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사람은 알겠지만, 가면라이더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적대하는 괴인과 똑같은 힘으로 싸우는 히어로라는 점임.

(위가 가면라이더, 아래가 괴인. 둘이 뭐가 다른가 싶은데 사실 똑같은거 맞다.)

초대 가면라이더부터가 괴인으로 개조당하던 청년이 간신히 탈출한 후, 자신을 개조한 악의 조직이 보내는 괴인들과 맞선다는 스토리로 시작되면서,

(슈퍼-1은 악의 조직한테 개조된 건 아니지만, 슈퍼-1의 프로토타입이 괴인이었음.)

X와 J를 제외하면 대부분 괴인과 똑같은 힘과 기술력으로 싸우고,

(쿠우가와 다그바의 문장이 똑같을때의 그 소름)

헤이세이에 들어 개조인간 소재가 사장되었음에도 히비키를 제외하면 현재진행형으로 애용되는 소재다.

(한국에서 이 클리셰가 알려진 건 이때부터.)

몸은 괴인이나 다를바 없을지언정, 인간성을 지키며 싸워나간다는 서사는 지금도 가면라이더가 왜 뽕이 차는지 설명하기 좋은 클리셰다.

그런데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이 클리셰를 칭하는 용어가 있었음. 바로 '크로스 오브 파이어(クロス・オブ・ファイア)'.

이게 뭔 중2병 같은 용어인가 싶겠지만, 사실 이 용어는 공식에서 먼저 정의한 용어다.

유래는 가면라이더 위자드 53화 '아마담의 세계'편. 이 에피소드는 (당시 기준으로)역대 헤이세이 라이더들이 총출동하는 쇼와 시절에서나 볼법한 특별편이었는데, 이 에피소드의 악역인 아마담은 가면라이더의 존재를 이렇게 정의했음.

"가면라이더는 괴인이 되다만 존재다. 악이나 다름없지. 가면라이더의 힘의 근본, 그것은 '크로스 오브 파이어'라 불리우는 불꽃의 십자가...! 악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죄의 증표다!"

한마디로 크로스 오브 파이어는 가면라이더라는 영웅에게 새겨진 '낙인'를 상징하는 용어였음.

당시 에피소드만 보자면 아마담이 가면라이더를 자기 편으로 들이기 위해 떠벌이는 궤변에 불과했는데, 일본에서는 이게 가면라이더가 무엇인지 '간지나게' 정의한 용어라서 팬덤에서 은근 자주 썼고, 칼럼에서도 이 용어를 언급하기까지 함. (공식에서도 가면라이더 도감의 아마담 소개 페이지에 저걸 명대사로 올렸음.)

물론 우리나라에선 이게 알려지진 않은 것 같고(가이무 방영할 시절에 언급되긴 했음), 이걸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난감한 용어지만 알아둬서 나쁠 것 같지는 않다.

https://gall.dcinside.com/sfse/607193 (참고용 만화)

참고로 이 용어의 유래는 가면라이더의 초안이 된 히어로 '크로스 파이어'로 추측되고 있음.

만약 그렇다면 가면라이더의 근원을 설명하는 용어를 가면라이더의 시초한테서 따온걸테고, 그걸 감안하면 위자드 53화는 정말 신경 쓴 팬서비스 에피소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따라 어나더 1호의 가슴팍이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