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무법 변호사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무법 변호사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2026 북중미 월드컵 보스니아, 체코, 튀르키예, 스웨덴 진출 ㅇㅇ
- 호불호 갈리는 화장실 구조.jpg ㅇㅇ
- 미래를 보는 힘! 선물에 대해 알아보자 씨에스윈드
- 코스피, 장중 6% 급등해 5,370대 회복…코스닥도 5% 올라 ㅇㅇ
- 영화 촬영장에서 있었던 공포 일화 (ft.어린 아이) ㅇㅇ
- 싱글벙글 현시각 일본에서 욕먹고있는 스시녀들...jpg ㅇㅇ
- 1차선 정속주행을 일삼는 사람들의 정체..jpg 0과1
- 3차 민생지원금 기사를 보고 화가 많이 나버린 더쿠 누나들 갓럭키
- 싱글벙글 블로그 글 하나로 주식 박살냄 기부금세액공제
- [속보]“안전자산에 무슨 일?” 2008년 이후 최대 낙폭 스탈린
- 추미애, 경기지사 토론회 디스 당했네ㅋㅋㅋ ㅇㅇ
- 4월 1일 시황 우졍잉
- [오피셜] 오늘자 일본축구가 세운 대기록들.JPG ㅇㅇ
- 이탈리아 탈락 알베르토 반응 ㅇㅇ
- 힌드 라잡, 향년 6세 ㅇㅇ
퐁박사님의 청주에서 후쿠오카까지, 즐거웠던 마작 여행기 대회 후기글
글을 시작하기전에 먼저 저희 청주매일마작 퐁박사님의 일본마작여행기 후기글임을 밝힙니다.인사말
안녕하세요! 저는 충북대학교에 다니는 22학번 암모나이트 퐁박사입니다. 청주에 있는 대학
교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던 해에 처음 마작에 입문했습니다. 온라인 마작만 하다 점점 오프
라인에도 맛을 들였는데 한가지 큰 아쉬운 점은 청주에는 정식 마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아는 선에서 거의 유일한 마장이 있었습니다. 소모임에서 시작한 이 마장에서 종종
오프 마작을 치러 가며 아쉬움을 풀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드디어 충북 청주에도, 그것도 학교 근처에 정식 마장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청주 매일 마작! 좀전에 언급한 작은 마장이 어느새 훨씬 더 크고 멋진 마장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학교 근처에 마장이 있는 친구들을 늘 부러워 했었는데 드디어 청주에도 생겨서 너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
청주 매일 마장의 엄청난 오픈 이벤트
청주 매일 마장은 오픈 기념 대회 상품부터 스케일이 남달랐는데, 무려 '일본 후쿠오카 마작
여행권 2매'가 걸려 있었습니다. 단순히 비행기 표만 주는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직접 후쿠오카의 마장 '마작 퍼스트'를 방문해 "우리 마장 대회 우승자가 방문할 예정이며, 특별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해달라" 고 직접 협상까지 마치신 정성 가득한 기획이었습니다. 실제
마작 퍼스트 인스타그램에 공식 후기까지 올라올 정도로 현지와의 교류가 끈끈했습니다.대회 당일, 치열한 경쟁
지난 1월 31일, 후쿠오카 마작 여행권을 건 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했습니다. 모두가 진지하게 마작을 치며 실력을 겨뤘습니다. 총 세판을 진행하고 그중 상
위 네명이 마지막 네 번째 결승전을 진행하여 연대한 두분이 우승하는 구조였습니다. 아쉽게
도 저는 첫판부터 대삼원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더욱 아쉬운 점은 나머지 두판은 모
두 일등이었다는 점.. 하지만 뜨거웠던 대회의 열기를 뒤로하고 결국 제가 그 행운의 주인공
이 되어 후쿠오카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우승자였던 서현 씨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저를 대삼원으로 쏘신) 여행권을 소중하게 양도받아 대타로 다녀오게 된 것인데, 마작 애호가
로서 이보다 더 설레는 선물은 없었습니다. (다시한번 서현씨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후쿠오카 '마작 퍼스트'에서의 잊지 못할 환대
2박 3일간의 후쿠오카 여행의 첫날 기대했던 퍼스트 마장에 방문했습니다. 현지 스태프분들
은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고, 덕분에 낯선 타국 마장임에도 긴장하지 않고 즐겁게 두 판의 대
국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스태프분들과 마장 손님 두분과 대국을 했는데 모두 정말 진지하게
치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일본어를 할줄 알았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아 그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현지인분들과 마작을 치며 스몰토크를 할수 있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갈 때 한글로 적은 작은 메모지를 주시며 배웅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마작과 힐링,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여정
마작만 치고 오기엔 후쿠오카의 매력이 너무나 넘쳤습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정통 장어덮
밥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분위기 좋은 로컬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행의 마지막은 역시 뜨끈한 온천이었습니다. 여행의 피로를 온천에서 싹 녹여내니, 그야
말로 완벽한 힐링 코스였습니다.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청주 매일 마장
이번 여행은 시작일 뿐입니다! 사장님께 슬쩍 전해 들은 바로는 앞으로도 수많은 대회와 이벤트가 있다고 합니다. * 10월 2차 일본마작여행대회: 각종 대회 우승자들을 모아 참가비 없이 진행되는 대회입니다. * 12개 마장 연합 리그전: 전국 12개 마장이 연합하여 진행하는 '마장 팀 리그전’
또한 최근 청주 매일 마장에도 드디어 최고급 전탁인 렉스탁이 들어왔습니다..! 이미 너무 만족하고 있었는데 렉스탁까지 들어와버리면.. 청주마장 사랑합니다...글을 마치며
마작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으로 이런 멋진 기회를 만들어 주신 청주 마장 사장님과 기회를
나눠준 서현 씨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마작이 단순한 게임을 넘어 국경을 넘는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10월 대회와 곧 다가올 리그전에서도 이
뜨거운 열기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작성자 : 청주촌놈고정닉
조선과 러시아의 만남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선 정벌...뭐 대부분 싱붕이들이라면 알만한 내용일꺼임효종때 청나라 요청으로 군대를 보내서 러시아인들과 싸웠다인데..이때 싸웠던 사람들은 카자크인이었고, 이들과의 인연은 사실 이때 끝난게 아니었음 아니, 더 큰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음 카자크는 원래 남러시아 초원지대에서 살던 반독립 무장 집단으로, 러시아 제국은 이들에게 자치권과 토지를 주는 대신 새로 정복한 변경 지역의 수비를 맡겼음 제국이 영토를 넓힐 때마다 가장 먼저 가서 정착하고 경비를 서는 일종의 선봉대 역할을 했는데,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되었으니 카자크가 두만강 맞은편에 주둔하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겪는 충격이었음함경도 북부, 특히 경흥 쪽은 그냥 변방 끝이 아니라 러시아 쪽 세력하고 바로 닿는 접경 최전선이 되어 버렸음 함경도 북부의 산림이 울창했기 때문에 카자크들은 조선 쪽으로 건너와 나무를 베고 사냥을 했음 그들에게는 그저 강 건너 산에 자원이 많으니 가져다 쓴다는 정도의 인식이었겠지만, 조선에게는 명백한 영토 침범이었음 벌목과 사냥만 한게 아니라 카자크들은 함경도 주민들에게 접근하여 모피, 소금, 철제품 같은 것을 가져와 식량이나 가축과 바꾸려 했고, 때로는 총을 쏘며 강을 건너오기도 했음 실제 침공 의도였는지 시위 성격이었는지는 불분명했지만, 화승총이 전부인 조선 변방 수비대가 소총으로 무장한 기마병을 마주했을 때 느꼈을 공포는 충분히 알만함 러시아는 1864년부터 경흥에 사람을 보내 통상을 요구했고, 1865년과 1866년에도 계속 국경을 넘어와 압박했으며, 1866년 12월에는 수십 명 규모의 코사크 기마대가 경흥부에 와서 교역을 요구했음 이쯤 되면 함경도 입장에선 북쪽 국경 너머에 이상한 유목민이 있다 수준이 아니라, 말 타고 문서 들고 와서 거래하자고 요구하는 위험 세력이 된 거임이때 마투닌이라는 인물이 이끌고 와서 통상 문제와 연해주 방면으로의 조선인 이민 문제까지 꺼냈음 심지어 강화도조약의 내막을 물으며 러시아와의 통상조약 가능성도 타진했는데, 이에 대해 경흥부사는 우리는 변경만 지킬 뿐 외교의 법은 없다는 식으로 거절했음 사실이기도 하고.. 함경도에서 카자크 접촉은 단순한 군사충돌이 아니라 국경, 외교, 통상, 주민 이동이 한데 엉킨 접경정치였음현실적인 문제 다른것도 있었음 함경도 사람이 먹고살려고 두만강을 넘는 문제였음 함경도 북부 주민들은 러시아와 정식으로 접경하기 전부터 그 일대를 춘경추귀(봄에 가서 농사짓고 가을에 돌아옴) 식으로 왕래하고 있었음 그러니까 두만강 북쪽 세계가 완전히 낯선 외국이 아니라, 이미 생업권이 겹치던 장소였는데860년 이후 국경선이 딱 그어지자, 원래 흐릿하던 생활권이 하루아침에 국경 바깥이 되어 버렸고,여기에 함경도 쪽 흉년과 경제난, 러시아의 노동력 수요가 겹치면서 월경 이주가 급증했음 1869년 전후 대략 함경도 주민 수천 명이 러시아 극동으로 넘어갔고, 1870년 연해주 한인 수가 8,400명에 달했다는 자료도 있음1869년의 경흥협상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벌어졌음 경흥에서 조선과 러시아 지방 당국이 만나서, 함경도 주민의 러시아 이주를 막고 이미 넘어간 사람도 돌려보내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정작 그 주민들은 돌아가면 처형될 수 있다며 귀국을 거부했음 결국 협상은 큰 실효를 못 거두었고, 이후에도 조선인의 러시아 이주는 계속되었음 쉽게 말해 함경도 주민 입장에선 카자크와 러시아 세력이 단순한 적군만은 아니었고, 어떤 경우엔 국가가 못 주는 생존 공간을 주는 타자이기도 했던 거임 씁쓸한 이야기이지 조선 조정은 이 상황 앞에서 거의 속수무책이었음 카자크를 군사적으로 막자니 화력 차이가 너무 컸고, 외교적으로 항의하자니 러시아와 공식 외교 관계 자체가 없었으며, 주민들의 월경을 막자니 그것은 굶어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었음 18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함경도 관찰사들이 올린 장계에는 해마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었고.. 러시아인이 또 강을 넘었다, 백성들이 몰래 강을 건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답답한 상황이 결국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으로 이어졌음 조선이 러시아와 공식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개화의 흐름 때문이기도 했지만, 함경도 국경에서 벌어지는 현실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임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1888년의 조러육로통상조약으로 이어짐 이 조약은 군사동맹 같은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두만강 국경지대 무역을 제도화한 상업 조약이었는데, 여기서 핵심 중 하나가 경흥 개방이었음 러시아는 국경선에서 100리 자유무역지대, 월경민의 러시아 국적 인정, 내지 통상권 같은 걸 요구했고, 협상 끝에 경흥을 무역 거점으로 열고 러시아인이 그 주변 100리 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 경흥에 부영사관 설치 문제까지 포함되었으니, 이쯤 되면 함경도 북부는 그냥 북방 변이 아니라 러시아와 조선 접경경제의 관문이 된 거임교과서에서 조러수호통상조약은 한 줄짜리 사건으로 배우고 지나가지만, 그 한 줄 뒤에는 수 년에 걸쳐 함경도 국경에서 카자크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음 서울의 조정이 서양을 먼 곳의 일로 여기고 있을 때, 함경도 주민들은 이미 매일 강 건너에서 서양의 무력을 눈으로 보고 있었고 말야 조선이 근대 세계와 만난 현장은 제물포나 부산만이 아니라, 두만강 변의 추운 마을이기도 했던 것임
작성자 : ㅇㅇ고정닉
차단 설정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차단 등록은 20자 이내, 최대 10개까지 가능합니다.
설정된 갤러리
갤러리 선택
설정할 갤러리를 선택하세요.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전체 설정과는 별개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