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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괴담] The karma

ㅇㅇ(211.211) 2024.05.08 01:53:30
조회 3882 추천 71 댓글 9
														

당신은 하얀 방에 갇혔습니다.



귀여운 흰색. 빈 방, 하얀 방, 흰색, 방 HD 월페이퍼 | Pxfuel



새하얌에 눈이 부심도 잠시, 질척거리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합니다.



사방에 피로 적신 고기가 떨어져 있습니다.



정상적인 살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긴 어디고, 왜 이런 곳에 왔습니까?



당신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곳에 온걸까요?



의문을 곱씹던 와중 당신의 눈에...



벽에 붙은 다홍색 벽보가 눈에 띱니다.





"오, 잠시만. 맙소사. 사람이다, 사람이야!"


"이봐, 멀뚱히 서있지 말고 핏덩이 좀 치우고 얘기하자."






생전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이 손에 다짜고짜 물걸레를 쥐어 줍니다.





"너 여기 처음 오지? 그렇지?"


"다짜고짜 미안한데 당신 이미 죽었어."






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 가족, 친구, 아내를 두고 죽었습니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죽었다고?'







"당신, 내가, 내가 여기 있으면서 알아낸 건데, 우리 이미 죽었고 수없이 환생한거라고,"


"우린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하고, 나인지도 모를 내 전생을 치워야 한다고."







당신이 물걸레를 짜는 사이 새로운 고깃덩이가 천장에서 생겨나 떨어집니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흰 방은 다시 더러워집니다.






"몰라, 난 그냥... 난 이번 생에 착하게 살았거든? 난 잘못한 것도 없었단 말이야.

손목 걸고 진짜로, 근데 뭐 내 업보를 치우래, 그래야 환생을 한다는데..."


"졸리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아, 그냥, 자식들 30분에 한 번씩 고기 떨어뜨리면서 끝없는 고통을 줘"







횡설수설하는 남자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아 당신은 벽보를 보려고 고개를 틉니다.



남자는 급히 벽보를 등지고 가로막으며 당신을 말립니다.





"이봐, 내가 낯선 사람이라 경계하겠지만 날 믿어. 저 종이 색깔 보여? 저거 피 색이야. 근데 고깃덩이 피 말고 사람 피야.

저 종이 읽고 있으면 뒤에서 뭐가 자꾸 다가와."





뒤를 돌아보자 환풍구가 보입니다. 당신 머리보다 조금 작은 크기입니다.

당신은 무시하고 고개를 트려고 시도합니다.







"진정해, 진정해. 당신 진짜 죽은 거 맞고 여기 현실 아니야.

천국이나 지옥 같은건 애초에 없어, 이거 하나로 퉁친다고.


좋게 살았으면 빨리 환생하고,


아니면 평생 치우다 환풍구 들어가서 살든가."




당신은 환풍구에 들어가서 사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묻습니다.







"네가 오기 전에... 12년 전에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어. 그 놈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뒤졌다고, 저 병신같은 종이 보다가! 환풍구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어,

저 좁은 곳으로 온 몸의... 우욱."





당신은 완벽히 이해한 척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입니다.

몇 마디 짧은 대화 후 남자는 옆 방으로 핏자국을 치우러 갑니다.





결국, 당신은 못 참고 종이를 읽었습니다.










환영합니다, The karma.



The karma는 당신의 최종 목적지이자 휴식터가 될 것입니다.

The karma는 우리의 천국이자 지옥입니다.




1. 당신의 업보를 모두 치우십시오. 벽보 오른쪽 모서리에 물 걸레와 수도, 소각로가 있습니다.

'치우다'의 의의는 한 벽면 당 핏자국의 면적이 1% 이하를 기준으로 합니다.




2. 30분을 지키십시오. 어느 생명체라도 30일 이상 굶었다면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게 당연합니다.

환기구에 상시 대기 중 입니다.


2-2. 30분을 넘으셨다면 환기구에 어떻게든 들어가 숨으십시오.


2-3. 불가피한 이유로 환기구에 숨지 못했다면 수도가 있는 방 왼쪽 벽의 빨간 버튼을 누르십시오.




3. 귀하의 전생, 현생의 업보를 모두 처리하기 전 까진 나가실 수 없습니다.

방은 총 3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수도가 있는 방 왼쪽 벽의 빨간 버튼을 누를 땐 신중히 고민하십시오.


3-1. 실은 빨간 버튼을 누르면, 업보를 갚지 않아도 됩니다.

버튼을 누르는 즉시 '공간'으로 이동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제공됩니다. 자살로는 죽을 수 없습니다.

단, 환생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무한한 시간동안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억겁 년 동안 살 것인지, 억겁의 업보를 치울 것인지, 본인의 선택입니다.





4. 만일 업보(karma)를 모두 치우셨다면, 환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귀하는 현재 #28,763,075번째 방의 982번 손님입니다.



4-2. 한 방에는 한 명만 배정됩니다. 다른 사람은 배정되지 않습니다. 반복합니다, 한 방에는 오직 한 명만 배정됩니다.


4-3. 귀하 외의 다른 인원 발견 시 빨간 버튼을 누르도록 유도하십시오. 남은 인원은 소정의 보상으로 업보를 일부 차감해드립니다.


4-4. 다른 삶을 원하는 건 인간뿐이 아닙니다. 




5. 업보(karma)의 크기와 양은, 당신이 삶에서 저지른 인과응보에 비례합니다. 큰 죄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현재까지 가장 큰 업보의 경우 일반적인 대형동물의 크기를 한참 넘어섰습니다.




6. 몇 년이 걸리든, 몇 개월이 걸리든 업보를 치우기 전 까지는 나갈 수 없습니다.

치우는 일이 너무 고되다면 빨간 버튼을 진중하게 고려해 보십시오.



7. 전생 후 '갚기'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경우, 얼마든지 한도를 정해놓고 환생할 수 있으나

한도가 끝남과 동시에 그 생에서 업보를 모두 갚아야 합니다.

ex.) 10번 갚기 신청: 10번의 환생 후 사망 시 10번의 생 동안 저지른 업보를 몰아서 갚음.


7-1. 귀하는 123번 전생했으며, 빚을 냈고, 이번 생에 모조리 값아야 합니다.





The karma, 우리의 천국이자 지옥.





당신은 깨달았습니다.



갚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깨달았습니다.




1234*80년의 세월이 담긴 업보,


당신은 어차피 전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체념하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빨간 버튼을 누릅니다.

마지막 기억은 젊은 남성이 활짝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잠깐, 그렇다면 저 남자는 왜 12년 동안 버튼을 한 번도 누르지 않고 굳이 환생을 하려고 한 거지?








굳이 기억하지도 못 하는 환생을 해야 했나?








이 많은 빚을 갚을 바에야 그냥 편안하게 사는 게 낫지 않나?























'한정된' 빨간 버튼 공간



걸 깨달은 건 당신의 몸이 이미 짓눌려 터진 이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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