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유니버시티' 처음에는 캐릭터 일러스트가 특이해서였다. 개성 있는 컬러감과 캐릭터성에 끌려 부스를 방문했고, 행사장에 출품된 많은 비주얼 노벨 장르 중에서도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은 독특한 진행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인사차 나눈 명함에 '비주얼 노벨 메이커'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 역시 신선했다. 본인을 Maker라고 소개한 유진게임즈 대표 '이유진(가명)'. 그는 이미 기자와 만난 시점에서 무려 14편의 스토리 게임을 출시한 왕성한 활동의 게임 제작자였다.
유진게임즈는 프로젝트 개발 팀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마다 팀원을 모으고, 출시하고, 이런 창작 활동을 반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한 사이클만 돌려도 진이 쭉 빠지는 이 업계에서 14편이라니.
누가 봐도 하드 워커인 이유진 대표가 가명으로 차용한 '유진' 역시 첫 작품 히로인의 이름을, 유진게임즈의 로고 역시 그 캐릭터다. 그가 어떤 각오로 이 업계에 입문했고, 또 그 초심이 아직도 변치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인디 씬 내에서도, 아니, 국내 어떤 개발사도 쉬이 카드를 내밀기 어려운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컬러를 덧칠해가는 '유진게임즈'-'이유진' 대표를 만나봤다.
Q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가 곧 유진게임즈 소개가 될 것 같네요. 유진게임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네, 안녕하세요. 유진게임즈는 2020년 9월부터 현재까지 총 14편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와 비주얼 노벨을 제작하고 출시해온 개발팀입니다.
게임 개발에 입문하기 전에도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했고, 또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내가 해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 찾아보니 비주얼노벨이란 장르가 잘 맞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그때 첫 작품이 6월에 시작해서 한 3개월 정도가 걸렸었어요. 회사 이름이라고 하긴 그렇고, 팀 이름을 뭐라고 할까 하다가 첫 작품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의 히로인 이름이 '유진'이었으니까 '유진게임즈'로 하자!-라고 해서 유진게임즈가 됐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하나 만들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그 게임을 어느 스트리머 분이 플레이해 주시는 걸 보게 됐습니다. 그 재미에 하나 더 해볼까? 하던 것이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Q
게임 개발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죠.
A
네, 미연시 워크샵 말씀해 주신 것 같네요.
2023년부터 게임잼... 저는 사실 워크샵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대학생들 방학에 맞춰서 하계와 동계에 게임 제작 워크샵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금 벌써 5회째 진행 중이네요.
주어진 기간 동안 짧은 단편 제작을 통해서 팀업을 확인하고, 꿈을 이뤄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행 중인 행사입니다.

2025 하계 미연시 제작 워크샵 5회 모집 공고 배너 (현재 마감)
Q
개인이 진행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입니다.
A
그런 면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스토브' 쪽에서 좋게 봐주셔서 지원을 해주셨고, 이번 5회차에는 테일즈샵에서도 도움을 주셔서 조금씩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공고를 올리고 홍보해야 하고, 또, 게임이 나오면 테스트해 줄 유저분들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제가 처음 계획했을 때는 현실에서 우르르 모여서 막 3일 동안 밤새우면서 만들고 그런 걸 생각했었는데, 물론 이론상 가능은 하겠지만 실제 그렇게 참가할 수 있는 분들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죠.
그렇게 계속 해오면서 조금씩 워크샵 롤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2개월 기간으로 진행이 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참가하시는 분들, 또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롤북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또 가이드라인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Q
사실 돈이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개최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네, 그렇습니다.
제가 게임 개발 일을 하면서 단톡방, 오픈톡방 같은 것을 운영했었는데 비슷한 처지의 개발자분들이나 유저분들과 함께 소통하고 그랬어요. 그중 한 분이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를 메인으로 한 게임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주셨거든요. "듣고 보니 괜찮은데?" 싶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정작 그분은 참여하지 않으셨지만요(웃음)
워크샵을 계기로 실험적 테마나 소규모 비주얼노벨을 제작하고, 정규작을 출시해 보며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되게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인원 모집하고, 인터뷰도 다 따고, 한 팀, 한 팀 다 편집해서 게시하고, 홍보하고, 문의 들어오면 대응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새로운 팀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고, 그렇게 참여해 주신 면면을 보다 보면 참가하신 분들의 경험치가 쌓이고,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이 보이거든요. 그런 부분이 참 뿌듯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시작하면서 언젠가 지치면 그만하게 되겠지- 싶었는데 아직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또, 제가 지치더라도 다른 열정 있는 누군가가 계속 이어서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여력이 있을 때까지는 쭉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Q
언제인가 워크샵에 참여하신 분들과 같은 행사장에서 나란히 작품을 전시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네요.
A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만 해도 좋네요.
Q
저희가 행사장에서 인사 나누게 된 계기이기도 하죠. 최근 출시작 '헬로 유니버시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A
'헬로 유니버시티'는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걸 많이 섞은 게임입니다.
인터넷에서 유머글로 만나볼 수 있는 대학원생을 막 굴리는 교수의 밈에 헬테이커 느낌 두 가지를 섞었죠. 주인공이 지옥으로 부임해와서 악마 대학원생들을 만나게 됐다는 설정입니다. 그렇게 애들을 굴리면서 무사히 졸업을 시키거나 연애도 할 수 있고, 아니면 살해도 당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이죠.
제작 기간이 한 5개월 정도 걸렸는데 좋아하는 걸 섞어서 만들다 보니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규모나 설정, 볼륨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그냥 기본 엔진에다가 기본 UI, 그림하고 글, 노래만 넣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도전 과제도 넣어보고, 육성 기능도 넣어보고, PV, 성우 녹음, 스파인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헬로 유니버시티만 해도 풀 보이스에 도전했고, 캐릭터뿐만 아니라 배경에도 스파인을 넣어 봤습니다. 후속작인 '요정이 머무는 헌 책방'도 이런 부분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다음 작품에도 이펙트도 더 신경 쓰고 하면서 자체적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A
미연시, 비주얼노벨을 만든다고 소개는 하고 있지만 사실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지향성은 텍스트 어드벤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히 글과 그림으로 대화가 오가고 연애하고 그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직접 돌아다닌 다거나 선택지와 그에 따른 분기의 풀을 늘려서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을 시키고 싶습니다.
사실 원하는 것을 다 풀어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Q
헬로 유니버시티를 보면 서브컬처 감성에 더해 굉장히 현실적인 대사들이 많습니다. 성우분들 연기도 좋았고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클릭클릭하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글도 직접 쓰신 거잖아요?
A
네 그렇습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최대한 캐릭터 분위기, 작품 분위기에 맞는 텍스트를 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프로젝트 팀이라 고정된 팀원은 없어도 그래도 자주 함께 일하는 분들은 있으실 것 같아요. 팀원들 소개를 듣고 싶습니다.
A
먼저 일러스트를 맡아주신 '한라감귤' 님의 경우엔 전작 '리프 인 부트스트랩' 때도 같이 하셨던 분입니다.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풍이 독특하신 분이세요. 통상적인 미연시로 보면 다른 느낌일 수 있겠습니다만 텍스트 어드벤처라고 생각하면 잘 맞는 그림체입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림체가 독특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뛰어난 매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또, 스파인 작업을 도와주시는 '감만쥬' 님이 계십니다. 항상 기대 이상,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퀄리티를 뽑아내주십니다.
원본 일러스트를 분해하면서 사실 연결부까지 디테일하게 마감해서 드리지 못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잘 신경 써주시고, 이 캐릭터면 이 동작이 맞겠구나- 싶은 부분까지 잘 짚어 주시죠.
사실 그 외에도 다양한 도움 주시는 분들과 괜찮으시다면 계속 같이 해나가고 싶은데 그분들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Q
유진게임즈만의 작품 색깔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글과 그림이 주를 이루지만 여기에 변수가 있고 랜덤성을 부여한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유저는 글을 읽으면서 게임을 즐기게 되고, 유저의 선택에 따라서 대사가 바뀌고 게임 스탯이 바뀌고, 이를 토대로 결론까지 바뀌게 되는 이야기. 그게 유진게임즈가 지향하는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리프 인 부스트트랩'의 경우 엔딩이 10개가 넘거든요. 과거를 바꾸면 과거에 따라서 이야기 진행이 달라지기 때문에 엔딩 가짓 수도 많이 준비했습니다.
2021년 1월쯤에는 '그랑 엠파이어'라고 왕이 되어 나라를 운영하는 게임도 만들었었는데, 이 게임도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서 누구 편을 들어주면 나라가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고, 어딘가 신경을 못 쓰면 그쪽에서 문제가 생겨서 파산하거나 배드 엔딩으로 가는 식으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오게끔 하는 게임을 지향합니다.
지금 준비 중인 '요정이 머무는 헌 책방'을 여름에 출시하고 나서는 그다음 작품은 이런 변수 측면에서 더 집중한 게임 제작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타임 워프를 소재로 한 '리프 인 부트스트랩'
그래픽 리마스터 버전이 출시된 '그랑 엠파이어'
Q
하나의 게임을 개발하시면서도 새로운 게임 기획을 계속 하시네요.
A
기획 자체는 그렇게 빡세게 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제가 저한테 컨펌을 맡기는 셈이라(웃음)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볼 수 있을 만한 작업 시트를 준비해서 레퍼런스나 기획 공유하고, 그렇게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나리오가 제 머릿 속에 있고, 제 머릿 속에 있는 것을 코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빠르게 작업이 가능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글 쓴 사람 따로 있고, 프로그래밍 해야 하는 분이 따로 있다고 하면 기획 준비도 더 철저해야 할 거고, 이해도도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거든요.
지금은 이런 부분을 혼자 하고 있다 보니 가능한 규모 선에서 가능한 속도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A
슈타인즈 게이트를 제일 좋아합니다.
또, 커피톡, 니디 걸 오버도즈 같이 텍스트 중심의 어드벤처 장르를 좋아합니다.
슈타인즈 게이트에 대한 애정은 유진게임즈의 '리프 인 부트스트랩'에 많이 반영됐다.
Q
그렇다면 유진게임즈의 색채를 느낄 수 있는 추천 입문작이 있을까요?
A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거 하나를 딱 고르라고 한다면 '그랑 엠파이어'를 고르겠습니다. 이번에 리마스터를 했어요. 기술적인 시도면에서 유진게임즈나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분기를 따라 엔딩이 갈리는 게임을 생각했을 때 그 욕심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낸게 그랑엠파이어고, 유진게임즈가 그 게임을 시작으로 현재 어디까지 와 있나- 라고 하면 역시 최근 작인 '헬로 유니버시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랑 엠파이어'의 한 장면
Q
앞서 나눈 이야기로 이미 알 것도 같습니다만 자금도, 시간도 구애 받지 않는다면 유진게임즈는 어떤 게임을 개발하게 될까요?
A
텍스트 기반, 캐릭터가 나오지만 단순한 육성 뿐만이 아니라 조작까지도 자유로운 게임, 시나리오나 대본, 분기도 자유로워서 다양한 엔딩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그랑 엠파이어 쪽, 니디 걸 오버도즈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A
이게 게임 개발이라는 작업이 저 혼자 갈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러스트도 그렇고 스파인이나 UI 잡아주시는 분들도 있고, 그 분들이 그 만큼 도와주시니까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말로는 전달을 드리려고는 하는데 역시 아직은 이걸로는 조금 부족해서 이거는 좀 더 계속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진게임즈 개발 주기가 다른 팀과 비교해 보면 굉장히 빠릅니다. 3~4개월마다 계속 만들고 있는데 그렇다고 결단코 대충 만든 적은 없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해나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걸 좀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행사장 같은데서 규모상 더 큰 팀을 보면 많은 인원들이 굉장히 높은 퀄리티의 게임을 3~4년 걸쳐서 내는 경우를 보고 있어요. 저희는 포지션이 약간 다르긴 하죠. 대신 우린 한 걸음씩 작은 스텝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어서 조금 더 꾸준하게 지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끝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한 번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진게임즈의 작품은 스팀 혹은 스토브 플랫폼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일부 작품은 모바일에서도.
인터뷰를 진행한 당일에도 그는 '하계 미연시 워크샵'을 공모 중이었고, 차기작 '요정이 머무는 헌 책방'의 개발이 한창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후속작에 대한 기획도, 또, 기존 출시된 작품의 굿즈 펀딩 계획, 리마스터링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다.
그는 고집스러운 이야기꾼이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꾼. 또, 남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것도 좋아하는 이야기꾼. 탈선 없이 쭉 이어져온 그의 행보를 뒤따라 깊게 패인 족적에는 유진게임즈만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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