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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46화 - 절망의 불꽃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7 10:50:42
조회 183 추천 16 댓글 11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46화 - 절망의 불꽃



인정하자 한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한번 망가지고 나서야 실감하는 거지만, 사람이 미치는 데에는 의외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한나의 경우에는 실연의 충격, 그걸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 한순간에 가족과 친구를 모두 잃게 된 절망, 거기에 사흘을 꼬박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이곳 지하에서 식음은커녕 잠까지 걸러가며 연구에 매진한 것까지……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여 이미 궁지에 몰린 한나의 정신을 좀먹는 데에는 차고도 넘쳤다.


그렇게 부서진 상태로 한나는 결의한 것이다 기왕 버림받은 거, 삐뚤어지기로.


계획 자체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했다: 재판이 이루어지기 전에 지하 감옥을 폭파, 자유가 된 엘사와 동료들에게 새로 개발한 무기들을 전달해 함께 탈출한다. 말도 안되게 무모한 계획이었지만, 그동안 아렌델의 군사 및 무기체계에 대해 많이 익힌 한나로서는 적어도 모두를 왕성으로부터 탈출시킬 자신은 있었다.


문제는 한나 혼자서 지하 감옥의 삼엄한 경비를 뚫을 재간이 절대 없다는 건데…… 그 문제는 오히려 간단히 해결되었다. 진작에 성의 구조에 대해 도면 단위로 파악해놓은 한나는, 이 비밀 기지의 중심부가 바로 지하 감옥의 아랫부분에 있다는 걸 파악한 것이다. 그럼 그 방을 폭약으로 날려버리면…… 자연스럽게 모두를 풀어주는 동시에 탈출로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폭발을 왕성의 기저에서 일으키게 된다면, 성 전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이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멜리사가 놓였었던 선택의 기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새삼 깨달은 한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과정이 어찌됐건 멜리사는 아렌델을 위해 그들을 버리는 선택을 했다. 그럼 한나도 소중한 이들을 구하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버리게 된다 해도.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아야 해……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미리 준비해둔 불을 꺼내서 벽에 박힌 막대형 폭탄에 던지는 순간 -


안돼------!!!”


비명과 함께 자신과 똑 같은 얼굴이 마치 붉은 섬광처럼 그 사이로 날아들었다.


푸학


한나의 눈앞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원래 있어야 할 곳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그리고 그에 뒤따라야 할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악, 공주님----------!!!!”


찢어질듯한 라푼젤의 비명에도, 바로 코앞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에도 마치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는 한나였다…… 그 불타는 대상이 바로 안나의 옷자락이었으니까.


우왁, 이 불 되게 세잖아……!”


정작 불이 붙은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는 아니고, 생각보다 더 거센 불길에도 약간 당황하기만 한 표정으로 손으로 불붙은 옷을 팡팡 치고 있었다. 아니, 그걸로 안 꺼지거든요?!


공주님, 이게 무슨…….! , 물이 어딨지?!”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안나를 도움과 동시에 주변에 물을 찾아 급히 두리번거리는 라푼젤…… 그리고 그 상황을 얼어붙은 채 지켜보는 한나.


생각해보면 그 시점에서 이미 한나는 독기를 잃었다. 정말 자신의 계획을 끝까지 수행할 거였다면, 눈앞에서 안나가 불타건 말건 거기에 충격을 받고 있을 시간 따위 없이 바로 새 불을 피워 벽에 박힌 폭탄을 터트렸어야 했다.


…… 미안해, 엘사 언니, 역시 난 그 정도로 독한 사람은 못 되나봐.


투학


…..?”


상황 파악이 늦은 안나와 라푼젤이 얼빠진 소리를 냈을 땐, 이미 방구석에 있던 지점토 상자를 가져온 한나가 그걸 통째로 불붙은 안나의 옷자락에 들이부은 뒤였다. 원래 불을 끌 때는 물도 좋지만 이렇게 흙으로 덮어버리는 게 최상책이지.


“…….. 아무튼 공주님과 엮이면 계획되로 되는 일이 없네요.”


거짓말처럼 푸시시 꺼져버린 불꽃을, 제 손으로 꺼버린 탈출의 희망을 내려다보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한나의 눈앞에 도끼눈을 한 라푼젤의 얼굴이 드리웠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에요?! 설마 했는데, 역시 벽에 박힌 저것들은……!”


가는 몸에서 도저히 나오기 힘든 힘으로 한나의 멱살을 틀어잡은 라푼젤이 당장에라도 한대 칠 기세로 무섭게 추궁했다. , 카산드라도 그렇고 어떻게 자기 주변 여자들은 죄다 이렇게 세담……!


진정해, 랩스! 난 괜찮으니까!”


그치만 공주니임……”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가 울상이 되었다가 난리도 아닌 라푼젤에 비해, 정작 불타버릴 뻔한 안나는 태연한 얼굴로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한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저거 다 네가 만든 폭탄이구나. 저걸 터트려서 감옥을 부수려는 거였지?”


“…… 맞아요.”


이미 망한 작전 따위,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듯 순순히 대답하는 한나. 체념이 빠른만큼 상처도 덜하니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마음이었지만, 아직도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덜 다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 왜 울고 있어, 한나?”


……?”


안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볼 위로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는 걸 눈치챈 한나. 어라, 어째서……?


잠시 느닷없는 눈물에 정신이 팔린 사이, 어느새 한나 바로 앞까지 온 안나가 양손을 들었다. 뭐 싸대기라도 때리려나. 어쩔 수 없지 뭐…… 자신이 안나여도 두들겨패는 걸로는 성이 안 찰 테니.


그렇게 체념의 늪에 빠져드는 한나에게…… 안나의 두 팔이 가볍게 둘러졌다.


……”


최근 참 놀랄 일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안나가 한 일만큼 놀라운 게 있을까? 방금 눈앞에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터전을 무너뜨리려 한 사람을, 고의는 아니었다지만 자신을 태워죽일 뻔한 사람을 이렇게 감싸안을 수 있다고……?


미안해, 한나…… 지금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는 안돼.”


이해한다고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중얼거리는 한나를 바라보는 안나의 입가에 쓴웃음이 달렸다.


아까 말했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러고보니 그랬었지…… 하지만 조금 전까지의 한나는 절망과 아집에 사로잡혀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었다. , 생각보다 여왕님과 완전히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구나……


그치만…… 나도 이럴 수 밖엔……”


안나의 품 속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한나가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언제나 약하니까, 아프니까,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항상 보호받기만 하는 나니까, 이런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아휴, 너도 그렇고 멜리사 언니도 그렇고…… 왜 항상 누군갈 구하기 위해 다른 걸 포기하는 거야?”


…..?”


이 상황과 정말 어울리지 않게 가벼이 투덜거리는 안나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한나. 그제서야 품에서 그녀를 놓아준 젊은 공주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이래뵈도 욕심이 많아서 말이야. 엘사도 반드시 구해낼 거지만…… 아렌델의 공주로서, 이 나라도, 그 나라 안의 사람들도…… 그리고 물론 우리 언니도 절대 포기 못해. 반드시 모두 구해낼 수 있게 만들 거니까!”


“………….. 욕심이 많다……”


마치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자기 앞에 선 여자를 멍하니 바라보는 한나. 놀랄 수밖에 없다……


“…10.0pt;line-height:107%;color:#333333">난 욕심이 많아서그것 말고도 많은 걸 원하지.”

10.0pt;line-height:107%;color:#333333">

그것은 불과 며칠 전, 멜리사 여왕이 자신에게 직접 해주었던 말이니까.


…… 두 사람, 전혀 그렇게 안 보이면서 생각보다 닮은 자매였군요.


근데 어쩌냐; 욕심에 비해선 내 능력이 부족해서, 혼자서는 안돼. 한나…… 나랑 같이 가자. 우리 함께라면, 멜리사 언니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엷게 웃으며 한나에게 손을 내미는 안나. …… 솔직히 아직 두렵고 불안하다. 그렇게 좋게만 생각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아무 희생도 치르지 않고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다고 감히 바랄 수 있을까?


솔직히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 책임져야 할 거에요. 사람한테 그렇게 함부로 희망을 뿌리고 다니고.”


, 그건 안돼; 널 책임지는 건 멜리사 언니가 할 예정이거든.”


실없는 농담(….이겠지?)을 하는 안나의 손을 꼭 붙잡으며, 뒤에 할 뻔한 말을 가만히 삼키는 한나였다:


당신이라면……. 믿어볼게요.’



- 작가의 변 - 


이번화 한줄요약: 짱나가 짱나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나는 폭탄으로 감옥을 붕괴시켜서 엘사네를 탈옥시킬 계획이었는데, 문제는 성 지하에서 그 짓을 했다간 왕성 전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었던 거지. 안나는 공주 입장에서 그걸 허용할 수 없었던 거고. 그리고 애초에 멜리사와 마찬가지로 한나도 아렌델과 엘사, 둘 중 하나를 포기해서 나머지 하나를 구하려고 한 건데, 안나는 처음부터 둘 다 구할 생각이었던 거거든.


자, 이제 한나도 정신차렸으니까 동생즈 둘이서 얼른 멜리사 정신차리게 하러 가야지! 다음화 예고를 보자!



- 47화 예고: 감히 바라건대... - 



“…… 비겁한 변명일 뿐인 것을.”


...


왜겠어? 이 애도 아는 거야; 아직 포기하긴 이르단 걸.”


...


“…… 정말 그렇게 절 안 보실 건가요, 여왕님…..?”



다음화는 네자매....긴 한데 엘사 빼고 셋이서만 나오는 전개랄까. 월요일에 올리는 건 오랜만인데, 이번엔 내일 못올릴 가능성이....ㅠㅠ 암튼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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