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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xi 핏빛 왕관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07 17: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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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xi 핏빛 왕관



마지막 충성스러운 인류의 아들들에게, 한 가닥 마지막 희망의 끈이 남는다.






목소리가 불타는 황궁 영역과 외궁의 항무지 너머로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거의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학살의 현장이 된 팔라틴의 지옥에서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마지막 남은 제국의 아들딸들은 반역자들의 압도적인 군세에 분단되고 포위당한 코호르트로서 흩어져 맞서 싸운다. 그들이 구축한 전선은 그들의 승산만큼이나 빠르게 무너진다. 그들 중 많은 이들에게 , 저 목소리는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가 된다.






끊겨 나간 영원의 문 너머에, 그 문을 지나 최후의 요새에, 어떤 성역도 없이 학살의 마지막 연회가 벌어진 생텀 임페리알리스에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한때 이곳은 불가침의 요새였고, 시간과 역사를 뛰어넘기 위해 지어진 빛나는 성채였으며, 환상과 인간의 계획 너머까지 버틸 수 있도록 지어진 곳이었다. 영원히 서 있어야 할 곳이었다. 제국의 탄생 이래, 테라의 아이들은 수많은 재앙과 위험을 상상했고, 경계해야 할 재앙들을 예견해 왔다. 하지만 이 공성전이 시작된 순간까지도, 그들은 제국의 근원 그 자체가 사라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제국은 견뎌내야만 했다. 제국은 버텨내야만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 제국은 무너진다. 안과 밖에서 동시에 공세가 펼쳐지고, 황금빛 전당과 솟아오른 곳들이 불탄다. 정복을 위해 발을 들인 파멸의 군세가 우글거린다. 이곳에서도 목소리는 메아리친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들은 죽기에도 너무 바쁘다.






테라 전체를 따라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워프의 아가리 속에 내던져지는 불타는 옥좌성 위에, 목소리가 번진다. 옥좌성의 물리적인 실체는 그 위에 드리운 천공의 힘이 펼친 연금술 속에 녹아내리고 있다. 불의 폭풍에 휩싸인 대륙들, 말라붙은 대양들, 폐허가 된 도시와 황무지가 된 영토 위로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그렇게, 최후의 순간까지 몰려드는 적과 맞서는 소수의 저항군에게 목소리가 닿는다. 대격변의 한 가운데에서 이 목소리를 들은 대부분은 이것이 희망찬 환상일 뿐이노라고, 혹은 카오스의 끝없는 거짓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목소리는 아주 약하다. 희망이 담겨 있지만, 그 너머에 구원도, 안식도, 다시 되찾을 승리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 목소리를 전하는 전령의 정체를 알아차리거나, 희망의 사절의 이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그것을 근위장의 궁극적 지휘로서, 테라의 수호자들에게 돈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메시지로 듣는다. 그가 돌과 강철로 쌓아낸 모든 성벽이 사라지고 무너진 상황에, 그들을 안전히 지킬 수 있도록 말로써 쌓은 마지막 벽으로 알 뿐이다.


저항에 대한 개념일 뿐, 그 이상은 없다.






하지만 함락당한 하스가르드의 파프니르 란과 슬픔을 가져오는 자 제폰 같은 소수에게는, 다시 들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희망 이상이다. 이미 오래전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이들에게, 이 희미한 희망은 그들의 남은 삶에서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 어느 소리보다도 더욱 큰 힘이 된다. 하스가르드 요새의 흔적까지도 쓸어버린 압도적인 물결에 맞서는 이들, 그리고 아직 그들과 함께하는 소수의 생존한 영혼들이 다시 힘을 얻고, 일격에 힘이 실린다. 누구도 이 희망이 실현되는 순간까지 스스로가 살아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목숨값을 최대한 받아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영감이 되는 위로일 뿐이다.






너덜너덜한 내궁의 광장의 사방에, 짖어대는 신성 모독자들과 폭도의 물결이 몰려든다. 거기 맞서는 막시무스 테인과 같은 이들에게 는 너무도 늦게 찾아온 비통하고 씁쓸한 부름이다.






아카무스, 그 이름의 두 번째 계승자이자 팔라틴의 재앙 속에서 야전 지휘관을 맡은 이의 이름이다. 헤게몬 전쟁 의회의 선임관들은 포위전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목이 졸린 채다. 그런 이들에게 저 목소리는 애태우는 최후의 약속이 된다. 지난 몇 시간 동안 확실한 패전의 예측을 토해내던 도표와 숙고기로 다시 시선을 돌리고, 그것을 어떤 기적으로든 뒤집을 마지막 계략을, 반격을, 어쩌면 도박을 찾게 만드는 유혹이 된다.






목소리의 근원이 된 적막한 검은 저택조차, 희망은 죽어가며 사산할 뿐이다. 대적 또한 그 부름을 듣고 근원을 향해 다가서고 있기에. 그 말에 담긴 희망에 자극된 카오스와 불생자의 군세가 야만적인 군기를 치켜든 채, 연기로 휩싸인 지평선 너머에서 나타나 끝없는 진흙을 가로지른다. 놈들은 아가테의 마지막 보루를 짓무르고 침묵시키려 한다. 아가테의 나침반은 더 이상 방향을 분간할 수 없지만, 놈들은 온 사방에서 몰려든다. 아가테는 병사들의 대열에 장전을 마치고 교전 준비를 마치라고 지시한다.






전쟁은 소음을 빚어낸다. 전쟁이 부르는 죽음의 노래에 모두의 귀가 먹먹해진다. 전쟁의 광기가 차지한 영토 전역에서, 지금 테라에 메아리치는 목소리는 대부분 붉은 찬가에 묻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혹은, 그 목소리는 무의 속삭임 속에서 길을 잃는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끝없이 울려 퍼지던 영원한 속삭임이 점점 거세진다. 불생자들의 속삭임은 분노로 백열한다. 그 무엇도, 어느 것도, 카오스의 관대한 선물이 외면당하거나 거부당하는 것만큼 그들을 분노케 하지 못한다. 카오스가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핏빛 왕관(Bloodlit Crown)이 거부되는 꼴을 지켜본 것 자체가 모욕이며, 그들 안에 증오의 불길을 불어넣는 일이다.


왕관이 무기로 남용되고, 관대함이 모욕당한 모습 속에서, 속삭임이 기성으로 바뀐다.






루퍼칼의 궁정을 두른 벽 위로 무의 폭풍이 격노를 토해낸다. 하지만 그 속에서, 황제는 그 목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너무 작다. 사막의 폭풍우 속모래알 하나요, 수조의 비명 중 하나의 중얼거림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류의 방패로는 황제가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힘을 북돋거나, 너덜너덜해진 육신을 다시 채울 수 없다.


하지만, 황제가 손에 핏빛 왕관을 쥔 채 일어서게 해 주는 데에는 충분하다. 처음 발견한 아들을 맹목적인 분노에 빠뜨리는 데에는 충분하다. 인류의 주인은 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루스의 승리를 빼앗을 수는 있다. 황제는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을 죽이도록 강요할 것이다. 오래된 넷의 웃음 짓는 꼭두각시 섭정으로서 아들의 곁에 영원히 서느니, 죽음으로서 모든 것을 잃는 편이 낫다.






당신은 다시 얼굴을 되돌린다. 당신의 두개골 앞은 완전히 파열하다시피 했고, 비틀려 열린 거나 마찬가지다. 쪼개진 과일이나, 껍질이 벗겨진 씨앗의 꼴이다. 당신은 잠시나마 당신 안에 거하던 힘이, 한때 당신이었던 쪼개진 인간의 껍질 사이로 쏟아지지 않았을지 두려워한다. 혹은, 더욱 끔찍하고 새로운 형상이 인간의 외피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지 두려워한다.


당신은 신체적 완결성을 유지한다. 경첩처럼 열린 두개골을 다시 제 자리로 밀어 넣고, 뼈를 다시 이어 붙이며, 근육과 살을 다시 빚어낸 뒤, 피부를 흠 없이 치유한다. 두피와 뺨을 가로지르던 진피 도관과 배관이 나무의 뿌리가 기어가듯 다시 자라난다. 수증기가 뿜어지는 쉿쉿대는 소리, 그리고 기계의 웅웅대는 소리와 함께 도관이 다시 연결된다.


당신은 스스로를 수리한다. 그리고, 아비에게 음흉한 공격을 당했음에도 정신적인 평정을 유지한다. 당신은 강하다. 당신은 호루스 루퍼칼이다. 당신은 아비의 타협 따위 없는 저항이 제법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비의 본모습 아니던가. 당신의 아비는 삶에서 단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고, 당신의 대부분은 그 강인함을 숭배하지 않았던가. 아비의 확고한 태도는, 당신이 아비를 증오하는 순간에조차도 아비를 위대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아비의 흔들리지 않는 힘이 바로 당신이 아비를 사랑하고 경외했던 이유다. 당신은 아비의 아들이기에, 그 성품과 특질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아비가 이렇게 강하다면, 당신 역시 이렇게 강하다.


그렇기에, 당신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굽히지도 꺾이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은 진정 위대한 왕을 보증하는 단호함과 인내를 유지할 것이다. 당신의 심중에 타오르는 살인적인 분노의 장작에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비를 갈기갈기 찢어 그 오만한 배신자의 피로 바다를 이루고 싶은 충동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쉬운 길이다. 너무 약한 길이기도 하다. 고작해야 어린이나 저지를 행동이다. 당신은 당신이 결국 꺾이는 순간 찾아올 아비의 만족을 거부할 것이다. 당신은 아비가 추구하는 피로스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허용치 않을 것이다. 당신은 아비가 바라는 죽음을 아비에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아비로 하여금, 당신이 정한 운명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당신이 일어선다.


아비는 제 검을 되찾은 뒤다. 아까의 기진한 모습은 가장이었던 듯싶다. 도움 없이 서 있는 데다, 모두 소모했다 여긴 힘과 영혼의 활력도 어느 정도 엿보인다. 아비의 손에는 핏빛 왕관이 쥐어진 채다. 아비가 클로로 왕관을 들어 올려 부순다. 당신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다른 왕관 정도는 만들 수 있소이다.”


당신이 아비에게 말한다.


“천 개라도 더 만들어 드리리다, 아비여. 당신이 너무 약해져 고개를 흔들어 이마에서 떨어뜨릴 수도 없을 지경까지, 거듭 만들어 드리겠소.”


당신은 아비에게 계속 말한다. 고통을 없애줄 수 있노라고. 계속 이것을 놓고 저항하면, 오직 고통이 기다릴 뿐이노라고. 아비는 절대 당신의 고통을 면하게 하지 않았기에, 당신은 아비의 고통을 얼마든지 면하게 해 줄 셈이다.


당신은 아비가 당신이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리라 생각한다고 여긴다.


정반대외다, 아비여. 나는 당신이 베푸는 고통의 대리인 아니었소. 모든 형제들처럼 나 역시 고통을 전하기 위해 태어났소이다. 아비여, 당신을 대신해 고통을 감당하고, 당신 대신 고통을 겪도록 우리가 빚어진 것 아니겠소. 우리 모두 이 사실을 깨달았소이다. 페러스처럼 너무 늦게 깨달은 이도 있소. 콘라드처럼 그 고통에 꺾인 자도 있소. 혹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가나 펄그림이 그러했듯 광기를 택한 자도 있소이다. 혹은, 페투라보나 로갈처럼 그 고통 속에서 한없이 무뎌진 이도 있소. 러스가 자가타이가 그러했듯, 그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여기고 도망쳤던 이들도 있지. 마그누스가 로부테가 그러했듯, 당신을 기쁘게 하면 그 고통을 덜어줄 거라 여기고 헛된 노력을 한 이들도 있소이다.


혹은, 가련하고 순진한 생귀니우스가 그랬듯이, 그 고통을 완전히 수용함으로서 당신의 고통을 덜 수 있으리라 여긴 이도 있었지.


“오직 나만이 당신에 맞섰소.”


당신이 아비에게 말한다.


“오직 나만이 돌이켜 거부했소. 이것은 아비가 아들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그러했지. 오직 나만이 당신을 정죄하고, 당신이 우리를 저주하며 내린 선물을 돌려줄 힘을 가졌소이다. 오직 나만이 당신의 가장 사나운 기대를 뛰어넘었으니, 나를 자랑스러워하셔야 할 것이외다.”


아비는 듣지 않는다. 아마도, 아버지로서 아들이 제 실패를 열거하는 꼴을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당신 또한 때가 되어 당신의 아들들이 제 불만을 토로할 때 역시 마찬가지가 될까? 물론 그럴 일은 없다.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전망을 온전히 포용하고 당신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지조차 않을 것이기에. 단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당신의 아들들은 전쟁의 장난감이요, 따분한 존재들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생각도 없이 오직 싸우도록 태어난 존재들이기에, 그들은 그저 당신의 명령을 따르고 어떤 중대한 의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직 당신이 만나지 못한 아들들 이야기다. 당신이 세상에 베풀어 내놓을, 프라이마크의 아들딸들이 빚어낼 만신전을 일컬음이다. 별이 꺼지는 순간까지 당신의 영역에 속한 곳들을 다스릴, 영원한 지혜와 무한한 힘을 지닌 불생자 아이들 말이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가 될 것이며, 당신의 유전자로부터 태어났기에 스스로를 당신의 아들이라 칭하는 상스러운 외골수 머저리들을 대신할 것이다. 당신의 지금 아들들에게 주어진 시대와 목적은 이제 끝났다. 이 시대 이후, 당신이 길러낸 아들들과 땅이 세울 왕조는 숭고한 경이가 될 것이다. 당신은 그 아들딸 모두를 사랑하리라. 또한, 그들이 불만을 토할 때 귀를 기울이리라. 그들은 당신과 동등한 존재이자 혈육일 것이며, 당신은 그들이 당신에게 토하는 모든 문제를 기꺼이 존중하리라.


물론 그러한 호소에 답할 필요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 절대로 말이다. 당신의 아이들 중 감히 당신에 맞설 자는 없을 것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절대 명분을 주지 않을 것이기에. 당신은 절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에. 당신은 완벽할 것이기에.


실수하지 마라. 그것이 당신의 아비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이요, 당신이 지킬 아비의 유일한 가르침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당신은 이제 아비에게 더 이상 회복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양보도 없이, 당신은 곧장 아비를 공격한다.


당신은 아비를 향해 곧장 나아가 마울을 휘두른다. 압도적인 힘이 실렸기에, 마울이 휘둘러지며 거의 충격파가 일 지경이다. 아비는 그 일격을 피하고 그대로 검을 찔러온다. 칼날이 당신의 굴절 역장을 쪼개고 복부 깊숙이 파고든다.


당신은 그러도록 둔다. 당신의 아비는 검을 비틀어 뽑아낸 뒤 발톱의 칼날을 피해낼 정도로 빠르게 뒤로 물러선다. 옆으로 물러선 당신의 아비가 검을 휘둘러 두 번째로 굴절 역장을 쪼개고 당신의 엉덩이 바로 위, 상체에 찔러 넣는다.


당신은 그러도록 둔다.


다시 칼날을 뽑아낸 당신의 아비가 당신을 두고 선회한다. 견제 공격이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이어진다. 다음 순간, 당신의 상체를 꿰뚫는 절묘한 일격이 찔러든다.


당신은 그러도록 둔다.


그리고 당신은 아비가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안에 워프의 힘을 드리운다. 당신의 아비는 스스로가 자랑해 온 그 유명한 지혜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으니, 아비를 이해시켜야 한다. 당신의 힘은 무한하고, 당신의 아비가 쥔 힘은 유한하다. 당신의 아비가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난다 한들, 또다시 절망적인 우회로를 뚫어내려 한들, 당신의 아비는 그저 필연적인 결과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당신의 아비는 필멸의 기준에서 볼 때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이며, 워프의 힘을 자유로이 다루는 존재이다. 아비의 평생에 있어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당신의 아비가 쥔 위대한 힘은 유한하다. 그리고 당신은 무한한 워프에 속한 무한한 존재이다. 당신의 아비가 당신에게 아무리 많은 상처를 새기고 심각한 부상을 입히더라도, 당신의 힘은 절대 고갈되지도, 새어 나가지도 않는다. 당신은 죽일 수 없는 존재다.


이 싸움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났다. 불필요한 싸움이었다. 당신은 단지 이 싸움을 아비가 필요로 한다고 여겼기에 허락했을 뿐이다. 그저 한바탕 공연에 불과했다. 모두가 당신이 새로이 건국할 국가에 대한 시연이요, 당신의 지배를 축성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식에 불과했다. 당신은 아비가 완전히 무력해지기까지, 그리고 당신의 의지에 무릎 꿇기까지, 아비를 쇠약하기 위한 싸움을 벌일 뿐이다.


당신과 아비는 서로를 바라보며 선회한다. 다시 아비가 당신을 거듭 공격한다. 천 번 검격이 찔러 들고, 천 번 클로가 긁어댄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당신의 피로 바닥에 얼룩을 남긴다.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공격이 닿도록 둔다.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당신은 모든 상처를 내버려 둔다. 아비가 두 번 세 번 공격해 올 때마다 마울이 한 번, 발톱이 한 번 휘둘러질 뿐이다. 일부는 당신의 아비를 후려치지만, 대부분은 아비가 피해내고 후퇴하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다. 당신은 아비의 힘을, 체력을, 의지를 깎아내는 중이다. 아비가 느려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자신의 일격이 아비를 죽일 지경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오늘 죽음은 없다. 오늘 아비를 위해 베풀 죽음은 없다. 당신이 아비를 가두기 위해 만든 운명에서, 고통스러운 망각의 자유로 탈출할 길도 없다.


여전히 당신과 아비는 궁정을 강철의 고리를 그리며 돈다. 아비는 숨 없이 헐떡이며 전력을 기울인다. 이 싸움은 순수한 의식이요, 순수한 장관이다. 아비의 의지를 찢어내 신들에게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의례일 따름이다. 이미 천 년을 지속했으며, 필요하다면 천 년, 다음 만 년, 다음 백만 년 더 지속될 것이다. 당신에게 시간은 넘친다.


아비의 어깨 위에, 아비의 피로가 납으로 만든 망토처럼 드리운다. 아비의 어깨가 굽어지고, 점점 걸음이 끌린다. 아비의 눈에서 고통이 읽힌다. 기진한 기색이 굳어지고 짙어진다. 당신의 아비는 모든 것을 시도했건만, 소용이 없다. 당신은 아비가 당신에게 입힌 상처를, 그리고 그 상처를 아비가 얼마나 무심히 대했는지, 아비에게 보이고 있다. 당신은 아비가 당신이 품은 준엄한 불멸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 본질은 아비의 것과 다르다. 아비의 불멸성은 종말을 맞을 수 있지만, 당신의 그것은 그럴 수 없다.


당신은 분노를 통제한다. 육체적 고통은 일시적이기에 물리친다. 원한은 아무 목적도 없기에 놓아 보낸다. 당신의 아비가 처음 여기 이른 순간 당신의 심중은 고통스러웠고, 마치 당신의 아비가 당신을 꿰뚫어 보는 듯 느끼기까지 했다. 당신의 아비가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당신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그 너머로 나아간 뒤다. 당신은 이 시간 내내 성숙했으며, 아비와 벌인 결투의 단계를 거치며 새로운 당신의 본질에 대해 익히고 성장했다. 당신은 이제 침착하고 낙관적이다. 이제 당신은 아비가 당신의 궁정에 이른 순간 당신을 무시한 이유가 겁이 났기 때문임을 이해한다. 당신의 아비는 달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몰랐기에 당신을 고통스럽게 했다. 당신의 아비는 당신이 더 이상 당신이 아니었기에 인정하지 않았으며, 인지하지도 못했다. 당신의 아비는 당신이 아비가 경쟁조차 할 수 없는 무한의 힘을 품은 존재가 되었음을 보았고, 그래서 사소한 맹공을 가했을 뿐이다. 절대자의 손에 궁지에 몰린 겁에 질린 영혼과 다를 바가 없다.


당신은 이제 그 단계를 지나친 지 오래다.


당신은 당신에게 바쳐진 신성과 하나가 되었고, 아비는 그 앞에 패했다.


당신의 아비가 품은 힘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이, 아비가 당신에게 자비를 구걸할 때까지 그 힘을 갈아내어 뽑아내고 있음이 중요할 뿐이다.


아비는 갑판을 녹여 바닥 전체를 날려버리고서 당신을 함선의 아래로 떨어뜨리려 한다. 하지만 당신은 추락하지 않는다. 당신을 지금 지탱하는 공기부터, 그리고 당신의 분노를 바라지 않는 중력까지,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의지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신력을 기울여 그대로 다섯 옥좌 중 하나를 그 기초에서 뽑아낸다. 당신이 천사를 위해 준비한 옥좌다. 더 이상 천사는 그 옥좌를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당신은 그 옥좌를 아비에게 던진다.


아비의 쇠약한 의지력이 부푼다. 그대로 아비의 검이 그 의지력에 휩싸인다. 그대로 아비가 휘두른 광란의 일격이 옥좌를 백만의 파편으로 부숴버린다. 당신은 콘스탄틴과 로갈을 위한 옥좌도 뽑아낸다. 옥좌는 두 개면 충분할 것이기에, 그 둘에게 돌아갈 옥좌도 필요가 없다.


당신의 아비는 마지막 남은 의지의 파편으로 콘스탄틴을 위한 옥좌가 자신에게 부딪히기 전에 공중에서 소멸시킨다.


그리고 로갈의 옥좌를 상대할 어떤 수단도 남지 않는다.


그대로 아비의 형상이, 로갈의 화강암 옥좌 덩어리 아래 사라진다. 그대로 옥좌가 갑판 위를 짓이기며 내려앉는다.


1톤도 넘는 옥좌의 잔해가 아비의 위로 마치 돌무덤처럼 쌓인다. 당신이 발한 정신력이 그 파편들을 날려 보내지만, 아비는 움직이지 않는다. 먼지를 뒤집어쓴 당신의 아비는 마치 무덤의 덮개 위에 놓인 왕의 조상처럼 그대로 쓰러져 있을 뿐이다. 아비는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당신은 잠시 멈춰 선 뒤 새로운 왕관을 손에서 빚어낸다. 발톱의 칼날 사이로 핏빛의 실이 엉기고 엮인다. 당신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 순간, 당신이 나아가는 길에서 현실이 찢기고 열린다. 두 남자가, 마치 양막을 찢고 갓 태어난 어린 양처럼 물질의 찢긴 틈으로 미끄러져 나온다.


지나치게 늦은 기이한 존재들이다. 둘 다, 그저 인간일 뿐이다. 비물질계의 증기가 자욱하다. 녹아내린 간질성 얼음으로 흠뻑 젖은 채다. 마치 시간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나아가기라도 한 듯, 천공의 장거리 여정이 풍기는 악취로 뒤덮인 형상들이다.


당신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러 온 존재들일까? 긴 여정 끝에 갑작스럽게 도착한 여파인지, 저들은 멍하니 방향감각을 잃은 채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두 형상이 당신을 올려다본다. 인식의 순간이다.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 찰나의 충격이 닥치는 순간.


당신은 저들의 눈에서 갑작스럽고도 철저한 공포를 본다.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정당한 것임을 안다. 저들은 항해의 과정에서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엄청난 판단의 착오를 일으켰다.


당신은 저들을 가엾게 여긴다.




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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