 많이 소비될 터였고, 이 모든 원흉인 한스에게 복수를 해야 했다. 하지만 한스는 스스로 말했듯 유령같은 사람이었다. 안나와 메가라가 보았던 얼굴이 CIA에서 쓰였던 위장 가죽일 수도 있다면, 어디서든 얼굴을 바뀌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한스의 최측근이 아닌 이상 한스의 정체와 위치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엘사아."



안나는 엘사의 어깨를 다시 한 번 흔들었다. 지금 한스를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 안나에게 중요한 건 멜리사, 그리고 이두나의 생환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엘사를 보듬어야 했다. 그리고 안나는 엘사가 영안실로 내려갈 때마다, 같이 내려가기로 했다. 엘사에겐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곳이었고, 차라리 안나가 같이 내려가 함께 있어주며 병실과 왕래를 하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느꼈다. 또한, 추운 바닥에서 잠을 자는 건 몸살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메가라는 그것까지도 배려했는지, 두 약통 중 하나에는 여러 개의 똑같은 주황색 몸살 감기약 캡슐이 들어 있었다. 엘사를 깨워 식사를 한 다음, 약을 먹여 다시 재워야겠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엘사의 등을 통통 두드리자, 그제서야 꾸물거리며 일어나는 엘사가 있었다. 엘사는 코를 훌쩍였고, 안나는 티슈를 뽑아 엘사의 코를 풀었다. 코를 풀어도 엘사의 얼굴엔 잠에서 막 깬 몽롱함과 열이 남아 있었다. 안나는 아픔에 눈물로 호소하는 엘사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갔다.


"아프면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지 그랬어. 한나한텐 말할 수 있었잖아."



"그럼...이두나 아주머니를...치료할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엘사가 안나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말했다. 평소보다 더 달아오른 체온이 느껴졌고, 안나는 컵에 물을 따라 엘사에게 건냈다.


"엘사, 치료도 좋지만, 언니는 엘사가 아픈게 싫어."


동생들은 늘 한결같았다. 안나가 구원시켜준 것을 평생을 다해 보답하려는 것처럼,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은 나날동안 안나에 관련한 일이라면 능력을 쓰는 것은 주저하지 않았고, 몸까지 내던질 정도였다. 복에 겨웠다면 행복이겠지만, 이미 안나는 과도함에서 나온 비극을 겪은 뒤였다. 아이들이 안나를 위하는 건 고마웠지만, 조절해야 했다. 엘사마저 멜리사처럼 나서게 만들면 안 되었다.


"언니는 우리 엘사가, 언제까지나 언니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어. 한나도 같이..."


안나가 식판 위 빵을 조금 찢어 양송이 수프에 적셔 엘사에게 내밀었고, 엘사는 입으로 조금씩 받아서 오물거렸다.


"멜리사는... 제 눈가루가 효과가 없었어요."


안나는 뒤로 팔을 뻗어 멜리사의 어깨를 매만졌다. 멜리사는 여전히 점프 슈트를 입고 있었다.


"제가 그 방에 있을 때....눈가루를 뿌려봤는데... 안 통했어요."


엘사는 안나의 등 뒤로 멜리사를 보며 말했다.


"멜리사가 일어날 수 있겠죠?"


엘사가 안나를 올려다 보았다. 안나는 물병을 들어 차가워진 손을 엘사의 이마에 가져갔다.


"언니가 엘사처럼 능력을 쓰지 못해 잘 모르겠어. 하지만...엘사."


안나는 이번엔 샐러드 위의 소스를 잘 버무린 다음 포크로 덜어 엘사의 입에 가져갔다. 엘사는 아무말 없이 샐러드를 아기새처럼 받아먹었다.


"이게 확실한 건 아닌데... 엘사의 피가 필요해질 수도 있어."


"네...?"


소스라치게 놀라는 엘사를, 안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진정시켰다. 엘사에게 있어서 피와 관련된 좋은 기억이 없기에, 시원찮은 반응이 나타나는 건 당연했다. 엘사의 동공이 떨리는 것이 안나의 눈에 들어왔다.


"메가라란 사람 알지? 그 머리가 말 꼬리처럼 생긴."


"아, 알아요...눈이 엄청 무서운 아줌마..."


어떤 경위로 겨우 20대 중반인 메가라가 아줌마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엘사가 메가라를 알고 있다면 얘기는 한 층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엄청 뛰어난 회사를 다니는데, 거기서 약을 만든대. 그래서 우릴 그 저택에서 데려올 때, 엘사의 피를 조금 채혈했나봐. 근데, 우리 엘사 피가 아주 중요하고 유익한 성분들이 많이 있다는 거야."


"그럼 사람들이 절 잡아먹으려 들 거잖아요!"


두려움에 바둥거리려는 엘사를 안나가 두 어깨를 잡았다. 덩달아 멜리사의 몸도 두 사람의 실랑이에 휘말려 흔들거렸다.


"아니,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야. 엘사, 널 해치려는 사람은 이제 없을 거야."


등을 살살 쓸어내리며 엘사를 진정시킨 안나는 잠깐 동안 엘사를 품었다.


"아주 가끔, 엘사에게 주사를 꽂아서 피만 조금 빼가는 거야. 그것도 아프지 않게 만들어진 주사로."


"그 아줌마... 뱀파이어예요?"


"그런 건 어디서 들었니....?"


"오로랄 언니가 '공포 영화'라는 이야기를 해줬거든요..."


안나의 머릿속에 오로라와 엘사의 대화 장면이 꾸며졌다. 다음에 만나면 핀잔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한 안나였다.


"무서운 건 아니야. 언니가 곁에 있을 테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또...아주 잘 하면, 메가라가 멜리사를 살릴 수 있는 약을 만들어 올 지도 몰라."


"정말요?"


엘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안나를 바라보았다. 그 푸른 눈에는 기쁨이 한 스푼, 설렘이 한 스푼 들어 있어 윤기가 있었다.


"그러니까 엘사, 아프지 말아줘. 힘들면 언니한테 기대도 돼. 지금처럼 말이야. 언니도 힘들면 우리 엘사한테 기댈 테니까.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언니랑 같이 헤쳐 나가자."


안나가 엘사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엘사는 곧바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안나와 고리를 만들었다.


"멜리사, 멜리사하고도 약속..."


엘사의 요청에, 안나는 옆에 누운 멜리사를 들어 엘사에게 가까이 했다.


"멜리사, 조금만 기다려. 내가 꼭...아니, 메가라 아줌마가...살릴 수 있대!"


엘사가 기쁨과 눈물에 겨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기척이 없는 멜리사의 손을 안나가 잡아 내밀었다. 두 아이간의 고리가 다시금 만들어졌다.


"다시 일어나면, 내가 모은 사탕 다 줄테니까...꼭 일어나야 해."


엘사가 멜리사의 침낭을 안으며 말했다. 그 목소리엔 안나가 처음 엘사와 멜리사를 안았을 때와 같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 감정은 '벅참'이란 이름을 가졌다.












139.


그럼 앙나 언니이.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음? 뭔데, 말해 봐.

언니 성이 아렌이면요...저는 엘사 아렌이예요?

...일단은.











140.

점심을 먹은 뒤, 안나는 엘사에게 감기약을 먹였다. 작고 둥그런 이질적인 물체에 엘사는 처음엔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멜리사의 모습을 보고 꾹 참고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약에 든 수면 성분으로 엘사는 오후 내내 잠에 빠져 들었다. 엘사가 자고 있는 동안, 안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몸을 다시 단련하기로 했다. 쓰지 않았던 근육은 내장을 비트는 것과 같은 고통을 안겼지만, 안나는 포기하지 않고 훈련으로 기억해둔 CQC를 다시 연습했다.


한나에게 걱정 말라고 당부했지만, 한나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엘사의 능력은 체력이란 벽을 넘지 못했다. 엘사를 안심시켰지만, 한스가 보낸 적이 오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쓸 수 있는 자원에서 최대한으로 위협을 막아야 했고, 그 자원 중에서 가장 쓸 수 있는 건 안나의 육체와 기억하고 있는 기술들이었다. 3시간 뒤, 안나는 어느 정도 체술들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환자복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안나는 병실 안에 따로 비치된 욕실에서 샤워를 마쳤다. 새로운 환자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세상은 꿈 속의 노을처럼 저물어가고 있었다.




저녁을 담은 식판이 곧 올 테고, 안나는 엘사를 깨우기로 했다. 침대로 다가가자, 멜리사의 침낭을 꼭 안고 자고 있는 엘사가 있었다. 왜 한나가 엘사를 찍으려 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안나는 멜리사와 엘사의 볼을 번갈아 쓰다듬으면서, 엘사를 조금 더 재우기로 하고 간병인용 침대에 걸터 앉았다.



문 밖에서 뭉그러뜨린 대화가 들렸다. 안나는 그저 그것이 간호사들의 대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아가씨, 제발 좀 진정하세..."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안나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채기 직전,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점심을 가져다준 간호사가 아닌, 레드와인처럼 붉은 장발의 머리를 가진 여성이 그 뒤를 따르는 정장 차림의 짧은 포니테일의 남성의 만류를 뿌리치고 들어왔다.


"스칼...꺄악!"


두터운 바지와 점퍼를 입고 들어온 에리얼은, 침대에 안나가 누워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병인 침대에 앉아 있는 안나가 인기척을 내자, 도리어 자신이 놀래 버리고 말았다. 안나는 일어나 에리얼의 입을 막으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가 조용히 하란 손짓을 했다.


-엘사 자고 있어. 제발 조용히 해.-


에리얼은 안나의 뜻하지 않은 기습에 놀라면서도, 랩터의 도움을 바라는지 고개를 랩터에게 돌렸다. 랩터는 그저 안나에게 살짝 목례를 했을 뿐이었다.


-나가서 얘기해. 여기서 소란 일으키면 나 쫓겨나.-


병실에서 조용히 얘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에리얼은 엘사를 알아도 멜리사는 모를 게 분명했다. 그리고 멜리사의 상태는 에리얼이 생각과는 다르기에, 눈치를 챈다면 변명할 말은 거의 없었다. 안나는 여전히 에리얼의 입을 막으면서도, 에리얼의 몸을 돌려 문 밖으로 내보냈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안나는 에리얼의 입을 막은 손을 풀었다.


"어쩐 일이야."


에리얼은 복도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걸 몰라서 물어? 네가 우크라이나 깡촌에서 개박살이 났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다 퍼졌어?"


"내가 그걸 가만히 놔뒀을 거 같아? 널 거의 죽일뻔 했다고 떠벌리는 두 사람이 있었어. 이반하고 이고르였나, 아, 몰라몰라! 알 게 뭐야. 그래서 그 정보를 들은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담가버렸어."


가볍게 말한 에리얼이었지만, 그 안에는 짙은 회한이 묻어 있었다. 에리얼은 자신의 수단을 동원해 안나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업계 쪽에서 이 정보를 아는 사람은, 랩터 아저씨하고 나 뿐이야."


"울프독, 아니....스칼렛 씨.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블루라운드 사장님 건은 또 뭐고요?"


랩터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안나는 에리얼의 옆 벤치에 앉아 지난 3주간 있었던 일들 중에서 멜리사와 이두나의 죽음과 관련된 것은 최대한 배제해 얘기했다. 랩터는 이미 멜리사가 능력을 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에리얼에게까지 누설하고 싶지 않았다. 멜리사의 능력은 실수로 인해 목격했고, 지금은 실수가 벌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이 안나는 랩터가 능력에 대해 퍼뜨리지 않았음을 에리얼의 태도를 통해 확인했다.


"이두나란 사람이 네 어머니셨다고?"


"친자 확인 검사까지 다 했어. 우리 엄마 맞아."


"한스라는 그 개변태 자식은 그런 널 속였고?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에리얼이 제 분에 못이겨 복도 바닥에 발을 동동 굴렸다.


"단순하게 보면 싸이코패스 같은데, 깊게 보면 예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인 것 같네요."


에리얼과 달리 랩터는 냉정하게 한스를 분석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당신의 심리를 완전히 장악한 것 아닙니까. 당신은 동충하초처럼 그저 당해버린 겁니다."


극단적이었지만, 성격으로 따진다면 맞는 비유였다. 한스는 교묘하게 안나에게 핫라인, 케메로보 세이프하우스, 그리고 유출자의 정보라는 당근을 주어 의심을 지웠다. 안나가 야수부대랑 싸웠을 때, 당텍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한스에게 증오의 초점을 맞춘 것도 한스란 사내였다. 안나는 완벽하게 그의 손 위에서 놀아난 꼭두각시와도 같았다.


"복수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에리얼이 안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아가씨, 그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 그 새끼가 무슨 유령이야?"


에리얼의 눈은 랩터를 향해 있었고, 랩터는 아무도 없는 복도의 끝을 바라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비밀유지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단순한 청부로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소리입니다."


"에리얼, 네 말은 이해하겠는데, 랩터 말이 맞아. 그리고 우선...내가 찾아야 할 사람도 있고, 엘사 건강도 챙겨야 해서 당장은 움직일 수 있을까 싶어."


"찾아야 할 사람이 누군데? 이번만 무료로 찾아줄게."


"네 인력으론 절대 못 찾아."


안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스란 새끼랑 연관이 있나 보구나."


에리얼은 한 숨을 내쉬었다.


"도와주려는 건 고마운데, 여기서부턴 에리얼 너도 위험해질 수도 있어. 한스가 네 거래소까지 파악해서 군을 동원해 밀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내 걱정은 말아줘."



안나가 말하자, 에리얼은 랩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랩터가 에리얼의 손을 잡아주려는 것으로 생각한 안나였지만, 랩터는 그저 백팩에서 손잡이가 달린 검은 케이스 두개를 꺼낼 뿐이었다. 치데르티 모텔에서 받은 것보다 조금 더 작은 케이스들을 에리얼이 받아들고, 안나에게 내밀었다.


"수류탄은 좀 아닌 거 같은데."


"열어보고나 말하셔."


에리얼의 말에 케이스를 받은 안나는 그 중 하나를 열어보았다.


"어우."


안나는 탄식과 탄성의 사이에 있는 낮은 비명을 질렀다. 콜트 권총, 그것도 소음기와 레이저 사이트가 장착된 MEU 피스톨이 2개의 탄창과 함께 들어 있었다.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어둬. 너 콜트...시리즈 좋아하잖아."


안나는 meu를 꺼내 조준 자세를 취했다. 안나가 평소 썼던 콜트 권총과 거의 비슷한 그립감과 각도,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추가된 부착물로 인해 적을 조용하고, 정확하게 제압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런 것까지 챙겨주러 온거야?"


안나는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스의 일당이 병원까지 쳐들어올지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근중거리에서 제압할 호신수단이 들어온 것은 크나큰 이득이었다.


"친구 있는게 어디야. 나니까 널 챙겨주는 거라구."


에리얼은 괜스레 우쭐해져 있었다. 안나는 그런 에리얼을 바라보면서 두 번째 케이스를 열었다. 작은 나이프가 들어 있었고, 안나가 잘 아는 나이프였다.


"트루돈 나이프입니다. 환자가 나이프를 들며 싸우는 건 추천하진 않지만...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면 팔이라도 휘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랩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나는 랩터의 말을 듣고 트루돈 나이프의 스위치를 눌러 칼날을 사출시켰다. 새롭게 들어온 나이프는 뻑뻑한 감이 있었지만, 안나가 3주 전에 쓰던 것과 동일한 사양이라 몇 번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그 때의 느낌을 손에 익힐 수 있었다.


"공짜로 줄 테니까 값 안 치뤄도 돼."


"정말이야?"


"나 못 믿어? 나 에리얼이야, 에리얼 카리스."


"...솔직히 못 믿.."


"아, 좀! 모처럼 도와주러 왔는데, 아직 줄 거 남아 있거든!"


안나의 말을 자른 에리얼은 자신의 가방에서 작은 수첩과 손바닥만한 통을 꺼내 안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안나가 익숙한 질감의 수첩을 열자, 안에는 안나가 에리얼에게 넘겼던 울프독의 면허증이 있었다.


"그 때 면허증을 안 받았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까도 싶고..."


"면허증이 문제가 아니야. 뭐가 되었든 결국 내가 판단을 잘못해 일어난 거야."


안나는 면허증을 접으며 말했다. 통을 열자, 달콤한 초콜릿 향이 물씬 풍겼다.


"엘사 갖다줘. 잠깐 보니까 침대에서 자고 있던 것 같던데, 애도 고생이 심할 거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울프독이란 사람하고 같이 다니잖아."


에리얼이 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도 조심 좀 해. 너 나랑 처음 만날 때 기억 나?"


"응?"


"아버지가 널 임시 경호원으로 삼으라 해서 억지로 참고 다녔는데, 넌 웃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진짜 기계 같았다니까?"


안나는 에리얼과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에리얼의 말대로, 안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부속품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근데 지금 널 보면.... 살아 있는 거 같아."


살아 있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어설픈 농담 같겠지만, 안나에겐 중요한 의미였다. 살아 있다는 건 곧 감정을 곧잘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를 뜻했다.


"봐, 자연스럽게 웃고 있잖아. 뭐 때문에 웃는지 몰라도, 지금 내가 볼 땐 넌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그 울프독이 아니라, 착하기 그지없는 리트리버같아. 그렇죠, 랩터 아저씨?"


에리얼이 랩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전 울프...아니, 스칼렛 씨를 몇 번 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킬러 같아보이진 않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좀 철이 많이 든 또래 여대생 같다고 하는게 맞는 표현이겠죠."


랩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말할 정도였다면, 안나는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것이 분명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생겨서 그런가봐."


안나는 통을 뚜껑으로 닫으며 말했다. 안나를 바뀌게 한 것은 돈도, 명예도, 살인도 아니었다. 그저 작은 두 아이들,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었고, 아이들은 안나를 위해 살아갔고, 살아가고 있기에. 마음에 세워진 벽이 비로소 무너진 것이었다.


"그 사람들을 잃지 않게 조심해. 힘들면 꼭 연락하고, 네가 무슨 일이 있던 간에 난 네 편이니까."


에리얼이 안나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가벼운 두드림에, 안나는 절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에리얼은 안나의 신변을 위해 필요한 희생에서, 불필요한 희생까지 감수시켰다. 에리얼 또한 나름대로 괴로웠을 터였다. 그럼에도 에리얼은 태연하게 안나를 위해 선물들을 가지고 왔다. 에리얼의 얇은 웃음 밑에는 짙은 괴로움이 들어 있었다.


"알았어. 네 연락처는 내가 아니까 바로 전화할게. 됐지?"


안나는 케이스와 선물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수할 손이 없지만, 에리얼은 어깨를 툭 치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린 가 볼게. 아, 출장 겸 해서 온 거니까 이 주변에 며칠 동안은 머물 거야. 보고 싶으면 전화 해! 그리고 엘사한테 안부 전해주고, 이쁘고 쭉쭉빵빵한 언니가 맛있는 초콜릿을 선물해줬다고 말이야!"


말을 마친 에리얼은 복도 끝 엘리베이터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안나는 에리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했다. 보여주기 싫을 것이었다. 안나는 에리얼을 붙잡지 않기로 했다. 모든 감정을 벗겨낼 필요는 없었다. 때로는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법이었다.


"잘 가. 몸조심하고!"


안나는 큰 소리로 에리얼에게 외쳤다.


"랩터, 에리얼 좀 잘 부탁해요. 마음고생이 심할 텐데... 제가 아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네요."


"아가씨는 제가 어떻게든 감당해야겠지요. 그러니 스칼렛 씨는 당신의 일에 집중해 주세요. 어찌 되었건, 당신은 지금 지켜야 할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랩터는 안나에게 묵례를 하고 에리얼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기 전 안나에게 다시 인사를 하기 전까지, 안나는 벤치 옆에 서서 그들을 배웅했다.











141.

"에리얼 언니가 오셨다구요...?"


"네가 자고 있을 때 와서, 그냥 안부 인사 좀 나누고 왔어. 그 초콜릿, 에리얼이 엘사 주려고 가져온 거라니까, 감사히 먹어야 해."


"에리얼 언니도 앙나 언니처럼 포근해요. 그렇죠?"


초콜렛을 입안에 굴리는 엘사의 말에, 안나는 잠깐 멈칫했지만, 오늘만큼은 엘사의 순진한 의견에 동의하기로 했다.


"포근하지, 때때론 횃불 같고."


"머리 색깔 말하시는 거죠?"


"음, 그런 뜻도 있지."


안나는 엘사의 머리, 그리고 멜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저녁까지 먹고, 지금은 조용한 밤으로 채워진 병실의 침대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엘사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좋은 징조였다. 안나는 아직 우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엘사는 완전히 벗어난 것 같았다. 마치 하얀 사모예드처럼, 안나만을 바라보는 엘사는 안나의 팔에 안겨 초콜릿 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엘사, 내일도 영안실에 내려갈 거니?"


"그래야 겠죠... 아니, 그래야 해요."


엘사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여전히 엘사는 이두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언니가 바라고 있고,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힘들면 언니랑 같이 내려갈래?"


"아뇨, 언니는 아프니까 여기 계세요."


"언니 이제 거의 괜찮아졌어. 지금은 사실상 위장 입원한 상태고. 또.... 엄마를 뵈지 못했거든."


안나는 영안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이두나가 누워있는 케이스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엘사가 회피한 이유를 좇다가 엘사의 멍을 보고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엘사와의 오해는 풀렸으니, 메가라가 진짜 엘사와 한스의 정보를 알리기 전까진 이두나의 치료에 집중하고, 멜리사를 살리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밤은 깊어졌고, 지금 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라고 안 불러도 돼."


"네?"


엘사의 눈은 조금 풀어져 있었다. 안나는 손가락으로 엘사의 콧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사실...넌 우리 언니랑 무척 닮았거든. 엄마가 보시면 널 좋아할 정도로."


안나는 몸을 약간 돌려 미동이 없는 멜리사의 코에도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당연한 반응은 없지만, 안나는 그래도 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넌 내 동생이야. 그러니까 내 엄마는, 네 엄마이기도 해."


"엄마...엄마..."


엘사는 눈이 감기면서도 처음 부르게 된 그 한 단어를 연신 되뇌었다.


"만약에 엄마가 깨어나셨을 때, 네가 불러준다면 엄마도 좋아하실거야."


"엄...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엄마라는 단어를 불러보았을 때, 엘사의 눈가엔 한 방울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품과 몸살로 생긴게 아닌 순수한 기쁨이었다.


"언니."


"응?"


안나가 엘사와 눈을 맞추었을 때, 그곳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날의 진짜 엘사, 그리고 새로운 엘사가 있었다.


"정말...정말로...고마워요."


"내가 더 고마운데... 너희들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안나는 손으로 엘사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거의 없었다. 엘사는 다시금 건강해져 있었다.


"나중에...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우리 언니를 만난다면 음...그땐 나처럼 언니라고 불러줘."


사실상 멜리사와 엘사는 진짜 엘사의 딸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한스가 보내준 사진 속 엘사를 면식도 없는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른다면 적지 않을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안나가 사이에서 적절히 조율해야겠지만, 부담이 갈 일은 사전에 미리 짚어두고 싶었다.


"그 언니 이름은 뭐예요?"


엘사의 눈은 반쯤 감겨있었고, 말하는 속도가 조금 줄어 있었다.

"...엘사."


"저랑 이름이 같네요."


"그래서 너에게 엘사란 이름을 붙인 거야. 넌...엘사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거든. 사실 처음엔...너를 우리 언니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처음부터 너한테 친절했던 거일지도 몰라. 미안해."



그것은 안나의 작은 이기심이었다. 어릴 적 헤어진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엘사의 유전자로 만든 인조인간을 아끼고 배려해주면서 풀어지길 바랬었다. 풀이 죽은 안나의 이마에 폭 하고 하얗고 작은 손이 닿았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언니가 무슨 생각을 하셨든...절 구해주고, 사랑해준 건 변함 없잖아요. 전 그걸로도 충분해요."


조금은 섭섭할 터인데도, 엘사는 그 감정들을 깔끔하게 묻어버렸다. 안나보다 작고, 약할지라도, 엘사의 마음은 안나보다 강했다.


"엘싸 언니를 만난다면...이름을 바꿔야겠지만요."


"그건 나중에...나중에 생각하고 싶어."


안나가 엘사의 팔을 내리고, 엘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동시에, 안나는 멜리사의 목 밑으로 팔을 밀어넣었다.


"지금은...엄마를 살리고, 멜리사를 살리는 데 집중하자."


엘사는 알았다는 듯, 끙끙거리며 안나의 품에 깊게 파고들었다.


"내일 아침에 밥 먹고 나서 같이 내려가자. 하루에 세 번씩, 알겠지?"

"멜리사도 같이 가는 거죠?"


"물론, 우린 언제나 함께야. 만약 우리 둘이 없는데 멜리사가 깨어나면 얼마나 슬퍼하겠어?"


"언니 말이 맞아요...혼자 있으면 슬퍼요."


안나는 멜리사를 흘끗 내려보았다. 사람은 사망 판정을 받아도 수십 분 간은 청각이 살아있다고 전해진다. 멜리사와 엘사, 한나에게 일반인의 상식을 어디까지 대입할 수 있을지 몰랐다. 안나는 그저, 멜리사가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지금은 멜리사에게도 부드러운 말을 흘려넣어야 했다.


"들었지, 멜리사? 우린 계속 너와 함께 할 거야."


"맞아맞아, 항상 같이 있을 거야...으하암."


엘사가 안나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 깊은 하품을 내쉬었다. 안나는 마지막으로 엘사의 콧등을 한 번 더 쓸어내렸고, 엘사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엘사와의 대화가 끊기자, 병실은 어느 순간 내리기 시작한 부슬비의 오페라로 가득 채워졌다. 드문드문 병원 근처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과 소리가 들렸다. 안나는 주머니에 끼워 둔 meu와 트루돈 나이프가 잘 들어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확인했다. 이제 안나도 잠을 잘 차례였다. 안나는 엘사를 덮은 이불을 잘 정돈한 다음, 이제는 뜨겁지 않은 엘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걱정하지 말고, 잘 자. 엘사."


그 말을 들은 것일까, 잠결에 엘사가 흐흥거리며 코웃음을 지었다. 푹 잠이 든 엘사를 확인한 안나는, 몸을 조금 돌려 멜리사를 바라보았다.


"멜리사도 잘 자."


안나는 엘사에게 그랬듯이, 멜리사의 이마에도 입을 맞추었다.


"언제 깨어나든, 우리 걱정 하지 말고, 푹 쉬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줘."




안나는 마지막으로 멜리사의 스파이키 컷을 손가락으로 만진 다음, 멜리사의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병실 천장에는 아무런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흰색의 천장만이 안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일부터 안나는 영안실로 내려가 이두나를 살리려는 엘사와 같이 있어주어야 했다. 안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엘사가 힘이 들면 물을 건네 주거나,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멜리사를 챙겨 주어야 하는, 주가 아닌 부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안나는 엘사와 같이 짐을 나누고 싶었다.
함께이기에, 서로의 고통을 덜어야 했다.









142.



엘사의 눈은 앙나 언니가 잠이 들고 나서야 가까스로 뜰 수 있었다. 엘사는 앙나 언니의 숨소리가 작아진 것을 듣고, 천천히 눈을 떴다. 빗소리가 조곤거리며 병실 창문을 두드렸고, 엘사는 이불의 뒤척임을 최대한 죽일 수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오기 전, 엘사는 앙나 언니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엘사의 능력인 눈가루에는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기에, 잠든 사람이라면 더욱 푹 잠들게 할 수 있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지난 3주간 영안실에서 눈가루들을 뿌리며 엘사는 생각했다.


"엘사...?"


"히익..."


엘사의 인기척을 느낀 앙나 언니가 잠에서 깨어나자, 당황한 엘사는 곧바로 눈가루들을 이마에 덕지덕지 발랐다. 겨우 몇 초 뒤, 앙나 언니의 이마에 눈가루들이 스며들었고. 엘사의 팔을 잡으려던 앙나 언니의 눈이 감겼다. 엘사의 근거 없는 가설은 맞아 떨어졌다.


"...미안해요."


엘사를 잡으려던 앙나 언니의 손이 힘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졌고, 엘사는 그런 앙나 언니의 손을 힘없이 잡았다.


"저한테 맡겨주세요..."




앙나 언니는 엘사에게 함께 하자고 말했지만, 엘사는 앙나 언니에게 짐을 덜어주기 싫었다. 앙나 언니는 몇 몇 경우를 빼면, 엘사와 멜리사에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지만, 멜리사가 일어나지 못하는 지금, 앙나 언니는 어느 누구보다도 약해졌다. '영안실'이란 곳을 앙나 언니가 다시 가서 엄마를 만난다면, 앙나 언니는 다시 무너질 것 같았다. 앙나 언니가 우는 모습은 엘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였기에, 엘사는 능력을 써서 앙나 언니에게 작은 반항을 저질렀다.




엘사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문고리를 돌렸고, 이내 복도로 나왔다. 깨끗한 대리석 복도 옆에 자리잡은 카운터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카운터 안쪽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방에선 두런거리는 간호사들의 얘깃소리가 드문드문 귓가에 걸렸다. 엘사는 엘레베이터로 향하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복도 끝을 돌아 계단으로 내려갔다.




계단은 칠흑같은 어둠에 절여 있었다. 하지만 엘사는 볼 수 있었다. 처음 앙나 언니를 만나고 올라갔던 그 어두운 계단과 비슷했지만, 앙나 언니와 함께 지내면서, 이제는 모두 볼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다. 남에게 말한다면 저주받은 능력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앙나 언니는 그럼에도 기쁘게 엘사와 멜리사를 맞이했다. 거리낌 없이 가족이 되어준 것에 비하면, 엘사는 지금 하는 이 행동이 앙나 언니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보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엘사는 힘이 닿는 데까지, 지쳐 잠에 쓰러질 때까지, 엄마를 살려야 했다. 앙나 언니가 울지 않게끔, 엘사는 모든 슬픔을 짊어지고 가기로 했다.









엘사는 차가운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계단의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앙나 언니와 올라갔던 그 날의 계단을 추억하며, 엘사는 홀로 어둠을 맞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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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613 구케엘 이제 디아블로4 하냐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26 0
1123612 안나는 평생 공주하고 엘사는 여왕하자 [1] ㅇㅇ(223.38) 06.01 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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