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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 xi 산의 자하리엘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4.19 18:12:44
조회 651 추천 30 댓글 3
														




3: xi

산의 자하리엘



자하리엘은 속삭임을 듣는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기울인다. 산 깊은 곳의 신호 증폭용 지하실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아주 잠시나마,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의가 산란해졌을 뿐. 공백의 공간이 소리를 빨아들여 여려 각도로 다시 뱉어낼 뿐이다. 카르테우스와 탄데리온, 아스다라엘은 무엇을 하나 보지만, 그들은 옆방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네 사람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성스러운 산에 펼쳐진 사이오닉 격자 일부를 복구했고, 산에 넘쳐흐른 악마들로 인해 불타버린 천공의 필라멘트를 다시 엮어낸 채다.


하지만 고되고 힘든 일이며, 순식간에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기도 하다. 자하리엘은 그 이유를 안다. 이 산은 영원히 예민한 감수성을 상징하는 곳이며, 혼돈의 힘이 온 세상에 넘친 순간 그 성격은 날것이 되어 닳아간다. 그가 부적의 심상을 구성하는 동안, 정신을 지키는데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있다면 다음 순간 영혼이 찢겨나갈 것이다. 연약하고 취약해진 느낌이 들 지경이고, 둘 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다. 흡사 야생의 맹수에게 우리에 갇힌 채 먹이를 주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맹수는 그가 주는 먹이보다 그를 삼키고자 하리라.


자하리엘은 스스로를 단단히 지켜낸다. 갑옷 위에 헥사그라마톤의 힘을 담은 방어의 문양을 새기고, 세 형제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 뒤다. 옛 주술사들은 이곳의 벽 위에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공감의 주술은 원하는 미래의 상을 그려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현재로 만들기 위한 주술이다. 그들은 그 돌이 단단하지 않음을, 천공의 세상이 투영된 얄팍한 베일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사냥꾼과 사냥감의 형상은 그 세계에 있는 사물의 흔적일 뿐이었다. 자하리엘은 어둠 속에서 그의 주위를 맴도는 주술사들의 유령에게 이 사실을 배운 뒤다.


자하리엘은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려 노력한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적의 도착까지 긴 시일이 남은 것도 아니다. 그의 심중 가장 어두운 곳에, 그가 존재를 인정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이 자리한다. 카르테우스도, 탄데리온도, 아스라다엘도 이 생각들을 함께 나눌 수는 없으리라. 그의 일부는, 그저 항복해 워프를 이곳에 들이기를 원한다. 워프만이 아닌, 워프를 따라 이동한 이들, 워프에 스스로 투항한 이들, 그리고-


자하리엘은 숨을 고른다.


“교활하군.”


무를 향해, 자하리엘이 말한다.


“아주 교활했어.”


거의 잡힐 뻔했다. 경계를 늦출뻔했다. 무언가 그에게 닿아 머릿속으로 파고들려 한다. 그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산의 울림으로 그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무언가. 작업하는 동안 검을 내려둔 채였지만, 자하리엘은 검을 다시 뽑아 든다. 자하리엘은 놈이 여전히 여기서 그를 지켜보고 있으리라고, 그리고 자신은 놈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적.


자하리엘은 석면과 석영의 번쩍이는 이음새가 엿보이는 벽을 살핀다. 타이퍼스가 그림자 속에서 손을 뻗어 그를 취하려 들 것 같다. 워프에 깊이 젖어 있는 타이퍼스, 그는 다크 엔젤 군단의 심중에 숨겨진 기사단의 비밀스럽고 불가지론적인 성향을 항상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의 속임수이며, 자신과 같은 편에 설 수 있다 여기는 이들을 돌이키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것이다. 정신을 감염시키고, 내부로부터 균열을 일으키는 그의 방식이다.


“지옥이 네놈과 네 악몽을 가져갈지어다, 데스 가드 군단이여!”


자하리엘이 큰 소리로 외친다.


“넌 우리를 그렇게 유혹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올 때, 우리는 저 높은 절벽에서 굳건히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네가 할 바는 우리 발밑의 흙바닥을 기는 것일 뿐.”


바위 사이의 불빛이 번쩍이며 진실의 약속, 비밀의 힘, 죽음 없는 위업의 상을 펼친다. 그의 손에서 검이 떨린다. 귀에 윙윙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더 많은 것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하리엘은 손을 들어 올린다. 방어의 태세다.


“너를 거부한다!”


그가 다시 포효한다.


벽을 가로질러 빛나던 불빛이 꺼진다. 장막은 차갑게 식는다. 웅웅거림이 멈춘다.


차가운 산 깊은 곳, 그가 홀로 남는다. 침입자의 존재감은 사라졌고, 그는 어떤 생각과 어떤 속삭임, 어떤 신비로운 상징이 그를 요새로 감싸 지켰는지 알 수 없다. 불빛이 서서히 돌아와 수정의 흔적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인다. 더 이상 그를 흔드는 유혹과 속임수는 없다. 이제 오직 뒤틀림 없는 진실이, 미래의 기록이 엿보인다.


불과 몇 시간 전 그가 읽은 미래와는 전혀 다르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자하리엘은 돌아서서 옆방을 향해 달려간다. 발소리가 산에 새겨진 석제 갱로를 따라 울려퍼진다. 그는 카르테우스를 먼저 찾는다.


카르테우스는 무릎을 꿇고 깊은 사색에 잠겨 눈앞의 허공에 휘날리는 사이오닉 심상을 수리하고 있다. 자하리엘이 급히 그를 붙잡아 일으켜 세우고, 카르테우스의 집중이 깨진다. 섬세한 심상이 순식간에 유리처럼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카르테우스는 멍한 상태지만, 항의한다. 하지만 말할 시간이 없다.


시간 자체가 없다.


자하리엘은 카르테우스의 머리 우편을 움켜쥔 채, 자신의 의지를 직접 전한다. 카르테우스는 숨을 헐떡인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선 카르테우스가 더 이상의 말도 질문도 없이 돌아서 달려간다. 경고를 전하기 위함이다.


자하리엘은 그의 형제가 무릎을 꿇고 있던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쓰러진다. 가쁜 숨을 몰아쉰다. 목과 목구멍, 그리고 관자놀이에서 피가 노래하는 중이다. 그는 로브 아래의 가방에 손을 뻗는다. 손에는 가면이 들린다.


시간이 없다.


시간 자체가 없다.


오직 이것뿐.






로드 사이퍼,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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