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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결혼 계약서(25)

ㅇㅇ(222.110) 2020.08.22 18:02:28
조회 534 추천 57 댓글 6


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안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안나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본 순간 알았다.

지금 안나를 보내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엘사가 다시 안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안나는 고개를 돌린 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엘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이에요? 믿지 못하겠다니..”


“놔요.”


“안나, 제발..”


엘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애원하듯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여전히 엘사를 쳐다보지 않았다.

엘사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금방이라도 안나는 떠날 것 같았다. 엘사는 안나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었다.

엘사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짚어봤지만 이렇다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일전의 거짓말 때문에? 아니면 혹시 안나가 위즐튼과 자신이 만나는 것을 봤을까?

엘사는 두려운 눈으로 안나를 불렀지만 안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왜 그러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안나!”


“애초에 거짓이 아닌 게 있긴 했어요? 아니, 한 번이라도 진심인 적은 있었어요?”


“..왜..그런 말을 해요..”


엘사는 인상을 쓰며 겨우 말을 이어갔다. 안나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보다 자신이 안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더 쓰렸다.

안나의 말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이 박히는 것 같았고 엘사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마침내 엘사를 바라본 안나의 눈동자는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나는다시 고개를 숙였다.

마치 엘사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안나의 얼굴을 본 순간 엘사는 잡았던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진심이에요.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어요.”


“그럼 왜 거짓말했어요?”


“안나, 무슨..”


“아렌델 프로젝트.”


“..!..”


“왜요? 이제 막 생각이 났어요? 위즐튼과 만나면서?”


안나의 말에 엘사는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버린 것 같았다.

무슨 변명을 해야할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고통스러워 하는 안나의 모습이 엘사의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안나..내가 전부...설명..”


“증명해요.”


안나는 고개를 숙인 채 엘사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은 엘사가 무슨 말을 하든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미 위즐튼을 만나는 상황을 본 이상 안나는 엘사의 말도,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당신을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해?


“당신이 말했죠? 진심이라고. 그럼 증명해봐요.”


“안나..”


“당신의 마음을 보여줘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제 당신을 못 믿을 것 같아.”


안나는 천천히 고개를 올려 엘사를 바라봤다. 입은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흘러내리는 눈물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미세하게 떨리던 손이 마침내 엘사에게서 떨어졌다.

안나에겐 믿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혼까지 한다면 안나와 엘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연결점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엔 안나는 아직 엘사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증명해보라는 말은 안나가 엘사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어떤식으로든,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말해줘.

내가 당신을 한번 더 믿을 수 있게.


엘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안나를 보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는 안나를 보니 지금까지 해온 일이 전부 허사가 되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

안나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내해왔는데 정작 안나가 어떤 지 생각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알아채지 못했다.

엘사는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겨우 말을 꺼냈다.


“...증명..할게요. 이틀..만, 이틀만 시간을 줘요.”


“…….”


“모든 걸 말해줄게요. 안나, 제발...”


엘사의 말에 안나는 아무 말없이 돌아섰다. 엘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엘사는 안나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안나가 원치 않았으니까.

안나의 대답이 두려웠다.


엘사는 숨을 붙잡으며 안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제발 그대로 떠나지 마요.


“..하루. 하루 줄게요. 그 뒤는...”


“…….”


“그땐 당신도 나도..솔직하길 바라요.”


중얼거림의 가까운 말을 남기고 안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안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엘사는 뻗었던 손을 거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안나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엘사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안나가 허락해 준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구나.”


루나드는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이미 예상을 방문한 듯 쓰고 있는 안경 너머로 흘끗 엘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엘사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뒤로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원하는 대답은 얻었고?”


“…….”


“아니, 얻지 못했으니 날 찾아왔겠지. 꽤 급한 모양이구나.”


“저는..”


“경영이라는게 쉬운 게 아니다. 수백, 수천명의 사람을 책임져야하지.”


엘사는 입을 꾹 다문 채 루나드를 노려봤다. 불행히도 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든 열쇠는 루나드가 쥐고 있었다.

그는 안경을 벗고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놨다.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엘사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무슨 말을 할 지 아는 것처럼.


“위즐튼이랑 무슨 계약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내가 회장이란 자리에 있어서 단순히 권력만 누리는 게 아니야. 그 사람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먹여 살리고 있지. 너와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에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이용하고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빼앗아야 한다. 그리고 준비도 되어 있어야겠지.”


“…….”


“내 대답을 듣기 전에 한번 물어봐라. 너는 준비가 되었는지.”


“..무슨..”


“사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말이다.”


루나드는 언제든 말해줄 수 있다는 듯 엘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말은 이제부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는 엘사가 블랙우드를 택할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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