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xiii 약탈자들의 연회

공기가 접히고 꺾인다. 눈에 띄게 구겨진 파란색과 황동색을 띈 괴물이 그에게서 저 멀리 던져진다. 괴물은 먼 벽에 부딪혀 피투성이의 깊은 흔적을 남긴다.

올은 한 손을 들어 올린 악타이를 본다. 저 마녀가 그랬다. 얼마나 되는 염동력을 더 쏘아낼 수 있을까? 올은 다음 순간 악타이가 나이트 로드 군단병을 쓰러뜨릴 정도의 힘을 부릴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자매단의 힘이 더 이상 악타이를 억누르고 있지 못하다는 듯이다.

이는 곧 자매단 중 상당수가 이미 죽었을 거라는 뜻이다.

“올라니우스!”

악타이가 소리친다. 물론 캇의 입을 통해 나온 외침이지만, 올은 그녀임을 알아차린다. 애초에 상태가 좋지 못한 채 휘청이던 캇은 지금 악타이와의 연결로 직접 경험한 정신력 방출의 여파로 비틀거리고 있다. 지금 그녀는 악타이의 육체에 붙은 부속물과도 같은 존재다. 두 사람이 보이는 야생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올이 기억하는 키클라데스의 마녀들을 닮아 있다.

“가! 가라고!”

올이 소리친다.

“저들을 내보내! 저쪽으로!”

악타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망치는 이들 사이에 뒤엉킨 동료들을 몰아간다. 기교 없이, 그들의 정신을 흔들어 그렇게 한다. 캇은 그저 그녀에 딸려갈 뿐이다. 크랭크도 마찬가지다. 그라프트가 앞장선다. 리투는 자의인지 정신적 명령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갑주 차림의 육신으로 캇과 악타이를 감싼 채 후방에 자리를 잡는다.

자이베스도 마침내 달리기 시작한다. 올은 자이베스의 팔을 꽉 붙들고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사이로 그를 이끌어 마침내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는다. 기적처럼, 그들 모두가 살아남은 것일까?

존은 어딨지?

“그라마티쿠스!”

존은 돌아갔다. 멍청하게도. 올은 그가 움직이는 혼란 속을 헤쳐가는 것을 발견한다.

하산, 선택받은 자의 흔적은 없다. 올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확신한다. 그가 보는 곳마다 시체가 널려 있으니까. 감시관 자매 도도마는 죽은 것이 확실하다. 무언가가 그녀의 배를 찢어발겼으니까.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합금 무효화 상자가 그녀의 옆 바닥에 뒤집혀 있다. 존은 그 상자를 찾으러 간 것이 분명하다. 존은 상자를 집어 든다. 올은 그가 도도마의 검도 들어올리려 하는 걸 알아차린다.

이 멍청아, 그건 너무 무거워서-

그라마티쿠스도 그 사실을 알아챈 듯 싶다. 그는 상자를 움켜쥔 채 도망치는 사람들을 지나쳐 다시 일행에 합류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다음 순간 그의 옆에 있던 전쟁 의회의 선임 관료 중 하나가 질량 반응형 탄에 맞아 그대로 폭발한다.

“존!”

리투가 올을 밀치고 달린다. 무기는 없지지만, 다시 투구를 결속한 뒤 존을 돕기 위해 도약하고 있다. 덩굴 같기도 하고, 기어 다니는 것 같기도 하면서 뱀 같기도 한 무언가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존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채고, 돈은 그대로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넘어진다. 존이 너무 세게 넘어져 바람을 일으킬 지경이다. 랩터 한 놈이 존의 옆에 내려앉아 꿈틀대는 존을 한 손으로 붙들고 발톱을 치켜세운다.

리투가 그대로 온몸으로 놈에게 부딪힌다. 한 덩이로 엉긴 둘이 서로 엉켜 구른다. 리투가 먼저 일어서고, 랩터가 그 뒤를 잇는다. 올은 갈고리 발톱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리투는 그걸 피해내고 그대로 반역자의 얼굴을 들이받는다. 랩터가 뒤로 비틀거린다. 리투의 묵직한 일격이 놈의 바이저에 움푹 팬 자국을 남긴다. 리투는 그대로 돌진하여 나이트 로드 군단병의 멱살을 쥔다. 그리고 놈의 투구가 박살날 지경으로 벽에 정면으로 후려친다.

리투는 랩터의 엉덩이에서 매부리꼴로 다듬어진 전투용 나이프를 뜯어내고 시체를 옆으로 던져버린다. 그리고선 존에게 돌아서서 존의 다리를 휘감은 채찍같은 촉수를 잡아뜯기 시작한다. 썩은 수액이 튄다. 존은 스스로 덩굴손을 뜯어내려 발버둥친다. 그러다 리투의 칼날이 몇 번 그의 손가락을 함께 날릴뻔한다.

“가만히 있어, 그라마티쿠스!”

리투가 으르렁거린다.

존 옆에 있던 무효화 상자가 옆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그 아래를 비롯해 사방의 바닥들이 가라앉고 있다. 도망치던 시민들은 이제 바닥에 갑작스럽게 생겨난 능선을 따라 미끄러지는 중이다. 저 혐오스러운 촉수를 뻗친 놈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놈은 이제 행진로 아래의 대지로부터 솟구치고 있다. 물질들이 그대로 진흙처럼 무너져 내리며 놈이 현실을 파고들고 있다. 존을 붙잡고 있는 촉수보다도 훨씬 거대한 촉수가 넓어지고 있는 대리석 사이 틈새를 뚫고 허공으로 솟구친다. 촉수 하나가 지나치던 부관 하나를 붙들고서 그대로 허공으로 내던져 휘감는다.

존은 절규한다. 리투의 어깨 너머, 그의 눈에도 보인다. 썩은 날개처럼 너덜너덜한 망토를 두른 빛나는 자주색 유령의 형상이다. 랩터 두 놈이 리투의 뒤로 달려든다. 리투가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의 속도는 충분치 못할 것이다.

올의 옆에서, 캇이 다시 고통에 몸부림친다. 악타이가 다시 염동력을 발한 것이다. 두 랩터는 일제히 뒤로 넘어지며 마구 던진 주사위처럼 몸이 접혀 뒤꿈치와 머리가 맞닿는다.

리투가 마지막 불생자의 촉수를 잘라내고, 존의 다리를 자유롭게 한다. 악마의 체액 때문에 그가 뜯어낸 칼날은 전부 녹아난 뒤다. 리투는 그대로 칼을 던져버린다. 그리고서 리투는 존과 상자를 모두 들어 올린다.

“어서!”

올이 소리친다.

리투는 상자는 팔 아래, 거의 의식을 잃은 그라마티쿠스는 어깨에 걸친 채 군중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그의 뒤쪽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잔혹한 놈들이 대지를 박차고 나오기 시작한다.

“도망쳐!”

올이 지시한다. 긴 여정의 동행자들은 그 명령에 따른다.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하게 이성적인 판단이다. 악타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힘을 쏟아낸 탓에 비틀거린다. 이입된 긴장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거의 쓰러지기 직전인 캇은 간신히 그녀를 붙들어 세운다. 올은 부지불식간에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그런 캇을 도와 악타이를 부축한다. 악타이의 피부와 뼈에서 맹렬한 사이카닉 잔여물이 뿜어지고, 그녀의 몸을 잡는 것은 녹아내린 악몽을 만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그는 휘청거리는 장신의 마녀를 일으켜 세운다. 그의 눈꺼풀이 미친 듯이 경련을 일으킨다.

그들은 도망친다. 뒤돌아볼 여유도 없다. 탈출하는 군중과 함께 그들이 도망친다. 그 뒤로 행진로는 말 그대로 지옥같은 불생자들의 도살장이 된다.

긴 여정의 동행자들은 비명과 광기 어린 웃음의 메아리에 쫓기며 앞만 보고 달린다. 올은 지금 자신들을 쫓고 있는 것이 메아리뿐만이 아님을 안다.

그리고 도망쳐 ‘벗어날’ 곳이 없음 역시 안다. 생텀 안에 대적이 있다. 어디도 안전하지 못하다. 위험으로부터 도망처 위험으로 향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무장도 없고, 적에게 맞설 힘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달리는 것뿐이다. 최대한 멀리, 최대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