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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대 미스터 올림피아의 다양한 이슈 및 사건들
미스터 올림피아란? 1년마다 진행되는 보디빌딩계의 월드컵으로 각 국에서 열린 프로쇼 대회에 우승하거나 누적 포인트를 통하여 올림피아 출전 자격을 얻은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이다.원래는 모든 종목에서 IFBB가 인정하는 프로쇼만 우승하면 바로 미스터 올림피아를 출전할 수 있었으나, 2026년부터는 클래식 피지크, 맨즈 피지크(이하 남성 종목)와 비키니, 웰니스(이하 여성 종목)은 시즌 누적 포인트가 전 세계에서 25등 안에 드는 선수들만 출전이 가능해짐.참고로 미스터 올림피아 만큼 세계 탑급의 프로쇼로 인정 받는 프로쇼인 아놀드 클래식, 피츠버그 프로, 뉴욕 프로, 두바이 프로는 다른 기타 프로쇼보다 포인트를 많이 획득 가능하다. 또한 과거에는 올림피아에서 5등 안에 들면 자동으로 내년에도 출전이 가능했으나 올해부턴 3등부터 자동 진출임.미스터 올림피아의 트로피는 ‘샌도우’ 라고 하는데 이는 20세기 초에 보디빌딩을 창시한 ‘유진 샌도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진 샌도우는 원래 파워리프팅 선수였으나 아름다운 육체를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미국 할리우드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그게 보디빌딩의 시초이다. 이후 시간에 지나 1960년대에 웨이더 형제(조 웨이더, 벤 웨이더)가 국제보디빌딩협회 IFBB를 만들며 현재에 오게 된 것이다.1) 1975년 미스터 올림피아해당 대회는 미스터 올림피아 역사상 가장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대회였다.이 대회가 치뤄지기 전에 미국 전역에 ‘펌핑 아이언‘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해당 영화는 1975년에 치뤄질 미스터 올림피아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과정에 그 속에 있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루 페리그노(마블 시리즈 ‘헐크‘의 주인공)의 라이벌리가 비춰지면서 미국을 너머 전 세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해당 영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 대회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우승은 아놀드가 하게 되었음.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아놀드는 은퇴를 선언했고 영화배우로의 전향을 시작함. 해당 대회는 단순히 인기를 끈 것에서 끝나는게 아닌 이 대회를 기점으로 보디빌딩 또한 언더그라운드의 취미에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즐길거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평가 받은 대회임.2) 1980년 미스터 올림피아해당 대회에서는 1975년 미스터 올림피아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다시 한번 복귀를 선언해서 라스트 댄스를 뛰었던 대회이다.최종 결과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다시금 5년만에 챔피언에 자리에 올라섰다.하지만 해당 대회는 역대 미스터 올림피아 중 가장 판정 시비가 심했던 대회라고 평가받는다. 아놀드는 다른 선수들처럼 한 시즌을 갈아넣어 무대를 준비하고 올라온게 아닌 영화 촬영 중 주변에서 “다시 보디빌딩 대회 나가도 되겠는데?” 라는 말을 듣고 즉흥적으로 출전을 결정해서 다소 짧은 기간에 몸을 만들어 나온것이다.무대를 보던 대중들과 선수들도 마이크 멘처(사진에서 가운데에 콧수염이 있는 선수), 프랭크 제인(마이크 멘처 오른쪽 선수), 크리스 디커슨(프랭크 제인 오른쪽 선수)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 했었다.근데 결과는 아놀드의 우승.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아놀드의 유명세를 고려해서 다시금 그가 우승해서 대회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 몸과는 상관없이 그를 우승 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마이크 멘처는 해당 대회의 판정을 인정 할 수 없다는 항의에 의미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고 당시 중계를 하던 방송국들도 편파판정이라고 방송 중 얘기했다.3) 1992년 미스터 올림피아이 대회 직전에 있었던 1991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리 헤이니의 8회 연속 우승을 저지할 뻔한 괴물 신인이 등장했었다. 그는 바로 영국의 ‘도리안 예이츠’예이츠는 1980년대에 들어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리 헤이니의 적수가 없어서 지루해졌던 보디빌딩 씬에 새로운 바람을 넣었다.하지만 해당 대회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리 헤이니가 우승하고 리 헤이니는 8회 우승이라는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내려오겠다” 는 신념을 지키며 은퇴를 선언했다. (참고로 리 헤이니는 이후에 목사로 직업을 선택하여 현재로 종교활동을 하며 운동을 병행해서 현재도 몸이 좋음)그리고 열린 1992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도리안 예이츠는 작년보다 더 커진 사이즈로 등장하며 본격적인 ’매스 몬스터’의 시대, 그리고 본격적인 성장호르몬 시대를 열었다. 예이츠의 1992년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 직전까지는 오픈종목이 체형미를 위주로 봤다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이즈의 싸움이 되면서 이후 IFBB가 클래식 피지크, 맨즈 피지크와 같은 체형미를 보는 종목을 신설하는 일을 만들었다.또한 이전까지 보디빌딩 운동법은 별반 일반인들과 선수들의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 큰 차이는 없었으나 이 때부터 예이츠만의 독특한 운동법이 케미컬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따라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생활체육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가 열린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4) 1998년 미스터 올림피아해당 대회는 앞서 말한 매스몬스터 시대의 창시자, 도리안 예이츠가 은퇴 후 치뤄진 첫 올림피아였다.당시 전문가들은 모두가 ‘플렉스 휠러’의 우승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회의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전년도 미스터 올림피아 9위이며 아무의 기대도 받지 못하던 로니 콜먼이 괴물과 같은 몸을 만들어 나오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심지어 이 때는 플렉스 휠러만 나온 것이 아닌 케빈 르브론, 숀 레이, 크리스 코미어 같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괴물들이 총출동한 대회였다.이 대회는 한국에서도 당시 대한보디빌딩협회를 통해서 국내에 들어온 ’머슬 앤 피트니스‘ 잡지를 통해서 국내 보디빌딩 팬들에게 퍼지며 놀라움을 줬던 사건이다. 이후 이 대회를 기점으로 로니 콜먼은 8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쳐져있던 보디빌딩의 인기를 다시금 뜨겁게 만들었다.ㅣ5. 2006년 미스터 올림피아로니 콜먼의 독주를 막을 사람이 있을까? 싶을 시점이던 2001년에 로니 콜먼의 사이즈를 턱 끝까지 따라잡은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로니와 함께 2000년대 보디빌딩의 전성기를 이끈 제이 커틀러.하지만 2001년 미스터 올림피아도 로니 콜먼이 우승하면서 아쉽게 콩 라인에 머물게 된 제이 커틀러. 심지어 해당 대회에서 시합 30분 전부터 로니가 탈수 증세로 위험해지자 로니는 어쩔수 없이 수분을 섭취하면서 컨디셔닝에 차질이 있었음에도 심사위원들은 로니의 승리로 간주함.아쉬움을 뒤로한채 다음 해에는 본인이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로 쭉 콩 라인에 걸치던 제이 커틀러, 그리고 그 것이 깨지고 드디어 보디빌딩의 황제가 바뀐 대회가 바로 2006년 미스터 올림피아. 이 대회의 결과는 단순히 커틀러의 승리가 아닌 로니 콜먼이라고 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의 끝을 알리는 대회이기도 했음.결국 이 대회 패배 이후 다음 대회에서도 커틀러에게 자리를 내준 로니는 결국 은퇴를 선언함.
작성자 : 보갤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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