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밥상. 한창을 머뭇머뭇거리다 이런 말을 토해낸 서드 칠드런을 보며 미사토는 피로감에 '얘 또 이러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지 군, 남들을 위해 에바에 탈 필요는 없어. 무엇을 위해 여기 왔는지 생.."

정론에 가까운 미사토의 말은 놀랍게도 서드의 폭발에 끊기고 말았다.

"아뇨!!! 에바 말고요! 미사토 씨! 제발 청소 좀 하면서 사세요!! 한창 어린 애한테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미사토 씨처럼 예쁘고 능력있는 여자가 생활력이 바닥을 찍는 게 오타쿠들한테 갭 모에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런데 같이 사는 사람 생각 좀 하시라구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습니까??"

도대체 미사토에게 하는 말인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르겠는 말을 뱉으며 신지는 일장연설을 토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미사토는 말문이 막혀 밥을 넘기지도 못한다.

"샤워를 했으면 배수로에 머리카락 좀 치우세요! 목욕은 영혼의 세탁? 저는 맨날 씻으시고 나면 배수로에 꽉 막힌 미사토 씨 머리카락 치우느라 영혼이 더러워진다고요! 배수로 뿐만이 아녜요. 환기도 좀 하고, 청소를 아예 안 하니 벽이니 바닥이니 누리끼리해지잖아요! 미사토 씨 청소용 솔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계세요?"

"도대체 왜 다 쓴 휴지 심은 안 버리고 냅두는 거예요?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쓰레기잖아요! 다 사용한 샴푸니 바디워시니 칫솔이니! 왜 안 버리고 다 박아두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매우 민망하게 씹던 밥을 겨우 넘긴 미사토는 뻘쭘하게 사과의 말을 꺼내려 했다.

"신지 군. 그... 내가 미안해. 일이 바빠서 신경을 못 썼어. 앞으로는 내가..."

"그놈의 앞으로는 앞으로는! 일이 바빠서 스트레스 받아서! 핑계 좀 그만 대세요! 미사토 씨가 어지르신 걸 일일이 치우는 저는 에바 안 타요? 미사토 씨 눈에 송곳 찔려보신 적 있어요? 배에 칼 찔려보신 적 있냐구요! 저는 스트레스 안 받겠어요?"

미사토는 침을 한번 꿀꺽 넘기고는 '얘가 참고 참더니 터지긴 터지는구나. 터지는 포인트가 나일 줄이야...'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제발! 식사를 하셨으면 설거지를 하세요! 도대체 왜 개수대에 박아두시고 끝내시는 거예요? 저거 저 상태로 이틀 사흘 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벗겨지지도 않고, 끔직한 냄새는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미사토 씨는 저 배수로에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서 녹아서 저딴 꼴이 됐는데!! 저런 곳에서 식사가 하고 싶으세요? 저거 제가 다 치워요!"

"쓰레기는 제발 헹굴 건 좀 헹구고 제때제때 버리세요!! 저 뒤에 맥주캔이랑 사케 병들!!! 저거 한가득 분리수거 통에 들고 나가면 어떻냐면요 미사토 씨. 남아있는 알코올 냄새가 지인짜 불쾌해요. 비닐이니 바구니니 다른 데 다 묻어가지고 끈적끈적해지는 그 꼬라지를 한번이라도 치워보신 적이 있으세요? 컵라면! 3분 카레! 냉동 치킨! 이것들 소스가 딱딱하게 굳어서 손쓸 수도 없는 쓰레기들이!! 부엌에!!!! 미사토 씨 방 구석에!!!!!! 박혀있는 거 치우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아시냐구요!!!!!! 제 눈에 구멍 뚫었던 그 사도가 덜 사악해요!!!"

"당번 상 분명 미사토 씨가 오늘의 바닥 쓸기, 걸레질 당번이었죠. 바닥 꼬라지 좀 보세요! 온통 미사토 씨 머리카락에, 밖에서 들어온 모래, 먼지 알갱이! 제가 오늘 한번 안했다고 끈적끈적 한 것 좀 보세요! 같이 사는 공간이잖아요. 펜펜이 바닥 밟기 싫어해서 씻으면 냉장고 들어가서 안 나오려고 하는 거 아세요? 전 진짜 요즘 신발 신고 돌아다닐까라고 생각을 해요!!"

"진짜!!! 집은 삶의 공간이라고요 미사토 씨! 제 집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있으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스트레스 받아서 진짜 못 해먹겠어요!!! 혼자 살 테니 조치 좀 해주세요!! 이렇게 살지 마시고요!!!"

삿대질을 해가며 울분을 토해낸 서드 칠드런은 분이 안 풀린 것처럼 미사토 앞에 놓인 에비스 맥주캔을 낚아챘다. 아직도 벙찐 작전과장은 입만 벙긋거리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차가운 맥주캔을 서드 칠드런이 들이킨다.

기세 좋게 꿀꺽, 꿀꺽 두 번 들이키더니만 표정을 찡그리며 곧 입을 떼고야 만다. 이윽고 사레들린 것처럼 기침을 토해내는 서드 칠드런은 '도대체 이딴 걸 왜 마시는 거야'라고 얼굴에 적어두고 상기된 얼굴로 그 지휘관을 바라본다. 미사토는, 처음 맛보는 맥주 때문에 이런 표정인 건지, 살림살이에 지쳐 이런 표정인 건지 궁금했다.

"미사토 씨... 저는요, 저는, 시팔 진짜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막혀 있던 배수로가 뚫려 있으면요. 보통 '아 얘가 치워줬구나. 미안하네. 나도 앞으로는 신경써야지'라고 생각해야 하는 게 정상 아녜요? 혹시 '이 새끼가 또 치워줬네. 또 막아놔야지 ㅋㅋ'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는, 제가 그렇게 열심히 청소해 놨는데 다시 원상복구 시킬 리가 없어요."

"미사토 씨가 어제 먹고 뒷정리 안한 컵라면 쓰레기는요. 가만히 냅두면 혼자 사라지는 게 아녜요. 이게 없어져 있으면, 응? 사람이라묜, 치워준 ㅅㅏ람한테 조금의!! 일말이라도! ㅁㅣ안하더딘지. 그래야 하는 거 아녜요??!! 어?"

"쓰레기를요, 나 혼자ㅅㅓ, 양 손에 잔뜩 들고 내려깠다 올라오고, 내려가서 다 분리수거하고 올라오고, 맥주 캔에서 흘러나온 어? 그 이상한 냄새나는 맥주 다 묻혀가면서 버리고! 도대체 나 ㅇㅗ기 전엔 어떻게 샇았어요? 미사토 씨. 저도 어머니 없고, 아버지는 저딴 인간이어도 최소한 사람답게는 살아요. 미사토 씨 부모님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던, 끅, 거예요?"

"나 지이ㅣㄴ짜 모태 먹겠어.  ... 미사토 씨. 나 지인짜 못해 먹겠어요. ... 에바니 사도니 내가 그건 할게요. 근데 진짜... 이런 집에서능 못 살아.... 내가 가슴이 미어져서 정말..."

감정이 올라와 목을 메며 서드 칠드런은 울부짖었다. 저녁 밥상에 머리를 박고 울음을 삼키기 시작했다. 끅끅대며 울음을 터트리는 조그마한 소년의 모습은 그가 그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억누르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카츠라기 미사토는... (청소 안 하고 사는 새끼들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더 못 적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