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습니다. 뭐든 원하시는 데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예. 예."

내가 한말이지만 내가 들어도 너무나도 비굴했고 자존심이 상했다.

먹고살기위해선 때로 자존심과 돈을 저울위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해야하는 법이다.

이 번 저울은 자존심보다 돈 쪽으로 기울였다.

"작가님 내일 아침 10시까지 서울시 xx에 있는 출판사로 오세요."

미친 소리였다. 그 시간까지 맞춰서 출판사에 도착하려면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해야한다.

'미친 소리하지 마시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돈'과 '미래'라는 것이 그것을 꾹꾹 눌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4시 30분차를 타기위해선 적어도 3시 30분에 일어나야한다.

지금자도 5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나는 짜증과 내일 있을 미팅에대한 걱정으로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아 침대에 누웠다.

일찍 잔 덕인지 제시간에 일어난 나는 계획대로 첫차를 탈 수 있었다.

출판사 적어람은 전에도 가본적이 있어 가는데는 그리 큰 어려움이 있지않았다.

출판사에 도착하기전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되긴 했으나 출판사 측에서 잡은 약속이었기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간다면 자괴감에 세 달간은 글을 쓰지 못할것이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출판사 건물에 들어간 후 안내데스크에 물어물어 약속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석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나는 약속시간에서 1시간이 지나서야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는 담당자를 볼 수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화를 낼 수도 없다.

대신 나는 소심한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담당자가 오고있음에도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연재사이트를 돌아다니던 나는 쪽지가 한 통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보낸이:글피아]

...해서 '작가 정현민'작품이 다른 곳과 계약되어있지 않으시다면 저희와 작업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곧 앉아있는 나를 향해 쏘아붙이는 출판담당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작가님 뭐하고 계셔요? 오셨으면 저부터 찾아오셔야 하는거 아니에요? 그리고 인사도 안하시고 출판하기 싫으세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씨발."

"네? 와~ 진짜 출판하기 싫으신가 보네. 정신 나갔나?"

"좆."

담당자는 내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이제 저희 출판사에서 출판은 꿈도 꾸지마세요."

나는 쪽지가 열려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담당자의 눈에 들이밀며 한마디 했다.

"새끼가."

담당자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