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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유혈주의]REMAKE/ 운전교육 -44-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25 00: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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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은 학교를 자퇴했다. 항상 내 옆에서 잠을 자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비워진 의자와 차갑게 식은 책상. 그렇게 일년이 흘러갔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어느새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놓여졌다. 어떤 대학교를 가야할지. 미래를 위해 어떤 학과에 들어가 무슨 전공을 배워야 할지. 점점 더 늘어가는 공부량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러하듯 심적 스트레스를 조금씩 쌓아가며 언제쯤 이 숨막히는 생활이 끝날 수 있을지 의미없는 저울질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바쁜 나날들. 라푼젤은 학교안의 누구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잊혀져갔다. 어쩌면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녀와 내가 이야기를 하고, 밥을 같이 먹고, 집에 걸어가고, 지옥같은 광장에서 두 번 만났던 그 때까지. 모든 일들은 내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허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로도. 흔적은 빠르게 사라졌다.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다시 봄을 지나며...



내가 처음으로 친구로서 생각했던 여자. 그리고 영원한 친구로서 인생을 같이하고있는 여자.


라푼젤 피츠허버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첫만남 이후 일년이 지난, 그때와 같은 봄날이었다.



평소처럼 늦은 밤까지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홉시 쯤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는 원래 조용하고 사람이 많이 살지않는 곳이었기에, 어찌보면 이른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듬성듬성 켜진 불빛들이 각 창문으로 비추었다. 정갈한 가로수들을 지나 내가 살던 건물로 들어갔다. 꽃샘추위에 차가워진 계단을 타고 뚜벅뚜벅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가던 도중, 내가 살던 층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소리, 마치 미야옹 하는 것 같은 고양이의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작고 가녀린 고양이가 아파하는것처럼, 죽어가는 동물의 끙끙앓는 소리였다. 이곳에서 고양이를 본 적은 없었는데.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한걸음씩 올라온 계단의 끝, 내 집 앞에 쓰러져 있던 여성. 라푼젤 피츠허버트. 그녀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린 채 죽어가고 있었다.



“......”



온 몸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흰색 스즈키복이 원래 빨간색이었던것 같은 착각이 들 정로도. 얼굴은 알아볼수 없을 만큼 뭉게져 있었다. 피가 고여 부풀어오른 고름들. 시퍼런 멍자국. 찢어진 입술. 머리카락엔 모래가 잔뜩 묻어서는 이리저리 뒤엉켜 산발이 되어있었다. 거품이 섞인 침을 질질 흘리며 집 앞에 쓰러져 있는 그녀. 정신을 잃었음에도 그녀는 손끝을 파르르 떨며 현관의 문 손잡이를 향해 팔을 뻗으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백지가 되버렸다. 계단의 끝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몰골이 사람이 맞는건지 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두 다리는 벌벌 떨려왔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생전 처음으로 보는 참혹한 모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하얗게 바랜 얼굴로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겨우 참아냈다.



한 동안 눈물만을 쏟아내며 백지가 된 상태로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을 때. 죽어가던 그녀의 무의식 속, 중얼거림을 들었다.



“...아렌...델..”



그리고, 지난날 그녀와 같이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왔다.


내 심장을 녹인 미소와 함께, 그녀가 말했던 말들이.



‘아 진짜 미안해, 너 이름은 절대 안 잊을께 미안하다!’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간에, 나는 죽어가는 그녀를 살려야 했다, 친구였으니까.



“라푼젤...라푼젤!! 정, 정신차려!! 야!!! 제발..제발 정신차려!!”



그녀를 업고 침실까지 부축해 눕힐때까지. 난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모두 떨어트리며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 움직였다. 핏물로 축축해진 스즈키복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내 교복에 닿아 점점 빨갛게 물들여왔다. 이불과 배게를 치울 생각도 없이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녀의 눈동자는 검은자위가 없이 흰자위만이 가득했다.



죽을지도 몰라. 라푼젤 피츠허버트 제발 정신차려.



“흐윽...씨발...사람몸을..어떤...”



처음으로 뱉은 욕. 그리고 찢어질 듯이 내린 지퍼와 벗긴 스즈키복 속, 여실히 드러난 그녀의 몸에 담겨있는 수백개의 자상. 나는 그것을 보고선 구역질을 내뱉었다. 면도칼의 미세한 날붙이 수십개가 훑고 지나간 것 같은 흉터들. 지난번 몸을 보여주었을때는 없던 것들이었다. 자상들 수백개에서는 줄줄 핏물이 흐르고 있었으니까. 코를찌르는 피냄새. 온 몸에 시뻘건 물감이 칠해진 듯이 푹 젖어있었다. 그리고 얼굴이 짖이겨진 고양이 문신. 분명 누군가 칼 같은 흉기로 벅벅 긁어놓은 듯이 살점이 찢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입을 막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주륵주륵 흘려댔다. 의사가 아니였으니까.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 서있을 뿐이었다.



“어떡해..어떡해...흐흑...야..야..정신차려봐..제발..!!”



툭툭, 뺨을 두드리는 내 손길에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릴뿐. 그녀의 몸은 점점 차가워져 갔다. 숨소리는 점점 미약해지고, 입에서는 하얀거품이 가득한 침들이 질질 흘러내렸다. 어느곳을 만져도 빨간 핏물덕에 손바닥이 점점 젖어들어갔다. 입에서는 울컥대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혼절한 채로 본능적인 감각만을 겨우 유지하며 피분수가 일 듯 왈칵 쏟아내고 있었다.



빨리, 구조대에 신고를 해야해.


하지만, 경찰에 신고해버린다면. 그녀는 잡혀들어갈지도 몰라.



분명히 폭력전과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라푼젤을 만든 사람들도 그러하겠지. 그녀가 이지경이 되버린 이유도 깊게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게 아니라면 별일없이 잘 살던 여자를 이렇게 반 죽여놓을 이유도 없을거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911를 누르던 것을 멈춰야 했다. 자칫하면 그녀를 살리는것과 동시에 감옥으로 보내버리는 선택이 될지도 몰랐다. 혹은 경찰서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살려둔것에 대한 보복. 그녀를 죽이기 위해 이런 짓들을 벌인 거라면 분명 그녀에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 극악무도한 행위들의 타겟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살려야했다. 눈앞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수는 없었다. 비록 훗날 내가 그녀처럼 이런 자상이 몸 안에 수백개가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그러면 어떡하면 되는거야. 말해줘 라푼젤. 제발 나에게 말해줘. 내가 죽어가는 너를 어떡하면 되는거야. 병원으로?. 우선 경찰에게?.



결국, 나는 핏물 가득한 손으로 들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액정에는 911이 적힌 화면이 아른거렸지만, 도저히 통화버튼을 누를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잘못된 선택 한번에 그녀의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몰랐으니까.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 이런 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할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은걸까. 아니면 싸움에서 진 사람들의 최후일까. 왜 죽이지 않은걸까. 왜 고통을 남긴채 살려둔걸까. 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걸까.



“왜...왜!! 왜!!! 흐흑...!! !!! 씨발 왜!!”



왜 이런일을 당했어. 왜 평소의 너처럼 당당하게 웃지 않는거야. 그때처럼 용감하게 맞서 싸우지 않은거야. 이건,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에 상체를 걸치고 숙여서는 하느님께 빌었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거죠. 하느님, 어째서 그녀가 쓰러질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나요. 어째서 당신은 보고만 있었던거에요. 이건 열여덟살이 감당할 만한 고통이 아니에요. 이건 학생이 버틸수 있는 삶의 무게가 아니에요. 제발요. 제발 한번만 그녀를 살려주세요. 제가 모든걸 바칠께요. 제 모든 돈을 드릴께요. 아니, 제. 제 수명을 가져가져도 되요. 그녀의 눈만 잠깐 뜰 수 있게 해주세요, 그녀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만 물어볼께요. 제발.


구조대에 연락을 하는 것.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자신의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 조차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녀를 살려야한다. 내가 직접.



“구..구급상자..구급상자에 뭐라도 있을 거야..!!”



우당탕탕, 달려나가던 나는 한껏 넘어져서는 바닥을 굴렀다. 젠장. 바닥에도 빨간 핏물이 가득했다. 미끌거리는 손과 발에 안간힘을 써서 바둥거려리며 겨우 일어섰다. 어느새 내 옷과 얼굴에도 잔뜩 묻어있는 빨간 피. 파르르 떨리는 손과 후들거리는 다리.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아 온 세상이 흐릿하고 울렁거린다. 따갑게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으며 오래된 텔레비전 옆, 서랍을 열어보았다. 여기, 여기 어디 있을텐데.



“..찾..찾았다..!”



안쪽 깊숙한 곳, 평소 잘 아프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서 구비해두었던 두 개의 구급상자. 나는 희망을 가지고 구급상자 두 개를 품에 안아 침실로 돌아갔다.


“흐흑..좀, 좀만참아 라푼젤..제발..죽지마..”



벌벌 떨리는 손끝으로 침대 옆, 탁상 위에 두 개의 구급상자를 올려두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쑤욱 땅 밑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 지하 지옥 끝까지 누군가 뒷목을 잡고 잡아 끄는 듯이 정신이 몽롱했다. 그럼에도 잘 잡히지 않는 구급상자의 잠금장치를 잡고는 뜯어버릴 듯이 열었다.



“뭔가, 뭔가라도 도움이 될만한게..!!”


감기약, 두통약, 데일밴드, 비타민, 포도당, 파스.



“...다, 다음건..”



이런것들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던지듯 바닥으로 날린 첫 번째 구급상자. 우당탕 날라간 구급상자는 알약들을 흩뿌리며 방 안에 나뒹굴었다. 그런것에 신경쓸 여력도 없었다. 다음 구급상자를 죽일 듯 열어재낀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무언가 응급처지를 할 만한 것들이 있는지 미친듯이 뒤적거렸다.



붕대, 거즈, 과산화수소, 요오드, 드레싱용 패키지 거즈, 가위,


그리고 지혈제.



“그, 그래!! 이거라면..”



나는 허겁지겁 라푼젤의 옷을 벗겨내었다. 이미 잔뜩 피를 머금고 무거워진 스즈키복은 피부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낑낑거리며 몸에서 떼어내듯 벗긴 뒤, 상처를 빠르게 훑어봤다. 그래, 다행이 하체는 멀쩡했다. 온갖곳에 멍이 잔뜩 들었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있었다. 허벅지부터 종아리 까지. 다행이 자상은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우선 드레싱용 패키지 거즈를 입으로 뜯어서는 약품이 발려진 축축한 그 천을 잡고는 천천히 몸 위에 축축히 젖어있는 피들을 닦아내었다.


“..제발..제발 멈춰라..”



하지만, 핏물은 닦아내고 또 닦아내어도 다시 피어올라왔다.



“아, 아냐..지혈제..지혈제를 먼저..”



하얀 통 안에 담긴 하얀색 가루, 뚜껑을 열어 그 가루들을 온몸에 펼치듯 흘뿌렸다. 그리곤 상처가 보이는 곳곳에 꾹꾹 누르며 밀어넣었다. 그것이 맞는 행동인지 아닌지도 판단하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응급처치법에 대한 얄팍한 지식만을 가지고 무작정 손을 움직이고 있을뿐.



“다, 다음은..”



잔뜩 피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너무나 흥분되고 떨리는 심장에 현기증이 일었다. 쓰러져서는 안된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서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죽어버리면 모든게 무너질것만 같았다. 나 역시도. 내 기억속의 그녀의 모습은 아직 남아있었다. 너가 죽어버리면 나도 죽어버릴지 몰라.



고양이 문신, 그곳에도 하얀 가루를 덕지덕지 바른 나는 요오드 통을 들고 상처들 겉에 치덕치덕 발라댔다. 한손을 모아 그곳에 빨갛고 역한 화학냄새가 나는 액체를 부어서는 그대로 몸에 칠했다는 것이 맞을거다. 살점이 덜렁거리는 곳은 어쩔줄을 몰라 토기가 올라오는것도 겨우 삼키며 조심스레 눌렀다.



인체실험, 누군가 본다면 충분히 그런 착각을 할수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상처들을 짓누르고 손끝으로 스쳐감에도 라푼젤은 정신을 잃은 채 허공속에 반쯤 열린 눈으로 흰자위만을 보이며 누워있을 뿐이었다. 어떤 신음성도 내뱉지 않고 마치 죽음속에 빨려들어가듯 점점 희미해지는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커억!!!”


“라, 라푼젤!! 숨!! 숨 쉬어!!”



젠장맞을, 라푼젤은 한 차례 피를 토했다. 정신을 잃었음에도 본능적으로 기도를 막는 핏덩이들을 반사적으로 뿜어댔다. 꺽꺽 거리며 벌어진 입으로 부글부글 피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흰색 거품도 같이.



“씨발!!! 씨발!!”



생각이 잘못되었다. 내가 할수 있을 리가 없었어. 아무런 지식도 없는 내가 뭘 하겠어. 이 병신같은 엘사 아렌델. 병신같은 년. 머저리같은 년. 머리를 굴려, 제발. 평소처럼 냉철하게 머리를 써서 생각을 해보라고.



“동네병원이라도!!”



난 허겁지겁 붕대를 풀어 라푼젤의 몸에 칭칭 감아댔다. 상처가 보이는곳이라면 어디라도 붕대로 돌돌 감아 핏물이라도 멈추기를 바랐다. 그리곤 미라처럼 누워있는 라푼젤을 이불 채로 잡아 끌었다. 평소였다면 부들부들대며 힘도 못썼을 텐데. 정신없이 그녀를 이불에 감싸고는 들쳐 업은 뒤 미친 듯이 현관문을 뛰쳐나갔다.


‘쾅!’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계단을 뛰어가듯 내려갔다. 두 세칸씩 쿵쾅거리며 쏘아내려가는 탓에 이웃주민들이 분명 욕짓거리를 할테지. 하지만 그딴거 신경쓸 시간 없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아악!!”


‘쿠당탕!’



뿌드득, 일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는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얼굴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쳐 박으며 나뒹굴었다. 순간 얼굴 전체가 마비가 된 듯이 얼얼했다. 마취주사를 맞은 듯 정신이 몽롱했고 그럼에도 라푼젤을 업었던 손을 놓지 않고 꽉 잡은채 부들거리는 다리로 파르르 몸을 떨며 처박았던 고개를 들고 상체를 일으켰다.



한쪽 눈이 감긴 듯 앞이 보이지 않았다. 코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입을 뻐끔거리며 헐떡거렸다. 입술도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달려나가야 했다. 이제 곧 일층의 계단이 보일꺼다. 한발자국을 내딛은 나는 휘청거리는 몸에 고개를 내려 내 발을 보았다. 신발이 한쪽으로 돌아가있다.



씨발, 나는 헐떡거리는 호흡으로 부러진 내 발목을 보고는 피식 웃고말았다. 병신같아. 참 병신같아. 진짜로 병신같아. 오늘 진짜 병신같은 날이야.


나는 부러진 발을 디딤발처럼 꾹꾹 바닥을 짚으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고통따위는 느껴지지않았다. 그런 스스로도 놀라웠다.


“발 한쪽이야 없어도 돼..근데 얘는 살려야 돼..”



눈에서 왈칵 눈물이 흘렀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난 하염없이 병원을 찾아 죽어가는 라푼젤을 업고 한쪽 발을 질질 끌며 동네의 병원이 있을만한 곳으로 몸을 이끌었다. 부디, 제발 한곳이라도 불이 켜져있기를.
.
.
.


내과, 이비인후과, 안과, 약국, 어느곳도 불이 켜져있지 않았다. 단 한곳. 허름한 정형외과만을 제외하고.


난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고선 불이 켜진 초록색 십자가를 보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덜렁거리는 발목으로 우당탕탕 쓰러지듯 병원의 문에 이마를 쳐박았다.



‘쾅! 쾅!’


“저, 저기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씨발 안에 누구 없어요?!!”



유리문을 부술 듯이 머리를 쳐대고 난 뒤. 건물 안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희끗거리는 노인. 분명한 의사였다. 난 하얀가운을 보자 그제서야 내 몸을 관통하는 고통을 느끼곤 정문 앞에 털썩 주저 앉아 울부짖었다.



“누, 누구십니까..”


“허억...허억...선,선생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노인, 그는 두 눈동자를 크게 뜨며 뻐끔거렸다. 내 몰골과 등 뒤의 라푼젤을 보곤 할말을 잊어버린거겠지.



“...제발..제 친구를 살려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난 정신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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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좀 짧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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