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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9:v 궁정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02 12: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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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v 궁정



창백한 안개 속에서, 지금껏 발견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폐허 속으로 그들이 이른다. 로켄은 필연의 도시의 훼손된 풍광뿐 아니라, 그 역사의 층위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필연의 도시가 워프의 조류 속에 하나로 뒤엉킨 모든 도시를 가리키는 곳이라면, 지금 그들이 이르는 곳은 인류가 만든 바 없는 시원의 심장부이리라.


대부분은 사라진 것 같지만, 인류가 남긴 흔적도 엿보인다. 자갈로 된 거리와 기와를 두른 황폐한 지붕, 목재 골조를 갖춘 집과 돌로 된 다리까지. 드물게는 이 영역에서 뒤섞인 황궁의 흔적, 혹은 로켄의 아비가 거느린 기함의 흔적도 엿보인다. 상감 세공이 된 황금의 벽 조각, 오라마이트로 지어진 문, 스킬라 패턴 특유의 갑판 구조까지, 기이한 조각들이 엿보인다. 하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 사물이라기보다는, 워프의 기억 속에 새겨진 흔적이라는 느낌이 더하다.


황량한 마름돌 기둥, 회색 섬록암 덩어리들, 음울한 돌로 지어진 끄트머리가 잘린 기둥, 바싹 말라붙은 벽받이까지, 수많은 것이 보인다. 모든 구조물은 무너진 채지만, 그 규모는 모두 기념비에 비길 정도다. 마치 복수심에 가득 찬 고르곤이 돌로 만들어 버린 고대의 거대한 야수처럼, 느릿하고 역겨운 녹색 안개 속에 솟구친 채다. 일부는 강렬한 황색의 지의류나 타는 듯한 진홍색의 이끼로 뒤덮여 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한 흔적도, 지구에서 빚어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아치와 출입구의 규모는 로켄과 일행이 따르고 있는 황금빛 인형조차도 왜소해 보일 지경이다. 이곳은 마치 바닷속에 잠겨 있다가, 오랜 세월이 흐르고서 솟구친 성채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 안에 숨어 있던, 깊이를 잴 수조차 없는 검은 물결이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증발해 이 현장을 허공 아래 드러냈을지도 모르지. 저 위로는 소용돌이치는 워프 폭풍이 발하는 유황의 구름이 1천 킬로미터 너비로 펼쳐지고, 그 아래 분홍빛 번개와 선명한 자홍빛의 섬광이 둘러져 있다.


이 폐허에 숨어 있을 불생자들이, 가장 거대하고 오래된 종족일 것임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이들은 영속자 페르손, 그리고 그라마티쿠스와 헤어진 후 수없이 많은 악마들과 싸우며 나아왔다. 자갈길을 걸으며 밤의 유령처럼 오가는 구울과 뿔 달린 염소의 형상들을 쓸어내렸고, 무너져 내리는 수로와 갈라진 석조 도로에서는 촉수 달린 공포를, 그리고 뼈로 빚어진 날개를 두른 독수리들을 지나치며 길을 뚫어냈다. 로켄의 갑주는 리투나 프로콘술이 그러하듯, 악마의 영액과 불생자의 피로 물들어 있다. 하지만 황제의 빛나는 갑주 위로는 어떤 선혈도 엉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며 그들을 막아서려 한다. 거의 황궁의 관문만큼이나 거대하고 기름처럼 시커먼 무언가다. 거의 대칭을 이루지 않은 형상이기에, 그 진정한 형상을 알아보기 어렵다. 번질거리는 젖은 위족은 해류에 휩쓸린 해초처럼 꿈틀대고, 곤충을 연상시키는 거의 나무처럼 굵직한 가시 돋친 다리가 수렁에서 빠져나온다. 말라붙은 소의 두개골처럼 건조하고 금이 가 있는 거대한 뿔이 이마를 이루는 어두운 절벽에서 구부러져 튀어나온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놈은 반짝이는 광채를 발한다. 깜빡이는 형체가 망토처럼 놈에게 둘러져 있다. 마치 거품처럼 뒤얽힌 시각 없는 눈들이다.


로켄과 리투, 심지어 카이칼투스마저 그 거대한 덩어리 앞에서 멈칫한다. 그러나 그들의 앞을 이끄는 황금빛 형상은 주저함이 없다. 한 걸음도 물러섬 없이, 성큼성큼 전진한다. 촉박한 걸음은 거듭되고, 움직임과 싸움은 한 몸이 된다. 속도에 늦춤도 지체함도 없이, 그의 앞을 막아선 모든 것에 대한 살육이 이어진다.


저 앞의 거대한 괴물의 형상 앞에서, 황제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황금의 형상이 된다. 그가 그대로 보폭을 늘린다. 그리고 그가 달리기 시작한다. 그의 전투용 검이 공중에 원을 그리고, 불길이 타오른다. 로켄과 카이칼투스, 그리고 리투는 자신들이 잠시나마 주저했음에 부끄러워하며 그대로 달려 황제의 뒤를 따른다.


거대한 불생자 괴수는 완전히 침묵한다. 으르렁거림도, 어떤 종류의 소리도 없다. 단지, 그 거대한 존재가 움직이며 소리가 날 뿐이다. 젖은 육신이 움직이며 나는 축축한 소리, 발이 디딜 때마다 울려 퍼지는 굉음, 기둥과 마름돌 덩어리에 부딪혀 쓰러뜨리는 소리, 놈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액체가, 헐거운 눈이 거듭 대지에 튕기는 소리.


황제는 단거리 주자처럼 움직인다. 머리는 낮추고, 큰 보폭을 확실히 유지한다. 마치 사바나의 고양잇과 짐승이 사냥감을 쫓듯, 가속을 거듭하며 괴수를 향해 달려간다. 검게 번들대는 촉수가 뱀이나 채찍이 된 마냥 휘둘러진다. 휘둘러지는 촉수는 군단의 검은 군기를 연상하게 한다. 그 일격을 피하면서 근접한 황제가 그대로 불타는 검을 휘둘러 촉수를 불태우고 베어낸다. 로켄은 삶겨진 피와 구워진 고기의 악취를 느낀다.


다음 순간 황제가 도약한다. 더 이상 전력으로 질주하는 고양잇과 짐승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사냥꾼으로부터 몸을 피하는 영양 같은 움직임이다. 경사로처럼 위로 기울어진 현무암 덩어리에 몸을 날린 황제는 그대로 이끼가 낀 끄트머리로 달려간다. 그대로 황제가 공중에 몸을 던진다. 그의 검이 솟구친다. 불타는 낙인을 양손에 쥔 채 도약한 황제가 그대로 검을 휘두르며 내리꽂힌다.


격렬한 충돌이 벌어진다. 마치 대지를 후려치는 벼락과도 같다. 내리꽂히는 황금빛 형상이 쥔 칼날이, 거대한 괴수의 형체 없는 얼굴에 맞닿는다. 깊은 상처가 새겨지고, 너울대는 푸른 사이킥 화염이 솟구쳐 검은 살갗에 상처를 입힌다. 거대한 괴수는 충격에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난다. 피, 혹은 피를 떠올리게 하는 갈색 액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진다. 그 액체가 고대의 포장도로 위를 따라 급류처럼 휘몰아친다. 황제는 무릎을 구부리며 충격을 흡수하면서 대지에 단단히 발을 디딘다. 다음 순간, 황제가 다시 도약하듯 움직인다. 놈의 목줄기와 턱 아래로 달려든 황제는 그를 막아서는 촉수와 넝쿨의 갈기 사이를 거침없이 베어내며 달려든다.


로켄이 근접한다. 그 싸움에 제 검을 더하기 위해 힘차게 달린다. 갑자기, 그의 심중에 한 문장이 빛나듯 새겨진다.


오직 그분의 의지로서!


로켄은 몸을 돌린다. 카이칼투스가 미끄러지듯 멈추며 경고를 발한다. 리투도 그 경고를 듣고 돌격을 멈춘다.


불생자들의 형상이 폐허 양쪽에서 몰려들기 시작한다. 네 전사를 포위해, 저 거대한 야수에게 몰고 가려는 심산이다. 기다란 말처럼 생긴 해골 위에 짧고 날카로운 사슴의 뿔을 둘렀고, 발굽 두른 두 발로 인간처럼 대지를 디딘 털이 덥수룩한 놈들이 보인다. 킁킁대고 우는 소리를 대며, 미쳐버린 눈을 한 채 돌도끼와 경목 몽둥이를 휘두른다. 불그린만한 덩치에 털도 눈도 없는 괴수도 보인다. 구부정한 어깨에 단검 같은 이빨을 하고, 무언가 의식적인 무늬가 칠해진 더러운 가죽을 둘렀다. 그리고 3미터보다 작은 놈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놈들은 양쪽 측면과 뒤에서 나타나 달려들기 시작한다. 돌덩어리에서 뛰어내리거나, 혹은 무너진 기둥의 그림자에서 솟구친다. 놈들이 외치는 전쟁의 함성이 들린다. 거친 연구개음의 포효다. 로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말이지만, 마치 로켄의 아비의 이름을 외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 전사는 자신만의 분노로 야수들의 습격에 맞선다. 프로콘술이 휘두른 수호자의 창이 맹렬히 회전하며 베어낸다. 마치 흠 하나 찾을 수 없는 의장대의 휘두름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그대로 피가 그린 호가 공기에 그려진다. 리투는 단단히 버텨선 채 능숙한 솜씨를 부린다. 로켄에게서 빌린 만물의 애도의 균형과 특성에 익숙해졌는지, 절대적인 확신을 담아 검을 휘두르고 찔러댄다.


로켄은 놈들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길을 뚫으며 달려든다. 다시 한번, 황제가 호루스의 마지막 충성스러운 아들과 힘을 나눈다. 로켄의 영혼에 불길을 옮기고, 그 어떤 물질도 막아낼 수 없을 힘으로 루비오의 검에 불을 붙인다. 그 불길이 가죽과 고기, 엄니와 뼈, 나무와 철을 뚫으며 모든 것을 베어낸다. 불생자들은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을 이용해 로켄을 향해 몰려들어 몽둥이를 휘두르고, 찢고, 몸싸움을 벌이려 든다. 하지만 돌도끼의 날은 그의 갑주와 마주한 순간 얼음처럼 부서지고, 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해골이 으깨진다. 그의 검이 쪼개버린 목줄기만큼이나 많은 숨결이 끊어진다. 로켄은 순식간에 산성 물질처럼 연기가 나는 끈적한 선혈로 뒤덮인다.


다음 순간, 거대한 울부짖음이 공기를 뒤흔든다. 가장 거대한 돌덩어리조차 떨리게 하는 심원한 울부짖음이다. 아직 살아있는 아인종 불생자들이 낑낑거리며 패주하기 시작한다. 다시 그림자와 안개 속으로 놈들이 도망친다.


그 울부짖음은 거대한 괴수가 그 삶에서 처음으로 낸 소리였으리라. 죽음의 단말마요, 절망의 소리, 어쩌면, 불신의 외침이었을 소리다. 로켄이 고개를 돌린다. 마치 해변에 누운 고래처럼, 옆으로 쓰러진 거대한 검은 형체가 보인다. 놈의 거미를 연상시키는 두 다리가 부러진 돛대처럼 꼬인 채다. 옆구리와 가슴에 새겨진 깊은 상처에서는 증기가 솟는다. 황제는 놈의 위에 선 채, 치명상으로부터 검을 뽑아내고 있다. 거대한 괴수의 시신에서 그대로 황제가 뛰어내린다. 뒤를 따르는 동행자들에 시선 돌림 한번 없이, 다시 그가 앞으로 나아간다.


세 전사는 서둘러 뒤를 따라 죽어버린 야수의 거대한 시체 너머로 향한다. 놈의 시신에서는 마치 터진 배관이나 배수로에서 쏟아지는 물과 비처럼 계속해서 피와 오염된 액체가 쏟아진다. 악취가 진동하는 물보라가 급류를 타고 나아가며 섬뜩한 무지개를 드리운다. 괴수의 시체 너머, 서서히 번져가는 피의 호수를 해치고 세 전사가 앞으로 나아간다.


그 너머, 거석으로 빚어진 폐허와 안개로 뒤덮인 분지 너머로 오래된 석조 도로가 뻗어 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짖는다. 아비새의 쉿쉿대는 비명, 부엉이의 쇳소리가 퍼진다. 온 사방에서 양서류의 우렁찬 합창이 들려온다. 웅덩이에서, 석조 저수고에서, 안개가 가장 짙게 드리운 함몰된 습지에서.


두꺼비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낮게 웅웅거린다. 로켄은 계속 귀를 기울인다. 오래 듣고 있노라니, 마치 수천여 개의 오스코드 장비가 발송하는 변조 파장의 잡음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 너머에 바람이 내쉬는 한숨을 연상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속삭임이다. 불길이 삼키는 장작이 토해내는 말라붙은 바스락거림이다.


길은 말라붙은 황야의 능선을 따라 위로 향한다. 곳곳에 죽어버린 갈색 덤불이 자라고, 그 사이로 쓰러진 돌덩이와 위협적인 거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등성이 너머에서 분홍빛 번개가 번쩍거리며 빛을 발한다.


그 길옆으로, 고대 도시의 거대한 파편들이 위협적이고도 거대한 자태를 드리운다. 칙칙한 회색의 차림이 마치 애도하는 조문객을 연상시킨다. 잡초가 무성한, 아주 오래된 아치형 통로가 줄이어 이어진다. 만약 온전했다면 황궁의 그 어떤 첨탑보다도 더 높이 솟았을 탑의 기반부도 보인다. 근처에는 사각형으로 다듬어진 사르센(Sarsen, 각주 1)석의 흔적이 보인다. 긴 세월 전 파괴된 건물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완벽한 각도와 모양을 담아 다듬어진 조각들이다. 가장 작은 것도 100여 톤에 달하리라. 마치 어린 거인들이 가지고 놀다 버린 것마냥, 길의 오른편 능선을 따라 몇 킬로미터 가까이 거대한 건물의 조각들이 널려 있다.


길 왼쪽에는 검게 물든 벽받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가시와 꼭대기 장식들이 기괴하게 돋아나 있다. 마치 제작자가 흑옥으로 철조망을 흉내내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 벽받이가 무엇을 받치려 했는지는 몰라도, 수백여 미터에 걸쳐 어두운 대리석으로 지어진 낡은 벽을 제하면 그 벽받이가 받치던 것은 사라진 지 오래다.


로켄의 복스가 웅웅거린다. 바이저에는 불완전한 데이터들이 흐트러진 채 깜박인다. 황제는 그들보다 앞서 있고, 그의 행보에 어떤 거침도 없다. 길을 떠난 로켄은 돌무더기를 발고 올라서 대리석 벽의 꼭대기에 선다. 벽을 따라, 로켄은 저 아래 길을 따르는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로켄 중대장?“


카이칼투스가 묻는다.


”접촉이 있었소.“


로켄이 답한다.


”현재 대기 중.“


정확히 무엇이 송신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칠고 손상된 채다. 이 지옥 같은 영역 속에서, 어떤 신호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로켄은 약간이나마 올라간 것이 수신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여전히 데이터는 흐트러진 채로 그의 바이저를 가로질러 깜빡인다. 그나마 그가 올라와서 나아진 것은 왼쪽으로 몇 킬로미터 너머에 발신지가 있다는 것 정도다. 높은 곳에 선 채 로켄은 왼쪽을 돌아본다. 폐허로 가득 찬 황야가 한참 너머까지 펼쳐져 있다. 위치 추적기에 따르면 ‘서쪽’이라고 했는데.


하지만 그는 그 표시가 무의미함을 안다. 시간조차 방향을 알 수 없는 이곳에서, 나침반이 무슨 기준점이 되겠는가?


”다시 합류하라, 로켄 중대장.“


카이칼투스가 저 아래에서 지시한다. 그들은 로켄을 둔 채 다시 걸음을 옮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로켄이 답하며 배율을 조정한다. 지평선을 스캔하고, 느릿하게 작동하는 전술 오버맵을 추가로 덧붙인다.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지만, 모든 수치가 0을 가리킨다.


저 멀리, 최소한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거무스름한 갈색 황무지는 알칼리와 황토가 섞인 평평한 황진 지대로 바뀐다. 마치 몇 시간 전, 그들이 떠난 메마른 황야를 떠오르게 한다. 로켄의 눈은 뒤죽박죽인 폐허가, 필연의 도시가 남긴 버려진 껍질이 끝없이 뻗은 모습을 볼 뿐이다. 다음 순간,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형체가 시야에 잡힌다. 로켄은 그것이 테라 궤도 장갑판의 일부임을 알아본다. 옥좌성이 몰락하기 전, 허공에 뜬 대륙을 빚어냈던 궤도판의 거대한 파편이다. 폐허가 된 도시의 부분 위를 가로질러, 버려진 매트리스마냥 구겨지고 울퉁불퉁하게 놓여 있다. 그리고 배율을 최대로 높이자, 무기가 쏘아지는 섬광과 불꽃이 또렷하게 잡힌다.


로켄은 데이터 채널을 다시 스캔한다. 그의 갑주가 수행할 수 있는 최심층부 신호 분석이 진행된다. 로켄은 오스코드의 단편적 조각을 부분적으로나마 분리해 낸다. 그리고 표식의 파편들이 포착된다.


”프로콘술!“


로켄이 외친다.


”중대장?“

”서쪽 10킬로미터 일대에서 교전 중인 병력을 포착했소…“


로켄은 잠시 후, 자신의 말이 쓸모가 없었음을 깨닫고 방향을 직접 가리킨다.


”저쪽으로 10킬로미터요. 자세한 것은 확실치 않지만, 캡틴 제너럴과 그가 이끄는 아나바시스 강습 중대로 보이오. 지금 내 옛 군단과 쿠스토데스가 정면 교전을 펼치는 것 같소.“


저 아래의 길에 있던 카이칼투스와 리투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본다.


”신호를 보내야 하겠소?“


로켄이 묻는다.


”시도할지 여부를 정해주시오.“


로켄은 카이칼투스가 고개를 숙이고 침묵 속에 보고를 올리는 것을 지켜본다. 그들의 선두에 선 황금빛 형상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다, 중대장.“


카이칼투스가 결정을 내뱉는다.


”하지만 확실히-“


로켄이 입을 떼려 한다.


”만약 저들이 교전에서 벗어나 통신을 복구한다면 말이오만.“


리투가 카이칼투스에게 말한다.


”저들의 힘이 보탬이 되지 않겠소?“

”아니면, 우리가 도울 수도 있소.“


대리석 벽에서 뛰어내린 로켄이 일행에 합류하며 덧붙인다.


”상황이… 심각해 보였소.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제16군단도 있었고, 워드 베어러 군단도 있었소. 내 보기엔, 최선임 중대장 아바돈이 그들을 이끄는 것 같소.“

”같다?“


카이칼투스가 묻는다.


”표식이 부분적으로만 확실했소.“


로켄이 답한다.


”오랜 벗인가?“


리투가 묻는다.


로켄은 그를 응시한다. 아바돈의 이름이나 명성을 모르는 이가 있다니, 참 기이하게 느껴진다.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중대장.“


카이칼투스는 그대로 돌아서서 다시 걸음을 옮긴다.


”프로콘술!“


로켄이 쏘아붙인다.


”내 삶의 왕께서도 알고 계신다.“


카이칼투스가 대꾸하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캡틴 제너럴과 동행대원들이 우리에게 향할 주의를 효과적으로 끌고 있다고 판단하셨다. 저들은 지금 이 함선에 처음 발견된 이가 주둔시킨 병력의 상당수를 붙들어 놓고 있다.“


이 함선… 로켄은 아직도 이 모든 것이, 이 황무지가, 이 끝없는 도시가, 이 영원히 미쳐버린 풍광이 어떻게든 복수하는 영혼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에, 계속 나아간다.“


카이칼투스의 말이 이어진다.


”캡틴 제너럴과 그 휘하의 동행대원들이 죽을 수도 있소.“


로켄이 말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존엄과 용맹 속에 이루어질 것이요, 이 여정을 우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인즉.“


로켄과 리투는 서로를 바라본다. 프로콘술의 목소리는 극도로 차갑고, 극도로 분석적인 동시에,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다. 황제의 마음은 정해져 있다. 무엇을 위해서도,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로켄과 에르다의 군단병은 프로콘술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바람이 거세게 불며 황야를 가로지른다. 말라붙은 황갈색 덤불과 가시갯대추나무를 뒤흔든다. 소름 끼치는 분홍빛과 네온빛의 벼락이 그대로 화재적운을 찢어 놓는다.


그리도 언덕의 정점 너머, 그들을 군대가 기다리고 있다.


중대 규모의 워드 베어러 군단병이다. 100명의 전사와 소수의 카타프락티 갑주를 두른 중보병, 그리고 아스타르테스를 굽어보듯 하는 육중한 레비아탄 공성 드레드노트 몇이 보인다.


그 뒤로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의 더미가 쌓여 있다. 마구잡이로 쌓여 조잡한 계단식 피라미드, 인공 산이나 마찬가지다. 그 어둠 속에서 웅웅대는 소리와 속삭임이 공기를 메운다. 산에는 쩍 벌어진 구멍이, 워드 베어러 군단병들이 지키고 있는 거대하고 너절한 관문이 보인다.


황제와 세 동행자는 언덕의 정점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들이 따라가던 거대한 길은 메마른 황야의 덤불 사이로 파고들어 실타래처럼 휘감겨 저 산의 아가리까지 이어진다.


반역자 중대는 그 길을 가로질러 널찍한 대형을 짠 채다. 오직 황야의 바람에 군기가 휘날릴 뿐,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로켄은 움직이지 않는 대열을 살핀다. 빛나는 바이저, 노란 점이 반짝이는 깊고 어두운 눈구멍, 장교들이 깃털이 달린 투구 장식, 징이 박힌 견갑과 풍화된 갑주, 그릴이 달린 주둥이와 얼굴을 우리처럼 가린 투구, 바람에 흩날리는 타바드, 무자비한 철제 군화와 사바톤, 갑주 관절에 밀랍으로 붙여져 펄럭이는 양피지에 쓰여지거나 세라마이트 갑주에 새겨진 가증한 구절들까지, 모든 것을 살핀다. 놈들은 도전적이면서도 아무 대중도 없는 자세다.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 장검과 사슬 칼날의 끄트머리를 땅에 박아 넣고, 엉덩이를 가로질러 마울을 들고, 대검을 창이라도 된 마냥 옆으로 부려놓은 채다. 마치 부랑자 깡패들처럼, 태연하고 여유롭게 제 사냥감을 기다리는 산적이나 다름없다.


로켄은 목청을 가다듬고서 루비오의 검을 고쳐 쥔다.


그의 곁에 선 리투가 입을 연다.


”손 봐줄 정도군.“


너무 되는 대로 내뱉은, 경솔하게까지 들리는 말. 로켄은 그 말에 놀란다. 그리고, 거의 몇 년만에 처음으로, 진심의 즐거움을 담아 웃는다.


”가능하다.“


카이칼투스가 입을 연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그의 것이 아니다.


황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순식간에 움직임을 고친 반역자들이 무기를 든다. 창과 장병기를 겨눈다. 공성 드레드노트가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네일 건을 쏘아댈 때 나는 유압식의 쿵쿵대는 소음이 증폭되어 들리는 것 같다. 대전차용 라스 볼트가 능선을 따라 줄줄이 퍼부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


불타는 라스 볼트들은 그 목표로부터 5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대로 무너지며 화염의 구름이 된다. 로켄은 사이오닉이 고조되며 고통을 느낀다. 황제가 쏘아낸 정신적 보호막이 엄청난 화력과 격돌하며 빚어진 보이지 않는 파문이 거의 보이다시피 한다. 쉿쉿대던 라스 사격은 무엇도 맞히지 못한 채 무력화되고, 모든 운동 에너지 병기는 그 힘을 일는다. 모든 열 에너지는 순식간에 열을 사방으로 토해내고 사라진다.


그리고 통증이 급격히 심해진다. 로켄은 부비강에서 통증을 느낀다. 귀에서 욱신거림이 느껴진다.


황제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황제는 파워 클로를 들어 올린다. 반대쪽 손에 쥐어진 검은 낮은 높이로 들린 채다. 태초의 하늘이 담은 푸른 빛이 어린 눈부신 에너지의 파동이 그 손바닥에 모인다. 파워 클로의 발톱 가닥마다 에너지가 엉기며 플라스마로 빚어진 줄이 되어 튕긴다. 그리고 황제는, 제 손에 모인 벼락을 그대로 뿜어낸다.


황제가 들어 올린 손에서 그대로 벼락이 호를 그리며 황폐한 황무지 너머의 하늘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그 벼락은 반역자들의 바로 앞 대지를 후려친다. 흑체 복사의 섬광이 터진다. 격렬한 가스압의 변화 속에 천둥 같은 소리가 터진다. 수 기가 줄에 달하는 에너지가 방출됨과 동시에, 이온화된 전기 방전의 굉음이 폭발한다.


후려쳐진 대지가 불타오른다. 후려쳐진 대지가 무너진다. 충격파의 범위가 넓어진다. 플라스마 화염이 워드 베어러 군단병들이 짜고 있던 전열을 삼킨다. 땅이 잿더미로 화하고, 전사들의 대열이 삽시간에 지워진다. 놈들에게 소멸의 운명이 다가온다. 열기와 화염이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허공에 던지고, 녹아내려 엉겨 붙은 갑주 덩어리들과 불타버린 무기들이 파편이 되어 대지에 흩뿌려진 채 연기를 뿜어낸다. 어떤 유기체도 저 파괴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충격의 화염이 일으킨 파도는 멈추지 않고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사람은 나무 인형처럼 불타고, 세라마이트는 녹아내리고, 불 붙은 군기는 그대로 타오르며 쓰러진다. 카타프락티 갑주조차 밀랍처럼 녹아내린다. 그 완강함과 도전적인 정신을 거대한 갑주 덩어리 속에 갖춘 공성 드레드노트들은 마치 재진입 단계에 들어선 드랍 포드처럼 푸른 불길에 휩싸여 타오른다. 그리고 탑재한 무장이 폭발하며 거대한 폭발로 화한다.


눈부심이 사라지고, 통증도 사라진다. 한두 에이커 정도의 검게 그을린 대지를 제외하면 그 무엇도 살아남은 바 없다. 갑주 조각들, 열기 속에 불타버린 파편들이 타오른 대지 위에 흩어져 있다. 황야의 바람은 뜨거운 연기를 길고 하얀 기둥으로 빚어내 저 옆으로 날려 보낸다.


황제는 다시 전진을 시작한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로 그의 걸음이 옮겨진다. 세 동행자들이 그 뒤를 따른다. 길 옆에 돋아난 덤불들의 곳곳에서 화염이 엿보인다. 초고열 속에 내던져진 파편들이 내려앉은 곳에서 마치 개간 중인 황무지처럼 말라붙은 가시갯대추나무와 관목들이 불탄다. 갈색 덤불 아래 서서히 불타는 뿌리는 마치 황금빛과 호박빛이 뒤섞인 벌레가 꿈틀대는 형상이다.


4인조는 산의 쩍 벌어진 주둥이로 향해 그 그림자 아래를 지난다.


마치 무거운 양모처럼, 그들 위로 거의 만져질 듯 묵직한 어둠이 드리운다. 몇 발자국이 지나고, 황제가 발하는 후광이 커진다. 화려한 갑주 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어둠을 감싸고, 어둠은 그 앞에 물러난다.


일행은 그 빛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눈앞에 비치는 공간은 어둡지만, 마치 영묘처럼 장엄한 내실이다. 장엄했으나, 이제는 도굴당한 지 오래인 무덤처럼 보인다. 그림자가 드리운 높은 천장 아래, 그들의 발소리가 메아리친다.


세 번째 거대한 아치 너머, 무덤은 점점 작아진다. 아니, 뒤엉킨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리라. 사이킥 메아리가 느껴지는 공간은 이제 무언가 다른 것으로 화한다. 오래전에 사라진 비문과 부조가 흐릿하게 새겨진 대리석과 화강암 박편이 들어섰던 석벽은 이제 금속제 장갑판으로, 부식된 기둥으로 변화한다.


로켄은 단박에 알아본다. 복수하는 영혼. 그들은 그 안에 내내 있었고, 서서히 그 형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임을. 찢긴 천장 아래로 느슨한 고리에 매달린 배선들이 늘어진 채다. 그 잘려 나간 끄트머리가 쉿쉿대며 약한 불꽃을 토하는 중이다. 갑판, 그리고 바닥 아래 설치된 중력 그리드는 뒤틀리고 찢겨 헐거운 채다. 리벳은 곳곳에서 뽑히고 흩어져 있다. 로켄은 그렇게 널브러진 중력 그리드가 만들어낸 인공 중력이 불규칙한 웅덩이를 빚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 지점은 마치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요, 어느 지점은 모루처럼 붙들리는 느낌이다. 카오스의 힘이 쓰다듬은 이래 찢긴 격벽이, 파열되고 손상된 아다만티움과 플라스틸 조각이 보인다.


연기의 냄새가 난다. 불이 꺼진 뒤 나는 퀴퀴한 냄새, 죽음의 악취가 가득하다. 이곳은 납골당이며 매장지다. 멸종과 무덤이 거하는 곳일 따름이다. 이곳에서 희생의 제물이 바쳐졌고, 최근에는, 도살자 신의 제단에서 세 번 저주받아 마땅한 의식 속에서 야만적인 제물이 바쳐졌으리라.


무언가가 죽었다. 무언가 살지 말았어야 할 것이 살았다. 공기는 속삭임과 귀에 거슬리는 텅 빈 찬가로 가득하다. 사방에 공포의 악취가 진동한다.


그들은 나아간다. 황제의 굳건한 걸음은 흔들리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황제가 발하는 빛은 어둠 깊은 곳까지 드리운다.


그들 앞에 해골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불과 몇에 불과하다. 불타고 쪼개진 채 턱뼈를 잃은 해골들이다. 부서진 갑판 위, 산길의 낙엽처럼 쌓여 있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 헤아리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 마치 폐허를 빚어내듯 쌓이고 또 쌓인다. 바싹 말라붙은 해골들이 깔개라도 된 양 가득 깔린다. 그들의 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해골이 부서진다. 다음 순간, 해골은 능선을 이룬다. 그들이 오르기 시작하며, 해골들이 그 사면을 따라 흘러내린다.


해골의 언덕이다.


황제는 힘들이는 기색조차 없이 선두에 선다. 로켄과 카이칼투스, 리투가 그 뒤를 따른다. 느슨하고 불안정한 언덕을 따라 길을 찾는다. 그리고 일행은 저 위에서 드리운 어둑한 빛을 찾는다.


로켄이 그 수조차 헤아릴 수 없이 쌓인 해골은 길고 가파른 경사로를 이루어 다음 갑판의 깎아지른 끄트머리로 이어진다. 철망 안의 조명이 거칠고 푸른 빛을 발한다.


자외선 조명이다. 로켄은 자신의 가청범위 끄트머리에서 날카롭게 웅웅대는 소리를 듣는다. 비상 조명이다. 오염 제거 프로토콜이다. 감염으로 뒤덮인 기함이, 헛되이 스스로에 드리운 부패의 흔적을 지워 내려 애를 쓴다.


해골의 능선으로부터 일행이 갑판에 발을 디딘다. 벽은 부드러이 숨을 쉬고 있다. 복도는 마치 화성의 황량한 해저처럼, 혹은 메두사의 용암 지대처럼, 석양의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다. 거의 핏빛에 가까운 붉은 빛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살짝 스쳐 지나간다. 혹은, 나뭇잎 같은 무언가. 로켄은 그런 속임수를 무시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발 아래에서 바스락대는 소리처럼 속삭임이 다시 들려온다. 딱정벌레의 마른 날개짓처럼, 나방의 웅웅그럼치럼-


무엇을 속삭이는가? 거의 단어를 알아 들을 수 있을 지경이다.


이름.


단 하나의 이름이, 거듭 반복된다.


아버지.


저 앞에 잘려나간 복도는 출입구로 끝난다. 인골을 조각해 만들어진 문틀이다. 문틀을 넘어선 일행은 좁은 터널로 들어선다. 깎아지른 검은 벽으로 양쪽이 메워진다. 겨우 지나갈 정도의 너비다. 로켄은 높이 솟은 벽을 본다. 이것은 터널이 아니다. 우뚝 솟은 절벽 사이로 갈라진 좁은 협곡일 뿐. 일행은 전진한다.


그들이 발 디딘 대지는 축축하고 어두운 암석으로 빚어진 곳이다. 수천여 년에 이르는 발자국들이 쓸어내리며 닳게 한 것처럼 매끄럽다. 모두가 똑같이 두려운 순례의 걸음이었으리라. 30미터 후, 크레바스는 가늘어진다. 점점 더 벽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고 가까워진다. 로켄의 시선에 저 멀리 희미하게, 수직으로 솟은 빛이 보인다. 그 빛에 닿기 위해서는 억지로 몸을 옆으로 돌린 채 따라가야 한다.


저 위는 끝없이 공간이 펼쳐졌음에도 밀실 공포증이 느껴질 것 같다. 절벽의 벽이 일행의 갑주를 짓누르고 긁어댄다. 로켄은 이 절벽이 사람의 뼈로 빚어졌음을, 그리고 그 뼈들이 마치 다발처럼 뒤엉켜 있음을 본다. 그 위로 검고 기름진 점액이 흘러내린다.


옆으로 몇 발자국을 더 내딛자, 크레바스는 턱없이 좁아진다. 로켄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한다. 벽이 점점 조여드는 느낌이다. 마치 일행을 꽉 움켜쥔 채 뭉개버릴 것 같은 느낌.


넷 중 가장 거대한 형상인 황제가 길을 이끈다. 그에게는 인내가 없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 사이킥 메아리가 느껴지는 공간이 펼친 장애물도, 지금 그들이 들어선 이 성소에 이르는 길이 가지는 의식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도 따질 생각도 없다. 그래, 확실히 성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소, 은신처, 신의 둥지, 그는 정해져 있는 입장과 복종의 의례를 따를 생각이 추호도 없다.


걸음을 멈춘 그가 카이칼투스에게 검을 건넨다. 강대한 동행대원에게도 이 검은 무거운 짐이 된다. 황제는 점점 좁다랗게 변하는 더러운 벽에 손을 얹는다.


그의 손이 벽을 누른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로켄은 삐걱거리고 덜그럭거리는 소음을 듣는다. 저 높은 곳에서 바위 조각과 자갈, 먼지가 흘러내린다. 천천히 팔을 구부렸다가 뻗는 과정에 실린 황제의 초인적인 힘이 서서히 절벽을 밀어낸다.


이제 절벽의 간격은 충분히 넓어진다. 황제는 손을 내리고, 다시 검을 되찾고서 걸음을 재차 옮긴다.


일행은 개활지로 나선다. 루퍼칼의 궁정이다.


로켄은 일전에 이곳을 본 적이 없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다. 광활한 공간, 홈이 패여 장식된 기둥, 홍예굽 위에서 솟아나 천장을 지탱하는 거대한 흉곽 구조를 받치는 아치까지. 거울처럼 광택이 나는 돌바닥은 오직 황제가 발하는 황금빛 후광을 반사할 뿐이다. 저 규모는 광대하고 파멸적이다. 발을 들인 이를 초라하게 만드는, 인공의 무한이다. 로켄은 그 공포를, 저 억압적인 공간을, 죄어드는 광대함을 본다. 흑단과 고딕 양식으로 새겨진 대리석이 빚어낸 썩어가는 성당이다. 역겨운 핏빛 조명이 드리운, 망각의 썩어가는 신전.


로켄은 리투의 헐떡임을 듣는다.


로켄이 몸을 돌린 순간, 그는 천사를 목도한다.


빛나는 바알의 군주. 고개를 숙인 채, 왼쪽으로 돌아선 그가 저 먼 벽에 못 박힌 채 내걸려 있다. 마치 숭앙하고 무릎꿇어야 할 신성한 상징이나 유물처럼 매달려 있다. 팔과 날개는 쭉 뻗쳤고, 황금빛 무구들은 일그러지고 찢긴 채다. 그의 육신에는 너무 많은, 아니, 너무 많다는 말로도 부족할 숫자의 검은 가시들이 박혀 있다. 팔과 다리 아래의 검은 벽은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었고, 그 아래 고인 피의 웅덩이에 하얀 깃털들이 널브러진다.


”안돼.“


로켄이 중얼거린다.


”안돼.“

”왕이시여-!“


카이칼투스가 외친다. 로켄은 그의 말에서 처음으로 감정-실로 진정한 연민-을 느낀다. 프로콘술은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생귀니우스가 스스로의 죽음을 예견했음을, 그리고 말리고자 한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을 대면하려 나아갔음을 너무도 잘 안다. 그렇기에, 그는 제 주인의 슬픔을 감당할 각오를 한다.


하지만, 그 슬픔은 닥치지 않는다. 황제는 동행대원을 무시한다. 그가 벽에 걸린 시신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신성의 약속을 거부한 순간, 그는 감정의 핵심부를 함께 절제해 내지 않았던가. 이런 죄업이 그를 향한 무기가 되지 못하도록, 스스로의 감정을 마비시키지 않았던가.


+그를 내릴지어다.+


로켄과 카이칼투스는 서둘러 앞으로 나서 검은 쇠못을 뽑으려 한다.


리투는 황제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가 여기 있나이까?“


겁에 질린 목소리. 하지만 그가 인류의 주인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로부터 들릴 대답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 LE 2.+


호루스가 미소를 짓는다.


성당이 움직인다.


로켄과 카이칼투스가 돌아선다. 둘은 차갑게 식은 돌로부터, 그보다 더 차갑게 식은 육신으로부터 마지막 대못을 뽑아냈고, 천사의 휘청이는 육중한 육신을 최대한 부드러이 땅에 내리려 한다. 천사의 피가 둘 모두를 흠뻑 적신 채다. 그들은 미소를 듣는다. 돌이 갈리고 긁히는 소리가 아니다. 프랙탈 구조가 접히고 재정렬되며 흑요석 기둥과 검은 고딕 양식의 아치가 다시 세워지는 소리가 아니다. 만화경처럼 역회전하며 더욱 크고 고통스러운 파멸의 신전을 세우는, 끝없이 증폭되는 사이킥 메아리의 삐걱대고 깩깩대는 소리도 아니다.


그들은 미소를 듣는다.


그들은 다시 빚어지는 기둥들 사이로부터 솟아나는 것의 미소를 듣는다.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 같은 흉물이요, 지옥의 갑주를 두른 채 핏빛에 잠긴 존재다. 검은 뼈로 빚어진 꽃이 피어나고, 그 안에서 신성의 괴물이 궁정에 발을 디딘다.


”아버지.“


미소가 말한다.





각주 1 : 잉글랜드 중남부 일대에서 발견되는 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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