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팬픽은 원작을 참고하여 각색한 작품으로, 신솔의 전역 직후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작과 동일한 시간대(2007년)를 감안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지이이잉-
목욕을 마치고 개운한 상태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신솔은, 자신의 침대 위에 놓여져 시끄럽게 진동을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여보세요?솔이 언니!"
오랜만에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목소리다. 그녀의 군생활 대부분을 함께 보내왔던 자신의
선임, 김소리의 발랄한 목소리에 신솔은 자연스레
미소를 지어내었다.
"어 소리야~오랜만에 목소리 듣네!"
"응응! 언니 어제 전역했다는 소식 듣고 전화해봤어~"
"감동인데? 사회 나가면 꼭 보자고해놓고 연락 한 통 없을 줄 알았더니~"
"아 언니! 농담도 참!"
신솔의 짖궂은 농담에 소리는 깔깔 웃다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언니. 혹시 내일 시간 돼?"
"응 그럼~왜? 이 언니랑 단둘이 찐하게..."
"아, 실은..."
소리는 잠시 난처한 기색을 펼치는가 싶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본론을 꺼내었다.
"사실 가을이한테 연락왔었어. 자기 남친이랑
헤어졌다고...자기랑 만나서 놀아달라고 땡깡을
부렸는데...얘기 들으니까 거절하긴 좀 그렇더라고...근데
단둘이 있기엔 내가 너무...어색할 거 같아서."
그랬다. 소리의 맞선임 김가을은, 한때 그녀가 몸담았던
2소대의 악명높던 꼴통으로, 심심하면 후임들 불러다가
구타하고,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던 폭력고참이었다.
말년이 되어서는 조용히 기율 경을 맡으며 별 말썽을
일으키진 않았으나, 소리는 자신을 그토록 구타하고
폭언을 일삼던 가을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셋이 보자고?"
"으응..언니는 그래도 가을이랑 좀 친하니깐."
"알았어, 우리 귀여운 소리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정말? 고마워! 그럼 내가 가을이랑 얘기나누고 시간이랑
장소 문자로 보낼게!"
전화를 마친 신솔은 마침 심심했던 차에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아무런 약속도 잡혀있지 않던 터였다.
휴대폰에는 자기랑 만나자는 남자 선배들의 문자들이
쌓여있었으나, 너무나도 빤히 드러나는 그들의 의도를
이미 알고있는 그녀였다.
잠시 후 소리로부터 장소와 시간을 전달받은 신솔은,
그녀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답신을 보내고 살짝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언니!"
슬슬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11월의 날씨.
퇴근시간을 맞이한 도심 속 길거리를 거니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발견한 유달리 조그마한 소리의 체구에, 신솔은
푸핫하며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리 김 수경~잘 지냈어?"
"아아! 수경이라 부르지 마. 제대한 지가 언젠데~"
"내 눈엔 아직도 너가 활동복 입고 군생활 하던 모습이
선한데~"
"어어? 지금 고참 머리 쓰다듬는거야?"
틱틱대는 그녀의 반응이 귀여웠던 신솔이 소리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도 장난식으로 맞받아치며 헤헤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가을이는? 아직 안 왔나?"
"짜샤! 누가 고참 이름 함부로 부르래?"
그녀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가을만의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 인기척도 없이 그녀들 앞에 나타난 가을은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허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신솔. 간만이다? 나랑 쟤랑 볼일 있었는데 너까지
끼어들 줄은 몰랐는데?"
소리에게 턱짓으로 삿대질하는 가을과, 그 삿대질에
흠칫하는 소리. 신솔은 여전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가을의 볼을 살짝 꼬집고 흔들었다.
"이게 어디서 반말이야, 여기가 289야, 짜샤?"
"아,아아! 야! 안 놔?! 화장 지워져!!"
길고 긴 시간동안 고참이라는 이유로 신솔에게 말을
놓고 지냈던 가을이었기에, 그녀는 신솔이 자신보다
나이가 1살 더 많다는 사실마저 잊은 지 오래였다.
"어,언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 쳐다본다."
가을과 신솔을 뜯어말린 소리가 둘의 손을 잡아끌며 술집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착석한 그들
사이에 잠깐동안의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군대 밖에서
자신의 선임 둘을 마주하게 된 신솔. 허구한 날 자신을
괴롭히던 고참을 마주보고 있는 소리. 남자친구와
헤어지고나자 볼 사람이 그토록 자신이 괴롭혀왔던
맞후임밖에 없던 가을. 이러한 셋이 막상 사회의 한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자, 그들 사이에는 가게 밖에서 부는
냉랭한 찬 바람과 같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 침묵을 먼저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가을이었다.
"야..야! 김소리, 근데 너 웬일이냐?"
"으..응? 뭐가...?"
"나 솔직히 너 안 나올줄 알았는데...왜 나온거야? 나
싫어하는거 아녔어?"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소리의 그 말을 들은 가을은 "야!" 하며 소리를 빽 질렀고 ,
신솔은 그 모습에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남자친구랑 헤어졌으면 되게 힘들거 같아서... 그
말 들으니까 거절할 수가 없더라구...너 울적한 거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해서..."
"....."
가을은 약간 미안함을 느끼는 듯 했다. 그동안 자신이
소리에게 해왔던 패악질이 그녀에겐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일텐데, 덤덤하게 자신을 생각해주는 소리의 말에
가을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야~이렇게 마음씨 착한 후임을 그렇게까지 못 살게
굴어온거야?"
"다..닥쳐!"
신솔이 능글맞은 웃음으로 가을이를 비꼬자, 가을은 그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를 빽 지르곤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미안한 감정을 소리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가을의
마음이었다.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사과는 나오지 않았다.
"뭐, 계속 이렇게 마주보고만 있을거야? 음식이나 시켜."
뾰로통한 표정으로 가을이 메뉴판을 집어들었고, 곧
그들은 갖가지 안주와 소주 3병을 주문하였다.
"그래서, 어쩌다 헤어진건데?"
소주잔을 짠-부딪히며 각자 한잔씩 비워낸 후, 신솔은
가을의 이야기가 궁금한 듯 질문을 던졌다.
"아, 그 개새끼! 생각할수록 빡치네 진짜!!"
소주잔을 식탁에 쾅 내려친 가을은, 입가에 묻은 술을 싹
닦아낸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새끼 딴년이랑 바람났어, 씨발. 어떻게 날 두고!"
"바람? 몹쓸 놈이네."
"그치? 나 같이 예쁜 여자가 또 어딨다고! 얼굴도 생기다
만 애랑 바람이 난 건지, 참!"
"근데 그런 생기다 만 애한테 뺏길 정도면, 너 니 성질
남친한테 있는대로 다 부린거 아냐?"
"뭐..뭐?"
신솔의 말 한마디에 정곡이 찔린 가을은 몹시
당황하였는지, 콜록거리며 물 한잔을 들이키었다.
"내가 니랑 하루이틀 봐왔냐? 내가 니 성격을 아는데.
남친이 니 말 좀 안듣는다고 땡깡부렸지?"
"아, 언니는 왜 그새끼 편들어! 바람맞은건 나라니까?!"
적잖이 당황했는지, 이제껏 자기 뱉고싶던대로 말하던
가을은 신솔을 언니라 부르며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아아니...솔직히 직장 다니면, 나한테 가방 하나 정도는
선물로 줄 수 있잖아..."
"무슨 가방인데?"
"...루이x통..."
입이 떡 벌어지는 신솔과 소리.
"너 그게 얼만진 알고?"
"얼만게 뭐가 중요해? 그게 얼마던간에 사와주는게 진짜
사랑하는거 아냐?"
철없는 가을의 대답에, 신솔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고,
소리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차인 가을에게 비극의
시련이 있을거라 착각한 자신을 원망했다.
"그래놓고 명품에 환장한 년이라며, 분수에 맞는걸
바라라면서 나한테 모욕을 주잖아!!"
"그래그래. 그놈이 나빴네, 가을아."
더 커지는 가을의 목소리를 제지하기 위해, 소리는 대충
맞장구를 쳐주며 가을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렇게 신솔과 소리는, 가을의 전 남자친구 뒷담에
한참동안 맞장구를 쳐준 후에야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 수 있었다.
"언니는 말년에 별일 없었어? 우리 나가고 어떻게
지냈는지 말 좀 해줘~"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소리를 보며, 신솔은 과거
기대마에서 효지와 조연에게 폭발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효지와 조연과
화해하며 전역식을 마무리했는데, 굳이 효지와 조연의
뒷담을 까고싶진 않았다.
"별일은 없었어. 애들도 다 말 잘 들었고..."
"그래? 그 밥버러지 새끼들이 철이라도 들었나? 오진솔,
박효지 그 폐급들 아직도 여전하지?"
"아, 애들 이젠 다 잘해. 진솔이는 중수로 갔고, 효지는 소수
맡고 있어."
"그 머저리들이? 안 맏기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도 들은 듯, 가을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베꼬며 피식 비웃었다.
"호영이가 많이 도와줬어. 사실 호영이 없었으면 좀 힘들뻔
했지만..."
"아아~호영이! 걔 일 너무 잘해서 맘에 들었었는데!"
"뭐, 쓸 만한 년이긴 했어."
소리와 가을도 각각 호영에 대해 한마디씩 나누자, 신솔
또한 둘에게 술을 따라주며 질문을 건넸다.
"너네들은 뭐하고 지냈어? 다들 대학 다니나?"
"응, 나랑 가을이는 복학하고 학교 다니고 있지!"
"말도 마, 조별과제 하느라 죽을 맛이니까."
"그런거치곤 너 허구한날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던걸? 뭐
먹었고 어디 놀러갔고..."
"안 닥쳐, 이 년아?"
취미로 블로그 포스팅을 즐기던 가을은, 소리의 말대로
조별과제는 뒷전이었다. 참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가을은 또 한번 정곡을 찔리자,
소리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아! 왜 때리는데?"
"이게 제대하니까 많이 컸다? 289 시절 벌써 다
까먹으셨어?"
"여기 289 아니거든? 또 때리면 나 가만 안 있어!!"
"가만 안 있을거면 어쩔건데?"
둘이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신솔은 둘 앞에 술잔을 내밀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우리 싸우러 왔나~? 각자 얼굴보고 웃자고 온거지! 자!
짠 해, 짠!!"
신솔의 한마디에, 가을과 소리는 잠시동안 서로를
노려보더니 술잔을 들고 신솔과 잔을 맞추었다.
"야야, 김소리이이이이~아직도 기분 나쁜거 아니지이?
쿨하게 다 잊는거다아..."
"아아, 언니! 얘 좀 떼어줘..."
얼마쯤 마셨을까. 술에 거나하게 취한 가을은 소리의
어깨에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고 있었고, 소리도 머리가
헝클어진 채 가을의 무게에 짓눌려져 힘들어하고 있었다.
"가을이 주사 되게 귀엽네. 야, 김가을. 너 앞으론 1병 이상
마시지 마."
"뭐래애? 니가 뭔데 내 주량을 정해, 씨팔..."
평소에도 안하무인이던 그녀는, 취하면 더더욱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호전적인 성격이 되곤 했다. 신솔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가을의 이마에 꿀밤을 한대 먹였다.
-따악!!-
"꺄악!! 아프잖아!!"
"술 깨는데는 이거만큼 특효약이 없지, 요 년아."
가을은 자신의 이마를 옷소매로 문지르며, 찔끔 눈물늘
보였다. 신솔은 가을을 소리에게서 떼어낸 후,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가을의 볼을 꼬집었다.
"너 그리고 자꾸 언니한테 씨발씨발 거릴래? 어?"
"아아!!언니!!! 아파아파!!"
가을이가 떽떽 거리자, 신솔은 가을을 놓아주고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얌전히 마셔, 얌전히."
"손 드럽게 맵네, 씨.."
"..."
"욕..욕 안했거든? 자, 마셔마셔!"
자신을 노려보는 신솔의 눈빛에 움찔한 가을은, 또
꼬집힐까봐 부랴부랴 건배를 주도했다.
짠- 세 개의 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마지막 술병을 다 비웠을 때 쯤에는, 소리는 색색대며 잠에
취해있었고, 가을도 몽롱해진 상태로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둘의 집 주소조차 모르는 신솔은, 난감한
표정으로 이마를 손으로 짚은 채 고민에 빠져있었다.
'술을 이렇게 못 마실줄은... 얘네 어떻게 해야 하냐...'
한참동안 고민하던 신솔은, 결정을 내린 듯 가을과 소리를
자신의 양 어깨에 각각 몸을 뉘인 후, 계산을 마치고
천천히 술집 밖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둘을 숙박업소에
재우기로 한 신솔은, 자신의 양옆에 각각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있는 가을과 소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우...무거워 죽겠네.증말"
숙소에 입실하자마자, 침대에 가을과 소리를 눕힌 신솔은,
탈진에 가까울 정도로 지친 몸 때문에 자신도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눈을 감은 채 새근새근 잠들고 있는 상태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가을과 소리를 보니 신솔은 무언가
색다른 감정이 들었다.
'저렇게 둘이 평온한 얼굴로 마주보는건 처음이네.'
신솔은 그 둘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가을과
소리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넘겨주었다. 그 후
샤워를 마치고 편한 옷으로 입고 나온 신솔은, 아직도 곤히
잠들어있는 가을과 소리를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두 사람 사이 틈으로 몸을 뉘인 신솔은, 양팔로
각자를 끌어안으며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재우듯, 둘의
어깨를 토닥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방 안은 난방이 되어있지 않아 조금 쌀쌀했지만, 침대에
나란히 누운 세 사람은 추위에 떨고 있지 않았다. 불편함
따위도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체온이
전해지면서 포근하고 따뜻한 상태가 되어, 그녀들은 마치
집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며 몸을 부대낀 채 달콤한
단잠에 빠져들었다.
넵. 이번엔 약간 코믹스럽게 짧은 단편 팬픽을 써보았어요. 수위도 좋지만, 전 이런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도 좋아하는 편이라서..ㅎㅎ 이런 내용을 꼭 한번쯤 써보고 싶었답니다.
이 팬픽 이후로는, 제가 시험이 이제 코앞이라 당분간 팬픽을 쓸 수 없을거 같아요. 혹시 좋은 소재가 생각나셨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추천하셔도 좋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붕이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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