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핫산] [23권 스포, 의역] 글렌 vs 저티스 4부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0.29 19:05:36
조회 764 추천 11 댓글 17
														

때는 이전으로 돌아간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끝없는 싸움이 한창인 와중, 남루스가 흘린 말에 시스티나 일행은 귀를 의심했다.



"있다고요?!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거예요?!"


"어쩔 수 없었어. 계획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계책이었단 말이야! 정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애초에 글렌이 저런 지고의 영역에 이르는 건 예상 밖이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전혀,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거야!"



남루스가 빨갛게 달아오르며 화를 낸다.



"둘 다! 싸울때가 아니야!"


"응! 싸움은, 안좋아!"



전투를 멈추지 않은 채, 루미아와 리엘이 말린다.



"칫······ 그래서요? 그 계책이란 도대체, 뭔데요?"



시스티나가 바람을 조종하여, 다가오는 천사들을 밀어내면서 남루스에게 묻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존재』라는 건 알고 있지?"


"네. 당신은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했죠······ 하지만 그건······."


"신경 안써. 그런 하찮은 감상은 아무래도 좋아."


"아무튼 말을 좀 바꿔야겠지만, 나는 『주는 존재』 동시에 외우주의 사신 중 하나. 《천공의 타움》의 한 쪽 날개, 시간의 천사."


"글렌을 마스터로 삼은 계약관계에 있는······ 나와 그는 일심동체."


"내 영혼과 마음의 전부는 그의 것이고, 동시에 그의 영혼과 마음은 내 것이기도 해.


"좀······ 부러울지도."


"제대로 듣고 있는거야? 연애뇌는 좀 잠자코 있어."


"즉,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글렌이 이른 경지, 광대 【THE FOOL HERO】의 힘은 나의 것이기도 하다는 거야."


"······네?! 그, 그렇다면······."


"설마······."


"아, 그래. 그렇다면······ 나의 《왕의 법》으로······ 【THE FOOL HERO】를 너희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지도 몰라."


"제, 제법 자신만만 하신데요?!"


"실제론 자신없어!"



남루스가 기분 나쁜 듯이 소리쳤다.


"왜냐면, 저티스의 【ABSOLUTE JUSTICE】 정도는 아니지만 글렌의 【THE FOOL HERO】도 터무니없는 마술이라고?!"


"그 신비는 글렌이 영혼의 여정 끝에 이른, 글렌만의 신비야! 그런 것을, 아무리 나의 《왕의 법》이라고는 해도, 다른 사람에게 부여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해? 그런 건 계책도 아니야!"


"그, 그건 그럴지도······ 하지만······."


"한 번······ 시도해 볼 수 없을까요?"



아무 말도 못하는 시스티나 대신 루미아가 그렇게 제안 한다.



"안 돼."



남루스가 바로 부정했다.



"봐, 보라고. 지금 내 꼴이 어떤지."



남루스의 몸은······ 요정 사이즈다.


게다가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몸.


그것은 외우주의 사신 중 하나라기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연약한 모습이었다.



"루미아. 레 파리아의 본질에서 벗어난 너라는 존재를 유지시키기 위해 나는 라 틸리카로서의 본질을, 거의 대부분 너에게 양도했어. 쌍둥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덕분에 지금의 나는 이렇게 빈약한 신세야."


"이런 상태에서 《왕의 법》의 힘을 시험 삼아 휘두르는 건 불가능 해."


"고작해야 한 번. 모든 힘을 다해도 한 번이 한계. 게다가 그것이 성공할 지 어떨지 모르겠고······ 설령 된다고 해도, 【THE FOOL HERO】의 힘을 얼마나 흘려보낼 수 있을지 몰라."


"아마 천분의 일? 만분의 일? 억분의 일?"


"심지어 그 지속 시간은 1초? 순간? 찰나? 아니, 더 짧을 수도 있어."


"그런 꼴사나운 것이······ 나의 마지막 《왕의 법》인 셈이지."


"······?!"



침묵하는 시스티나 일행들 앞에서.



"(게다가······ 그 마지막 힘을 쓸때······ 나라는 존재는······ 아마도······ 더 이상은······)"



남루스는 반쯤 눈을 뜬 상태로 무언가 중얼거리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않고 삼켰다.


지금 여기서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일.


본래 자신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형태로 돌아갈 뿐. 그런 것은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이 소녀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까 얘들아? 한 번 걸어볼까?"



그런 남루스의 물음에.


순간 시스티나와 루미아가 머뭇거렸다.



"응. 하자. 시스티나, 루미아."



리엘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말해버렸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할 수 밖에 없어."


"그치만, 아마도 괜찮을거야······ 감이지만."



이런 세상 끝의 최종 결전 중에서도.


변함없이 여느 때처럼 졸린 듯, 그런 말을 하는 리엘을 보며 시스티나와 루미아는 웃었다.



"그래, 그렇지?"


"응······ 늘 그렇듯이."


"맞아, 하지만 이런 도박도 이제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두 사람에게.



"······안심해, 이게 마지막이야······ 정말 마지막······."



남루스가 작게 말했다.


목소리 톤이 좀 묘하기도 했지만 시스티나와 루미아는 알아채지 못했다.


오직 리엘만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갸우뚱 했을 뿐이다.



"간다. 준비됐어?"



남루스가, 뭔가를 어물쩡 넘기면서 소녀들을 재촉한다.



"시스티나, 네가 타이밍을 맞춰서 지시를 내려. 나는 너의 지시에 따라 진정으로 마지막인 《왕의 법》을 발동할 뿐이니까."



"······알았어요."



시스티나가 전선을 루미아와 리엘에게 맡기고, 전열을 떠나 글렌과 저티스의 싸움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글렌과 저티스. 서로 무한한 우주를 누비는 광속의 유성이 되어 종횡무진 날뛰는 그 모습은······ 도저히 자신들이 개입할 수준의 싸움이 아니다.



"(하지만······ 나라면······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아······)"



아무리, 높은 곳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싸우고 있는 건 글렌. 시스티나의 스승이다.


글렌에게서는 여러 가지를 배웠다. 마술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싸움의 호흡이라거나.


확실히 지금의 글렌은, 지금의 자신으로는 도저히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은 영역에 있지만.


그런데, 그래도.


글렌의 싸움의 호흡은······ 지금까지 함께 한 권투 수련을 통해 얻은 가르침 덕분에······ 그 유성같은 움직임에서도 확실히 느껴진다.


무엇보다 싸우고 있는 것은 글렌. 시스티나가 가장 사랑하는 스승이다.



"(봐!······ 보는 거야! 선생님의 움직임을······! 싸움의 공수 경계를······! 생사를 가르는 사선을······!)"



당연히 시스티나의 전투는 멈춘 상태다.


그런 빈틈투성이인 시스티나에게 천사들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둬!"


"이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



그런 시스티나를 루미아와 리엘이 지켜낸다.


다가오는 천사들을, 시간과 공간의 왜곡이.


휘몰아치는 은빛 검섬이 가로막는다.



"(아직······ 아직이야······!)"



시스티나는 지켜보고, 지켜본다.


걸음을 멈춘 상태에서, 자신의 바람을 더욱, 더 높이 끌어올리고. 글렌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분명히 할 수 있다. 못 알아볼리가 없다.


왜냐면⸺ 그는 자신에게 전투를 가르친 스승이니까.


루미아와 리엘은 자신의 영혼을 깎아내면서 천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시스티나가 일시적으로 전선을 이탈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상당한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루미아와 리엘은 시스티나를 신뢰하고, 그저 싸울 뿐이다.


두 사람을 계속해서 태워가는 초조의 불길을 무시하고. 단지, 오로지, 시스티나는 글렌이 벌이는 전투의 추세를 계속 주시했다.



"이거면 됐어. 신뢰에 대한 진정한 응답은 책임이라는 중압을 견디고 행동하는 것. 자신이 할 일을 내다보고 도망치지 않고, 거기에 맞서는 일이니까."


"자신감을 가져. 지금의 나는 강해."


"······가르침이 좋았던 덕분이지만."


시스티나는 기회를 기다린다.


시시각각 소모되는 루미아와 리엘의 모습을 견디고.


일각을 다투는 글렌의 모습을 견디고.


모든 것을 짊어지고.


시스티나는 그저 기다린다.


자신의 바람을 높이면서 계속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계속해서 기다리고······.


············.


············.


······이윽고.


마치 영겁과 같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여겨졌을 무렵.


그 순간이 다가왔다.



"(······!)"



그 순간, 번개가 친 듯한 감각이 시스티나의 온몸을 지배했다.


글렌과 저티스 전투의 분수령. 공수의 간극.


저티스가 승리를 확신하고 필살의 일격을 글렌에게 가하는 그 순간.


그리고 글렌이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일격을 허용하는 그 순간.


그 승패를 결정 짓는 분기점의 도래, 그 찰나의 순간을 시스티나는 끝내 읽어낸 것이었다.



"(······여기야······!)"



공수의 분수령은 승패의 결정점.


당연히 싸움의 흐름은 승자에게 있고, 패자는 패배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분수령은 분수령.


사소한 차이로 승자가 뒤바뀌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여기구나······!)"



그 순간, 시스티나는 영혼에서부터 끌어올리듯 외쳤다.



"남루스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그런 시스티나의 말에 반응하듯.



"?!"


"시스티!"


"······응!"



모두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의 법》⸺!"



남루스가 최후의 아르스 마그나를 해방시킨다.


그러자. 시스티나, 루미아, 리엘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세 사람은 빛조차 넘은 속도로 싸우는 글렌과 저티스에게로 돌진한다.


그런 세 사람에게, 무수한 천사들이 따라붙는다.


그것은 우주를 가득 메운 별들과도 같다, 안타깝지만 도저히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



뜬금없지만 여기서 한 가지, 수수께끼 문제를 풀어보자.


『정의의 마법사』란 무엇인가?


사람은 모두, 처음에는 《광대》. 타고난 《광대》다.


고상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신의 무지와 왜소함을 자각한 그 순간부터, 《광대》에서 『나그네』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의 《세계》를 목표로 하고, 아득한 영혼의 여정을 걸어나간다.


그 미래에 옅은 희망을 걸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단지, 오로지. 어리석어질 때까지 계속 걸어나간다.


《세계》가 《광대》의, 각각의 도달점이라 한다면.


『정의의 마법사』란, 《세계》의 형태 중 하나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 『정의의 마법사』는 무엇인가?



⸺⸺⸺



어떤 남매들의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의 한 풍경 속에서.


리엘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리엘."


"아하하, 아직 숙제 안끝났는데?"



공부를 하는 책상 옆에 서 있던, 리엘의 남매 일루시아시온이 놀란 듯 그렇게 말했다.



"······미안, 시온. 일루시아."



어느새, 리엘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 아닌, 제국 궁정마도사단 특무분실의 예복 차림이다.



"······난, 가야 해."



그러자, 일루시아가 모든것을 깨달았다는 듯. 슬프게 중얼거렸다.



"왜? ······어째서 가버리는 거야? 리엘······."


"너의 세계는, 괴로운 일 뿐이잖아······."


"알잖아?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그 세계는, 너에게 상냥하지 않아."


"우리들이 너라는 아이를 탄생시켰고, 그 때문에 넌 가혹한 길을 계속 걸어왔어······ 당신은 그것을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맹목적으로 따르며 아무 생각 없이, 걸었지······ 홀로, 외롭게."


"이 세계에 우리가 나타났다는 건······ 이것은 분명, 네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바라고 있던······ 너의 진심, 그것만은 틀림없어. 리엘."


"······상관 없잖아? 이 세계에는 네가 겪었던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은 없어. 여기서 우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도 돼."


"그때, 우리는 너를 축복하고 뒷바라지를 했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도 했어. '정말 이거면 되냐'고."


"우리의 이기심을 너에게 짊어지게 하고, 그것이 정말 리엘에게 도움이 되냐고."


"그러니까, 우리는······."


"괜찮아."



리엘은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나는 처음에는,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지도,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알 수 없었어."


"누가 시키는 대로 싸우는 편이 아무 생각 할 필요 없어서 편했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의 나에게는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글렌과 함께 있는 것으로······ 나는, 내가 걸어야 할 길을 찾았어."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 준 글렌을 지킬거야."


"그러니까······ 나는 가야 해. 시온, 일루시아.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런 리엘을.



"그렇구나······ 그렇지······ 후훗, 우리들이 걱정할 일은. 벌써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없었을지도······."


"······그래, 힘내. 리엘······."



일루시아와 시온은 안도한 듯. 웃으면서 리엘을 보내주었다.


⸺⸺


처음에⸺ 그녀는 《광대》였다.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모르고, 존재하는 가치를 모르고.


그저 맹목적으로, 남들이 시키는 대로. 검을 휘두르고 계속 싸울 뿐.


세상은 그녀에게 다정하지 않고,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지 않는 게 더 편했다.


하지만, 그런 정처없는 맹목적인 영혼의 여정 끝에.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알고, 존재하는 가치를 찾아서.


자신의 진정한 소망을 알고, 칼을 휘두르는 이유를 얻었다. 그녀만의 빛을 얻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세계》.


그녀는 마침내 그녀의 《세계》에 도달했다.


때문에 그녀는 『정의의 마법사』였다.



"이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



『정의의 마법사』의 마법사가 휘두르는 혼신의 은빛 검섬이 줄지어 서 있는 천사들의 대형을 두 동강으로 갈랐다⸺.



⸺⸺⸺



어느 왕족 모녀들이 사는 궁전의 한 방에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언니."



그 소녀, 루미아는 의연하게 말했다.



"저는, 가야 해요."



어느새, 루미아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찬란한 드레스로 차려입은 공주가 아닌, 《천공의 타움》의 모습이다.


그러자 그녀의 언니인 레닐리아와 어머니 알리시아는 조금 슬픈 얼굴로 루미아를 껴안는다.



"너는······ 예전부터 그랬지. 자신을 너무 소중히 여기지 않았어."


"그 특수한 힘 때문에······ 너는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믿고, 누군가에게 헌신하고. 그리고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만들려고 했지."


"너는 성자도 아닌, 운 나쁘게 조금 특수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인······ 평범한 아이인데······."


"우린 그게 걱정이었어······ 어쩌면······ 너는 현실 세계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 나도 꿈꿔본 적이 있어······ 만약, 네가 '평범한 소녀였다면' 하고.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우리와 함께······."


"괜찮아요. 언니, 어머니. 난 괜찮아요."



루미아는 명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두 사람의 말대로······ 저는 조금 엇나가 있었어요."


"자신이라는 존재가 특별한 존재이고, 주변에 불행밖에 초래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하고."


"그렇다면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를 위해 살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필요없는 자신에게 존재가치를······ 의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어요. 이런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이,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살고 있어요"


"내가 모든 것을 지탱한다는 것은, 그저 자만심이었어요."


"자신을 희생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 한다는 것은 실수였죠."


"나는······ 아무것도 특별한 게 아니예요."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그 답례로 모두를 지탱하고, 『주는』 거 예요. 거기에 옛날과 같은 일방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자기희생 따위는 필요 없어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이 세계를 지탱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나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준, 나를 지탱해준······ 글렌 선생님을 지지하고 싶어요."


"자기희생도, 의무도 아닌······ 그게 제 자신의 소망이니까요."


"저는, 저를 지탱해 주고. 내가 지탱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온화하면서도 자신 있게 말하는 루미아에게.



"후후, 왠지 모르게······ 너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쓸데없는 참견만 하다니······ 어머니 실격이네요."


"루미아······ 잠깐 동안 못본 사이에 꽤나 어른스러워졌구나······."



알리시아와 레닐리아는 조금 쓸쓸해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쁜 듯 숨을 내쉬었다.


⸺⸺


처음에⸺ 그녀는 《광대》였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믿고, 이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라고 믿었다.


자신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으로서 왜곡된 명목적인 영혼의 여정 끝에.


그녀는, 사람을 지탱하고. 지탱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깨우쳤다.


자신이 특별한 것이 아닌 그 의미와 가치가. 사람의 고리 속에 처음부터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의무도 아니고, 자기희생도 아니고. 자기만족도 아닌. 자신의 간절한 소망으로서의 기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복잡한 일이 아니다.


그저 『사랑』이라고 불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음이니까.


문제는 눈치채는가? 눈치 채지 못하는가의 차이. 그녀는 깨달았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세계》.


그녀는 마침내 그녀의 《세계》에 도달했다.


때문에 그녀는 『정의의 마법사』였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



『정의의 마법사』가 휘두르는 황금과 은의 열쇠가 나란히 서 있는 천사 무리를 시간과 차원의 저편으로 추방했다⸺.



⸺⸺⸺



어떤 노인과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가 서 있는 아득한 하늘의 천공성에서.


둘이 꿈꾸고, 도전하고 싶었던 천공성. 웅장한 하늘 광경을 앞에 두고.


그의 손녀⸺ 시스티나는 그것을 등지고 말했다.



"······죄송해요, 할아버님. 전······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느새, 시스티나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


유적 탐색용 장비가 아닌, 바람의 사도의 증표. 하얀 《바람의 외투》를 두른 모습이다.



"저는 나아가야 할 미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그 모습을 지켜봐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랬더니.



"허허, 많이 컸구나······ 시스티나. 내 귀여운 손녀야······."



그도 예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스티나의 조부⸺ 레돌프 피벨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스티나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부끄럽구나······ 죽기 전에, 뒷일을 너에게 맡겨놓고는······ 사악한 자의 감언에 넘어가버리다니······."


"스스로의 손으로 꿈을 부수고 손녀의 삶을 깨뜨리려 하고 말았어······."


"기억하고 있다······ 내가 마왕, 펠로드 베리프였을 때를.


"마치 반쯤 자고 있는 듯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도, 아무리 극악한 짓을 해도······ 마치 남의 일 같은······ 정말 악몽같았다."


"나는 꿈에 매달리고, 꿈을 꾸는 것으로. 미래를 거부하고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던 거야."


"······할아버님의 잘못이 아니예요."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요. 어리석어요. 그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가장 나빠요."


"게다가······ 나도······ 계속 바보같았어요."


"······시스티나?"



시스티나는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 했어요."


"꿈을 이어받고 따라가는 의미도. 마술사로서 진리를 추구할 각오도. 나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몰랐던 거예요."


"진리를 탐구, 자랑, 숭고한 사명······ 나는 마술사로서의 듣기 좋은 말에만 정신이 팔려, 줄곧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죠."


"마술은 멋지기만 한 것이 아닌, 살인적인 측면을 가진 무서운 것인데."


"꿈을 짊어지고 걷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예요."


"마술사로서 산다는 것은, 꿈을 향해 계속 걷는다는 것은. 때론 빼앗고, 빼앗기는 것도 허용해야 하는. 아주 잔혹한 길."


"꿈 이상으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예요."


"저는 모든 현실과 마주하고, 그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갈거예요."


"어쩌면, 모르는 것은. 아직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괜찮아요."


"그러한 냉엄한 현실을, 두리번거리고 찾아다니면서 미래를 목표로 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세상의 미래를 만들 거예요."


"그것을 가르쳐 준 사람과 함께······ 제가 더 이상 망설이지 않도록······ 저와 마찬가지로 항상 망설이고 있는 그 사람이 망설이지 않도록······ 함께, 미래를 목표로 하겠습니다!"



그런 시스티나의 결의에.



"허허허······ 그렇구나, 시스티나······ 하하······."



레돌프는 그저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너는 이미······ 아주 오랜전에 나를 넘어선 거구나."


"기쁘구나······ 정말로, 기쁘다······."


"인간임을 버리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미래를 버린 이 깊은 죄를 지은 내가······ 이런 행복을 얻다니······아, 과연. 확실히 꿈이로군. 이것은······."


"할아버님······."



시스티나가 사랑하는 조부의 얼굴을 쳐다본다.


레돌프가 시스티나 옆에 붙어, 그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는다.



"가거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너의 현실과 싸우고, 너의 미래를 향해 걸어라."


"나는 너와 같은 소녀를 둔 것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하게 해다오."


"고맙다, 시스티나. 가령, 이것이 너의 어딘가에 있는 마음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너의 현실을 부정하는 시시한 꿈이었다고 해도······ 네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 빛을 가지고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무심코, 시스티나는 조부와 함께 돌아본다.


그곳에는, 웅장한 천공성의 위용과, 그 뒤에 펼쳐진 무한한 하늘. 가장 사랑하는 조부와 함께 그곳에 도달하는, 그 기적의 순례가 있었다.



"정말······ 고맙다, 시스티나······ 잘 가거라······."


⸺⸺


처음에⸺ 그녀는 《광대》였다.


남들보다 더 타고난 재능을 지녔기 때문에 오만해지고, 그렇기에 무지했다.


마술사로서 꿈. 진리를 지향. 자랑. 사명.


듣기 좋은 말만을 존중하며, 항상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포근한,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에 고작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함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런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맹목적인 영혼의 여정 끝에.


꿈이라는 희망찬 말로는 정의할 수 없는, 엄격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래도 여전히 진리를 지향한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계속 걷는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세계》.


그녀는 마침내 그녀의 《세계》에 도달했다.


때문에 그녀는 『정의의 마법사』였다.



"선생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임⸺!"



『정의의 마법사』가 뿜어내는 거대한 바람이 폭풍이 되어, 대오를 갖춘 천사들의 진형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


보면 알겠지만 시스티나 일행이 작전짜는 거랑 회상으로 각성하는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음.


저 회상은 아마 저티스가 22권에서 보여준 꿈인것 같음. 아무튼 이걸 분할해 버릴까 하다가 그러면 후에 나올 전개에서 흐름 끊길 것 같고 분량도 애매해져서 함께 번역했음.


여담으로 원문에는 "승패를 가르는 천왕산"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게 뭔 개솔인가 싶어서 찾아봤는데 천왕산은 일본 전국시대 때의 요충지로. 승패를 결정짓는 기회라는 의미로 쓰인다네. 이걸 뭐라고 바꿀까하다가 "경계선" 이라고 의역 했음. 이런 표현 나오면 번역하기 진짜 성가심.


추천 비추천

11

고정닉 2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1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4105 일반 나무위키 인기투표 항목 추가 [1]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01 126 1
4104 일반 무구한 어둠 파트 번역해야 하는데... [10]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01 284 10
4103 일반 자넷이 글렌이랑 친했다는 건 의외네 [1]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01 229 0
4102 일반 뉴비입니다 형님들 [4] ㅇㅇ(121.150) 23.11.01 114 0
4101 창작 마침 창작 하나 올라왔길래 올려봄 [1] 마갤러(123.214) 23.11.01 218 3
4100 창작 심심해서 투자한 90분 [3] ㅇㅇ(59.1) 23.11.01 445 6
4099 일반 24권이 완결이 아닌이유 [5] 마갤러(118.235) 23.10.30 507 3
4098 핫산 [스포주의] 작가 트위터에서 가져온 tmi 2탄 [10]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30 787 5
4097 핫산 [23권 스포, 의역] 저티스의 최후 [12]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30 1066 13
4096 일반 23권 샀당 [4] 마갤러(194.156) 23.10.30 217 3
4095 일반 ㅅㅍ)근데 글렌 진짜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9 272 0
핫산 [23권 스포, 의역] 글렌 vs 저티스 4부 [17]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9 764 11
4093 정보/ 변마금 21권 전자책 [1] ㅇㅇ(14.4) 23.10.29 397 5
4092 일반 지금 하고 있는 번역 임시저장 한거 불러오지를 못해서 식겁했네 [2]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9 182 6
4091 일반 근데 세라 성격이면 진작에 고백하고도 남았을 텐데 [7]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9 283 0
4090 일반 근데 나무위키 히로인 문서에 [3]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8 297 0
4089 핫산 [스포주의] 작가 트위터에서 가져온 tmi 1탄 [6]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7 747 7
4088 정보/ 저티스 진짜 대단한 놈이네 [3] 10일째(211.214) 23.10.26 363 0
4087 일반 궁금한게 있는데 23권에서 이셸은 결국 등장 안 함? [2] 마갤러(116.125) 23.10.26 228 0
4086 일반 막타로 도움주는게 시스티나 같으니 시스티나 엔딩인가? [2] ㅇㅇ(220.122) 23.10.26 261 1
4085 일반 오랜만에 6권 다시보니 시스티나 개귀엽네 ㅋㅋㅋ 2Ruby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6 184 0
4084 핫산 [23권 스포, 의역] 글렌 vs 저티스 3부 [11]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6 716 13
4083 일반 뒤늦게 23권 지름 [1] 마갤러(210.126) 23.10.25 220 2
4082 일반 나무위키에 설정화 추가했다 [6]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5 313 2
4081 일반 은하권은 이미 벗어났네 [9]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4 399 0
4080 핫산 [23권 스포, 의역] 글렌 vs 저티스 2부 [11]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4 839 11
4079 짤/일 "좋아했어, 많이..." [8]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3 851 3
4078 짤/일 변마금 23권 전체 일러스트 [10]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3 1990 7
4077 일반 저티스도 위계가 있었구나? [2] 10일째(211.214) 23.10.23 296 0
4076 일반 23권 흑백 삽화 없음? [7]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2 332 0
4075 일반 세리카 제발 부활시켜줘 [1] 벨크라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2 297 2
4074 일반 그럼 글렌은 시간역행한 거임?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2 207 0
4073 핫산 [23권 스포, 의역] 글렌 vs 저티스. THE FOOL HERO [13]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2 1195 17
4072 일반 나도 맘 같아선 하렘 결말 원함 [3]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2 321 0
4071 일반 질문있슴.. [12] 마갤러(211.234) 23.10.21 200 0
4070 일반 23권 저티스전 분량 장난 아닌데 [2]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1 301 0
4069 분석 제목을 11↓0로 지은 이유와 의미 ㄷㅎ(175.200) 23.10.21 164 0
4068 일반 원서 e북책 구매는 어떻게 함? 텐가이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1 101 0
4067 일반 22권 번역본은 내년에 나오는거죠? 마갤러(125.183) 23.10.20 107 0
4066 일반 아 잘 생각해보니 슬프네요. [2] ㄷㅎ(175.200) 23.10.20 220 0
4065 일반 여러분 23권 최종보스는? [1] ㄷㅎ(175.200) 23.10.20 241 0
4064 정보/ 무구한 어둠 변태인가 [9]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0 498 0
4063 핫산 [23권 스포, 의역] 프롤로그 [4]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0 786 11
4062 일반 자 야스... 해야겠지? [2]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0 387 0
4061 일반 아무튼 간에 23권 바로 번역 들어가야겠다 [2] 천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0 209 2
4060 분석 21,11,0 / last word [5] 텐가이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0 352 1
4059 정보/ 이번에도 컬페부터 강스포 때렸닼ㅋㅋㅋ [3] 텐가이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0 538 4
4058 분석 23권 내용 전개 예상 ㄷㅎ(121.145) 23.10.19 146 0
4056 짤/일 심심해서 짤 하나 투척 [8]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9 381 4
4055 일반 DAY-2 ㄷㅎ(175.200) 23.10.18 11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