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295416&_rk=96k&exception_mode=recommend&page=1
2편: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295516&_rk=96k&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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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296532&_rk=Hc2&search_head=110&page=1
원문:https://www.marines.mil/Portals/1/Publications/The%20Sea%20Services%20in%20the%20Korean%20War%201950-1953%20%20PCN%2019000412100_1.pdf?ver=2012-10-11-164123-027
원산 항구 인근의 섬들 중 포위전에 참가하던 함선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든 섬은 아마도 (세 함포사격 유도를 하던 섬들 중 하나인) 황토도였을 것이다. 나무 한 그루도 없이 메마르고 돌덩어리였던 이 섬은 해발고도가 약 48.8미터였고, 육지 해안에서 2.74km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아서 적의 대포와 박격포에 가장 가까이 있었다. 황토도는 또한 원산시 자체와 원산 비행장(역주:아마도 지금 갈마각에 있는 지금의 원산공항으로 보임), 그리고 남쪽으로 안변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도로에도 가장 가까이 있었다. 이 도로는 적의 동쪽 주 보급로였다. 황토도의 꼭대기 관측초소로부터 관측반은 원산과 안변 도로, 그리고 철도와 도로를 잇는 몇몇 주요 다리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1951년 6월까지, 황토도는 기뢰의 위협 때문에 목선으로만 접근 가능했다. 기뢰가 수면에서 1.8~3미터 정도 아래에 고정되어 있었고 목선의 용골은 수면에 위치했기 때문에 목선은 기뢰로부터 위협받지 않았다. 섬이 적의 포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섬으로 오고가는 활동은 밤에 진행됐다. 한국 해병대 LCVP 한척이 다른 '아군' 섬들에 식량과 다른 보급품들을 옮기기 위해 운용됐지만 황토도에 대한 보급용으론 운용되지 않았다.
"7월에" 램프 대위가 말했다. "우리는 포로 한명으로부터 기뢰밭 두줄이 갈마각 동쪽 해안을 방어하고 있고, 보트 한척이 대도 중앙으로부터 황토도의 서쪽 끝 부분까지 기뢰밭을 지나는 일 없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증언받았습니다. 황토도 방어 소대가 식량과 탄약의 보급과 인력 증원을 요청했기에, 그 LCVP가 황토도로 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 날에는 서풍이 강하게 불어와서 일반 목선을 쓰기에는 부적절했거든요."
"그래서 그 LCVP에 황토도에 필요한 모든 보급을 싣고, 포로가 제안한 경로를 따라 황토도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재난 같은 건 없었고 뒤에 더 많은 운송이 행해졌습니다. 그 뒤로, 여전히 밤에, LCVP로 황토도를 오가게 됐죠."
"1951년 7월에, 미 해군 95.2 사령관임무부대의 사령관이었던 W.L. 앤더슨 대령님과 USS 블루함에 계셨습니다. 블루함의 함장님(R.S. 버딕 중령)과 USS 프랭크 F. 에반스함(G.L. 크리스티 중령)의 함장님이 함포사격의 효력에 대해 논하면서, 함포사격통제반이 표적들 근처에 주둔하고 있으면 더 효율이 올라갈 거라고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황토도가 그 목적을 위해 이상적인 입지가 될 거라고 확인시켜 드렸습니다."
"저는 해당 통제반이 섬으로 가져가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식량과 의복과 침구류, 다양한 무기들, 그리고 상당한 탄약과 최적의 통신장비. 자원자들이 뽑혔고, 밤에 움직이기로 결정됐습니다. 자원자들을 뽑아야 했던 이유는 통제반이 적 포병과 보병의 사격에 가까이 노출될 걸로 예상됐고, 또한 적 상륙의 위협도 존재했기 때문이었죠. 남쪽에서 오는 목선을 이용한 기습은 포위전에 참가하는 군함들의 레이더로는 탐지가 불가능했기에, 놈들이 섬에 접근할 때 함선들이 지원사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원하기를 원했습니다."
"1951년 7월 5~6일 사이 밤에, 저는 그들의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 구축함의 단정 한 척으로 데려갔습니다.(역자:whaleboat을 뭐라고 번역해야 할 지 몰라서 구축함에 탑재되어있다는 거에 착안해서 그냥 단정이라고 번역함. 근데 맞는 번역인지는 몰라.) 단정은 레이더 화면 하나를 탑재하고 있었고, 함선들이 우리의 진행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섬의 유일한 해변에 상륙했습니다. 이 해변은 섬의 서쪽에 있었는데 적 포격에 노출되어 있었죠. 섬의 나머지 부분은 단단한 암반으로 되어 있었고 암초가 많아서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근처에는 10개의 어업 오두막이 있었습니다."
"함포사격통제반이 오두막 하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섬에 먼저 주둔하고 있던) 한국 해병대 섬 방어 소대는 그들이 와서 아주 기뻐했죠."
"함포사격통제반을 배치해서 에반스함과 블루함이 얻은 결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 함들은 원산의 어뢰 공장과 보급 건물을 포격했습니다. 통제반은 섬에 3~4일간 머물다가 제가 그들을 다시 내보냈습니다. 때때로 다른 함선들의 통제반이 그들에게 인수인계를 받았죠. 함선들의 적 저지와 포격이 눈에 띄게 향상됐습니다."
다른 포위전에 참가한 군함들의 황토도에서의 통제반 운용이 점점 잦아졌다. 한 소규모 통제반이 1951년 7월 19일에 섬에 주둔하고 나서는 포위전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주둔했고, 병력들은 4개월에 한번씩 순환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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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e Fire Control Party를 저번 글에서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 지 몰랐는데 함포사격통제반 정도로 번역하면 적절하겠더라.
예나 지금이나 포병에게 제일 중요한 건 관측반임을 알려주는 글임. 관측이 제대로 안 되면 백날 포탄 쏟아봤자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는 사실은 최근에도 우크라 내전에서 한 얼음북괴군 장교가 의용군으로 참전하고 나서 회고로 남겼지. 그거 번역한 게 아마 기갑갤에 남아있을 텐데...
이 통제반은 미국 해군의 구축함들과 실시간으로 교신을 했을 테니까 아마도 미군이나 영국군, 혹은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군들이었을 텐데, 가장 위험한 황토도 배치를 자원했다는 건 대단한 정신 같음. 오두막에 주둔했다는 걸 보면 처음에는 황토도가 요새화가 전혀 안돼서 적 포격에 노출되기 쉬울 게 분명했을텐데 말임.(아마도 참호는 팠을 거 같지만...)
여하튼 황토도에 각 군함의 통제반이 차례로 주둔하다가 한 통제팀이 나중에 고정적으로 주둔한 걸 보면, 황토도에 통제반을 배치한다는 건 처음 계획에는 없었던 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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