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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앝/짤✍] 레드테나 스토리(6)~(10)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11.234) 2024.04.26 12:01:48
조회 97 추천 9 댓글 0
														
* "나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마..! 나는 이제 아무도.."
저택에 들어 온 첫날, 처음이지만 익숙한 듯 택의 외투자락을 붙잡으며 매달리던 반짝이던 눈망울이 있었다. 아이는 처음 본 택에게 거리낌없이 포옹과 뽀뽀를 퍼부었으며 노래를 해 달라고 졸랐다. 학교 다닐 때 이외엔 악보를 본 적도 없었던 택은 결국 현의 미소에 굴복해 더듬더듬 가곡 한 소절을 불러주었다. 그 순간 아이는 햇살이 찬란한 공간에 둥실 떠 있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내 택의 목소리를 추앙하게 되었다. 아무런 사심이 담기지 않은 찬사와 애정의 마음을 받아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증오와 경멸로 가득 차 누구도 다시 들일 수 없었던 마음의 빗장이 한줄기 따스함으로 슬며시 벗겨지는 순간이었다.(6)


* "아름다워.."
와인이 담긴 잔을 가볍게 들고 의자에 기울여 앉은 큐리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른한 표정과 손짓으로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없는 무심함을 보이고 있었으나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LED벽난로는 진짜로 열을 내뿜기라도 하듯 타닥타닥 불꽃을 태우고 있었고 새하얀 그랜드 피아노를 가운데 두고 앉거나 서서 캐롤을 부르는 세 명의 모습은 수백 년만에 처음으로 포근함과 따뜻함,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긴 세월동안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을 만들어 낸 존재들이 있었나? 큐리는 처음으로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가 불멸인 걸 인지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몸이란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은밀한 기쁨은 가까운 이들의 생노병사를 겪으며 저주로 변해갔다. 긴 삶 동안 불멸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들 모두 자신만의 간절한 목적으로 불멸을 원했으나 대부분 마지막 순간에 필멸을 선택하고 그를 떠나갔다. 그러나 오스틴만은 유일하게 끝까지 불멸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지 않았으며 불멸자로 진행하는 고통의 시간도 견뎌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그의 곁에서 썩 괜찮은 동반자로 지내주었다. 오스틴이 만들고 큐리가 부른 노래들은 듣는 이들을 황홀하게 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 큐리를 칭송했지만 큐리는 알고 있었다. 오스틴의 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한 큐리는 오스틴의 작은 비밀 또한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려 준 적 없는 오스틴의 노래.  큐리의 화려하고 섬세한 고음과는 다른, 부드럽고 포근한 고음. 큐리는 오스틴이 왜 직접 노래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적지 않은 세월 그냥 그 자리에서 곁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7)

* "죽고 싶지 않아... 살려 줘..."
큐리는 죽음의 문턱에서 택이 힘없이, 하지만 간절하게 중얼거리던 말을 기억했다. 초청받아 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우연히 얼굴을 보게 된 것이 택과의 처음 만남이었다. 처음 본 그는 말 그대로 사랑에 빠진 이의 눈빛, 그 자체였다. 그 눈빛이 너무나 강렬해 큐리는 그 후로도 꽤나 택의 그 눈을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에 만났던 택의 모습에선 그 눈빛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세상 모든 희망과 빛을 삼켜 버린 듯, 슬픔과 절망의 탄식이 그의 몸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듯했다.  짧은 시간에 이뤄진 한 인간의 급격한 변화는 지루한 삶을 살아가는 큐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하여 필멸자로서의 마지막 택을 만났을 때,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갈망이 공존하는 이 아이러니한 존재를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의 이런 결심에는 많은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택의 외모도 큰 이유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8)

* "너는 내 심장의 한 조각이다.."
천 년이 넘는 그 긴 시간 동안 큐리는 단 한번도 아무런 사심이 담기지 않은 이런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의 생의 첫 순간 그 부모들은 조건없는 사랑을 보냈을 테지만 그 기억은 이제 너무 희미해 존재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그러나 지금 눈 앞에서 무한의 신뢰와 사랑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이 아이의 애정은 실재하는 것이었다. 비록 성장과정에서 긴 시간동안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아이는누구보다 아름답게 자라났다. 또한 별다른 설명없이 강행했던 불멸자로의 진행 역시 힘들지만 잘 이겨내 주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바램이라면 언젠가 현에게 필연적으로 닥칠 고뇌와 저주의 시간이 되도록이면 짧고 덜 고통스럽게 지나가는 것, 그것뿐이다. (9)

* "제발 그녀를 살려 주세요.."
현의 삶은 안온했고 행복했다. 아주 어릴 적 몹시 아팠던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했고 누구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그의 모습은 남녀불문 모든 이의 애정을 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오스틴과 택은 흡사 피를 나눈 형들이 막내를 돌보듯이 현을 사랑했으며, 말없이 현을 바라보는 큐리의 애정은 부모의 부재에도 그 결핍을 느끼지 않게 할 정도였다.  
이런 현에게 첫사랑의 순간이 찾아왔다.  현의 그녀는 그만큼이나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나 병약했다. 그런 그녀에게서 깊이 묻어 둔 엄마의 모습을 보기라도 한 걸까. 현은 순식간에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그들이 함께 한 계절은 너무나 짧았다. 현은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놓지 않고 매달렸다. 택은 현에게 그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의사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오스틴은 현과 그녀가 들으며 즐거워했던 가수들과 연주자들을 섭외해 마음을 달래 주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녀의 상태에 고개를 저었고 그녀의 병색은 짙어져만  갔다. 마침내 현은 그가 아는 가장 최후의 방법으로 큐리를 찾았다. 현은 큐리에게 그녀를 살려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했지만 큐리는 단칼에 거절했다. 더 이상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건 큐리에게 무리였다. 게다가 그녀가 그 긴 고통의 순간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현은 처음 느낀 절망과 슬픔에 온 몸과 마음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마침내 다가 온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  사랑을 잃은 현의 울부짖음은 이내 흐느낌이 되어 저택을 휘감았고 목숨처럼 사랑하는 이의 슬픔은 오스틴과 택의 마음까지 찢어 놓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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