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신체가 '나'일까요? 내 역할이나 관계가 '나'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내 기억과 의식이 '나'일까요?

내 신체가, 역할이, 관계가, 기억과 의식이 바뀐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요?

17살 여고생 오다마키 하나와 38살 정비공 키네 쇼고는 어느 날 갑자기 몸과 인격이 바뀝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고 타인이 되어버린 하나는 초라한 생활을 전전하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몸과 재회하게 됩니다.

17살 여고생 오다마키 히나가 된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38살 아저씨 키네 쇼고,

그는 하나의 몸이 되어 하나는 꿈도 꾸지 못했던 화려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가 아저씨가 되어 힘든 생활을 보내는 동안, 여고생이 된 쇼고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죠.

쇼고가 된 하나(이하 하나)는 자신이 된 쇼고(이하 쇼고)에게 어째서 "당신이 더 잘 살고 있는 건지" 화를 내지만

그런 하나에게 쇼고는 "너의 인생이 텅 비었기 때문"이라며, 야속한 소리를 할 뿐입니다.

이날의 만남으로 쇼고는 하나에게 자신이 일하는 잡지 편집부의 잡일담당 자리를 소개해주고

이렇게 둘은 서로의 사정에 의해 같은 직장에서 자신의 몸을 마주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을 계기로, 하나는 더 이상 자신이 하나가 아님을, 쇼고는 더 이상 자신이 쇼고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두고 무어라 평가해도, 또는 자신이 된 타인이 어떤 역할과 관계를 가지고 있어도,

자신이 한 행동이 아니고, 자신이 만든 역할과 관계가 아닌 한, 자신의 것이 아닌 셈이죠.

그에 비해 비록 타인의 몸이 되었을지라도, 자신이 만든 관계와 인연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일부입니다.

쇼고가 하나가 된 1년 사이, 쇼고가 사랑하던 여자는 자신의 친구와 연인 사이가 됩니다.

쇼고는 이미 하나가 되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그의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실연당했다고 느끼고, 타인의 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 또한, 자신의 기억과 추억이 있기에, 자신의 친구와 가족을 떠올리며, '하나'로서의 자신의 인생이 텅 비지 않았다고 말하죠.

자신의 신체가 자신 그 자체가 아니라고 해도, 그로 인해 더 이상 자신으로서 관계와 역할을 잇지 못한다면 과거의 자신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쇼고는 하나로서, 하나는 쇼고로서 새로운 몸을 가졌고, 새로운 관계를 쌓았고, 새로운 역할을, 새로운 기억을 가졌기 때문에,

둘은 새로운 자신의 부분이 채워질수록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됨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모는 물론, 역할도, 관계도, 기억과 의식도 어느 하나가 '나'이거나 '나'의 전부가 되진 못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외모가, 역할이, 관계가, 기억과 의식이 '나'의 다른 요소를 만듭니다.

'나'를 이루는 어느 하나가 '나'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지만, 어느 하나를 떼어놓을 수도 없는 셈이죠.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누군가와 신체가 바뀔 일만 없을 뿐이지, 우리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여러 부분은 결국 자신과 타인에 의해 만들어가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가짐,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배움이 있다면, 전에 없던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스스로 백지가 될 수 있다면, <화이트 노트 패드>는 만화를 넘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