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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외딴 섬, 저택, 피아노, 그리고 한 사람의 일기

동전던지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24 18: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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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는 원래 일기를 쓰지 않는 편이었다.


애초에 일기 자체를 쓸 시간이 없었다.


나에겐 주어진 일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과거를 돌아볼 시간도, 미래를 다짐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기 때문인지,


과거에 내가 놓친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통해 내가 겪은 경험과 느낌,


그리고 탈출에 단서가 될 만한 무언가를 기록하고자 했다.


그것들이 정말로 난해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기억할 수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니까...






2025-03-02



눈을 떴을 때, 나뭇결이 보이는 천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흰 이불에 몸을 덮힌 채 흰 침대 위에 눕혀 있었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 이불을 걷어내며 벌떡 일어났다.


이제 막 잠에서 깨 비몽사몽한 상태였지만,


낯선 곳이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책이 꽂혀 있는 책장과 나무로 된 책상.


그 위에는 촛농과 성냥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나무 의자가 있었다.


바닥에는 여러 색이 섞인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방의 구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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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기록해 두는 이유는


잠깐 방을 나갔다 온 사이 성냥갑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커튼을 걷어 내어 창밖을 바라보니


잔디와 돌길로 이루어진 마당과 바위, 그리고 푸른 빛의 바다가 보였다.


이곳은 아무래도 섬인 모양이었다.


방 밖으로 나가보니 거실엔 벽난로와 낮은 탁자 하나가 있었고,


흔들의자 3개가 탁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거실 한쪽 벽에는 색종이를 오려 붙여 놓은 A4 크기의 흰 종이가 있었다.


"Analyse the statusy apple and onion."


"권위 있는 사과와 양파를 조사하여라."


수수께끼 같은 문장이었다.


알파벳 하나하나가 적힌 색종이들은 기계로 자른 듯 크기가 모두 똑같았다


흰 종이 뒷면에는 이상한 숫자 배열이 있었다.


나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언제든지 보면서 고민할 수 있도록 일기 맨 앞에 붙여두었다.




2025-03-03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가만히 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째서 흔들의자가 3개나 있는 것일까?


혹시 이곳에 나 말고도 2명이나 더 있다는 뜻일까?


있다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무서울 것이었다.


나는 거실에서 가만히 흔들의자에 앉아,


벽난로 가운데에서 타오르는 새빨간 불빛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꽤 어두워진 후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엔 나 혼자만 있는 모양이었다.




2025-03-04



이곳에 오고 나서 나의 생존 욕구가 이렇게나 높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방에서 나가면 또 다른 방(아마도 창고)의 문이 보인다.


몸을 돌리면,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고,


동시에 통로 양옆으로 있는 거실과 주방이 눈에 들어온다.


현관문 옆에는 2층과 연결되는 계단이 있다.


하지만 그쪽은 창문이 없기 때문인지 대낮에도 조금 어두웠기에


내일 가보는 것으로 계획했다.




나는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밖으로 나가 돌길을 따라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알아낸 것은, 이곳은 육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외딴섬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쪽을 보더라도 시야를 빽빽하게 채우는 망망대해는,


나에게 탈출 따윈 불가능하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2025-03-05



미루고 미뤘던 2층 탐색을 시작했다.


언제부터 방 책상 위에 있었는지 모를 손전등을 들고서.


2층은 창문의 방향 때문인지 낮임에도 불구하고 꽤 어두웠다.


2층은 정말 여러모로 특이했다.


1층 거실 위에 얹혀진 똑같은 크기의 공간,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딸랑 피아노 하나뿐이었다.


뭐랄까... 반가웠다. 어렸을 적에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었으니까.


피아노에는 'SANDY' 라는 영어단어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SANDY는 영미권에서 쓰이는 애칭 중 하나이다.


피아노 앞에는 'G선상의 아리아' 악보가 놓여 있었다.


그 반대편에 있는 주방 크기의 공간에는 여러 가지 양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그 두 공간에 걸쳐 이어지는 하나의 큰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내가 바깥에서 봤을 때, 이 저택은 직육면체 모양의 건물이었다.


구조상, 이 벽 너머엔 숨겨진 공간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2025-03-06



요즘 한숨을 쉬고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의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그리고 피아노 앞 의자에 턱 앉았다.


피아노 앞에 놓여 있는 'G선상의 아리아' 악보를 보았다.


G선상의 아리아는 내가 유일하게 연주할 줄 아는 클래식 곡이다.


오랜만에 연주하는 것임에도 손가락이 기억하는 듯했다.


분명 잔잔한 곡인데 주위가 어둡다 보니 뭔가 아련하고 슬픈 느낌이 났다.


그렇게 오늘 하루 종일 그 곡만 연주했다.


커져만 가는 절망감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2025-03-07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기 전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처음 왔을 때 저택이 깨끗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관리가 되고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외딴섬에 있는 저택을 관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섬에 사람들을 나처럼 가둬두려고 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사람들을 섬에 가두는 거지?


이러한 의문의 연속은 쪽 이어져


"왜 하필이면 나지?"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일단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용도는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쓰이고 있으니까.




2025-03-08



요즘 가족들이 보고 싶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평소에 자주 싸웠던 동생도 보고 싶다.


생각해 보니 가족들에게 그리 잘 챙겨주지 못했던 것 같다,


막상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 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




2025-03-09



일기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볼펜을 든다.


진척은 없다.


2층에 있는 숨겨진 공간을 보면 무언가가 나올 듯했다.


하지만 나무 벽을 뚫은 도구도 없을뿐더러,


그 벽을 뚫는 순간 시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워졌다.


이제 남은 건 수수께끼 같은 암호뿐인데...


도저히 감이 잡히지를 않는다.


권위 있는 사과와 양파를 조사하라니...


아무래도 검은색 잉크가 떨어진 것 같다.


이곳에 갇힌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이젠 무언가를 남길 힘도 안 나는 것 같다...



.


.


.


.


.



2025-03-13



책상 위에 없었던 새 볼펜이 있었다.


잘 써진다.


.


.


.


.


.



2025-03-17



무기력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끼니를 때울 용도로 먹는 시리얼은 질렸다.


시리얼은 다 떨어지면 새로운 시리얼 봉지가 다음날 생겨난다.


시리얼 봉지가 반 정도 차 있는 상황이 3일째 이어지고 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수수께끼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


.


.


.


.


.



2025-03-23



도대체 왜 여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수칙서 앞에 붙인 수수께끼 종이.


색종이의 색깔, 글씨체와 글의 색깔이 같은 것이 몇 개 있었다.


분류해 보면 일곱 종류.


종류별로 나눠서 재배열해 보면 새로운 단어가 나왔다.


라임색은 alone, 보라색은 play.


이렇게 나온 영단어들을 나열한다면,


하나의 문장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드디어 실마리가 풀린다.




2025-03-24



"play the sandy piano alone at sunset."


해질녘에 혼자서 sandy 피아노를 연주하라.


...


...


...


더 큰 수수께끼를 만난 느낌이다...


.


.


.


.


.


.


.



2025-04-01



나는 오늘도 피아노를 친다.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클래식 곡을 연주할 것이다.


잠잠하면서도 아련하고 슬픈 분위기를 즐길 것이다.


건반을 눌렀을 때 손가락으로 흘러 들어오는 진동을 느낄 것이다.


노을이 질 때면,


습관처럼 피아노 앞의 의자에 앉아 연주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탈출로 이끌지, 죽음으로 이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솔직히, 내가 여기서 일주일을 더 버틸 수 있을지도 확신이 안 선다.


내 일기는 절망에 몸부림을 치는 내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피아노를 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이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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