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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파묻힌 단검 - 막간 VI (2)

톨루엔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11 03: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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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병들은 모든 것을 잃을 거란 절박감에 맞서 싸워왔다. 한때 모타리온은 골렘 병사들은 인간의 감정을 느낄 능력이 없으며, 해부되어 다시 엮어지는 과정 도중 공포와 불안의 개념 자제가 적출된다고 생각해왔으나, 자신의 손으로 너무나 많은 애처로운 짐승들을 죽여보니 그렇지 않음을 깨달아 버렸다. 피와 육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전의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공포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이 비참한 존재들에게 남은 건 공포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짐승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으니. 한순간의 부주의가, 단 1초라도 오버로드의 병사들에게 연민 비슷한 감정이라도 품는다면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다. 골렘들은 짙은 안개를 헤쳐 나와 칼과 총을 휘두르고, 분노에 찬 비명을 질러대면서 모타리온과 데스 가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전쟁 첫날부터 그랬듯이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만이 있을 뿐.


모타리온은 묵직한 투구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번득이는 금속빛 호를 그리며 낫을 휘두르자, 초승달 칼날이 불결한 피와 내장으로 뒤덮였다. 그의 뒤편에 드리운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체 길을 따라간다면 유독한 산기슭에서 공기가 맑은 계곡까지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주변의 풍경은 모타리온과 그의 정예 전사들이 벌인 도살장이 펼쳐졌으며, 데스 가드 분대를 거의 퇴각시킬 뻔할 정도로 교묘한 매복을 했던 살육 짐승들이 화강암 협곡에 찢겨 널브러져 김을 피워내고 있었다.


모타리온은 불굴의 의지와 무자비한 인내로 살아남았다. 오른편에는 티폰, 라스크, 로쓸이. 왼편에는 무나우, 하즈니르, 아락스, 쓰디쓴 피가 부러지지 않는 화살 진형을 이뤄 적의 마지막 요새를 향해 맹렬히 전진했다.


인간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아래에서는 순과 모라그가 이끄는 데스 가드 대군이 골렘과 서로 엮어진 괴물들을 베어 넘기며 네카레의 마지막 공격대를 학살하고 있었다. 모타리온과 정예 병사들의 뒤를 따를 수 없다 하더라도 최후의 전투에서 임무를 다 하리라.


모타리온은 등골이라 불리는 치명적인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맥을 따라 신속하고 거친 돌격으로 고위 오버로드의 방어망을 무너트리기 위해 몇 달 동안 계획을 세웠었다. 네카레의 모든 공급망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 살점 작업장은 잿더미가 되었고, 제대로 서있는 창고도 없었다. 외곽 요새 성채는 화학 폭탄으로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등골로 통하는 동굴과 연결 터널도 봉쇄되었다.


다른 오버로드들은 모두 죽었다. 한 명씩, 그중 다수가 모타리온의 손에 처형당했다. 그 악귀들이 죽을 때마다 짓던 충격과 혼란이 담긴 표정들, 수 세대에 걸쳐 사냥했던 열등민들이 이제 와서 자신들을 멸하려 폭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듯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이었다.


모타리온은 피폐한 바르바루스의 운명을 바꾼 선구자며, 그의 통솔력과 오버로드에 맞서는 불굴의 의지는 다른 모든 이들이 따르는 등대가 되었다.


'당신은 저희의 앞길을 비춰주는 등불입니다.' 라스크가 황홀에 차 이 말을 했던 때가 있었다. '이 빛으로 이 세계를 깨끗이 불태웁시다.'


이 이상을 향한 길에 마지막 장애물만이 남아있다. 바로 저 너머 가장 치명적인 암벽 위 독구름 틈으로 보이는 네카레의 검은 성체가. 모든 오버로드 요새 중 가장 삼엄하고도 무기로 가득 찬 곳이 흑마법으로 뒤틀린 공기 속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저 위에서 모타리온의 양아버지가 자신의 골렘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양아들이 성문으로 와서 도전하기를 조용히 부추기고 있었다.


“곧 있으면,” 모타리온은 이를 갈며 눈앞에 있는 적 떼로 시선을 돌렸다. 손목에 칼날을 박은 괴물 무리가 주절대며 달려들자, 사신은 진창에 다리를 박고 손짓으로 괴물들을 도발했다. 소용돌이치며 전장을 난무하는 낫이 휩쓸자 죽음의 침묵만이 남았다.


투구의 피 묻은 바이저 너머로 중갑을 두른 하즈니르가 다가와 천둥총의 총신을 열어 신속히 장전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적도의 해방 구역 출신인 하즈니르는 한때 바르바루스의 얕고 기름진 바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거대한 갑각류를 잡으려 트롤선을 끌던 어부였다. 그 시절의 흔적이었던 견갑에 둘러진 날카로운 그물은 전투를 위한 새로운 무기로 다시 태어났다.


다른 정예들과 마찬가지로 하즈니르는 밀폐된 갑옷을 입고도 완벽하게 훈련된 전사들처럼 민첩하고 담대하게 움직였다. 전사들 모두 모타리온의 명령을 따라 전쟁 낫을 들고 있었지만, 각자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나 보조 무기 또한 지니고 있었다. 묵직한 강철 군홧발로 산을 오르며, 태엽식 장치로 가동하는 등에 달린 공기주머니는 전사들의 생존을 위하여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여과 장비들은 독성 안개를 최대한 걸러내면서 호흡 가능한 공기 한 줌이라도 추출해냈다. 모타리온은 정예 전사들을 낮은 고도에서 수개월 동안 치명적인 구름에 강제로 노출시켜 저항력과 체력을 키우는 훈련을 했지만, 그동안 산 중턱을 넘어본 임무를 치렀던 적이 없었다. 더욱 높은 고도에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사들이 착용한 장비는 피난지의 포지 타이런트들이 만든 최신 개선판이며, 이 모양과 형태는 이 전쟁의 마지막 단계의 상징이 되었다. 이틀 전, 모타리온은 마을을 탈환하고 헬러스 컷 폐허에 들어섰을 때 이 갑옷을 입고 있었다. 시민들과 군대를 뒤따라오던 민간인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해방된 마을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그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낮은 구름에 반사되어 울려 퍼졌었다.


헬러스 컷의 전술적 가치는 미미하지만, 모타리온의 마음에 퍼지는 감회는 각별했었다. 이 작은 농경 정착촌은 네카레와 추악한 오버로드 밑에서 살아가던 노예 생활을 깨부수고 인간으로 돌아온 곳이니 말이다.


그 순간이 어제 일처럼 완벽하게 기억난다. 협곡으로 걸어 들어섰을 때 진실을 깨우친 느낌, 생전 처음으로 마셔본 독기 없는 공기의 맛, 웃음과 노래가 섞인 인간의 목소리, 고기 굽는 냄새와 땀, 김빠진 맥주 냄새까지. 그의 완벽한 기억력이 이 모든 걸 되살려냈다. 네카레는 협곡의 열등민들은 연약한 사냥감일 뿐이라고 지겨울 정도로 말해왔지만, 그날 모타리온은 자신의 진정한 종족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자신에게 깃든 강박인듯, 설명할 수 없는 동기에 이끌려 이들을 보자마자 미묘한 의무감이 생겼다. 자신은 전사며, 인간을 지키기 위하여 이곳에 당도했음을. 다른 모든 것을 의심할지라도 이것만은 절대 의심치 않으리라.


헬러스 컷으로 돌아간다는 건 다가오는 최후라는 뜻이기도 했다. 모두가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을 알고 있으니. 네카레의 성이 무너져 내리면서 오버로드의 불멸의 신화가 영원히 파괴되거나, 전투가 끝없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될 상황이다.


후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 모타리온은 양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 지난 며칠 동안 피난지에서 온 전령들이 불길한 소문들을 전해주고 있다. 남부 정착촌 사람들은 밤하늘의 두터운 구름 위로 기이한 불빛을 보았다고 말하며, 거대한 금속 매처럼 생긴 이상한 비행 기계를 목격했다는 특히나 걱정스러운 보고도 있었다고 한다. 티폰은 멍청한 놈들과 술 취한 사람들의 헛소리라며 일축했지만, 모타리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네카레가 바르바루스에 숨겨둔 무기의 징후라면 고위 오버로드를 죽이는 일이 더욱 시급해진다.


하즈니르의 총이 굉음을 내자, 또 다른 골렘들이 검붉은 유독 물질을 뿌려대며 쓰러졌다. 공격 직후 찾아온 잠깐의 고요 속에서,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투구 이마에 대며 지휘관에게 경례를 했다. “놈들이 계속 옵니다. 계속 죽이겠습니다.”


쓰디쓴 피의 거친 웃음과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방독 마스크에 묻혔다. “탄약 좀 아껴라, 비린내 나는 놈아.”


“다 떨어지더라도 말야,” 하즈니르는 어깨를 으쓱이며 총을 거꾸로 움켜쥐었다. “좋은 몽둥이가 있다고, 스코르발.”


“집중.” 모타리온의 질책이 대화를 끊었다. 지금은 농담이나 할 때가 아니다. 이 진군은 가장 중대한 전투의 전초전일 뿐이며,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사신이여,” 티폰이 외쳤다. 안개가 걷히자 익숙한 산길에서 로쓸과 라스크와 함께 앞서 나갔던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걸 봐. 모든 게 시작된 곳으로 되돌아왔군!”


모타리온은 친우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잠시 동안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이유를 깨달았다. 저번에 왔을 때 당당하게 서 있던 요새탑이 지금은 거대한 파괴력에 의해 검게 타버린 돌무더기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지?” 로쓸이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산길에 녹슨 증기궤도차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버려진 것 같군요.”


“그랬었지.” 티폰이 말했다.


모타리온은 허리를 숙여 부서진 벽돌 조각을 집어 들었다. “여기가 내 집이요, 감옥이었다.” 그는 불탄 책의 재가 뒤섞인 검은 잔해를 뒤적이며 스테인드 글라스, 회반죽과 벽돌 조각을 꺼내보다가, 건틀릿의 손가락에 단단한 금속이 느껴지자 물건을 파헤쳐보았다.


나온 건 단검으로 급조한 녹슨 놋쇠 조각이었다. 모타리온은 조각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다, 이 단검을 처음 봤던 날을 기억해냈다.


어둡고 공포스러웠던 밤에, 오버로드에게 굴복하느니 죽음을 택한 절박한 청년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모타리온이 일어서서 외쳤다. “칼라스! 여기 네 물건이군.”


티폰은 모타리온이 던진 낡은 무기를 잡고 조용히 서서 살펴보았다. 부리가 달린 투구로 얼굴을 가린 티폰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볼 수 있는 거라고는 티폰이 조잡한 칼날을 허리춤의 장비 주머니에 넣고, 건틀릿에 묻은 검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뿐이었다. “내가 미신이나 조짐을 믿는 사람이었다면 의미가 있었겠지.”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뜻이네.” 모타리온이 단언했다.


“티폰이 말한대로 모든 게 시작된 곳이군요.” 로쓸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러나 모타리온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정신 속에 잠들어 있던 어린 시절에 가장 혹독했던 기억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하고 거슬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톱니가 서로 부딪히는 듯 오르내리는 날카로운 웃음소리, 아니면 시체를 파먹는 벌레의 둔탁한 날갯짓 소리가.


그가 고개를 들자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의 자극이 온몸을 휩쓸었다. 모타리온은 가시 돋친 불덩어리들이 하늘에서 가파르고 우뚝 솟은 호를 그리는 걸 보자마자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모타리온의 귀를 울려댔다. 불타는 혜성 수십 개가 저 높은 바위산으로부터, 머나먼 네카레의 성벽을 따라 늘어선 증기 투석기에서 발사되고 있었다.


“흩어져!” 그가 외치며 자신이 살던 폐허로부터 뛰쳐나갔다. 이 순간 모타리온의 옛 요새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졌다. 몇 년 전 반란을 일으킨 직후, 네카레가 저지른 첫 번째 조치가 이 요새를 폭격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첫 포격이 땅에 부딪히자 불타는 타르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지옥의 풍경으로 변해버렸다. 믿기지 않게도 폭발물 안에 무언가가 있듯, 갈라진 불덩어리 속에서 기어나오는 인간 같은 형체를 보았다. 이 형체들 역시 불에 휩싸여 가장 가까운 상대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그 상대는 안타깝게도 하즈니르였다. 전사를 덮쳐든 불타는 인간들이 검게 타들어간 손톱으로 갑주를 찢어 갈랐다. 쓰디쓴 피가 기계 손으로 신속히 나팔총을 발사해 전우에게 붙은 것들을 터트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즈니르가 장비에 붙은 불을 끄려고 진흙탕에서 굴러보며 헛되이 갑주를 때려보았지만, 손톱에 뚫린 공기에서 공기가 새어나가고 있었다. 


모타리온은 불타는 인간 두 명을 연달아 베어냈다. 연기와 안개조차 그의 전투낫이 부르는 애도가를 묻을 수 없으며, 금단의 과학으로 되살린 적을 철저히 소멸시키리라. 내리 그은 적의 시체는 재먼지로 흩어져 사라졌다.


“폭격이다!” 아락스의 외침은 그대로 유언이 되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 이끌은듯, 새로운 불덩어리가 그를 덮쳐와 갑옷마저 진창을 태운 검은 자국으로 전락했다.


하늘에서 더욱 많은 연기 자국이 쏟아지자, 모타리온은 뜨거운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 속에서 양아버지의 조롱이 들린다고 확신했다.


그는 앞으로 몸을 던지며 소리쳤다. “티폰! 스코르발! 내 쪽으로!” 그는 안개 속, 높은 암벽으로 이어지는 굽이친 길을 향해 낫을 겨눴다. “신속히 나아간다. 맞히지 못한다면 우릴 죽일 수도 없다!” 모타리온의 머릿 속에서는 이미 진격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네카레가 투석기를 조준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던, 발사 지연은 불가피했다. 데스 가드가 빠르게 움직인다면 포격을 피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앞길을 막아 선 티폰을 본 순간, 오랜 친구의 눈빛만으로도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었다.


“안돼.” 모타리온의 부관이 반박했다. “형제여, 후퇴해야 해!”


후퇴를 제안하자 모타리온의 분노가 치솟았다. “절대 안돼!” 그는 빗발치는 포탄을 피하며 외쳤다 “거의 다 왔는데 지금은 안된다고!”


“멍청한 새끼도 아니면서 왜 그래!” 티폰이 되받아쳤다. “정신 차려, 모타리온! 네카레는 네가 화를 내길 기다리고 있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길 바라면서!” 전사는 주변에 펼쳐진 참화를 가리켰다. “아락스는 죽었어! 하즈니르는 이 산을 내려가기도 전에 숨막혀 죽을테고! 저 위로 올라가기도 전에 다 죽을거라고!” 


모타리온은 뒤늦게 자신의 호흡이 거칠고 가빠지는 것을 깨달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갑주는 충격에 깨져 내복도 찢겨 나갔었다.


“안돼.” 그는 불타는 붉은 혜성이 쏟아지는 도중에도 이 말을 내뱉었다. 굉음이 모타리온의 귓전을 울리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보고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전투 낫을 휘둘렀다. 흉성이 내리찍기 직전에 묵직한 자루에 달린 칼날이 맞닿았다.


불타는 포탄 안에 있던 생명체는 충격으로 부글대는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지만, 모타리온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격렬한 폭발음에 순간 귀가 막힌데다, 충격으로 검은 땅을 가로질러 산길 비탈 아래로 인형처럼 내던져졌다. 모타리온의 후드는 찢어지고,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목이 부러졌을 폭발의 충격에 의해 투구도 뜯겨나갔다.


그는 잿빛 이끼로 뒤덮인 갈라진 돌무더기 사이로 추락해 미끄러지다, 겨우 멈추고는 재빨리 몸을 비틀며 자세를 추슬렀다.


마스크가 벗겨지자 폐를 가득 메우는 이 독안개. 그는 구역감을 억누르며 버텼다. 그 운명적인 밤 이후로 이곳의 공기를 여과 없이 마셔본 적이 없었으니, 이 순수한 독성에 속이 뒤집어진다.


이 느낌을 떨쳐내자 티폰이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바로 뒤에는 쓰디쓴 피와 라스크가 숨을 헐떡이는 하즈니르를 옮기고, 로쓸과 다른 생존자들도 뒤따라왔다. 모두 갑주가 망가지고 부상을 입은 상태다.


“더 이상 못 가.” 티폰은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후퇴하면 재정비를 하고 더 많은 전사를 데려올 수 있다고...”


모타리온은 혹여 자신의 분노를 드러낼까 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전사들의 눈을 피해 등을 돌린 채 아래 협곡의 맑은 하늘을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존재를 이루는 온 세포가 분노로 고요하게 들끓으며, 그의 마음 속에서 상충하는 목소리가 격노를 더욱더 키웠다. 모타리온은 복수심과 강박적인 의무 사이에서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티폰과 다른 이들을 원증하고, 오버로드들을 혐오하는 만큼이나 열등민들에게 증오심이 느껴졌다. 이들의 나약함, 가르쳐주기 전까지 싸울 수도 없는데다, 독안개에 닿기만 해도 무너져 내리는 연약한 육신. 이 모든 게 원망스럽기만 했다.


어째서 저들은 사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을까? 그 어떤 바르바루스인보다 강인하고도 빠른 육신과, 비상한 두뇌는 모타리온에게 저주가 되었다. 다른 자들은 언제나 그를 끌어내리며 걸림돌이 되는데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갈망했던 네카레의 죽음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충동이 분노와 좌절감에 밀려들었다. '나는 저들과 달라.' 그가 되뇌었다. '나는 자연의 실수도, 통제를 벗어난 오버로드의 실험체도 아니야.' 모타리온은 낮이 지나면 밤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처럼 자신의 존재의의를 알고 있었다. 운명이 자신을 빚어냈다면, 목적은 단 한가지뿐이다.


'나는 전쟁을 위한 무기로다.' 이것만이 자신의 처지에 맞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무슨 전쟁을 위한걸까?'


모타리온은 이 의심과 고지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네카레의 모습에 시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저지대로 군홧발을 내디딜 때마다 오버로드의 조소가 허공을 물어뜯으며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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