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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숲의 아들 라이온] 2부 : 지배 (10)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5.17 18: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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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함대는 속도를 늦추거나 항로를 바꾸지 않았다. 오직 잔혹한 직진 외에, 어떤 전략의 흔적도 없었다. 놈들은 지금 밤을 맞은 아발루스의 측면을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고, 우연인지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르세로 곧장 향하고 있었다. 행성의 수도는 정지 궤도에 고정된 두 기의 가우가멜라급 행성 요새가 지키고 있었지만, 저 정도 규모의 전력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날것의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다 음울했다. 하나는 위치를 지키고 놈들과 정면으로 격돌하는 것, 다른 하나는 놈들의 우월한 전력을 회피하고, 수도를 고스란히 내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행성 강습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사자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둘 다, 반역자들이 그렇게 멀리까지 나아가게 두면 어떤 꼴이 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놈들은 힘으로 보나 훈련 수준으로 보나 대성전이 한창이던 당시의 스페이스 마린 군단에 비견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놈들이 숭배하는 사악한 힘은 놈들이 그러하듯 무차별적인 파괴를 선사할 수 있는 존재였다. 선택지라는 개념은 사실상 환상이었고, 사자가 내릴 수 있는 결단은 하나뿐이었다.


함대는 세 개의 전구로 나뉘었다. 각각의 전구를 구성하는 함대는 두 척의 주력함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배후에는 행성 요새가 자리해 지원했다. 달의 기사는 도미네이터급 순양함 불굴의 의지와 함께 중군을 맡았다. 우익에는 두 척의 루나급 순양함 바린 여사송골매가, 그리고 좌익에는 딕테이터급 순양함 의로운 분노와 고딕급 순양함 반역자의 파멸이 중심을 잡았다. 우리는 양 측면에서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위해 근접해 오는 카오스 함대보다 더 넓게 진형을 짰고, 좌익과 우익을 비교적 전진시켜 배치했다. 진형의 폭을 위해 깊이를 희생한 셈이다. 반면 반역자들은 흡사 느슨한 구형의 블록처럼 소형 호위함들이 주력함을 감싼 형태였다. 우리 중군을 뚫어버리려 드는 추악한 주먹의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리안 함장.”


사자가 복스 송신을 보냈다.


“우리 존재를 똑똑히 전해라.”


우주전은 먼 거리를 두고도 교전이 이어질 수 있다. 함선들은 어뢰를 발사해 적의 움직임을 교란하고, 그와 동시에 적에게 치명타를 날릴 방법을 찾아 움직인다. 수백 마일에 이르는 사거리에서도 무장 포대들은 포격을 뿜어낼 수 있다. 적 함선이 오스펙스가 탐지한 점에 지나지 않는 순간에도, 초집중된 에너지 폭발을 쏟아낼 수도 있는 게 지금의 우주전 양상이다. 하지만, 일부는 그보다도 압도적인 사거리를 갖췄다.


불굴의 의지에 장비된 노바 캐논이 토염한 순간, 저 먼 곳에서 거대한 폭발의 섬광이 적 함대 한가운데에서 활짝 피어났다. 노바 캐논은 거의 아광속 수준으로 거대한 포탄을 쏘아내고, 여타의 재래식 병기를 압도하는 사거리를 자랑한다. 반역자들이 반격을 가하기까지 아직 몇 분의 여유가 있을 지경이었다.


“놈들은 어떻게든 근접전을 벌이려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사자가 상기했다.


“당장 반격하지 못하는 무능을 인정할 생각이 없겠지.”

“적 함대가 흩어지고 있습니다, 주군.”


내가 보고하는 이유는, 사자가 평범한 필멸자 승무원 대신 오스펙스 탐지를 맡겼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가 긁어모을 수 있는 강점이란 강점은 다 찾아낼 요량 같았다. 놈들의 함선을 가리키는 표식들은 점차 흩어지고 있었다. 아마 각 함장들이 노바 캐논의 폭발력을 거리를 벌릴 좋은 이유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불굴의 의지, 계속 발포하라!”


사자가 지시를 내렸다.


“저놈들이 최우선 목표물이다. 본격적 교전에 앞서, 가장 큰 적함에 최대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다른 놈들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가둔다. 그 영역에 뇌격을 집중하도록.”


사자는 홀로리스의 일부를 강조 표시해 함장들에게 전파했다. 순간 디스플레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사자가 조용히 욕설을 내뱉은 것은 나만 들은 것 같았다. 사자는 카오스의 지배로부터 탈환된 지 얼마 안 된 행성에서 기술적인 요소들이 고르지 못하고 반응이 느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비슷한 문제가 군함에서도 만연한 것은 별개 문제였다. 사자는 거기에 꽤나 실망감을 드러냈다. 나는 사자가 대성전 당시 무적의 이성이 보여주던, 임상적인 수준의 효율성을 그리워함을 알 수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거대한 탄두를 토해낼 때마다 달의 기사가 뒤흔들렸다. 우리는 적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을 향해 어뢰를 쏘아냈고, 그 덕분에 놈들은 뭉쳐서 노바 캐논에 얻어맞거나, 아니면 어뢰가 펼쳐낸 죽음의 길을 걷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카오스 함선에는 어뢰가 거의 배치되지 않는다. 대신 포대와 랜스를 집중적으로 배치할 뿐. 물론, 우리 포격으로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적의 다음 움직임을 우리 예측 내에 넣기 위한 공격이었다. 적을 특정한 사선으로 몰아넣으면 놈들이 다른 무기에 집중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고, 적의 공격에 비교적 덜 취약해질 수 있었다.


지배의 군주로 판독되는 퓨리어스급이 포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경고가 떠오름과 동시에 내가 보고를 올렸다.


“아직 거리가 멉니다!”


데리건 제독이 외쳤지만, 그 목소리에서 불확실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은 의지가 약하기에 품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파멸의 힘을 섬기는 자들이 끔찍한 경악을 부를 수 있음을 잘 아는 전사의 납득할 수 있는 경고였다.


“저 포격은 자기편 함선에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다시 보고했다. 센서가 숨길 수 없는 불길과 파편의 소나기를 포착했다. 그런 내분의 조짐은 분명 마음에 들었지만, 나는 제독과 마찬가지로 적에 대한 모든 것을 불신했다.


“저들이 아는 유일한 방법으로 전투에 질서를 찾으려 하고 있군.”


사자가 약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난폭한 공격을 밀어붙이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 휘하의 함선이 저희 노바 캐논의 목전으로 가는 것을 바란다는 말입니까?”


데리건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우리 적 중 일부는 사상자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제일 끔찍한 비겁으로 간주하더군. 즉각 처형되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으로 말이다.”


사자가 대답했다.


“아마 그런 종류의 놈들이 저 함대의 지휘를 맡은 모양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놈들이 겪어야 할 시련이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놈들에게 기회가 닥칠 거라 보는 게 좋다.”


불굴의 의지가 다시 포문에서 토염했다. 포격이 지배의 군주를 맞히지는 못했지만, 호위함 한 쌍이 그 압도적인 폭발에 휘말려 전장의 재가 되었다. 다음 포격은 고대의 사원으로 식별된 함선에 명중했다. 거대한 순양함은 무력화되지는 않았지만, 속도가 점점 느려지며 우현을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다시 일제 뇌격을 가한다, 상부와 하부를 고르게 공격하라.”


사자가 다시 지시를 내리며 홀로리스의 다른 부분에 강조 표식을 띄웠다. 어뢰를 포함해서, 함대가 갖춘 탄약은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뇌격을 퍼부을 적이 다 빠져나간다면, 어뢰를 아껴봐야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발루스 함대의 모든 함장들은 사자가 성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최고의 지휘관임에 의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명령대로 따랐다.


“적들이 전투기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나는 보고한 뒤 눈살을 찌푸리며 화면을 다시 읽었다.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화면을 보여주게.”


사자가 명령했고, 달의 기사에 설치된 촬영장비가 촬영 한계에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한 거친 이미지들이 전술 화면을 띄우고 있던 홀로리스에 나타나고,그 와중에 홀로리스가 깜빡거렸다. 나는 우주전 전문은 아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전함의 함체에 새겨진 그림자 같은 얼룩에서 무리를 이룬 점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저 얼룩이 전투기 발진을 위한 발사실 같았다. 충분히 정상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저기,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배의 용골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형체들의 집합을 가리켰다. 물론, 행성의 중력 우물로 들어서기 전까지 ‘위’나 ‘아래’의 개념은 자의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것들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더 확대할 수 있나?”


사자가 묻는다. 센서를 담당하는 소위가 오래된 기계를 조작해 조금 더 해상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내가 본 것의 윤곽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사진 피드가 확대되었다. 튀어나온 목에 이빨이 가득한 아가리, 날카로운 발톱과 들쭉날쭉한 날개가 저 먼 별빛과 질주하는 빛 속에서 황동의 색채를 담아 번득이는 것이 보였다.


“야수의 피 같으니.”


사자가 숨을 몰아쉬었다. 위기의 순간 튀어나오는 옛 칼리반 식의 욕설이었다.


“대체 저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악마의 기계입니다. 함선 하부를 타고 우주를 누비는 놈들이죠.”


내가 대꾸했다.


“제국에서는 저놈들을 헬드레이크라고 부릅니다.”

“도대체 이 천년기에 내가 살던 천년기보다 더 나은 점이 있기는 한 것이냐?”


사자가 중얼거렸다. 생체와 기계가 뒤섞인 저 기괴한 모습이, 워프가 품은 타락의 힘을 떠올리게 만들어 그를 흔든 것 같았다.


“저놈들, 최소한 죽기는 하겠지?”

“한 놈 격추시켰던 적이 있습니다.”


200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은색과 황동색이 뒤섞인, 비명을 지르며 불꽃과 연기의 구름 속에서 하늘을 누비던 놈들.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비명을 지르던 광경이 생생했다.


“함선 간 전투 상황은 아니었고, 행성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하지만 히드라 포대가 저놈들을 충분히 잘 때려잡더군요.”


카오스 함대의 최전선에 선 함선들이 전방에 장착된 주포 사거리로 들어오고 있었다. 놈들이 갖춘 전방 주포는 대개 랜스였다. 어뢰를 제외하면, 우리가 이 거리에서 적을 상대하는 데 쓸만한 무장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이제 적의 차례가 돌아왔다.


불굴의 의지가 다시 발포했다. 홀로리스가 피의 맹세라는 이름으로 식별해 낸 순양함이 폭발했다. 운이 좋았거나, 아니면 놈들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쉴드나 상부 구조물에 대한 정비 불량이었을 수 있다. 달의 기사는 선수의 랜스를 쏘아내며 전투에 가세했다. 적의 선도 부대를 마주하기 위해 전방으로 돌격하던 두어 척의 호위함들과 경순양함들이 거리를 좁히며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이곳이야말로 아발루스의 방어 병력들이 압도당하는 구간이었다. 포격에 노출된 보이드 쉴드가 병적인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전속 전진!”


사자가 복스를 통해 명령을 내렸고, 방어에 나섰던 함대는 공회전하던 플라스마 엔진을 작동시켰다. 엔진이 노호하며 생명을 되찾았다.


간단한 교리다. 적의 사거리가 우리를 압도하면, 거리를 좁혀서 교전한다. 카오스 함대 역시 불굴의 의지가 노바 캐논과 어뢰를 퍼부을 때 똑같이 행동했다. 전속을 기울여 근접하면, 압도당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전략 속에서 항해하던 반역자들의 함대와 달리, 사자는 철저하게 우리 함대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있었다. 불굴의 의지를 제외한 모든 주력함과 호위함들의 함교에는 적의 진형 틈새로 파고드는 항해 계획이 표시되었다.


공격적이고, 직접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일격이다. 근접전을 원하는 대군을 마주한 만큼, 우리 주력함들은 적에게 측면을 드러내고 포격을 퍼부어야 했다. 물론 측면을 노출하면서 더 많은 타격을 얻어맞았겠지만, 적이 근접한 순간 우리가 충분한 함선이 남아 있기만 했다면, 놈들에게 화력으로 맞대응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최소한, 놈들이 측면을 드러내고 포격을 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사자는 그 대신 우리에게 전진을 명했다. 나는 언제라도 보이드 쉴드가 망가진 뒤, 곧바로 맹렬한 기세로 다가들며 거대해지는 탄두라거나, 혹은 순간적으로 맹렬한 빛을 발하는 랜스 광선이 나를 죽이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오스펙스와 좌현 사이로 쉴 틈 없이 시야를 돌렸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전술 때문에, 적이 허를 찔린 것 같기도 했다. 이전까지 놈들이 익숙한 방어 전략은 거리를 벌린 채 소극적으로 대항하는 것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우리의 이러한 대응에 놈들은 대비하지 못했고, 포격을 가할 때마다 그 포격은 너무 먼 곳에 떨어졌다.


“전 승무원, 충격 대비!”


달의 기사의 강력한 엔진이 우리를 이끌고 나아갔고, 첫 카오스 함선을 직각으로 마주한 순간 데리건 제독이 외쳤다.


“함포, 랜스, 준비된 대로 자유 발포! 상부 랜스는 우현 방향으로 집중 포격!”


사자가 지시한 대로 상부와 하부를 고르게 날아든 뇌격 덕분에, 카오스 함대는 위아래로 널리 퍼지지 못하고 납작한 대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간 뇌격에 그대로 노출될 테니 말이다. 지금 우리는 적 함대의 중앙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 덕분에 양편에서 포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적함은 자기편에 대한 오사를 막기 위해 특정 측면에서만 발포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사격 통제가 혼란스러워졌다. 끔찍한 교환이 될 게 분명했던 상황의 위협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의로운 분노가 스타호크 폭격기 출격을 보고했습니다!”


복스 사관이 외쳤다. 이 작은 공격기는 자체 중량 이상의 폭장량을 적함에게 쏟아부을 수 있었고, 제대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상태의 순양함급이라면 확실히 위협적일 수 있는 함선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적에게 포격을 가할 각도로 접근하고 있었고, 바꿔 말하면, 적 역시 우리에게 포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포격을 가하기 시작한 순간, 달의 기사의 함체가 뒤흔들리며 속도가 느려졌다. 사자는 두 척의 슬로터급 순양함, 무자비대담 사이로 항행할 것을 지시했다. 놈들의 잔인한 무장이 우리 보이드 쉴드를 시험하기 시작했고, 곧 공허를 메우던 어둠이 섬광 속으로 흐릿해졌다. 우리 포대가 화염을 토할 때마다 적의 측면을 따라 폭발이 일었고, 놈들의 보이드 쉴드를 뚫고 함체를 찢어내려는 랜스 포격이 토해질 때마다 맥동하는 빛이 어둠을 삼켰다.


함선의 운영 체계가 포격이 닥쳐오고 있음을 알리는 경보를 울렸다. 데리건 제독은 명령을 짖어대며 업데이트된 상황을 계속 보고받기 위해 무자비하게 경고를 알리는 전자음을 꺼 버렸다. 동력 수준, 쉴드 상황, 남은 무장 상황까지…


“쉴드가 해제되었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급속 강하!”


사자가 외쳤다. 달의 기사 크기의 순양전함은 급기동을 위해 설계된 바는 없다. 하지만 승조원들은 사자의 존재감에 자극받아 맹렬한 노력을 기울였고, 선수가 아래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슬로터급 순양함들의 반응은 느렸다. 우리가 포격을 주고받던 평면에서 급속히 강하하는 동안, 날아든 놈들의 사격은 달의 기사 상부 위를 스치고 지나가 서로를 강타했다. 우리 우현에 있던 무자비는 우리 상부 랜스가 퍼부은 일격을 거듭 받아내며 우리 포격에 함체가 노출된 상태였고, 자매함의 맹렬한 포격이 쏟아지며 결국 보이드 쉴드가 꺼지고 말았다.


“좌현 전타, 우현 사격 유지!”


사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함선은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현에 설치된 포대들이 무자비의 복부를 마구 파헤쳤다. 그 과정에서 우리 좌현 무기들은 대담을 명중시킬 수 있는 각도를 놓쳤다. 대담은 지금 우리가 고물 너머로 사라지기 전에, 포격을 쏟아내기 위해 달의 기사를 추적하며 함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사자의 도박이 성공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다렸다.


돈틀리스급 경순양함 세 척이 보이드 쉴드가 꺼진 무자비의 약점을 파헤치며 달려들었다. 무자비는 돈틀리스급 한 척을 박살냈지만, 강력한 전방 랜스 포격에 난자당한 끝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하지만 그것은 사자가 심중에 둔 진짜 도박이 아니었다. 대담이 우리를 다시 조준한 순간, 놈은 폭발을 일으켜 난자당한 금속 파편과 산소 불길로 화했다.


“저기 있군.”


사자의 입가에는 포식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슬로터급 순양함의 잔해 너머, 좌현에서 불길을 뿜어낸 거대한 형상이 보였다. 지배의 군주였다. 혈욕에 사로잡힌 놈의 함장은, 사자가 치밀하게 설계한 공격 경로 때문에 양편에 배치한 제 함선들이 교전을 벌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격노했고, 폭력성에 사로잡힌 자기 뇌로 생각한 장애물을 간단히 제거해 버렸다.


“전하, 저 반역자가 제 군대를 배반하리라고 어떻게 예상하신 것입니까?”


데리건 제독이 물었다.


“자넨 앙그론을 만나 본 적이 없겠지, 그렇지 않나?”


사자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데리건의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혹은 아퀼라의 신호를 만들며 황제에게 구원을 기원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멍한 표정일 뿐이었다. 내가 돌아온 지 4세기가 흘렀는데, 가끔 잊고는 하는 사실이지만, 제국의 신민들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제 역사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전혀 새로운 문제가 우리를 덮친 판이다. 지배의 군주가 토해내는 압도적인 화력이 대담의 잔해를 뚫고 우리 함선을 할퀴기 시작한 것이다. 두 척의 슬로터급 순양함과의 교전에서도 간신히 버텼는데, 퓨리어스급 대순양함과의 정면 승부? 그러면 박멸당할지도 모른다.


“엔진 전속!”


사자의 지시에 따라 달의 기사는 최대 출력으로 엔진을 돌리기 시작했다. 교전 이탈을 위한 가속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쉴드 작동 중단!”


누군가가 소리쳤다. 새로운, 그리고 더 끈질긴 경보음과 함께였다. 잠시 후 벼락이 기사의 상부 구조를 꿰뚫는 것 같은 진동이 터졌다. 전속으로 전진하고 있던 달의 기사의 함체가 뒤흔들렸다.


“엔진 피격!”

“델타 구역와 엡실론 구역 피탄 및 파손! 3번 갑판과 4번 갑판…”


사자는 침묵을 지키는 채, 탁탁대는 홀로리스를 응시할 뿐이었다. 잠시 후, 달의 기사의 표식은 지배의 군주의 발사 범위를 가리키는 원뿔을 비켜 사라졌다. 최소한, 그 운명을 잠시 피해 카오스 함대의 후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카니지급이 전방에 있습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보고했다. 놈은 교전할 전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교전할 의사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고, 흡사 전투를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뢰 발사!”


데리건 제독이 즉시 반응했다.


“길을 열어라!”


우리 임무부대의 나머지 함선들도 우리와 함께였다. 아니, 남은 함선의 일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송골매의로운 분노를 잃었고, 의로운 분노에서 출격한 뒤 지금까지 반역자들의 동급기와 싸우고 있는 전투기와 폭격기를 위한 공간도 남지 않았다. 반역자의 파멸 역시 절뚝이며 합류하고 있었다. 판독에 따르면 근접전에서 랜스가 대활약을 한 모양이었다. 경순양함과 호위함 전력도 절반 가까이 상실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체급 이상으로 카오스 함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카오스 함대의 거의 반 가까이가 불타거나 동강난 채 흘러가고 있었다. 동력과 무장을 잃은 채 표류하는 놈들도 보였다.


“침로를 변경한다.”


사자가 지시를 내렸다.


“저 카니지급을 조준하도록.”


카오스 함대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제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이제 놈들은 우리 함대를 그대로 꿰뚫고 지나간 거나 마찬가지고, 마음만 먹으면 행성 공략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자의 지휘가 있다고는 해도, 그런 규모의 전력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불굴의 의지는 상급함들에게 양 측면을 내준 상황에서도 노바 캐논으로 영거리 사격을 뿜어내며 아이돌레이터급 약탈선 두 척을 쪼개 놓았다. 이제 불굴의 의지는 반역자들과 행성 사이에 남은 유일한 함선이었다. 이단자들의 첫 함선이 사거리에 든 순간 쌍둥이 행성 요새가 랜스 포탑에서 토염하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카오스 함대의 피해가 크다 해도 그 둘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오스 함대는 전진하지 않았다. 최소한, 전부가 그렇지는 않았다. 두 척의 헬브링어급이 행성 요새와 싸우기 위해 사거리를 채우려고 전진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함대는 교전에 들어서지 않았다. 대신, 지배의 군주의 지휘 아래 함대 전체가 선회하고 있었다.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놈의 코피를 터뜨렸으니, 무시할 수는 없겠지. 우리 함대를 완전히 박살내는 것 외에 저놈이 만족할 리가 없다. 놈은 아마 모든 함선을 파괴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 행성 요새들은 착륙선에게 고스란히 노출되어 교전하게 될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헬브링어급들은 궤도에 진입하기만 하면 파괴의 비를 행성에 내릴 수 있는 함선과 상륙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가우가멜라급 요새를 그들만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고, 카오스 함대의 쾌속 상륙을 위한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행성 요새의 끊임없는 포격 앞에 무너지는 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남은 어뢰를 모두 준비하라.”


사자가 남은 함선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달의 기사를 중심으로 대형을 갖추고-”


다음 순간, 오스펙스에 경고 문양이 떠올랐다. 나는 경고를 외침과 동시에 볼트 피스톨을 뽑아 들었다.


“텔레포트 섬광! 지배의 군주입니다!”


내가 아는 한, 우리는 지금 효과적인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한계 거리쯤에 있었다. 이 거리면 텔레포트를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어떤 결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카오스의 군세는 종종 제국이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워프를 쓰는 데 능숙했으니까. 게다가, 놈들의 지휘관은 피에 굶주렸음을 이미 드러내 보였다. 놈들이 성공 가능성이 낮다 해도, 그러한 전술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상 신호 위치는?”


사자가 쏘아붙였다. 그와 동시에 충성을 검집에서 뽑아 활성화하고선, 다른 손으로는 투구를 쓰고서 결속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달의 기사 함교의 주 승무원실의 공기가 뚜렷하게 뒤틀리며 이지러지고 있었다.


나는 권총을 조준하고서 그대로 복스에 대고 딱 두 단어를 외쳤다.


“함교! 지금!”


이지러지며 번쩍이던 공기 사이로, 어두운 형상이 빚어졌다. 호흡 한 번 사이로, 왜곡이 완전히 사라졌다. 핏빛 붉음과 황동의 빛이 번쩍이는 갑주를 두른, 여섯 명의 거대한 전사였다.


터미네이터들이었다.





눈아프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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