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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괴담] 고장 난 가로등을 보면 어떡해요?

충전케이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6.01.14 13:40:47
조회 8557 추천 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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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푸른 어둠이 깔린 골목을


걷고 또 걸어


그 가로등을 지날 때,




깜빡.


  깜빡.




간헐적으로 꺼지는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주인공이 되길 꺼리는 듯하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커녕


조그만 골목길에서조차 주인공이 될 수 없다니.


우울한 건지 괘씸한 건지 모를 마음이고.




얼른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야겠다.










셋째 날.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은,


다 쓴 몸을 이끌며


힘겹게 집으로 향한다.


다시 그 가로등을 지나,




깜빡, 깜빡.


깜빡.   깜빡.




죽었구나.


잘됐네.


안 그래도 요즘 밤에 무서웠다.


지나갈 때 가로등이 갑자기 꺼질까 봐.


저 정도면 누가 구청에 민원을 넣겠지.


나는… 귀찮아.










넷째 날.




이미 눈꺼풀이 피곤함에 반쯤 졌다.


그래도 퇴근할 땐 기운이 나는 편인데,


오늘은 아니야.




다시 가로등을 지나…


어라.




깜빡. 깜빡.




고쳐지지 않는 가로등은


또 그 여자를 비추고 있다.




여전히 깜빡거렸지만,


지금은 주인공을 위한 연출 장치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걸까.


저번에도 가로등 기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지.


…궁금해도 난 지나간다.


피곤함이 호기심을 이겼으니까.










다섯째 날.




힘들다, 힘들어.


드디어 금요일 밤이 되었구나.


잔뜩 신난 마음으로 가로등을 지나,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그 여자다.


저 사람이 가로등을 고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너무 실력이 모자란 것이 아닐까.


이사 오고 첫날부터 봤는데 아직도…




여자는 내 쪽을 휙 쳐다본다.


난 흠칫 놀랐다.


순간 내가 생각을 입 밖으로 얘기했나, 하고.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본데.


그녀는 주춤거리더니 겨우 뒤돌아 내달리기 시작한다.


공포에 휩싸인 듯.


어, 음…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소리치는 게 더 이상한가.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갔다.


쌓였던 눈이 덜 관리되어 얼어버린 흰 바닥을 으깨며,




바작 바작    바작


  바작 바작 바작


      바작바작…




억울해.


신고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문득 깜빡거리는 가로등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섰다.




이게 웬걸,


멀리서는 안 보이던 글씨가 보인다.


희미한 낙서.




…내가 쳐다보지 말라고 했잖아?




나한테 보지 말라고 했었나?


슬슬 화가 나려고 한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조용히 신고하던가.


직접 얘기를 하던가.


가로등에 낙서로 이런 말을?


하. 치졸하다.







순간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느낌이 치밀었다.


떠오른 생각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내가 온 길을 돌아볼 뻔했고.


나는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걷고 또 걷는다.


빨리.


등 뒤로 가로등이 깜빡거린다.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가로등은 수차례 깜빡인 끝에 사망했다.


하필 오늘은 그믐이라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는 넘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달린다.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    바작 바작 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바작바작.



눈 밟는 소리가 겹쳐 들린다.


그 여자는 이미 갔는지 시야에 없다.


겹치던 발소리는 점점 커진다.


그러더니 내 발소리와 동일한 크기를 갖게 되었다.




나는 집까지 달렸다.


계단을 성큼성큼 넘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


문을 거세게 닫았다.




쾅.




현관 센서 등도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이제서야 켜진다.


후으, 후아!


그대로 탈진해 현관 앞에 드러누웠다.




깜빡, 깜빡.




스르르 잠에 들며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집주인 아저씨한테


현관 센서 등 이상하다고 얘기해야 해.


아… 귀찮아.


내일은 꼭 말해야지.




깜빡 깜빡 깜빡.


깜빡.




센서 등은 이후 수차례 깜빡인 끝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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