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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48화 - 심판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20 17:13:18
조회 207 추천 16 댓글 11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48화 - 심판



처음 해적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엘사는 언젠가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란 걸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비록 목적은 제국의 횡포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꼴이 나지 않도록 도우려는 취지였지만, 그걸 위해 취한 방식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언젠간 결국 그 죗값을 치르게 될 터였으니까.


하지만 그걸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막상 재판장에서 수갑을 찬 상태로 피고인의 신분으로 올라선 기분은 다소 달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자리한 사람들 중 대놓고 그녀에게 적대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점일까.


오오, 이 나이를 먹고 나서 드디어 저 악마가 심판받는 날을 보게 되다니……!”


그 중에서도 위즐튼의 공작은 당장 춤이라도 출 기세로 환희에 싸여 있었다. 간접적으로 그녀를 함정에 빠트리는 데에 일조했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클까.


“…………….”


그 옆에 있는 한스 왕자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미 저 표정을 한 그에게 총탄 세례를 받은 엘사의 입장에선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엘사…..”


반대편에 앉아있는 안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위해준다는 건 축복이지만, 여기서 자신의 최후를 지켜보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한데…… 적어도 그녀는 좋은 것만 보게 해주고 싶었건만.


정숙! 곧 여왕님의 판결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무표정을 유지한채 시립한 매티어스의 외침과 동시에 홀 중앙에 등장한 멜리사. 모두가 기립해 오늘의 심판관인 그녀를 맞이했다…… 저마다 제각각의 표정과 기대를 품은 채로.


“………….”


정작 멜리사 본인의 시선은 오로지 엘사에게 꽂혀 있었지만, 자신의 기억 이상으로 표정이 증발해버린 얼굴에선 어떤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 뭐 어차피 결과가 뻔하니까 읽을 수 있어도 의미가 있겠냐마는.


사실 멜리사의 주장으로 재판정에 서게 되긴 했지만, 사실 말이 재판이지 일방적인 판결의 장소일 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해적을 상대로는 재판 자체가 원래 성립이 안된다. 게다가 당장 즉결 처형해야 한다고 방방 뛰던 위즐튼 사람들까지 입회해 있으니 제대로 된 절차가 있을 리가.


“………… 공작.”


잠깐의 침묵을 깬 멜리사의 말이 향한 곳은, 의외로 엘사가 아닌 위즐튼의 공작이었다.


, 여왕님! 저 악독한 해적이 저지른 일에 대한 증언이 필요하신 건가요?”


일이 다 자기 뜻대로 풀려서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건지 어깨가 한껏 치솟은 공작이 크게 대답했다. 그 기고만장한 태도에 멜리사의 표정이 미세하게 썩는 걸 본 엘사의 얼굴에 쓴웃음이 달릴 뻔했다; 웃은 이유는 여전히 이게 저 사람의 본심이 아니라는 걸 느껴서이고, 그 웃음이 쓴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류의 파도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처지를 동정해서이다. 스케일은 한참 다르지만 같은 리더로서의 공감이라고나 할까.


이전에 얘기했었죠….. 이 사람이 아렌델로 오게 된다면, 그 누구도 상상 못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어딘가 비릿한 웃음과 함께 나온 멜리사의 말에 역시 음흉한 미소로 응답하는 공작.


여왕님께서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라는 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군요…… , 물론 귀국에도요.”


거기까지 듣고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멜리사의 시선이 다시 엘사를 향했다.


“…… 엘사 드레이크, 그대의 죄목은 굳이 여기서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겠지. 그대의 해적 행위로 인해 위즐튼과 남부 제도의 각종 식민지들이 막대한 재산 및 군사적 피해를 입었다. 본래 해적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판결은 오로지 사형뿐. 잘 알고 있겠지?”


“…… 그렇습니다.”


담담히 대답하는 엘사였지만, 그 와중에 멜리사가 위즐튼과 남부 제도에입힌 피해만 콕 집어 말했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 거꾸로 말하면 아렌델에입힌 피해는 없다는 걸 드러낸 격이다. 슬쩍 옆으로 곁눈질을 해보니, 한스는 그 뉘앙스를 느꼈는지 미소를 유지하면서도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좋다. 이 방 안에 너의 운명에 관심이 깊은 사람들이 참 많으니, 지체없이 판결을 내리도록 하지.”


멜리사의 말에 잠시 눈을 감고 하늘을 우러르는 엘사.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후회는 없다. 후회는 없지만…… 미련도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무심코 그녀의 시선이 멜리사 근처에 있는 안나 쪽으로 돌아갔다. 그녀답지 않게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


이제 죽을 때가 되니까 헛것이 보이나? 왜 안나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 것처럼 보이지?


“’용의 딸엘사 드레이크! 아렌델은 너와 같은 해적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다. 이에 아렌델의 여왕으로서 판결을 내리노니!”


“…………..”


칠흑의 여왕의 카리스마에 좌중에 긴장이 달렸다 사실 판결이야 뻔함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아우라를 내뿜는 멜리사가…… 씨익 웃었다……?


문제는 네가 해적이라는 것이니…… 너를 해적이 아니게 만들면 되는 거구나?”


“………………………..???”


멜리사의 말에 잠시 모두의 눈빛에 혼란이 달렸다당사자인 엘사를 포함해서. 잘못 들었나?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한 건가? 사형에 대한 굉장히 현학적인 표현인가?


무얼 그리 놀라느냐? 당연한 것 아닌가; 그대가 해적이라고는 하나, 그대가 제국을 상대로 벌인 행위는 모두 나의 묵인과 승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거늘!”


“……………..!!!!!!”


아무도 예상 못한 멜리사의 폭탄 발언에 홀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위즐튼의 공작은 당장에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기세였고, 항상 미소짓고 있던 한스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엘사도 대혼란에 빠진 건 마찬가지였고. 저걸 자기 스스로 밝힌다고? 애초에 자신들 사이의 거래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를 이렇게 쳐내는 것일텐데!


거기에 은근슬쩍 그녀에 대한 호칭까지 에서 그대로 높인 멜리사가 두 번째 폭탄을 떨궜다:


그대의 피붙이까지 붙잡아가며 반쯤 강제로 한 청이기는 하지만, 그대가 나의 의지를 이렇게나 잘 따라줬으니 그대를 해적으로 두는 것이 사리에 맞을 리가 없지. 하여 그 공을 높이 사 그대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는 바이니, 이 시간부로 그대를 일컬을 호칭은 드레이크 경일지니!”


뭐라고…………!!!”


그제서야 언어 능력이 돌아왔는지 눈이 왕방울만해진 위즐튼의 공작이 목이 막힌 소리를 냈지만,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제 할말을 이어서 하는 멜리사였다:


물론 나도 양심은 있다; 그대가 아렌델을 위해 세운 공훈과 지금까지의 모든 노고를 그저 작위 하나로 퉁칠 정도로 양심없는 군주가 아니다, 나는.”


멜리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진행될 때마다 자리한 위즐튼의 인사들의 턱이 점점 바닥에 가까워졌다; 아마 충격이 지나쳐 아무 생각도 없어진 게 아니었다면 엘사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으리라.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저 사람은!? 여기서 그녀를 두둔하면 두 제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게 될텐데! 일국의 군주로서 그걸 감당하겠다는 건가? 남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을 위해서?


나는 선장으로서의 그대의 능력과 결과로 보여준 수많은 전적들, 그리고 그대의 아우와 함께 이루어낸 눈부신 기술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다. 해서 현 시간부로 엘사 드레이크에게 제2함대의 전권을 아우르는 제독의 자리를 내리며, 그 아우 한나 드레이크는 수석 기계공학자로 임명하는 바이며, 나머지 인원들에게도 능력에 걸맞는 적절한 자리를 내릴 것이다!”


그만, 그마안-----!!!”


기함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위즐튼의 공작에게 잠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의 입장에선 모든 게 순리대로 풀려가다가 갑자기 멜리사가 밥상을 뒤엎다 못해 도끼로 깨부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게 당연하겠지만.


공작! 엄숙한 재판의 자리에서 소란이라니! 그것도 여왕님께서 판결을 내리고 계시건만!”


멜리사 뒤에 시립해 있던 근위대장 마시멜로가 호통을 쳤지만, 이미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공작의 귀에 그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건 배반이야! 저 해적놈이 우리에게 끼친 피해가 얼만데! 당장 화형시켜도 모자랄 판에 뭐? 작위를 줘?! 이런 식으로 제국을 농락하다니!”


마구 악을 쓰는 공작의 모습이 워낙 추해보여서였을까? 그 때까지 잠자코 있던 엘사가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빼앗은 재물? 탈취한 인력? 전부 당신들이 식민지에서 착취한 거잖아. 도둑질한 걸 다시 빼앗아갔는데 뭐가 불만이지?”


, 저 년이 어디다 입을 함부로……!”


엘사의 싸늘한 반박에 역으로 자극을 받았는지 더 길길이 날뛰던 공작이 아예 자리에서 뛰쳐나올 기세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만!”


“……..!”


벽력 같은 멜리사의 고함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아까와 비슷하게 삐딱한 웃음을 지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위즐튼의 공작에게 시선을 돌린 젊은 여왕이 말을 이었다:


건방지군, 공작. 예를 갖춰라; 네 앞에 선 사람은 아렌델의 어엿한 기사이자 귀족으로, 내가 신임하는 부하이자……. 앞으로 내 올케가 될 사람이기도 하니까.”



- 작가의 변 - 


해냈다 해냈어! 멜리사가 일 저질렀어! 정확히는 멜리사를 설득한 안나랑 한나가 저지른 거지만 뭐 어쨌든! 이제 저쪽이 심판받을 차례다 젠장!


예전에 말했다시피 본 픽에서 엘사 캐릭터의 모티브 중 하나가 프랜시스 드레이큰데, 실제 역사에서 드레이크가 스페인 상선들을 하도 많이 털어먹어서 스페인 쪽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항의했는데, 여왕은 좆까라 그러고 드레이크한테 벼슬을 내려버렸지. 물론 멜리사처럼 아예 왕족과 결혼까지 시키진 않았지만 ㅋㅋㅋㅋ


자, 길고 긴 고구마 타임이 지났으니까 이제 슬슬 반격을 준비해야겠지? 내일은 못올리지만, 일단 담화 예고를 보자!



- 49화 예고: 용기사 - 



되게 실례네, 언니! 엘사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걱정 말라고!”


...


그대는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믿어라…… 우리들의 아우들 덕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듯이.”


...


…… 전쟁이다아아아아아아아앗!!!”


...

, 시끄럽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은 뇌에 빈공간이 울려서 그렇게 소리가 큰 거야?”


...


“…… 다녀왔어, 한나.”


...


후후, 설마 이런 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줄이야…… 당신들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절 즐겁게 하는군요.”



좀 더 사이다스러운 전개로 가고 싶은데, 이 정도가 내 한계다 ㅋㅋㅋ 암튼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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