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ix 광기 속으로

건널 길이 없다. 거대한 화염 폭풍이 팔라틴 환기 협곡을 가득 메웠고, 사나운 노란 불길은 거의 울부짖듯 거세게 치솟는 중이다. 모든 고가로와 교각이 녹아내리거나 불탄 뒤다. 만 건너편의 거대한 범테라 공의회(Transterran Congress) 건물조차 검게 그을리거나 부분적으로 화재 속에 타오른 뒤다. 그 바로 인근에 있는 성직록(Benefice)의 탑들은 시커멓게 그을린 그루터기가 된 지 오래다.

하산은 이렇게 거대한 불길이 소리를 토해내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노호가 들린다. 열기가 너무도 강력해 다가갈 수조차 없다. 이오스 라자, 그리고 일행에 배정된 세 명의 아스타르테스라면 저 화염을 짧게나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산과 두 자매단원은 그럴 수 없다. 일행은 협곡의 남쪽 어깨 너머로 빠져나와 지도자의 회랑(Cloisters of the Ordinatory)에서 피신할 곳을 찾는다.

이곳조차 열기가 강렬하다. 하산은 찌르는 듯한 무더위에 불편한 땀투성이가 된다. 저 아래에서 총성이 들린다.

라자가 그를 바라본다. 마치 '이제 어쩔 텐가?'하고 묻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선이다. 하산은 생각에 잠기지만, 집중이 어렵다. 로툰다에서 출발한 이래 가까이서, 혹은 저 멀리서 목격했던 끔찍한 장면들이 뇌리에 새겨진 채다. 너무 생생해서 치워낼 수도 없는 장면들이다.

최후의 요새는 더 이상 요새조차 아니다. 이미 요새는 궤멸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역자들은 사방에서, 지상과 지하를 가리지 않고 생텀을 향해 쏟아져 들어온다. 지금 충성스러운 제국의 마지막 영토를 지키기 위한 수백 차례의 전투가 백열한다. 전투를 피하는 길을 찾으면서도, 하산은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고 이 최후의 전투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려 애쓴다. 지금은 단 하나라도 중요한 시점이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하산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끝내야 할 임무가 있다. 그리고 위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지금 그의 목표가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그는 세상을 뜬 주인의 유지를 저버리고 죽음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다.

하산은 상황을 평가하려 한다. 포의 연구실이자 마지막 행방이 포착된 동부 접근로 일대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적의 손에 들어간 상태기도 하다. 모리아나가 긁어모아 하산에게 보낸 조잡한 정보들에 따르면, 포는 크산투스, 셀레나르 유전자 마녀, 그리고 커스토디안 아몬과 함께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이동 중인 것은 확실하지만, 어디로 갔을까? 크산투스가 혹시 단서나 흔적을 남겼을지도 모르지만, 그 흔적을 찾으러 갈 수조차 없다.

모든 통신이 끊긴 채다. 저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혹은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의문의 침입자 페르손이 말한 것처럼, 생텀의 내부 지리는 완전히 유동적인 상태에 놓인 것 같다. 하산이 설령 포의 현재 위치를 안다고 해도, 그곳이 '어디'인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다.

하산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쥔 정보뿐이다. 그는 주인이 가르친 대로, 임상적인 정확도로 세부 사실들을 분류해야 한다. 가능성은 무시한다. 오직 사실만을 바탕으로 고려한다. 포, 크산투스, 안드로메다 17, 아몬 타우로마키안. 그들에 대해 하산이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의 프로필. 그들의 행동 패턴. 그들에게 내려진 지시. 그리고 하산은 크산투스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포의 충동적인 부분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셀레나르는 의도적으로 상황을 왜곡하기 위해 끌어들인-

잠깐. 하산은 라자를 바라본다.

"그대들이 명령을 위반하게 되는 조건이 있습니까?"

얼굴에 말라붙은 혈흔이 가득한 동행대원이 그를 노려본다.

"전혀 없다."

"당연히 그러할 것입니다."

하산이 답한다.

"하지만 만약 제가 그대에게 주어진 명령을 위반하라 지시한다면…?"

"당신은 현재 그럴 직권을 가지고 있지."

라자가 답한다.

"그렇기에 따를 것이다. 다만, 그보다 위의 권위로부터 반대가 있지 않는 한 말이다."

"인장관, 캡틴 제너럴, 혹은 황제 폐하를 의미하십니까?"

라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더 있습니까?"

"더 없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크산투스나 다른 선택받은 자들 때문에 명령을 어기지는 않겠지요?"

"그들의 직권은 불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포와 함께 파수대원 아몬이 동행했지요."

하산이 입을 연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과 동행했습니다. 아몬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다."

라자가 답한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아몬 역시 그대처럼 스스로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비난받을 구석이 없는 존재겠지요?"

라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레기오 쿠스토데스다. 그렇게 묻는 것조차 불쾌하군."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아포네 이레가 수어를 보낸다.

하산이 비질 커맨더에게 대답하려 하는 순간, 갑자기 저 뒤에서 총성이 터지기 시작한다. 회랑 저편의 아치로가 폭발하고, 호르트 팔라틴에 속한 여섯 명의 병사가 시야에 닿는다. 모두 비틀대고 있다. 그 뒤로 총격이 터지고 있다.

볼트탄의 맹습이 그들을 덮치고, 한 명이 그대로 화염에 휩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