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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43화 - 북풍이 멈춘 뒤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3 09:29:48
조회 198 추천 15 댓글 9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43화 - 북풍이 멈춘 뒤



크으….. 아악! 허억…….!”


폐가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에 안나의 눈이 번쩍 뜨였고, 땀에 젖은 상체가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또 악몽이었구나……


아렌델로 돌아와, 파도에 흔들거리는 선실이 아닌 아늑한 자신의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된지 이제 3일째…… 하지만 그 3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노스 윈드에 있을 때는 겪지 않았던 악몽에 시달리며 비명과 함께 깨어나는 그녀였다.


얄궂게도 악몽의 내용은 항상 같았지만, 안나를 괴롭히는 방법을 가장 잘 알았다; 언제나 그녀가 보는 것은 피…… 엘사의 가녀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그리고 그 피보다도 몇 배는 끔찍한,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망가진 자의 체념.


그리고 무엇보다 안나를 아프게 하는 건…… 엘사에게 그 표정을 가지게 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언니라는 점이다.


똑똑똑


공주님……? 저에요, 라푼젤.”


“…….. 들어와.”


아주 잠깐이지만 안 들여보낸다는 나쁜 생각을 한 안나였다. 지금도 간신히 노스 윈드에 있던 시절의 추억을 억눌러 담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그 시간을 공유한 라푼젤을 보게 되면 정말 못 참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녀만이 안나가 지금 겪는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도 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공주님, 세상에……”


방에 들어온 라푼젤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막 일어난 안나의 모습이 초췌해보인다는 거겠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됐는지도. 물론 최악인 점은 거기에 대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지만.


엘사는…… 엘사는 어떻게 지내?”


간신히 입을 연 안나의 목소리는 온통 갈라져 있었다; 꼬박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으니 당연하지만.


멜리사가 직접 이끄는 함대에 의해 노스 윈드가 무력화된 직후, 그대로 엘사와 휘하 해적들은 전원 체포되어 지하 감옥에 투옥되었다. 사절단 형식으로 아렌델에 머무르는 위즐튼의 공작은 당연히 그들을 즉결 처형해야 한다고 날뛰었지만……


아렌델에는 아렌델의 법도가 있습니다, 공작. 아무리 중죄자라 해도 재판 없이 판결을 내릴 수 없는 법……. 우리가 체포한 해적들이니, 우리의 법대로 처리할 것입니다.”


강철도 썰어버릴 듯이 냉정한 멜리사의 말에, 자신이 바라는 바자 전부 이루어져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위즐튼의 공작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차피 재판의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있어서기도 하지만.


본래 체포된 해적에게 주어지는 형벌은 최소교수형이니까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멜리사와 마시멜로의 기민한 대처 덕에 안나가 노스 윈드에 승선해 있었다는 사실은 위즐튼이나 남부 제도에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그 사실까지 들켰으면 아렌델 자체가 위험해지는 최악의 상황까지 갔겠지만…… 어째선지 안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 못했다.


재판 날짜가 잡혔어요…… 4일 뒤에 이루어질거래요.”


“………………..”


아무 말도 없이 그저 표정만 한층 어두워지는 안나의 모습에, 보다 못했는지 라푼젤이 한마디 더 얹었다:


공주님…… 역시 여왕님께 한번 더 말씀드리는 게 어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알잖아, 랩스…… 지금 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게 고개를 떨궈버리는 안나. 당연히 멜리사와 대화를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아예 문전박대당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녀를 밀어냈듯이, 아렌델로 돌아오고 사흘 동안 제 언니의 얼굴조차 한번 보지 못한 안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젠 왜 언니가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려나. 예전엔 그저 자신을 멀리하는 멜리사가 원망스럽고 멀게만 느껴졌지만, 엘사와 대화한 이후론 그녀가 언니로서, 그리고 여왕으로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 좀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 거냐고!


하아……. 여왕님으로선 분명 합리적으로 선택하신 거겠지만……”


라푼젤 역시 막막한 건 매한가지인지 한숨만 푹푹 쉬며 중얼거렸다. 하긴, 그녀도 노스 윈드에 있으면서 플린과 카산드라와 많이 친해졌지. 그 둘이 당장 처형당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는 게 고역일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예상보다 제국의 압박이 저렇게 거세게 다가왔고, 왕족까지 나서서 엘사를 함정에 빠트려가며 아렌델을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두 제국과 동시에 전쟁을 벌일 수 없는 멜리사가 여왕으로서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엘사를 버리는 것 하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굴복해버리면 결국 이번에는 안위를 챙길 수 있어도 결국엔 안나가 직접 보아온 수많은 땅들처럼 결국 제국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나가 이곳에 있었더라면 언니를 설득할 수 있었으려나……”


같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는 안나. 그녀가 엘사와 떠난 이후로 멜리사와 한나가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올라프에게서 들었었다. 자신의 촉이 맞았다는 게 놀랍고 기쁘긴 했지만…… 멜리사로부터 전언을 들었을 때의 한나의 마음은 그만큼 더 크게 부서졌겠지.


여왕님도 참 너무하시죠. 아무리 지금 궁에 그 아이를 데리고 있기 곤란하다고 해도, 어디 잘 숨겨두면 될 일이지 그걸 또 도망치라고 나가라고 하시면……”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위험한 발언도 아끼지 않고 팍팍 내뱉는 라푼젤. 그러게, 굳이 나가라고 하지 말고 어디다 감춰둘 수 있었다면…… 잠깐, ?


랩스…… 역시 넌 천재가 틀림없어.”


?”


줄곧 침울해있다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자신을 와락 끌어안는 안나가 어지간히도 당황스러웠겠지. 라푼젤의 목소리에 담긴 당혹감을 무시하고 말을 잇는 안나:


랩스, 올라프한테서 한나가 머물던 방이 어딘지 들었지?”


? , 서재 옆의 작은 방…… !!!”


그제서야 그 방에 관련된 비밀을 떠올렸는지 눈이 왕방울만해지는 라푼젤.


가보자!”


!”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어쩌면 모두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 될지 모를 무언가를 위해.

 


***

 


철컹


누군가가 그들이 갇힌 감옥의 창살을 흔들어보았다. 아무 의미없는 짓이지만, 사흘째 여기 다함께 갇혀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신세가 되면 뭐라고 해보고 싶게 마련이다.

, 괜히 소란 피우지 마; 쓸데없이 경비병들이라도 몰려오면 어쩔 거야?”


어둠 속에서 크리스토프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면 뭐 어떄서; 그치들이 여기 들어와서 우리랑 드잡이질이라도 하겠어?”


저쪽에서 알라딘이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에 힘이 전혀 없었다; 이미 목이 매달리는 미래를 느끼고 체념한건지.


“………………..”


체념이라…… 그게 지금 엘사의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감정일까? 물론 이 상황을 타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녀는 주저없이 그걸 잡을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그 기회가 과연 주어질지, 답이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야; 여왕이 면회를 죄다 막아놔서, 적어도 그 망할 위즐튼 자식들이 눈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꼴은 안 봐도 돼잖아?”


퍽이나 다행이다, 인간아……”


애써 밝은 듯이 말하는 플린이었지만, 바로 카산드라에게 태클을 당하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너네들, 라푼젤이 없기가 무섭게 언제 그랬냐는듯이 또 싸우기냐……


후후…… 면회를 막는다고 못 오는 사람은 하수죠.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 때, 다시는 들을 일 없을 것 같았던 목소리가 엘사의 귀를 세차게 때렸다.


, 들은 적 없는 목소린데. 누구십니까?”


그간 그답지 않게 조용했던 오큰의 질문에, 감옥의 질척한 어둠 속에서 녹아나오듯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흰색 정복에 말끔한 인상을 지닌 사람, 하지만 그 마음 속엔 엘사조차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수심(獸心)을 지닌 사내.


어떻게 여길 들어왔죠, 한스……?”

 


- 작가의 변 - 


소제목 상태가 참..... 여러번 나왔지만, '북풍'은 엘사의 기함 노스 윈드를 나타내지만 동시에 엘사 자신에 대한 비유기도 하지. 노스 윈드가 아작나고 엘사가 사로잡힌 지금, 다시 한번 북풍이 불 수 있을까......?

상황이 아무리 거지같이 돌아가도 절망하지 않고, 설령 절망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게 짱나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 과연 한나를 찾아서 반격의 서막을 올릴 수 있을까?! 그리고 통스 이쉑은 굳이굳이 엘사를 찾아와서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려는 걸까?

다음화는 내일 올라옵니다. 이번주는 다행히 시간이 좀 있는 편이라, 여유 있을 때 바짝 달려보려고. 그럼 다음화 예고를 보자!


- 44화 예고: 땅 밑에서 -



고통 속에서 자라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고통을 주변으로 퍼트리는 일뿐이지요.


...


내가 죽어도 그 잘난 턱주가리는 부숴버리고 죽는다, 이 새끼야! 다시 들이대봐!”


...


“…… 보여줄 것 같냐고요, 악마 같은 인간.”


...


한나! 한나…… 여기 있는 거지? 있으면 대답 좀 해줘…..!”



평일 아침에 올리는 건 오랜만이네.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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