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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좆같은 이웃 37

EAO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17 21:00:57
조회 245 추천 2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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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은 이웃


37



00~35 36


───


※욕설주의




방학이 오기 전까진 정말 조용하게 쥐 죽은 듯이 지냈다. 올해는 적어도 방학 전까지 조금이라도 공부랑 클럽 활동에 집중해 보자는 엘사의 의견에 모두가 동참했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매우 순조로웠다. 말 많고 시끄러운 화이트마저 조용하게 지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시간이 흐르면서 화이트를 시작으로 다른 얘들의 집중력도 가면 갈수록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한 달이 지나서야 우리는 전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우리 집중력이 이런 수준밖에 안 됐나?"


"이래서 대학은커녕 졸업이나 똑바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다들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되겠지."


한심한 7인방의 모임이다. 심지어 제일 먼저 그 얘기를 꺼냈던 엘사마저 한 달 만에 같이 손을 잡고 포기해 버리다니. 우리에게 미래가 존재는 할까? 만약 있다 해도 너무 어두워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느 쪽이든 일단 좋지 않은 방향임은 확실했다. 이런 집중력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좋은 점수를 받아 가면서 학교에 다닌 걸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뭐, 정말 어떻게든 되겠지. 언제 우리 인생에 제대로 된 계획이 있었던가?







여름만큼 사람이 가장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있을까? 비록 덥고 습해서 짜증이 난다고 할지언정 화창한 여름 햇살을 보다 보면 기분이 절로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예정된 여행 날짜까지 이틀 남은 상황에서 우리는 오래간만에 다 같이 모여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사두기로 했다. 지금껏 지루한 공부와 클럽 활동에 전념하면서 이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기다렸던가. 물론 떠들고 노는 날이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학교생활을 보냈었다.


"자, 그럼 이제 사러 가자."


"근데 뭐 사러 갈 건데?"


"글쎄?"


수영복은 이미 있고, 여벌의 옷도 충분하고, 먹을 거는 어차피 거기 가서 실컷 먹고 놀 테니 상관없었다. 정말 우린 무엇을 사러 다 같이 모인 걸까.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보이고 나니 모인 이유를 모르겠다. 진짜 일곱 얼간이가 따로 없었다. 필요한 것도 없으면서 사두긴 개뿔.


"이러면 다들 해산이야?"


"집에 가야지 여기서 뭘 하겠어."


"그럼 엘사 집 앞에 모인 김에 엘사 집에서 놀자."


"야!"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것은 정말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엘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화이트는 방학인데 같이 좀 놀자면서 엘사를 살살 꼬드기기 시작했고, 엘사는 싫다 해도 집에 들어가 놀거면서 굳이 그런 질문은 왜 하냐며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에이, 그러니까 좀 놀자. 응? 엘사는 미간을 짚으며 알았으니 같이 들어가자며 한숨을 내쉬었고, 화이트는 역시 믿고 있었다면서 제일 먼저 엘사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후…."


"엘사, 괜찮아?"


"괜찮아. 한두 번 이러는 것도 아니고…."


결국, 쇼핑이 무산된 이유로 엘사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처음부터 예정에 없었던 일이라 괜히 멀쩡히 있던 엘사만 피해자가 되었다. 그럼 오늘 하루 잘 부탁할게. 무슨 남의 집을 마치 자기 집인 양 아무렇게나 드나드는 뻔뻔한 모습이 이젠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 같아서 헛웃음만 나왔다. 대체 이게 뭐 하자는 짓인지도 잘 모르겠다. 배려라고는 정말 1%도 없는 친절한 친구들이다.


"이제 우리도 들어가자."


"그래."


엘사와 같이 뒤늦게 집안으로 들어서니 이미 주방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엘사는 이게 지금 뭐냐며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고, 주방에 있던 메가라와 화이트는 요리하느라 어질러졌을 뿐이라며, 나중에 알아서 청소할 테니 너무 화내지 말고 곧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테니 거실에 앉아있으라고 했다. 정말 미안해, 엘사! 아무래도 오늘이 지나기 전에 엘사는 화병으로 앓아누울 것만 같았다. 우리 가엾은 엘사, 앓아눕지 않도록 내가 열심히 옆에서 도와줘야겠다.


메가라와 화이트가 요리를 하는 동안 우리는 TV를 틀고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주방에서 슬슬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요리를 만들고 있었길래 주방이 그 모양이 되었나 싶다가도, 공복 상태를 자극하는 향기가 코끝을 찌르니 빨리 음식이 완성되길 바랄 뿐이었다.


"다 됐다! 오래 기다렸지?"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드디어 오래 기다리던 요리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고, 우리는 그제야 늦은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기구와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오던 도중, 오로라가 그 침묵을 깨고 제일 먼저 말문을 뗐다. 해봤자 아까 재미없어서 하다 말았던 대화의 뒷부분을 얘기하는 것이었지만, 오로라는 혼자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쉴 틈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메가라가 그 재미없는 얘기 좀 제발 그만하면 안되냐며 오로라의 입을 틀어 막긴 했지만, 아마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마 오로라는 기어코 그 얘기의 끝을 봤을 것이다.


메가라 덕분에 재미없는 얘기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됐지만, 막상 떠드는 사람이 사라지니 식사 분위기는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얘들아,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벨도 이런 분위기가 썩 재밌진 않았는지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나가려 했고, 나도 옆에서 벨을 도와 조용함을 깨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정작 대화할만한 주제 거리가 없다는 제인의 말에 우린 반박도 못 해보고 얌전히 식사를 해야만 했다.


여태껏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 오늘처럼 조용한 적이 있었던 날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용하더라도 매번 오로라, 화이트 그리고 제인이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오늘은 조금 이례적인 날이었다. 그 말 많던 3인방 중에서 오로라를 제외하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가히 놀라운 수준의 일이었다. 오죽하면 무덤덤하게 있던 벨이 말 좀 해보라고 부추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모두가 어리바리하게 앉아있는 와중에 이번에도 엘사가 특급 해결사로 나섰다. 식사도 끝났는데 이제 뭐 하면서 지낼지에 대해서 다들 아이디어 좀 내보라는 말이 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린 빠르게 테이블을 치운 다음에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는 있다만, 어째서 밖에 나가서 놀자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


"얘들아… 밖에는 안 나갈 거야?"


"왜 나가? 더워 죽겠는데."


"그럼 할 게 너무 없잖아."


"그러면 말만 하지 말고 좋은 아이디어 좀 내봐, 안나."


"음… 아쿠아리움 어때?"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나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닌가 보다. 그럼 야구장은…? 이번에도 반응은 여전히 시원치 않았다. 마치 '네 아이디어는 들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다'라는 것처럼, 다들 매정하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너흰 그냥 밖에 나가기가 싫은 거지? 얘들은 이 말이 나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는지 다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전혀 활동적이지 않잖아."


"굳이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도 재밌게 놀 수 있어."


"집에선 맨날 놀잖아…. 엘사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죄다 해봤는데 여기서 뭘 더 재밌게 놀 수 있는데?"


"음… 강령술이라도 하면 재밌지 않을까?"


괜한 무서운 얘기에 엘사는 몸을 움찔거리며 나한테 다가왔고, 나는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솔직히 엘사 집에서 할 게 없는 것은 당연한 처지였다. 나는 여길 내 집처럼 매일 같이 방문하는 데다가 꼭 내가 아니더라도 나머지 얘들도 이곳에서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두 번이나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어린아이처럼 바비의 옷을 갈아 입혀주고 머리를 빗으로 쓸어주는 놀이를 할 수도 없었다. 만약 우리가 그러고 있는 것을 누군가 본다고 하면 아마 유아 퇴행이 찾아온 사람으로 볼 테지. 하지만, 우린 그 정도의 심각한 정신적 문제랑은 거리가 완전히 멀었고, 되려 매우 멀쩡하게 1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어리고 어린 청춘들이었다.


"그럼 공포 영화라도…."


"야!"


미치겠다. 이따위로 시간을 보내려고 여기에 모인 걸까? 이런 속도로라면 분명 할만한 것을 정했을 땐 가로등 불빛이 어둑어둑하게 켜져 있는 새벽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 꼴을 보기 싫어서 한시라도 빠르게 정하고 싶었지만, 다들 마네킹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앉아만 있으니 빠르게 정해질 리가 없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러고 멍청히 있으면 저녁이 되겠지.


"할 거 없지 다들?"


"있으면 뭐라도 했겠지."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우린 무엇을 위해 이곳에 모여서 쇼핑은커녕 엘사의 집 러그 위에 누워 멍청히 시간만 썩히고 있는 걸까. 이로 인해서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득은 개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무의미한 시간이다. 엘사는 매우 심심했는지 내 옆에 누워서 얼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거나 볼을 살짝 잡았다 놓기를 반복하며 손장난을 쳤고, 나는 그 장난을 얌전히 받아주었다. 아까부터 얌전히 앉아있던 화이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갑자기 왜 오두방정을 떠는 거야?"


"우리가 할만한 것이 생각났어!"


"뭔데?"


"이왕 모인 김에 서로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져보자."


"뭐야. 겨우 그거 말하려고 오두방정을 떤 거야?"


"지금 당장 할 것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결국엔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고백 게임을 시작했다. 겨우 이거 하려고 1시간 넘게 고민했단 말인가?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냥 하기로 했다. 그럼 나부터 질문할게! 화이트가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해봤자 나 아니면 엘사한테 질문을 할 게 뻔했지만, 무슨 질문을 할지 모르기도 했고, 둘 중 누가 선택될지도 몰랐기에 많이 긴장되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가운데, 화이트는 엘사를 먼저 지목했다.


"나?"


"응! 그럼 질문 할게."


"좋아. 아무거나 물어봐."


"안나랑 학교에서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생각 먼저 했어?"


윽, 생각 이상으로 거지 같은 질문을 하는구나. 엘사는 나를 흘깃거리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 보였다. 나는 상관없으니 솔직하게 말하라며 엘사의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그나저나 엘사와 학교에서의 첫 만남이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기분이 정말 좆같았었다. 엘사랑 한바탕 면전에 욕까지 뱉어놓고 주먹다짐까지 했는데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심지어 짝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잠시 잊었던 과거가 떠오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은 과거에 그런 사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끈적하게 붙어 다니는 사이지만, 처음 만났던 날의 감정은 정말 역겨웠다. 엘사는 과연 무슨 답을 할까.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었지만, 괜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음… 솔직히 좋진 않았어. 그냥 올해 학교생활은 망했다?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


역시 엘사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구나. 생각보다 평범한 답변이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엘사가 질문할 차례가 되었다. 당연히 내가 지목되었고, 엘사가 괜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랑 사이가 좋아졌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뭐야?"


오, 무슨 질문이 나올지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난해한 질문이 들어왔다. 사이가 좋아졌을 때라고? 엘사랑은 분명 굉장히 힘겹게 친해졌었지.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나는 여러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다고 단정 짓기 어려웠다. 그나마 정하라면 엘사랑 친해졌단 생각에 안도감이 먼저 들긴 했다. 더는 얼굴 붉히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니까.


"안도감이 먼저 들었어."


"음… 고민한 것 치곤 답이 조금 짧은데?"


"그래도 사실이야."


"좋아! 그럼 안나 네 차례야."


엘사가 나한테 난해한 질문을 던졌으니 이제 그걸 갚아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엘사에게 나랑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 어땠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했고, 엘사는 내가 원했던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땠더라? 일단 확실하게 행복하긴 했다. 기쁘기도 했고, 내가 엘사랑 평생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 걱정은 나중에 가서 쏙 들어가 버렸지만. 엘사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생각보다 답이 빠르게 나왔다.


"나는 엄청 기쁘고 행복했어. 맨날 싸우던 사이에서 이렇게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그래? 나랑 생각이 같네."


그러니까 이렇게 사랑하지. 엘사는 실실거리며 나를 껴안고 입맞춤했고, 나도 정말 많이 사랑한다며 엘사보다 훨씬 진하게 입맞춤했다. 그만! 그만! 결국, 고백 게임은 우리의 스킨쉽을 도저히 눈뜨고 못 봐주겠다는 메가라의 항의에 의하여 강제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말이 다 같이 즐기자고 내놓은 아이디어지, 솔직히 나랑 엘사를 제외하면 다른 얘들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매번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메가라는 정말 샘이 많은 것 같다.


그나저나 아직 저녁 먹을 시간까지 한참이나 남았는데 대체 그때까지 무엇을 해야 좋을까. 나는 더 할만한 것이 없는지 물었고, 제인은 그런 게 있었으면 지금처럼 멍청하게 앉아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도 이제 이런 분위기가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도저히 얘네들의 속마음을 모르겠다. 밖은 더워서 나가기 싫다고 하질 않나, 그렇다고 집에서 뭔가를 하자니 막상 할만한 것도 없어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이젠 그것마저 질리고 재미없단다. 그리고 화이트는 얘들아. 심심하면 바비 옷이라고 갈아 입혀주는 게 어때?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 그냥 얘는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하던데, 아무래도 이건 세계 난제 중 하나로 등록되어야 할법한 문제 같았다.


"미친 소리 좀 집어치우지 그래."


"그럼 뭐 하자고?"

"밖에 나가자니까?"

"그건 싫어."


"그럼 대체 집에서 할 게 뭐가 있는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정말 미쳐버릴 거 같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돌리니 화이트랑 메가라가 점심을 만든다고 어질러놨던 엉망이 된 주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둘을 강제로 일으켜서 그렇게 할 게 없으면 주방이라도 청소하라 했고, 화이트는 차라리 그게 낫겠다며 메가라와 함께 열심히 청소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청소를 끝내고 거실로 돌아온 둘은 다시 멍하게 앉아서 TV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엘사 집으로 모인 이유를 모르겠다. 차라리 살 게 없더라도 마트로 갔더라면 이보다는 훨씬 재밌었을 텐데. 이번 모임은 역대급으로 재미없는 모임이었다.


결국, 얘들은 가만히 앉아서 TV만 켜놓고 있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엘사가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했지만, 화이트는 갑자기 쳐들어 와놓고 저녁까지 얻어먹으면 미안하다면서 손을 저었다. 방학이니까 같이 놀자며 엘사 집에 멋대로 쳐들어가서 메가라랑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도 뻔뻔하게 저런 말이 잘도 나온다. 5명이 전부 돌아가고 나서 엘사는 같이 저녁을 먹자고 권했고, 나는 당연히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메뉴는 파스타야."


매번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요리를 시작하는 저 뒷모습은 정말 언제봐도 좋다. 뒤에서 와락 껴안고 싶을 정도로. 저녁을 먹자는 말에 내가 거절할 이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엘사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지금처럼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곧 맛있는 음식 냄새가 정신을 잠시나마 차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엘사한테 푹 빠져들었다.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보니 이제 파스타가 완성되었는지 접시에 면을 보기 좋게 담고 있었다.


"잘 먹을게!"


정신을 차리고 엘사와 마주 보고 앉아서 파스타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단란하고 오붓한 시간은 매우 행복하고 즐거웠다. 식사가 끝나고 나도 내일모레 떠날 여행을 위해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정말 잘 먹었어. 이제 나도 집으로 돌아갈게. 엘사는 푹 쉬고 내일 모레 보자며 내 양 볼에 키스해주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서 여행 때 가져갈 만한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단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로 챙겨야 하고, 벌레 스프레이랑 폴라로이드도 챙기기로 했다.


"후… 더 필요한 거 없겠지."


일단 짐은 내일 일어나서 그때 제대로 챙기기로 하고,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굉장히 정신없는 여행이 될 것 같으니 오늘은 그냥 일찍 샤워 하고 편하게 쉬기로 했다.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가득 담고 그 안에서 몸을 담그고 있으니 기분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벌써 내일모레가 여행이라니, 시간도 빠르지. 기대감이 한가득하였다. 샤워를 끝낸 후에 나는 바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부디 우리가 떠나는 여행이 정말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며.




─────


매우 정신없는 7인방..

완결까지 얼마 안남았다..

뭔가 좋으면서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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