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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아코문학?) (번외) 그 사람들의 이야기

말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30 23:14:37
조회 530 추천 15 댓글 13
														
바다, 그 깊숙한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났던 한 링크스가 있었다.

릴리엄 월콧, 그녀가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앞에 보인 것은-





“아야, 잠깐만, 잠깐만! 말로 해! 사람답게 말로 하자고!”

파일럿 슈트 위에 걸쳐진 정복의 견장에 오메르 사이언스의 로고가 붙여진, 익숙한 얼굴과 조금 낯선 듯한 말투의 남자가 몸을 반쯤 웅크린 채, 정말 비굴하고 안쓰럽다 싶을 정도로 한 쌍의 남녀에게 얻어맞고 있었다. 적어도 여자 쪽은 남자를 어느 정도는 말리는 듯 했지만, 아예 안 때리진 않았다.

남자 쪽이 네 대를 때린다면, 여자 쪽이 한 대 때리는 정도.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몇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는 다른 남녀들이 짓고 있는 표정은 제각기 달랐다.

근데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맞고 있는 남자 쪽을 도와줄 의향은 0.1퍼센트도 없어보인다는 점.

“우리가! 그때! 예전에! 뭐라 그랬어! 어?!”

폭행을 하는 중인(?) 남자, 유진 월콧이 씩씩대는 숨소리를 내며 발로 미친 듯이 상대를 밟으며 악다구니 넘치는 말들을 뱉어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자.

“만약에, 우리 릴리 만나게 된다면 잘 부탁한다. 그 말 지켜주는게 그렇게 어려웠냐!! 잘 지키는가 싶더니 뭐 한거냐 대체!!! 우리 막내 그렇게 마음 아프게 해놓고 뭐가 잘 났다고 죽어서 여기에 오냐, 어?! 뭐 잘나서 여기 왔냐고!?!!”

그만 들어보자.

그럼 이제, 폭행을 당하는 중인(?) 남자 쪽이 무언가 자기변호를 하려고 한다. 이것도 들어보자.

“내가 전적으로 봐주고는 싶었지, 근데 그게 되는 상황이냐!? 왕 샤오롱, 그 망할 영감탱이가 사사건건 훼방을 놓아서 뭐 제대로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것 뿐 만이 아냐, 나한테 부여된 책무들이 어땠는지, 아 그래, 이 세상에서 보고 있었다며! 그럼 잘 알겠네! 그리고….어쨌든 내가 그 잘 부탁한다는 말대로 지켜줬잖아!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이 쪽도 그만 들어보자.

그러면 이번에는, 저 변론을 듣고 화가 났는지 쓰고 있던 정모를 벗어 그걸로 남자를 두들겨 패는..아니, 그렇게 아플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모자로 때리는 여자, 프란시스카 월콧의 말을 들어보자.

“최선?! 최에서어언?!! 최에에에서어어언!?!?!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세상 무슨 최선이 우리 귀여운 막내 안죽게 살려놓은 대신에 보는 앞에서 희생해서 안 좋은 경험을 하게 만드는 건데?!”

여기도 그만 들어보자.

한 가지 확실한건 먼지나게 맞는 쪽이 잘못한게 맞는 것 같다.




뭐 아무튼, 방관자들의 묵인 하에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듯한 집단 폭행의 현장을 지켜보던 릴리엄 월콧은, 그 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알아보고는, 말라있다가 조금 젖어들어간 느낌으로 버석대는 목소리를 내며 이들을 불렀다.


“언니…오빠…?”


조금 텁텁한 듯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에, 폭행(?)의 가해자들이 몸을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본다.


방금 전만 해도 사람 하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인상이던 두 남녀의 인상이 풀어졌다. 풀어지다 못해 이들의 눈가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다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천천히, 동시에,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들을 부른 릴리엄 역시, 거짓말 같이 동시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눈물이 턱에 맺히는 것이 경주용 화약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라도 된 걸까.


“언니, 오빠…..프란시스카 언니, 유진 오빠..!!”


십 수년간 목 놓아 부르고 싶었던 이름을, 현실의 삶을 저버린 다음에야 겨우 힘껏 외치면서.


기업련의, BFF의, 컬러드의 링크스도 아니고, 넥스트의 파일럿도 아닌.


월콧 가문의 막내딸로, 월콧 남매의 소중한 여동생으로서.


“릴리…!”


“릴리…너…”


두 팔을 양껏 벌리는 남매의 품으로 달려들어간 소녀는, 그간 참아왔던 눈물을 아낌 없이 흘리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젠 링크스로서 싸워야 할 이유도 없고, 무언가를 지킬 이유도 없고, 누구에게 인정 받을 이유도 없어서.
그 덕분에 가벼워진 마음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감정의 자유를 부여했다.


감정에 솔직하게 구는 막내 동생이 너무나도 기특하면서도 짠하게 느껴진 프란시스카, 유진, 이 둘도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긴 했으나 울음소리를 내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차오르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애써 서로를 바라보는 것 마저도 회피하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여동생을 다독여주며, 남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간, 울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한 명의 소녀가 어엿한 숙녀가 되기 직전까지의 세월동안 만날 수 없었던 가족은, 제일 최악이지만 제일 최선인, 모순으로써 해후할 수 있었다.




세 남매의 해후를 지켜보던 로디는 쓴 미소를 지으며 제 눈가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 옆의 윈 D 팬션은 작게 한숨을 내쉬다가, 셋의 모습을 보며 작게나마 입가에 호선을 그렸고, 셀렌 헤이즈는 착잡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 있지만, 그래도 저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서 씁쓸한 미소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데 손을 보태버린 당사자, 오츠달바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는 있었지만, 죄책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릴리엄의 흐느낌이 좀 잦아들기 시작하자 그가 몸의 먼지를 털며 일어나기 시작했고, 찌뿌둥한 허리를 짚으며 스트레칭을 하려는 순간-

뻐어억-!!!

프란시스카와 유진의 품에서 빠져나온 릴리엄이 가차 없는 속도로 오츠달바의 복부에 바디 블로우를 시전, 일어나기가 무섭게 오츠달바는 횡격막의 우측 하단, 아마 간이 있을 자리를 감싸며 완벽하게 무릎을 꿇었다.

“컥….커흑…어으윽…왜…..대체 왜…”

억울한 것이 참으로 많게 들리는 고통스러운 목소리에, 릴리엄은 여전히 물기 어린 얼굴로.

“그렇게….무책임하게! 라인 아크때도 그렇고, 무슨 생각인 겁니까!”

안 그래도 모였을 때 라인 아크의 일 때문에 한번 쓴소리를 들었는데 왜 죽어서도 그때 이야기를 들어야 하냐는 복잡한 생각이 오츠달바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니, 그렇잖아도 다시 눈을 떴을 때, 릴리엄이 없는 멤버들 사이에 껴서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또 다시 들어야 하다니.

‘젠장, 이럴거면 좀 그럴듯한 방법을 생각할 걸 그랬나…’

이제 와서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서, 머리를 좀 굴려봐도 묘수라고 떠오르는 건 없었기에 입을 열었다.

“그…그건 미안해, 그렇지만-”

“그렇지만, 뭔데요!”

여전히 맞은 곳이 아픈 탓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츠달바에게 들려오는 조금 부드러워진 외침.
릴리엄의 목소리엔, 조금 걷혔던 물기가 다시 자리잡아 있었는지 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가 되어, 오츠달바의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다만 말 끝이 조금 풀어진 것은, 화가 난 것도 있지만, 그를 만나서 반가운 것도 있는거겠지.
오츠달바는 릴리엄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고 변명을 하며 말대꾸를 하는 대신, 아픔을 조금 추스르고 난 다음, 다시 제대로 일어서서.

“미안하다. 정말로.”

자기 변호 없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렇게 사과하는 모습에 릴리엄은 뭐라 더 한 소리를 하려다가,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각 잡힌 자세를 보고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정말요?”

“....그래, 정말로.”

그래도 못 믿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려던 오츠달바는, 그녀 뒤에서 자신을 물리적으로 담궈 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한 쌍의 남녀를 보고는 몸의 무의식적 행동을 차단했다.
그저 좀 희미하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할 뿐.

“그, 유진? 어….조금만, 조금만 인상 풀어주면 안 될까?”

테르미도르가 아닌, 오츠달바로서, 그 나름대로 정중한 부탁을 했으나 상대는-

“이젠 내 소중한 여동생이 죽어서 이 세상에 왔는데, 어떻게 인상을 풀지?”

더 말 걸면 다시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을 뿐이었다.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하는 눈빛으로 유진 옆, 프란시스카를 바라보아도.

“눈 안 깔아? 뭘 잘했다고 눈을 뜨고 있어?”

이 쯤 되면 오츠달바는 존재 자체가 문제 아닐까.

‘씨발…’

카팔스 참사의 멤버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러기 무섭게 서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 회피를 하는 모습에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뭔 말을 하든 작살나겠군.’

정신 차려라, 레이레너드의 테르미도르, 오메르의 오츠달바.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라는 옛 격언을 떠올린 그가 비장하게 입을 열어보려는 찰나, 그의 정복 소맷깃을 잡아끄는 하얀 손이 있었다.

“음?”

소매를 잡은 손을 따라 시선을 올렸을 때, 오츠달바의 시야에 든 것은 릴리엄의 얼굴이었다. 방금 전까지 펑펑 울어댔기에 열이 올라 발갛게 상기된 피부, 그 중에서 뺨의 색이 더 진하게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여전히 촉촉하게 물이 적셔진 그녀의 눈이 오츠달바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저번에…그거… 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상당히 난해한 수준으로 주어가 생략된 그녀의 말은 오츠달바를 T.K.O시키기에 적절했다.



“아.”

마치 인생 최후의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탄식을 내뱉은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호랑이 굴에 끌려온 게 아니라, 족쇄로 묶인 채 단두대의 칼날이 목 위에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라는 것을.

그 탄식 이후의 짧은 침묵 속에서 다른 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 중에서 유진 월콧과 프란시스카 월콧의 반응이 나름 걸작이었는데, 유진은 무슨 신화 속의 무저갱 속에서 기어나온 악령 같은 표정을 지었고, 프란시스카는 릴리엄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안색이 창백해지는 오츠달바의 표정을 보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진짜일리가 없다는 듯 경악에 물드는 듯 하더니, 인간 미만의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경멸하듯 바라보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오츠달바가 컬러드 랭킹 1위를 카드 놀음으로 딴건 아니었던지라,
자신의 육감이 자신을 향해 외치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좆됐네’

그리고, 도망쳐 병신아.

라고.

그래서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면 모를까.


“허허, 나 같은 어른은 생각도 못할 과감한 약속을 하다니, 젊음이란 이렇구만.”

그 와중에 너스레 웃는 로디가 던지는 위험한 농담은, 오츠달바의 도주 경로에 깔리는 마름쇠가 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오츠달바가 자신을 바라보자 모르쇠 하듯 그저 웃기만 했고.

“허, 인류를 찾는 걸 멈춘 줄 알았더니, 인류 말고 다른 걸 찾았던거냐.”

윈 D 팬션의 비아냥은 예전, 카팔스 참사 이전에 얼굴을 비췄던 오츠달바에게 했던 비아냥을 연상케 했다. 물론 릴리엄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진의를 알고 있을 그녀이긴 하지만, 괘씸함을 꾹꾹 눌러담은 건 확실하다.

“...음, 컬러드 1위와 2위의 관계가 이렇게 설명이 되는 거였군.”

그리고 상황을 조용히 관망하는 듯 하던 카스미 스미카의, 셀렌 헤이즈의 한 마디에 오츠달바는 라인 아크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다이빙 쇼를 다시 체험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완벽히 굉침당했다.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정신공격은 AMS를 통해 피드백되는 고통보다 강해서, 이미 죽은 상황임에도 차라리 다시 한번 죽어서 잊고 싶을 정도로 오츠달바의 자존심을 긁어대는걸 모자라서 전기톱으로 난도질을 해놓는 것 같았다.

진심이자 처음으로, 오츠달바는 자신의 존재를 후회했다. 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져서 땅이 푹 꺼져라 한숨을 내쉰 것은 그가 차단시켜둔 무의식의 발현이었고, 그 무의식은-

“한숨을 쉰다고..? 이건 우리 막내가 한 말이 사실에 인접해있다는 증명이렷다!!”

욕 한마디 없이 순수한 분노의 정수를 담은, 유진의 외침에 오츠달바는 자신이 뭘 했는지를 뒤늦게 깨달으며 뒤로 한 걸음,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물론 이 주춤거림 또한-

“하아? 왜 뒤로 물러서지? 찔리는 게 있는 거 아니냐, 엉?!”

프란시스카의 오해를 가속시킬 뿐이었다.

“그, 그런 거- 히끅, 아니야! 아니라고!!”

순간 기가 눌려버린 탓에 또 발현된 오츠달바의 무의식은 딸꾹, 소리로 나타났고, 월콧 남매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죽기 전에 칼이나 총 같은거 차고 죽을걸 그랬네, 이 새끼한테 써버리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오해의 눈덩이 위에서 눈덩이를 제 스스로 굴리는 촌극을 벌이게 된 오츠달바는, 자신을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드는 유진의 태클을 뒷걸음질로 회피하고는 곧바로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을 왜 치냐고! 찔리니까 도망치는 거잖아!!!”

거기에 합세하는 프란시스카.
오랜만에 만난 옛 지인들에게 웬수 취급을 받게 된 오츠달바는 조금 많이, 심하게 억울했기에 도망치면서도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시도했다.

“아니- 힉,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왜 쫓겨야 하는데!! 오해라니까, 내 말을 좀- 끅, 들어봐!!!”

억울함에 파묻혀서 질식사 해도 모자를 판국에 그 억울함을 오해와 함께 가속시키려는 딸꾹질에 오츠달바는 달리면서 답답한 가슴을 쳐댔다.

“아닌데 딸꾹질은 왜 하냐고, 찔리니까 그렇겠지, 유진! 저 새끼 꼭 잡아!!!”

“알았어, 누나! 우리가 그동안 여기서 쌓아둔게 얼마나 많은데!!!”

넥스트 두 기에게 쫓겨도 지금 상황에 비하면 덜 무섭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오츠달바의 도주는 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언니와 오빠에게 쫓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릴리엄 월콧은 조금이나마 화가 풀렸던걸까, 마치 김이 픽 하고 빠져나오는 것처럼 짧게 웃음소릴 내더니, 가식 없이 정말로 순수함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웃기 시작했다.
이 상황의 제 3자인, 카팔스 멤버들이 흠칫하며 그녀에게 시선을 돌릴 정도로, 릴리엄의 웃음소리는 그 나잇대의 평범한 소녀가 낼법한 소리였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스스로 억제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그녀의 무대였으니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삶, 모든 것이 뒤집혔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끝맺었을 때가 되어서야 제 자리를 찾아 정렬을 시작했다.

“저 애가….저렇게 웃은 적이 있었나..?”

“...나이 많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저런 아이들의 당연한 것을 너무 많이 앗아갔어.”

윈 D 팬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이 전혀 본 적 없던 신비한 현상을 보는 것처럼 릴리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로디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어른으로서 느끼고 있던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고, 셀렌 헤이즈는 릴리엄의 모습에서 어쩌면, 조금 희망찼으면 하는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다가.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 튀어나왔고, 로디는 셀렌을 보며 물었다.

“스미카, 무슨…. 설마, 스트레이드가?”

“그런 것..같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인류에게 아직 내일이 있다는 건 확실해.”

넥스트, AC 스트레이드.

그리고 스트레이드의 링크스.

크레이들 03 사태를 촉발시킨 올드킹의 뒤를 이어, 카팔스 참사를 일으킨 검은 새가 추락했다.
셀렌 헤이즈는 이유 모를 막연함으로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심상에 자리잡고 있던 거대한 돌이 사라지면서, 아주 작은 공깃돌 같은 무게감만 남은 것이 느껴졌으니까.

“허어….가능하면 우리의 손으로 끝을 맺었어야 했는데, 다른 젊은이들에게 짐을 떠안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스트레이드가 영원히 멈춘 건 희소식이지만, 기분이 좋아지긴 힘들겠어.”

“무슨, 누가 들으면 다 늙어서 오늘내일 하는 할아버지인줄 알겠는데.”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찝찝하게 해소된 기분인지 탈력감 가득한 말을 하던 로디는, 분위기를 환기시켜 보려는 듯 하는 윈 D의 말을 듣고는 진짜 노인 취급은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고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자, 시덥잖은 나이 이야기는 그만 하고, 슬슬 가 줘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는 로디가 엄지손가락으로 대충 가리키는 곳엔, 2 대 1의 전력차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산채로 포박당한 오츠달바가 다시 한번 물리력을 행사당하려고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허 참, 오메르의 천재라고 하더니만..”

아무리 다들 한 번은 죽어봤다지만, 죽는 경험을 또 하기는 싫을 터다. 윈 D는 오츠달바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딱 한 번만 눈을 감아준다는 투로 중얼거리고는 사적제재의 현장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가기 시작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가려던 로디는 몇 걸음 걷다가 슬쩍 고개만 돌려 뒤를 힐끗 쳐다보고는.

“....그 링크스 생각인가?”

이젠 보이지 않을 카팔스의 노을 진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처럼 시선을 위로 향한 셀렌에게 물으며 말을 이어갔다.

“조금은 다른 결과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다만 그 친구에게 가장 선명하게 보인 선택지가 그것 뿐이었고, 선택을 한 거야. 다른 선택지가 있어서 다른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해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면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겠지, 되돌아갔을 때의 기억도, 선택권도 그 순간의 것이니까.”

최선의 결과가 있어도, 그 최선의 결과를 위한 갈림길은 이미 지나쳤다는 말. 그러니 과거의 일에 얽매이지 말고 내일의 삶은 그 내일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맡기자고 말하는 것 같은 로디를 보며, 셀렌은 짧게 웃으며 말했다.

“오래 전의 순간을 생각나게 하는걸, 확실히 나이는 어쩔 수 없어.”

“자네도 그러긴가, 나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니까.”

나이 언급에 질색하는 모습을 보이던 로디는 윈 D의 도움으로 목숨의 위협에서 벗어난 오츠달바의 애매한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고자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보려던 셀렌은 누군가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인테리올을 떠나기 전의 기억들이 그녀에게 오버랩 되는 기분이 들었고.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잡아라.』

인륜의 범위에서 벗어난 기술의 산 제물로 바쳐질 뻔한, 어느 실험체에게 손을 내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스트레이드, 네 것이다. 너의 넥스트란 소리지.』

ALLIYAH 풀 프레임의 넥스트를 자신의 제자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만하진 마라, 적이 너무 약했을 뿐이다.』

스트레이드의 첫 데뷔, 라인 아크 습격전이 훌륭하게 성공했을 때, 파일럿인 링크스에게 한 충고가 떠올랐다.

『어쨌든간에, 쓸 만한 용병이 되었구나, 너도.』

그랬던 새내기 링크스가 무력의 상징인 AF, 스피릿 오브 마더윌을 격파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나의 상상 이상일지도 모르겠구나, 너는.』

그리고 다시 라인 아크에서, 과거 전설의 하얀 새를 격추한 모습에 내뱉은 감탄사가 떠올랐다.

『단순히, 죽이는 것만 배운 거냐…』

그렇게 자신을 감탄하게 한 링크스가,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을 때 했던 마지막 탄식이 떠올랐다.

『당연한 건가… 내가 유망할거라 기대했었으니까… 너에게 당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 링크스에게, 자신의 제자에게, 인테리올의 실험체에게.

스트레이드의 링크스에게 죽임당하기 직전에 한, 자신의 유언이 떠올랐다.



죽은 자가 되어 산 자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이렇게 일찍 느껴보고 싶진 않았는데. 라며 자조하던 셀렌은 이미 저 현실에 없을, 그 기억 속의 남자를 향해 전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넌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 했겠지만…그것도 너의 선택이겠지,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의 최후가 평안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으리라 생각하며.

“이보게, 자네들.. 말을 더 덧붙이지는 않을테니, 일단 가해자의 설명부터-”

“뭔 소리냐, 내가 언제 가해자였다고!?”

“오메르의 천재라고 불린 사내가 이렇게나 당황하다니. 아, 이젠 천재가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고 네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도망가질 말았어야지!!”

“그래, 그 말이 맞아! 도망을 왜 가는데?! 약속을 지킨 게 맞다면 당당하라고!”

“유진 오빠, 프란시스카 언니, 그래도 우선 설명을…”

조금은 더 시끄러워진, 다른 이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것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끝났다.




“그런데, 오츠달바…님..이라고, 계속 불러도 되는 건가요?”

“어느 쪽이든, 네가 부르고 싶은 쪽으로 불러도 좋다.
테르미도르였던 나도, 오츠달바였던 나도 둘 다 죽었으니까.
죽고 나서 기억된다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기억되는게 좋겠지.”

어쩌면, 안 끝났을 수도 있고.





이걸로, 내가 그동안 썼던 포 앤서 문학은 일단 끝임.


나중에 갑자기 급 땡기거나 다른 아이디어가 생긴다면 써올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게 끝이다.


좀 개그 분위기 내려고 해봤지만 오래전부터 무게감 있는 글만 주구장창 써댔더니만 그게 쉽지가 않다...


카팔스 멤버들이 다 죽었지만, 우리 몰락영애님이랑 수몰왕자의 저세상 로맨스는 끝이 아닐?수도?


다음부터 써올 문학들은 코랄문학, 해방자 루트 이후 IF 순애물이다. 진짜 순애물 쓸거임.


읽어줘서 고맙다. 평가든 반응이든 한마디씩만 하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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